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화(19/482)
최정상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KOK’가 언급되자, 잠시 사고가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걔네 지금 일본 활동 중인 거 아니었어?”
“일본에서 앨범 준비를 다 끝냈다더라고요.”
지난 기억 몇 개가 김 실장의 뇌리를 휙 스쳐 지나갔다.
‘하, 어쩐지….’
근 몇 달 전부터 A&R팀 소속 직원이나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일본 출장이 잦아졌다.
안일하게 해외 지사를 통해 들어온 믹싱&마스터링 외주 소화를 위함이라고 생각했건만….
번갈아 자리를 비워 가며 아무도 모르게 ‘KOK’의 앨범 작업을 진행한 모양이었다.
‘진즉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던 도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 비밀리에 준비했어야 하는 작업인가?”
“글쎄요….”
“일본 활동 연장돼서 국내 팬덤 원성도 자자했잖아?”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KOK’의 일본 활동이 더 길어지며 국내 팬덤의 불만이 심화된 참이었다.
차라리 이럴 때 미리 앨범 발표 예정이라는 기사 한 줄이라도 띄웠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
김 실장이 “설마….”하고 중얼대고는 물었다.
“박 전무님이야?”
“…….”
“박 전무님 맞지?”
곽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박 전무님이 KOK 10주년 기념 앨범 제작을 비밀리에 추진하셨더라고요. 사내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실력 좋기로 유명한 작곡가, 디렉터, 프로듀서, 엔지니어까지 수십 명이 팀을 꾸려서 작업했다던데….”
그가 툭툭 담뱃재를 털어냈다.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렇게 은밀하게 준비하셨는지 수완 하나는 참 좋으신 분이라니까요. 뭐, 그러니까 아득바득 임원 자리까지 꿰차셨겠지만….”
아마 박 전무가 목숨을 걸고 비밀에 부쳤을 게 분명했다.
최 이사.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어느 정도 직책을 가진 관계자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임원 승진은 박 전무가 훨씬 빨랐을지 모르나 영향력은 최 이사가 한 수 위였다.
직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최 이사야말로 대표의 오른팔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만 봐도 그랬다.
뭐, 이해는 간다.
박 전무의 유일한 경쟁자인 최 이사를 압살할 기록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함이었겠지.
“하아, 상황 참 뭣 같네.”
“죄송합니다.”
“곽 팀장이 뭐가 죄송해.”
김 실장이 답답한 이유는 현승과 정아린 때문이랄 수 있었다.
열심히 곡 작업에 몰두했던 둘에게는 죄가 없다.
그럼에도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게 생겼으니 답답할 수밖에.
“몇 주 정도는 시간 있는 거잖아?”
“네, 맞아요.”
“그래, 바쁠 텐데 이만 들어가 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KOK’의 컴백 시기와 정아린의 데뷔 사이에 여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 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건 기대할 수 없게 됐지만….
컴백과 데뷔가 맞물려 ‘KOK’라는 해일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어렵겠지만….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결과를 낸다면 어느 정도 면피는 할 수 있을 터였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곽 팀장이 구십 도로 인사를 한 뒤 옥상을 빠져나갔고….
“말해줘서 고마워.”
김 실장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선 곽 팀장이 다시금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고는 사라졌다.
“하아.”
김 실장이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는 제 목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재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을 한다고 한들 부정적인 상황임이 분명했다.
십 년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활동해 온 ‘KOK’와 정아린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쉽게 말하자면, 세기의 명검을 손에 쥔 상대를 얇은 나뭇가지로 상대해야 하는 셈이었다.
이대로라면….
현승은 그저 운 덕분에 서지니를 성공시켰던 반짝 작곡가라는 프레임을 쓰게 될 게 분명했다.
‘정아린은….’
보나 마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해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되면 그대로 쫓겨나게 될 터였다.
“에라이….”
타들어 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간 저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의 야경은 어김없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할 따름이었다.
* * *
김 실장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현승이 대수롭지 않다는 양 말했다.
“별로 상관없어요.”
“뭐?”
“신경 써서 뭐 해요.”
현승이 커피를 몇 모금 들이켜고는 덧붙였다.
“제가 신경 쓴다고 걔네 컴백이 미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야, 무심해도 너무 무심한 거 아니냐?”
“무심한 게 아니라 곡이 좋으면 뜨는 거고, 아니면 가라앉겠죠.”
