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4화(194/482)
기자회견이 열리기 반나절 전.
“정말 기자회견을 하려고?”
“네, 서둘러서 준비해 주세요. 최대한 성대하게.”
“내가 대신 해도 되는데.”
“아뇨, 여기부터는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에요.”
현승은 김우현이 알아 온 정황과 증언을 보다 활용하려면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공론화시키는 게 제일 좋으리라 판단했다.
그래.
조작된 사진, 확인되지 않는 경로로 퍼져 나가는 기사들과 증권가에 도는 찌라시.
어쩌면 전생에서 자신을 단두대 위에 올려놓은 장본인 또한 히든일지도 모른다.
설령.
전생에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게 히든이 아니더라도 기자회견을 열 생각이다.
듣자 하니.
자신에게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꽤 여러 작곡가를 그런 식으로 보내온 것 같으니까.
히든도 당해봐야 알 테지.
아니.
어차피 한 일에 대해 돌려받는 것이니,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믿어주는 사람 한 명이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를 터였다.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제 어깨를 계속 다독이며 중얼거리는 김 아빠 덕분일까.
“저 애 아니거든요.”
현승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생각보다 머릿속이 가볍고 호흡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터벅, 터벅-.
기자회견장으로 내딛는 한 걸음, 걸음마다 지난 트라우마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얀 천이 덧씌워진 테이블에 앉아 수많은 플래시가 자신을 향해 터트려도 괜찮았다.
“안녕하십니까, 자리를 찾아주신 기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작곡가 HS입니다.”
현승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마이크를 제 입가에 맞춰 세팅했다.
“제가 돌연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은….”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해 왈가불가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요즘 저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해야만 한다.
“우선, 저와 제이블은 연인 사이가 절대 아닙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기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사실입니까?”
“그것 또한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첫사랑이었던 여성을 마음에 품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일 뿐입니다.”
제 말 한마디에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기자들은 ‘첫사랑’이라는 키워드에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들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나.
이번 기자회견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떤 기자도 쉽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질문은,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한 다음에 받겠습니다.”
현승은 그 틈을 노려, 확실히 제 의사를 전한 뒤 말을 이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마약, 광란의 파티, 게이 같은 소문들은 모두 다 거짓입니다.”
기자들의 타자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고.
“믿던, 믿지 않던 그건 기자님들과 대중들의 선택이겠지만, 만약 마약 건으로 검찰 조사가 들어온다면 성실히 응할 것입니다.”
현승이 그런 기자들을 한번 쓱 훑어보기도 잠시.
“그리고 히든의 작업물을 뺏었다는 얘기는….”
능숙히 텀을 두고 덧붙였다.
“맞습니다, 제가 뺏었습니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타닥,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은 누구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만, 고의로 뺏으려던 건 아닙니다. 제가 만든 곡이 그 드라마의 OST 메인 테마곡 샘플로 쓰이게 되었다는 소식에 작업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관계자와 협의하여 진행하게 된 것일 뿐입니다.”
현승은 잠시 숨을 고르고, 김우현이 서 있는 우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본다.
마치.
잘하고 있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얼굴로.
“그리고 그 일을 기점으로 제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온갖 찌라시가 돌아다니고, 조작된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로 끝을 맺으니, 맨 앞줄에 서 있던 계진성이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말씀은….”
그 말에 현승이 바통을 이어받듯, 즉답했다.
“처음에는 심증이었습니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역시 사람의 눈빛만큼 확실한 게 없겠지.
탁-!
현승은 결심에 찬 손으로 쉴드를 가볍게 위로 젖혀 버렸고.
동시에.
기자들의 손이 멈춰 버렸다.
“그래서 섣불리 대응하지도 않았죠. 진실이어서 대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그 누구도 카메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찌라시를 퍼트린 근원을 찾기 위해 법무팀을 꾸렸고, 그 결과 물증을 찾아냈습니다.”
현승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얇게 쭉 뻗은 손가락으로 탁탁 두들겼다.
그제야.
