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8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88화(188/482)
김우현은 본부장이 된 이후, 요 며칠 현승을 찾아갈 시간이 나지 않을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
유치한 말싸움을 한 이후로 현승과 서먹해진 탓도 있었다.
“후-우.”
김 실장은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옥상에 올라와,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어찌나 잘근잘근 깨물어 댔는지, 필터 끝이 잔뜩 흐물흐물해진 채였다.
치이이익-.
물이 살짝 담겨 있는 재떨이 통에, 담배를 지져 꺼 버리곤 다시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섭섭한 건 사실이지만, 어른이 돼서 너무 유치하게 굴었어.’
그래.
‘어른답게 먼저 사과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김 실장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좀 여유가 나니까, 오랜만에 구내식당이나 가 보자고 해 볼까?
띠링-!
이런 게 일심동체라는 건가? 때마침 타이밍 좋게, 현승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짜식, 그럴 줄 알았어.”
김 실장은 손가락으로 콧망울을 한 번 슥 훑어 내며, ‘동쪽이 님으로부터 도착한 세 메세지 +1’라는 알림을 꾹 눌렀다.
아아.
그래, 이럴 줄 알았지.
[ 드라마 OST 작업 인수되는 건지 확인 요망 ]본부장이 된 걸 축하한다든가, 예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점을 사과한다든가, 함께 점심이나 먹자든가 하는 얘기 따위는 한 줄도 없었다.
정말.
딱, 업무 확인 요청이었다.
‘일 중독자….’
늘 이렇게 일밖에 모르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지내니까, 원활한 공감과 소통이 어려운 게 아니겠는가?
‘로봇 같은 놈….’
김 실장은 탐탁지 않다는 양 문자를 바라보면서도, 곧장 드라마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르-.
기나긴 신호음 끝에 남 P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고, 본부장님! 안 그래도 승진하셨다고 전해 듣고,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
“예, 좋습니다. 그런데 혹시 일전에 제가 협업 요청했던 건에 대해선 아직 확정된 바가 없는 걸까요?”
─ 전달했는데, 아직 연락이 안 가신 거예요? 제가 통화 종료하는대로, 다시 한번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네, HS가 단독으로 꼭 맡아서 작업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꼭 함께 전해 주시겠어요?”
─ 당연히 전해야지요. 저희로선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인 걸요.
이후 형식적인 말들을 몇 마디 정도만 더 오간 뒤 통화를 끝냈다. 김 실장은 문득 ‘HS’라는 이름이 지닌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요계도 아닌 드라마 판에서조차, HS가 OST 작업을 맡아 준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이지 않은가?
이건….
모두 현승의 힘으로 이뤄 낸 업적이었다.
남들은 타고난 천재라, 어려운 곡도 쉽게 만들어 돈을 번다고 떠들어 대지만, 그건 현승을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고.
가장 가까이서 봐 온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현승이 현재 탑 작곡가 반열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오로지 타고난 재능뿐만은 아니었다.
그래.
일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광기 어린 눈으로 묵묵히 밤을 지새우고 매일 커피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버텨 낸 결과물이다.
한참 놀고 싶을 나이에, 가족을 책임지고 있으니 물 들어올 때 더욱 힘차게 노를 젓는 거겠지.
마치.
이십 대 초반, 엔터사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해치우던 자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김우현 또한.
어린 시절부터, 가정을 챙겨야 할 가장이었으니까.
‘그런 녀석한테 서운하다고 툴툴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자신이 본부장에 오를 수 있던 것도, 현승이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2팀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안겨 준 덕택이지 않겠는가?
터벅, 터벅-.
생각 정리가 끝난 김 실장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곧장 커피를 사 들고는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큼, 흠.”
늘 노크 세 번과 함께 활짝 열었던 문고리를, 오늘따라 잡지 못한 채 한참을 망설이기도 잠시.
툭-.
무심히 문 앞에 내려놓고는 문자를 보냈다.
[ 드라마 OST 건은 다시 한번 전달했다. 그리고 문 앞에 커피 두고 가니까 마시면서 해. ]자존심을 부리는 건 아니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 까닭이었다.
* * *
안소정은 오랜만에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소정 씨. 분명히 내가 나래 씨 통해서 전달한 걸로 아는데, 왜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네?”
“아니면 꼭 히든이랑 작업해야 하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계약금 다 물어 주면 되잖아.”
