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8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89화(189/482)
오늘도 히든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갈증을 호소하며 몸을 일으켰다.
“하….”
단전에서 뱉어 낸 숨은 씁쓸한 알코올 향이 묻어 있어, 다시금 속이 매스꺼워졌다.
내일 모래 사십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체감한다.
“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켜고 나니 속이 좀 내려가는 기분이다.
재깍, 재깍-.
벽시계의 초침은, 느릿한 히든의 몸짓과 달리 아주 재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6시 14분.
해가 다 질 저녁 시간, 히든은 그제야 집 안 어딘가 던져둔 휴대폰을 찾아 헤맸다.
“어딨는 거야, 하….”
히든은 오만상을 한 채, 온 집안을 헤맨 끝에 소파 틈 사이에 낀 휴대폰을 찾았다.
“아주 연락이 끝도 없이 와 있네.”
그대로 소파에 편하게 늘어져서는, 도착한 연락들을 순차적으로 확인해 내려갔다.
그중.
히든은 본인이 읽고 싶은 연락만을 읽어 나갔다.
예를 들어….
파티나 모임에 초대한다는 연락이라든가 혹은 관심 있는 여자 연예인의 연락 같은 것들만.
쏙쏙 골라 읽은 다음-.
읽기 싫은 연락들은 흐린 눈으로 스쳐 보냈다. 곡에 대한 재촉 연락 같은 것들 말이다.
“하여간, 닦달들은….”
히든은 곡 작업보다는 자신의 쾌락을 위한 유흥이 먼저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원탑 작곡가.
이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성공보증수표인 아이돌에게만 곡을 줬으며.
오로지 돈을 벌고, 유명해질 용도로 작곡가라는 직업을 이용했다.
비록.
지금은 유명 후배 작곡가들에게 밀려 예전만큼 잘나가진 않지만, 아직 ‘히든’이라는 이름은 제법 잘 팔렸다.
어차피 계속 들어오는 저작권료도 있으니, 새로운 작업이 들어와도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 처리하기 일쑤였다.
“하, 귀찮아.”
물론 돈을 받았으니, 언젠가 해야 할 작업인 건 알지만 지금 당장 귀찮은 걸 어쩌겠는가?
[ 안 감독 부재중 28통 ]히든은 부재중 내역을 보며 한숨을 푹 내 쉬었다.
OST 협업 계약을 맺은 드라마 ‘붉은 실’의 음악 감독, 안소정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집요하게 연락해 오는 게 몹시 귀찮았지만, 언제까지고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계약금을 명목으로 꽤 높은 금액을 받아 챙겼으니까.
그래.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내일 오전까지 싹 끝내 버리자.
띠링-!
그렇게 결심한 찰나.
[ 안 감독 +새 메시지 1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안소정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일어난 사실은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또 닦달 시작하려나 보군.
“어?”
하나, 제 예상과 너무 다른 내용에 히든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깜빡거렸다.
[ 사전에 요청한 마감 기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작업물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계약 해지하겠습니다. 전화는 받지 않으셔서, 문자로 통보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받으셨던 선 계약금은 다시 반환… 전체보기 ]이게 무슨 소리지? 히든은 긴 글을 읽어 내리다 말고 곧장 전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르르르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되는 신호음 끝에,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어찌나 덤덤한지, 곧장 따지려던 히든의 말문이 막혔다.
“어….”
히든이 당황 섞인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안 감독, 맞죠?”
─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문자 확인했는데 이해가 안 가서요.”
─ 내용이 그렇게나 어려웠던가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계약 조건 불이행으로 해지가 된 거고 그에 따른 선 계약금을 다시 반환하셔야 한다는 내용….
“아니, 내일 작업물 넘기려고 했었는데 구태여 이런 연락을 해서 사람 기분을 망쳐 놔야겠어요?”