현승이 재차 덧붙였다.
“그리고 오히려 잘 됐다 싶어요.”
“뭐가?”
“그냥 상황 자체가 재미있잖아요?”
김 실장이 어이가 없다는 양 “재미?”하고 되물었다.
앞으로의 흥망성쇠가 달린 일이 아닌가?
어찌 당사자가 재미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진짜….”
반면 현승은 무덤덤하기만 할 뿐이었다.
‘KOK라….’
아마 ‘KOK’라는 그룹명이 ‘KING OF KPOP’ 스펠링의 약자를 따서 그룹명을 지었다는 것 같던데….
유치한 그룹명과 달리 데뷔 때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수 아이돌로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이번에 나올 앨범은 ‘10주년’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업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전 곡이 연간 1위부터 5위를 차지했고, 그해 전체를 관통한 역대 최고의 앨범이라 극찬받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았던 바 있었다.
한 마디로 기록적이고 역사적인 앨범인 셈.
전생에서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가 한참 뒤였던 터라 직접 경쟁해 볼 기회는 없었다지만….
‘그러고 보면 늘 궁금해하곤 했었지.’
전생의 현승은 작곡가로서의 입지가 굳건해지며 더는 경쟁자라 칭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줄곧 자신이 발매한 곡과 전 세대의 명곡이 경쟁했더라면 과연 누가 승리했을 것인지에 대한 망상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매치업이라고 생각했는데….’
회귀라는 기현상 덕에 충분히 현실적인 일이 되고야 말았다.
‘내가 작곡가가 되기 이전 시대의 명곡들….’
비단 곧 발매될 KOK의 10주년 앨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음원 시장 역사에 길이 남은 모든 명곡과 동시대에 경쟁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는 지금처럼 ‘전 시대의 히트곡’들과 겨뤄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자 괜스레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고 열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에휴.”
한숨을 푹 내쉰 김 실장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아무튼 설령 이번 곡이 잘 안 되더라도 네 탓은 아닐 거야.”
“알아요, 곡이 제 손 떠나면 거기서부터는 회사 책임이죠.”
잠시 말문이 막혔던 김 실장이 재차 한숨을 쉬며 답했다.
“맞아, 회사 책임이지….”
현승과 정아린이 한낱 ‘사내 정치 싸움’ 따위에 휘말려 애꿎은 희생양으로 전락한 것 역시 잘 따져보면 회사의 책임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
‘KOK’는 아직 짤막한 티저 영상 한 개도 공개하지 않은 채였고 앨범에 관한 기사 하나조차 보도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정아린은 신인인데다가 앨범 제작을 전적으로 현승이 도맡아 진행한 덕에 손익분기점이 그리 높지 않게 형성된 채였다.
‘KOK 컴백 전에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적당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대표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겠지….’
물론 KOK와 관련된 내용의 기사가 한 줄이라도 보도된다면, 정아린은 자연스럽게 활동 중지 상태로 접어들게 될 터였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앨범을 발매한 뒤 물을 떠 놓고서, KOK의 컴백이 늦어지기를 기도하는 일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사옥 내부로 들어선 둘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현승아, 나는 미팅 있어서 바로 지하 주차장 가봐야 해.”
“예, 그러세요.”
“좀 있다가 회사 근처에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든지 하자.”
둘이 사담을 나누며 엘리베이터 앞에 다 와 가던 찰나.
“어, 김 실장?”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박 전무가 뒷짐을 진 채로 슬쩍 건넨 말이었다.
“전무님….”
이번 사태의 원흉 격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기분이 상한 내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단 전무라는 직책 때문만이 아니라,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박 전무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김 실장이 붙잡은 동아줄인 최 이사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게 됐으나….
‘이사님이 그리신 그림이었더라면 박수를 쳤겠지….’
박 전무가 비밀리에 준비한 프로젝트 덕에 사 측이 큰 덕을 보게 되리란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이내 김 실장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정중하기 그지없는 투로 인사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점심 식사는….”
이내 박 전무가 귀찮다는 양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하여튼, 인사치레는.”
그 말에 김 실장이 현승을 돌아보며 말했다.
“박준철 전무님이셔, 얼른 인사부터 드려.”
김 실장의 등쌀에 현승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민현승이라고 합니다.”