“그, 그게….”
남태현 PD는 당황하는 자신이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꾸짖음을 이어 나갔다.
“HS 같은 사람이랑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넙죽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줘도 못 먹지?”
“아, 아니….”
정말.
HS가 우리 드라마 OST를 먼저 작업하고 싶다고 제안이 왔다는 건가? 조나래가 잘못 전달받은 게 아니고, 그게 진짜였다고?
지금 안소정의 귀에는 닫힌 문을 두들기며 “진짠데.”하고 앓던 조나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짜예요?”
“그럼, 가짜로 그런 말을 하겠어? 소정 씨는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로 보여?”
“그건 아닙니다만, 믿기지가 않아서요. LS 엔터 전속 작곡가들 몇 명이 다 함께 프로젝트성으로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HS 단독이라는 거죠?”
안소정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양 재차 되묻자 남 PD가 책상을 내려치며 즉답했다.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안지호랑 둘이 인연이 좀 있는 거 알지? 아마 그래서 HS가 먼저 나서 주는 것 같아. 안지호로 캐스팅하길 아주 잘했어.”
“아아, 그러네요. 둘이 인연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요.”
“여하튼, 그러니까 기분 상해서 안 한다고 하기 전에, 얼른 조나래한테 연락처 받아서 연락드려!”
불호령이 떨어지자, 안소정은 다급히 외부에 나가 있는 조나래에게 문자를 보냈다.
헛소리라며 제대로 듣는 시늉도 안 해줬던 게 떠올라, 다소 멋쩍기는 하지만….
[ 나래야, 일전에 혹시 HS 작업건 관련해서 담당자 연락처 받은 거 있으면 좀 보내줄래? ]지금 자존심이 먼저겠는가?
불호령도 불호령이지만.
드라마 음악 감독 입장으로서도, 아주 군침이 줄줄 흐를 만큼 탐나는 작업 제안이었다.
아니.
아주 바닥에 납작 엎드려 환영할 만한 제안이지.
‘안 그래도 히든은 연락도 안 돼서 답답했는데.’
완전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대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품에 안겨 온 셈이었다.
“HS가 OST 작업했다고 하면, 드라마 홍보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을 테니까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기회야. 잘 알지?”
남태현 PD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신신당부하고는 장내를 빠져나갔다.
“후-.”
홀로 남은 안소정이 혼란스러우면서도 들뜨는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기던 찰나였다.
띠링-!
조나래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거참, 제가 그렇게 말할 때는 안 믿어주시더니.. 연락처 드릴 테니까 오늘 저랑 밤에 축배 한 잔 드시는 거 어때요? ]하여간.
성격 참 털털하니, 마음에 든다니까.
[ 콜 ]이제 히든에게 협업 계약 파기에 대한 연락을 해 볼까?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 * *
현승은 제 작업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 넌 뭐냐?”
그러나, 열린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딘가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작곡가님, 그 반응은 뭐예요? 저 말고 따로 기다리는 분이라도 계셨나 봐요?”
“아닌데?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일이냐?”
“제가 오늘 들린다고 분명 연락드렸잖아요.”
안지호의 말에 현승은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아, 맞다.”하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진짜 왜 왔는데?”
“왜긴요, 저도 뭔가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왔죠.”
별안간 안지호는 자신만 믿으라는 양 의기양양하게 제 가슴팍을 있는 힘껏 두들겼다.
“도움? 무슨 도움?”
“다 압니다.”
“대체 뭘 아는데?”
“저를 위해 힘 실어 주신 거 다 압니다.”
“그러니까 내가 널 위해 무슨 힘을 실었다는 건데?”
“거참, 아닌 척하시기는.”
그리고는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제 팔꿈치로 현승의 옆구리를 푹 찔러 보였다.
“야야, 너 이거 엄연히 폭력이야.”
“폭력이라니요!”
“네 등치로 이러는 건 아양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하는 거야.”
안지호가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잠시.
“아무튼 영감이 쉽게 떠오르실 수 있도록 제가 도와 드릴게요.”
“네 도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대본도 다 챙겨 왔다고요. 대본 리딩 연습한다고 생각하죠, 뭐.”
현승은 지금 안지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자다 말고 봉창 두들기는 개소리’ 정도로 들릴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별 신경을 두지 않은 채, 내려놓았던 펜을 쥐었다.