─ 작업물은 안 넘겨주셔도 됩니다. 이미 계약 해지에 대한 공문은 소속 레이블로 보내 드렸습니다.
히든은 잔뜩 격양된 투로 따져 물었다.
“뭐? 지금 장난해?”
─ 제 연락 다 확인하셨죠? 부재중이 몇 통이던가요? 히든 님은 그게 장난으로 보이세요?
그녀의 고저 없는 어투 속에는 은은한 화가 서려 있었다.
근 한 달간 전화만 200통은 넘게 걸었으니, 장난이라는 말에 화가 날 만도 하지.
히든 또한 인정하는 바였다.
작업을 하기 귀찮아, 고의로 그녀의 연락을 씹은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이미 선 계약금을 반환해 줄 것도 없이 다 써 버린 탓에, 자신이 먼저 꼬리를 내려 주기로 했다.
“아, 알겠어.”
그러고는 이내 마지못해 져 준다는 양 말을 이었다.
“오늘 안으로 보낼 테니까, 우리 시작부터 삐걱거리지 말고 좋게 좋게 가자고.”
다만.
안소정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한 어투로 즉답했다.
─ 네, 그러니까 좋게 좋게 반환 처리 해 주시면 됩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당장 그럼 OST 제작은 어떻게 하시게?”
─ 다른 작곡가분이 작업해 주기로 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히든이 조롱 섞인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참나, 다른 작곡가? 꿩 대신 닭 써서 드라마 제작비라도 아껴 볼 생각인가 보지?”
─ 꿩 대신 거위라서 제작비를 오히려 더 투자해야 할 판입니다. 걱정 감사합니다.
“아니, 안소정 씨.”
─ 더 하실 말씀 있으면 공문을 통하여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정말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맥없이 끊어졌다.
─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이후 전화를 다시 걸어 봐도, 받을 수 없다는 음성만 흘러 나왔다.
참나.
꿩 대신 거위? 제작비를 더 투자한다고? 대체 어떤 작곡가이길래? 제이블인가?
아.
설마, HS인가? 최지현?
톡, 토독-.
히든은 다급히 포털 사이트 내 연예 뉴스를 확인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보다 더 몸값이 비싼 작곡가가 작업을 맡게 된 거라면, 그걸 홍보성으로 안 쓸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막 새로 올라오는 기사의 헤드라인 한 줄이, 히든의 눈을 사로잡았다.
[ 작곡가 HS, 이번에는 드라마 OST 도전? ‘붉은 실’ 메인 테마 OST 총괄 프로듀서 맡아… ]히든의 얼굴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남 밥그릇 뺏어 먹는 걸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니까.
정말이지.
이러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잖아. 안 그래도 요즘 너무 눈에 많이 보여서 거슬렸는데, 마침 잘됐네.
뚜르르르르-.
히든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배님, 조심히 잘 가시고.”
그 표정이 마치 사탄처럼 흉흉해 보일 따름이었다.
***
[ 오늘 저녁은 저랑 같이 말고, 어머니랑 같이 저번에 못 먹은 식당에 가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김우현은 현승의 문자를 보고, 고민을 거듭하기도 잠시.
“그래, 좋았어.”
본부장도 달았는데, 어머니 모시고 비싼 파인 다이닝 코스 요리 한번 먹어 보자.
그러고는 이내 일전에 현승이 송년회를 열었던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저, 혹시 디너로 2명 예약 가능할까요?”
─ 어, 이 번호…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 김우현입니다.”
─ 네, 예약되어 있으신 걸로 확인 되십니다. 오후 8시로 두 분 스페셜 코스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 예, 감사합니다….”
동쪽이 녀석, 문자 보내면서 대신 예약해 줬나 보지? 내가 안 가면 어쩌려고 그랬대….
내일은 정말 먼저 커피 사 들고 찾아가 봐야지.
이윽고.
김우현은 퇴원 후 집에서 지내고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한식 퓨전 파인 다이닝 ‘손 수’를 찾았다.