박 전무가 무미건조한 눈으로 현승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여댔다.
제법 반반한 생김새를 토대로 새롭게 계약한 ‘연습생’ 쯤으로 지레짐작한 채였다.
지이이이이이잉….
마침 타이밍 좋게 김 실장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 실장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자를 확인한 김 실장이 박 전무에게 양해를 구했다.
“전무님, 죄송합니다만 급히 외부 미팅을 나가 봐야 해서 다음에 제대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박 전무가 “그래.”하고 짧게 답하고는 다시금 엘리베이터 상단 전광판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현승아.”
김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현승아, 조용히 작업실에 가 있어.”
“예.”
“너 진짜 조용히 올라가 있어야 한다?”
“예.”
“정말 조용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예.”
“장난치지 말고 대답 좀 똑바로 해 봐.”
그 말에 현승이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것 참, 알겠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이내 박 전무가 그런 둘을 곁눈질로 살피며 생각했다.
‘연습생이 아닌가?’
김 실장 정도 되는 인물과 사이가 돈독한 건 물론이고, 허물없이 지내는 모양새를 보면….
‘어라?’
불현듯 지난 회의에서 언급된 바 있는 이름이 떠올랐다.
민현승.
은퇴 수속을 밟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던 서지니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해 줬던 바 있는….
또 임원을 제외한다면 알고 있는 이들이 몇 되지 않는 전준일 대표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는….
‘저 녀석이 HS로군….’
안 그래도 박 전무는 조만간 현승에게 따로 접촉해 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전준일 대표의 총애를 받는 모습을 보며 마냥 껄끄럽게 느낀 건 명백한 사실이라지만….
자고로 연예계라는 이름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켜야 할 철칙이 하나 있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든 곁에 둘 것.
만약….
곁에 둘 수 없는 이라면 어떻게든 숨통을 끊어 낼 것.
‘대표님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쓰셨을 정도라면….’
능력은 이미 입증된 셈이니 회유에 성공한다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터였다.
그래.
저런 인물을 최 이사의 끄나풀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건 확실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띵-!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자네가 서지니 앨범 담당했던 그 작곡가인가 보군?”
하지만.
저벅, 저벅.
현승은 아무 대답조차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뿐이었다.
그리고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살짝 빼며 넌지시 되물었다.
“안 타세요?”
아무래도 노래를 듣느라 제 말을 못 들은 모양이었다.
“하하, 이 친구 참….”
괜히 과장되게 웃어 보인 박 전무가 뒤늦게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탔다.
이내 현승이 잠시 뺐던 이어폰 한쪽을 도로 귀에 꽂아 넣으려던 찰나였다.
“잠시 대화 좀 나누지.”
그 말에 현승이 박 전무를 멀뚱멀뚱 바라봤고.
“자네가 거둔 성과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아,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거둘 성과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고.”
박 전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조만간 자네랑 차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회유의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었으나….
“예, 다음에 기회 닿는다면 얼마든지요.”
“기회 닿는다면?”
“예, 뭐, 피차 서로 바쁜 입장이니까요.”
현승 역시 박 전무의 ‘차라도 한잔하자.’라는 말 뒤편에 감춰진 의도를 알고 있었다.
분명 제 라인으로 들여도 될 만한 재목인지 확인차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는 뜻이겠지.
다만, 사내 정치라면 질색이었다.
더군다나 사내 파벌이 나뉘어 있지 않았더라고 한들 전무님이 아닌 대표님,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와 독대라 해도 용건이 없다면 어떻게든 에둘러 거절했을 현승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고….
띵-!
문이 열리자마자 현승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흠.”
그렇게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전무가 입가에 그윽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야, 이거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네….”
그런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처음.
대표실에서 이름이 거론될 때부터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 몇 마디를 섞어 보기까지 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자신과 상성이 아예 맞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당초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입지를 다져 온 권위적인 박 전무와 오로지 제 능력에서 기반한 자신감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현승의 상성이 잘 맞을 리 없었다.
박 전무가 숨을 길게 내쉬고는 재차 중얼댔다.
“자고로 전초제근(剪草劑根)이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승은 능력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제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거 아무래도 뿌리를 뽑아 놔야겠는데….”
최 이사의 끄나풀 노릇을 하다가 언젠가 화가 되지 않도록.
미리….
아예 뿌리를 뽑아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