“큼, 흠.”
안지호는 진심인지, 목을 가다듬으며 제 가방에서 두꺼운 대본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정말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1인 2역을 이어 나갔다.
“낭자, 우리는 붉은 달이 뜨는 날 다시 만날 겁니다.”
되도 않는 ‘낭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정말이지요? 그럼 약조해 주세요.”
안지호는 제 두 손으로 새끼손가락을 걸며 꽤 그럴 듯한 사극 톤을 선보였다.
“낭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손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이어져있소.”
그걸 듣고 있노라니, 펜을 잡은 현승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와그작.
샤프하게 잘 깎아놓은 연필심이 노트에 뭉개지며 부러졌다.
“야, 그만 좀 해. 누구 항마력 테스트 하려고 이래?”
현승이 진심으로 짜증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안지호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왜, 짜증을 내시는 거지? 내 연기가 별로인가?’
머지않아 침착하게 표정을 가다듬고는 정말 모르겠다는 양 되물었다.
“드라마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아신다면, 도움이 될 줄 알고 해 본 건데 별로셨어요?”
“드라마?”
“네, 방금 제가 선보인 게 이번에 OST 맡기로 하셨다는 드라마 ‘붉은 실’의 하이라이트 장면이거든요.”
“붉은 실?”
“붉은 실 OST 맡기로 하신 거 아니었어요?”
현승은 고개를 잘게 끄덕이고는 즉답했다.
“뭐, 드라마 OST 작업 맡아 보겠다고 하긴 했는데, 아직 확답은 못 받았거든.”
“그럼 ‘붉은 실’이라서가 아니라….”
“그 드라마 이름이 ‘붉은 실’인지도 지금 알았고.”
“예? 그, 그럼, 왜 하필 그 드라마의 OST를 작업하겠다고 연락하신 거예요?”
“그야, 매절로 팔았던 곡이 그 드라마 OST 샘플링으로 쓰인다는데, 아무 작곡가 손에 의해 막 쓰이는 꼴은 못볼 것 같아서.”
안지호는 이제야 알게 된 진실 앞에서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PD가 흘리듯 던진 말에….
“작곡가님이 확실히 우리를 좀 애정하시는 것 같아. 나 드라마 들어간 거 어떻게 아시고, OST 제작해 주신다고 따로 요청하셨더라.”
멤버들한테 아주 입이 닳도록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정말이지.
지금 이 자리에서 안지호가 죽는다면 사인은 수치사일 터였다.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았냐? 나도 아직 확정 못 받은 작업인데.”
안지호는 차마 대답을 잇지 못한 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아주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오른 제 얼굴을 본다면,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켰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아서였다.
‘정말 혀를 딱 깨물고 죽고 싶다.’
안지호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무어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근데 확실히 도움은 됐어.”
현승이 넌지시 뱉은 말에, 안지호는 갑자기 해머로 심장을 한 대 가격당한 듯 통증을 느꼈다.
“하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만약 작업하게 된다면 역대급 OST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
“도, 도움이 되신 겁니까?”
“응, 드라마 시나리오 보기 귀찮았는데 네 덕분에 도움이 되기는 했어.”
그 말에 이번엔 코끝이 붉게 달아오르며 찌릿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야, 안지호.”
“왜, 왜요.”
“너 또 우냐?”
“아니에요.”
“넌 등치도 큰 놈이 뭐, 맨날 우냐?”
“아니라니까요!”
현승이 혀를 끌끌 차고는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타이밍 좋네.”
제 휴대폰에 온 문자를 보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 음악 감독이랑 연락했어. 계약서 보내줬고, 바로 작업 시작하면 좋겠다더라.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 같이 하는 거 어떤데. ]안지호는 그런 현승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저렇게 아이처럼 웃으시는 날도 있구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현승이 침음을 흘려 보이기도 잠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빠가 먼저 화해하자네.”
그 말을 끝으로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는 바로 김아빠에게 답장을 보냈다.
[ 오늘 저녁은 저랑 같이 말고, 어머니랑 같이 저번에 못 먹은 식당에 가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콘솔 앞에 올려진 수첩 위로는 ‘깡통 로봇같다고 한 건 ㅈㅅ 예민하다고 한 것도 ㅈㅅ’ 이라는 글자가 여러 번 덧입혀져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