딱 가게에 들어섰을 때, 개별 룸으로 되어있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느낌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방긋 웃으며 물어왔다.
“어서오세요. 예약자 분 성함이 김우현 님 맞으시죠? 드디어 오셨네요.”
그 여성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 위로는 ‘강설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도 예쁘시네.’
김 실장은 기분 좋은 미소에 홀려 “드디어 오셨네요.”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뒤를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물 좀 더 드릴게요.”
룸마다 담당 직원이 있는 것인지, 강설아는 코스 요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음식을 내 와 주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방법이나 음식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히 덧붙이며, 입맛에 맞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나이 또래도 비슷해 보이는데….’
김 실장은 강설아가 제법 마음에 들었지만, 차마 어머니를 모시고 온 자리였기에 티를 내진 못한 채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천천히 일어나서 나오세요. 저 먼저 결제하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매장 중앙으로 나와, 강설아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왕 결제할 거,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가고 싶은데….
때마침.
다른 룸에서 나온 강설아가 다시금 천사같이 환한 미소를 띠우며 달려왔다.
“식사는 맛있게 잘하셨나요?”
“네, 덕분에.”
김우현은 슬쩍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제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결국 입 밖으로 내놓은 말은, 결제 요청이었다.
‘내가 그렇지, 뭐.’
김우현이 체념한 듯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던 찰나.
“결제는 이미 다 되셨어요.”
강설아가 웃으며 꺼낸 말에 놀라서 반문했다.
“그럴 리가요? 저 결제 안 했는데.”
“대리로 예약 주신 분이 예약하실 때마다, 미리 선 결제를 하셨거든요.”
그 말에 김우현이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 잠시 때마다라니요…?”
“안 그래도 한 2주 내내, 매일 예약이랑 선결제 다 해놓으셨는데, 막상 당사자가 안 오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늘은 오셔서 다행이에요.”
이내 김우현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재차 확인했다.
“그 대리 예약했다는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머지않아 강설아의 입이 열리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전해 주면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
돌아온 대답에, 김우현은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머니 안으로 숨겨 버렸다.
문득.
일전에 이곳을 찾았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비싼 거 얻어 먹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쉽네….”
“좀 있다가 어머니 모시고 다시 오셔서 드시면 되죠”
“이렇게 비싼 곳을 내가 어떻게 오냐, 인마.”
“먹고 싶으면 오는 거죠, 아무튼 얼른 가 보십쇼.”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래, 현승은 늘 그냥 하는 말이 없는 녀석이었다.
2주 전부터 내내 예약을 했다는 걸 보면, 아마 그날부터 지금껏 예약을 해 줬던 거겠지.
오늘.
보내온 문자도 분명 같은 마음으로 보냈을 테고….
어쩌면.
승진할 거라는 것도, 승진해서 식당에 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아.
그래, 그랬지. 대표님과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재계약까지 하고 왔다길래 무슨 조건을 걸었냐는 제 물음에 현승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었다.
“뭐, 그냥….”
그 말로 어물쩍 넘어갔었지. 근데 그 뒤로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자신의 본부장 승진에는 녀석의 힘이 깃들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자신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기다린 것이겠지.
‘나도 참, 아직 멀었다.’
그런 속 깊은 녀석한테 축하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한 꼴이라니. 지금, 이 순간 본인 스스로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어머.”
강설아는 화들짝 놀라며 손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손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씨, 참는다고 참았는데 새어 나온 모양이네.
“아닙니다, 눈에 뭐가 들어가서.”
김우현이 옷 소매로 눈매를 거칠게 문지르기도 잠시.
“잠시, 화장실 좀.”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윽고.
쏴아아아아아-.
남자 화장실 안에서는 한참 동안 세면대 물소리가 들려왔다.
“흡, 끄윽, 으으윽-.”
꾹 눌러 담은 울음소리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