기자들은 현승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거, 그저 단순한 루머 따위가 아니구나.
“네, 이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조작하고 퍼트린 건, 선배 작곡가인 히든입니다.”
가요계에 추악한 진실과 민낯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작업물을 빼앗은 거에 대한 보복이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승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부연했다.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제이블 사건에 대해 대변해 보자면, 아마 제이블 또한 피해자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에 따라 분을 못 참고 벌인 행동이었을 겁니다.”
이 자리에 없을, 또 한 명의 피해자인 제이블을 위해 한치의 말실수나 오해가 비롯될 만한 말은 하면 안 되니까.
조심, 또 조심하여 단어를 선택했다.
“제이블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겪었을 고통의 시간에 비하면 얼음물을 부은 건 애교 수준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잠자코 현승의 말을 받아적던 기자들은 참을 수 없다는 양, 손을 번쩍 들어, 발언권을 얻어냈다.
“자, 잠시만요!”
“예, 말씀하시죠.”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제이블과 HS 씨 말고도 조작을 당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건가요?”
“그 점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별안간 말도 안 되는 루머나 찌라시로 인해 사라진 작곡가들을 잘 찾아보신다면 추가 피해자가 확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히든이 조작했다는 정황이나 증거를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현승이 다시금 쉴드를 “탁” 내리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선 공개해 드리고 싶지만, 이곳에서 밝히게 된다면 신빙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그럼-.”
“방금 이곳에 오기 전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왔습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공식 기사를 통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러고는 이내 술렁이는 기자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덧붙였다.
“이제 공식적으로 질문 받겠습니다.”
기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하늘 높이 손을 올리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마.
저 중에는 자신의 찌라시를 고스란히 받아 적어, 기사를 채웠을 기자들도 많겠지.
‘씁쓸한 현실이군.’
현승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열심히 손을 들고 있는 기자를 가리켰다.
“히든과는 그럼 다른 관계성은 전혀 없으신 건가요?”
“예,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사이입니다.”
현생에서는요.
-라는 말을 삼키는 게 좋겠지.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히든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이후 조치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제가 아니라, 법원에서 결정해 주겠죠.”
“히든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십니까?”
현승이 “음….”하고 깊은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작업물을 뺏은 건 죄송하지만, 그건 제 실력으로 얻어낸 기회일 뿐이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깍지를 끼우며 덧붙였다.
“아, 그러니 그렇게 뒤에 숨어서 음해할 시간에 실력을 키워보는 것이 더욱 자신에게 이로울 거라고 함께 전하면 좋겠네요.”
현승은 이제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전했다는 듯, 옷깃을 여미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기자들은 초등학교 발표 시간에 아이들처럼, 손을 쭉쭉 뻗으며 애절한 어투로 “잠시만요! 저도 질문 하나 있습니다!”하고 소리쳤다.
터벅, 터벅-.
현승이 난감하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가장 애절해 보이는 여기자를 향해 손짓했다.
“마지막으로 질문받겠습니다.”
여기자는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저요?” 하더니,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입을 열었다.
“혹시 앞으로도 얼굴 공개하실 계획에 없으신 건가요? 얼굴을 모르다 보니 조작된 사진이 떠돌아다녀도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녀의 질문에, 장내는 일제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고.
바드득, 바드득-.
현승이 뒤통수(*헬멧)를 긁적거리기도 잠시.
“그런 사진에 속지 않고, 저를 믿어준 팬들을 위해서만 공개하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채, 관계자들과 함께 장내를 빠져나갔다.
* * *
기자회견이 끝나고, 현승은 김우현과 박 전무 그리고 외부 법무팀원인 이은우를 데리고 단골 한정식집인 ‘손 수’를 찾았다.
“아까부터 어디를 그렇게 힐끔거리세요?”
김우현이 애피타이저를 내어주기 위해 들락거리는 여직원을 곁눈질로 흘끔거리기도 잠시.
“어? 아, 아니야.”
현승의 예리한 눈썰미에 걸리고 말았다.
