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0화(190/482)
현승의 작업실 안에서는 ‘out to sea’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나름.
동양풍이 섞인 퓨전 뉴에이지 곡이니까, 사극 드라마의 OST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다.
사실 현승은 드라마는커녕, 영상 매개체 자체를 직접적으로 소비하지 않던 부류의 인간이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정작 사극 드라마의 OST 작업을 시작하려니 막연하기만 했다.
물론.
전생에서도 드라마 OST를 제작해 보긴 했다지만, 대부분 로맨스물 위주로 듣기에 달달하고 감미로운 곡을 뽑아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별안간 사극이라니….
학창 시절부터 역사 시간이 제일 싫었던 현승은, 안지호가 뻔뻔하게 읊어 나가던 대사들을 떠올리며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 녀석 말로 뭐라더라?
조선의 얼과 한을 담은 시대극이자, 서스펜스 판타지 로맨스물이라던가? 그냥 시대물이면 시대물이고, 로맨스면 로맨스인 거지.
참, 서술도 길다.
현승이 아무런 작업도 시작하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있던 찰나였다.
똑, 똑, 똑.
익숙한 노크 소리에 강아지마냥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머지않아 조심히 열린 문틈 사이로 김 실장의 얼굴이 보였고.
자신과 공중에서 눈이 마주치자, 김 실장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이제 본부장이지.
어째선지
그런 김 본부장의 얼굴 위로는 미안한 기색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지난번에 자신과 말로 다툰 것 때문에 그러시겠지.
‘안 미안해하셔도 되는데.’
현승도 스스로 잘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틈틈이 사과의 문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었으니까.
‘끝내 보내진 못했지만….’
이번에도 먼저 져 준 김 아빠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윽고.
김 아빠는 멋쩍은 얼굴로 담담한 척 걸어 들어와 물었다.
“커피 마실래?”
“벤티죠?”
“당연한 걸 물어.”
둘은 동시에 피식 웃어 버렸다.
현승은 김 아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느껴지는 편안함이 좋았다. 묵묵히 서로를 신뢰하고, 챙겨주는 이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이 몹시 마음을 평안하게끔 해주었다.
그래.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었다.
아니지….
사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살았던 탓에, 몰랐을 수도?
별안간 김 실장이 헛기침하며, 딴청을 피우기도 잠시.
“덕분에 어머니랑 잘 먹었다.”
짤막하게 말을 건넸다. 그 말에 현승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둘은 조용히 각자의 커피를 비웠다.
정적이 흐르던 그때.
“금동아.”
김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금쪽이든, 동쪽이든 둘 중 하나만 부르시죠.”
“방금은 진짜 실수였어. 아무튼 작업은 잘 돼가?”
현승이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좌우로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은쪽이가 아직이라고?”
“거참, 하나만 하시라니까.”
“미안, 방금도 진짜 실수야.”
그 말에 현승이 의심스럽다는 양 갸웃거리며 “분명 의도한 것 같은데….”하고 중얼거리고는 작업 창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시작만 하면 금방 나올 것 같은데,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아니, 대체 왜?”
“조선의 얼과 한을 담은 시대극이자, 서스펜스 판타지 로맨스물이라고 하면 어떤 내용일지?”
“음, 잘은 몰라도 되게 흥미진진할 것 같네.”
현승의 얼굴 위로는 물음표가 가득 떠올랐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거지?
“전혀 갈피도 못 잡겠다는 얼굴이네?”
이내 김 아빠는 제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 동쪽이를 위해 준비했지. 시나리오는 길다고 안 읽을 것 같아서, 간략하게 정리된 시놉시스 받아왔어.”
현승이 “오.”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얇은 책 형식으로 이뤄진 시놉시스를 건네받았다.
“녀석도 참….”
김 아빠는 마치 비밀의 묘책이라도 받은 것마냥 요리조리 살펴대는 현승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이런 거라도 도움이 되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팔락, 팔락-.
현승이 몇 장 안 되는 시놉시스를 훑어보던 찰나.
띠링! 띠링! 띠링!
어딘가 불안하게 연속된 알림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김 아빠는 괜히 거드름을 피우며 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본부장 되고 나서, 다들 나를 가만히 안 놔둔다니까? 아주 정신없어 죽겠어.”
“예, 어련하시겠어요.”
“오랜만에 같이 점심이나 때리려고 했는데-!”
이내 문자 내용을 확인한 김 아빠는 뒷말을 흐리더니.
“이거 참, 피곤한 인생….”
점차 얼굴 위에 맴돌던 웃음기가 걷어지고, 싸늘하게 식어갔다.
“무슨 연락이길래 그래요?”
제 물음에도 김 아빠는 액정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곽 팀장: 문제가 좀 생겼어요. ] [ 곽 팀장: 링크 보내드릴게요. ] [ 곽 팀장: 회의를 하긴 해야겠죠? ]대신 손은 누구보다 빠르게 화면을 움직이고 있었다.
스륵, 스르륵-.
머지않아, 손이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현승아.”
그러고는 이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같이 회의실 좀 갈까?”
현승은 그의 표정이 덤덤하면서도 심각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OST 작업은….
다녀와서 하지, 뭐.