“다들 빠르다 빨라.”
그러고는 이내 그런 적 없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확인했다.
[ [공식]HS, 기자회견 통해 입장 발표 “모두 진실 아니다.” ] [ 뒤바뀐 진실, HS와 제이블의 찌라시를 조작한 건 히든? 정황과 증거 확보된 상황이라 밝혀….] [ HS, 자신과 제이블은 히든이 벌인 판에 놀아난 ‘피해자’일 뿐, 추가 피해자 많을 것이라 예상….] [ 작곡가 HS,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작곡가 ‘히든’ 고소장 접수 ] [ 기자회견장에 헬멧 쓰고 나타난 HS, 앞으로도 얼굴 공개 없다. 단, 팬들에게만 공개할 것이라며….]↳ 글승: 와 히든 소름 끼쳐 가해자면서 피해자 코스프레한 거 개극혐이다;;
↳ 아인-작가님들되게졸귀세요: 멀리 안 나가.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개든아 (추천수 38개)
↳ 승현: 저런 놈들은 그냥 사회에 아예 발 못 붙이게 해야 함;
↳ 아현: 사실 이 기자회견의 포인트는 엣치스가 팬들에게‘만’ 얼굴 공개를 할 것이라 한 것입니다.
↳ 케이: 제가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은 이제 얼굴 공개를 할 때가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추천수 35개)
기사를 확인한 김우현의 얼굴 위로는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온 웃음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부쩍 어두워졌던 현승의 낯빛이 다시금 밝아진 걸 보면 아닌 척해도 신경을 많이 썼던 모양인데.
상황이 순조롭게 잘 풀려가고 있으니, 김우현의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뒷일은 법무팀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줄 거야.”
“저기 앉은 사람이 알아서 다 해준다는 거 맞죠?”
현승의 물음에 김우현은 바로 제 옆에 앉아 애피타이저로 나온 잣죽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있는 이은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응, 아마….”
참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녀석이다.
“근데 HS 씨는 헬멧 안 답답하세요? 저희는 의뢰인의 비밀은 죽어도 지켜드리기 때문에 편하게 벗고 식사하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모로 고생 많으셨을 텐데, 변호사님이나 실컷 많이 드시죠.”
현승이 이은우의 광기 어린 눈을 보며, 저런 놈에게 잘못 걸리면 인생 피곤해지겠다는 생각에 헬멧을 다시금 꾹 눌러쓰던 찰나였다.
“근데….”
박 전무가 잣죽을 다 해치우고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처리가 좀 아쉽네.”
그때 그릇에 코를 박을 기세로 잣죽을 해치우고 있던 이은우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며 되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히든 새끼 돈도 많은데 맘만 먹으면야 가온 같은 대형 로펌에서 팀 꾸려서 대응하면 허위 사실 유포라던가 명예훼손 같은 건 빠져나오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러고는 웃음기 서린 얼굴로 손을 휙휙 내저으며 부연했다.
“에이, 제가 그 정도로 시시한 일 같았으면 이 판에 끼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지?”
“찌라시 유포해 주던 페이퍼 컴퍼니와 그 위에 중국 자회사와의 관계도 다 엮고, 지금껏 탈세한 내역도 모두 탈탈 털어야죠.”
그 말에 김우현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야? 그 녀석한테 증언 받아낼 때와 말이 다르잖아?”
“당연하죠. 사람이 어떻게 똥 싸러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마음이 같습니까? 본부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순수하시네요.”
“허….”
“무엇보다 이 사건의 가해자가 히든만은 아니잖아요. 공평하게 다 같이 벌을 받아야죠.”
정말이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치밀하다.
그래서 좋다는 말이다.
현승을 욕보인 모든 사람을 조져 버리고 싶었는데, 대신해주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이미 우리 측에서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윽고.
“그러니까….”
이은우가 잣죽이 묻은 입가를 닦아내며 덧붙였다.
“히든 또한 이제 끝난 셈이죠.”
처음으로 이은우가 무척 듬직해 보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