* * *
현승은 회의실 안으로 흐르는 묘한 기류에 앉아있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
특히, 정식적으로 개최된 회의라기엔 모인 인원의 조합이 이상했다.
홍보실의 곽 팀장과 왜 온 지 모르겠는 A&R의 엔지니어 식구들.
그리고.
김 본부장과 현승.
스륵, 스르륵-.
1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리를 꿰차고 앉아선,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상황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원래 같으면 무시하고, 휴대폰 게임이나 했을 텐데.
어째선지.
이번만큼은 현승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탁-!
그때 곽 팀장이 노트북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이 자식들 중국에 자회사를 둔 페이퍼컴퍼니라, 꼬리 잡기도 어렵겠는데요.”
그 말에 김 본부장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 자식들 진짜….”
현승은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감지하고 슬쩍 곁눈질로 옆자리에 앉은 엔지니어의 휴대폰을 훔쳐봤다.
이윽고.
“뭐야?”
휴대폰을 빼앗아 들며, 미간을 와그작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 작곡가 HS, 강남 모 클럽서 광란의 마약 파티 주최해… ] [ HS, 남자와 함께 호텔 들어가는 모습 포착… 게이설 진짜인가? ]누가 봐도 악의적으로 작성된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던 터였다.
파악-!
이내 쥐고 있던 휴대폰이 마찰음을 내며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덜, 덜, 덜-.
제기랄, 시간을 돌아왔어도 잠재되어 있던 기억이라던가 공황 장애는 아직 이어지고 있던 모양이다.
별안간 이런 찌라시 하나에도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면….
덜, 덜, 덜-.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현승에게로 집중되었고.
“현승아, 괜찮아?”
김우현의 물음에, 현승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덤덤한 척 대답했다.
“예, 그냥 미끄러졌어요.”
그러고는 턱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근데 이 기사들은 뭐예요?”
현승의 물음은 공중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다. 아무도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전생처럼 또다시, 자신이 마녀사냥의 타겟이 되었다는 걸.
정말.
이번 생은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가족과 제 사람들을 챙기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건가?
이대로.
모두 제게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걸까? 모든 것을 잃고,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 걸까?
이번 생은 전생과 확연히 다르다고 칭할 수 있을 만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욕심이었나.
“……민현승! 민현승!”
현승이 깊은 상념에 빠져든 그때, 어디선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예? 저 부르셨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뭐를요?”
“기사 봤잖아. 잠잠해질 때까지 무시할까, 아니면 바로 반박 기사 낼까?”
김우현은 돌연 살기 어린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것도 아니면 네 기사에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한 줄이라도 보탠 놈들 모조리 다 찾아서 조져버릴까?”
현승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근데 진짜 누가 이런 개소리를 정성껏 끄적여놓은 걸까요?”
“우선 HS 씨를 한 번도 못 본 놈이 적은 건 확실해요.”
“이놈들은 시간이 넘쳐나나? 그럼, 우리 일손이나 보태주지.”
별안간 다들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자, 잠깐.”
현승이 그런 이들의 면면을 바라보기도 잠시.
“저한테 확인 사실 안 하십니까?”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고.
“푸, 푸흐흡-!”
현승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 맨날 작업실에 사시는 분이 광란의 파티요? 광기의 녹음 지옥을 벌였다면 또 몰라도.”
“그러니까, 마약 말고 카페인 중독이라고 기사 수정 해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크, 큭큭.”
현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던 그때, 김우현이 진지하게 첨언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설령 네가 게이라고 한들 그게 뭐가 문제야? 작곡가가 곡만 잘 만들면 되지.”
“제가 정말 그랬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놈일지도 모르잖아요.”
자신이 웅얼거리듯 뱉은 말에, 김우현이 콧방귀를 뀌며 즉답했다.
“네 밥 먹을 때 습관도 아는 내가, 네가 그럴 놈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겠어?”
이윽고.
현승의 고개가 점차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러고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
막연한 믿음을 불태우며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불행에 앞서줄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냥, 지나가죠. 괜히 반박했다가 말만 많아질 것 같아서.”
김우현이 탐탁지 않다는 듯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네 선택대로 못해 주겠다.”
“예?”
“이미 결심했거든. 그냥저냥 넘어가니까, 이것들이 자꾸 선도 모르고 기어오르잖아.”
“그럼, 왜 물어보셨어요?”
“아무튼, 본부장으로서 이건 그냥 못 넘어가.”
그러고는 단호하게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우리 LS 엔터 식구를 건드렸으니, 법무팀을 총동원해서 무조건 찾아낸다.”
현승은 그 모습이 제법 본부장처럼 보여,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르르륵-.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저는 물 떠 놓고 기도나 하고 있겠습니다.”
“오냐, 넌 나만 믿고 작업이나 얼른 하러 가.”
현승이 짤막하게 “네”하고 대답하고는 회의실을 벗어났다.
터벅, 터벅.
분명 복도를 홀로 거닐고 있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
띠링-!
그 순간, 여동생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나랑 아빠는 항상 오빠 편이야. ] [ 내가 헛소리하는 애들 다 혼내줄게. ]아무래도 찌라시를 확인한 모양이다.
문득.
어쩌면 이번 생은 전생과 확연히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차올랐다.
그래, 한 번쯤은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힘들다 토로해 볼 수 있는, 찔릴 걱정 없이 등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