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5화(195/482)
기자회견 이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 히든의 조작으로 사라진 작곡가들, 드디어 입 열어… 총 7명에 달하는 피해자 속출 ]담당 (*이상한) 변호사는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듯.
“이미 우리 측에서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터트리며, 히든의 숨통을 조여 왔다.
[ 히든으로부터 청탁받았다는 증언 담긴 녹음본 증거로 제출되어… 추가 조사 진행 ] [ 작곡가 히든, 중국 불법 페이퍼 컴퍼니로 수억 원에 달하는 로비 정황 확인되어… ]히든은 허위 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여러 추가 조사를 받게 된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면서 피해자 시늉을 했다며, 여론으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으며 민심을 잃게 되었다.
그래.
“히든 또한 이제 끝난 셈이죠.”
이제 정말 끝났다.
[ 드라마 ‘붉은 실’ 제작진, “히든의 계약 불이행으로 해지한 것뿐이다.” 입장 발표 “계약금만 받고 작업물 공유 전혀 되지 않아.” ] [ 작곡가 HS, 여러 피해 작곡가를 대변해 선배 작곡가 ‘히든’ 고소 및 기자회견 열어 소신 발언 화제 ]더 이상.
자신과 관련된 찌라시는 더 이상 떠돌지 않게 되었고, 되레 이번 일을 기점으로 팬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음.’
다 잘 해결되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린 셈인데.
‘이 찝찝함은 뭐지?’
자신을 향해, 제이블을 향해, 혹은 이름 모를 또 다른 피해자를 향하던 화살이….
이젠 히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찝찝함을 불러일으켰다.
아.
동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가볍게 던진 돌에, 다른 이들은 피눈물을 흘렸을 테니까.
전생의 자신 또한, 저런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고 말이다.
그저.
이 사건으로 이런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가, 씁쓸해진 까닭이었다.
당연히 반복될 테지.
절대 끊기지 않는 악행의 고리처럼 말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거나 하자.’
현승은 정의 구현 따위가 하고 싶던 것은 아니다.
나서서 이런 사회를 바꿔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뿐이다.
스윽-.
현승은 자신이 찌라시 사건에 휘말렸을 당시, 팬들이 보내 줬던 팬레터들이 담긴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에는 혹여나 욕이 쓰여 있는 건 아닌가, 한껏 긴장하고 펼친 종이들 위로는 희망찬 문장들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나를 믿는다고.
위로를 주는 음악을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러니 이번에는 자신들이 맞서 이겨내 보겠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아마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이번 생은 분명 다르게 살아 나가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주어진 삶이니까.’
우선, 지금은 작업부터.
─ ♬ ♬ ♬
이후 현승은 떨림이 완벽히 멈춘 손으로, 아름다운 선율의 곡을 만들어 나갔다.
* * *
며칠이 흐르고, 드라마 OST 작업이 순풍을 잘 탄 돛단배처럼 술술 풀려 나갔다.
하나.
현승의 표정은 어째선지 고민이라도 있는 양 몹시 심각해 보였다.
“현승아, 나 오랜만에 시간 괜찮은데 밥이나 먹으러 갈까?”
작업실을 찾은 김우현이 넌지시 물었지만, 현승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지금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에요.”
그 말에 김우현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가 밥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네, 겨울 시즌곡 제작이 잘 안 풀려서요.”
“응? 지금 OST 작업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건 그거고, 시즌곡도 얼른 제작해야 하는데….”
뒷말을 흐리며 고민에 빠진 듯한 현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우현은 아주 작게 “일 중독자.”라고 중얼거렸다.
다만.
현승에게 있어선 정말 엄청난 고민이었다. 어느덧 1월이 다 흘러가고 있으니 겨울 끝자락이 왔다.
그런데 계절곡의 하이라이트인 겨울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올해 자신이 새겼던 다짐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휘발되는 것이 아닌가?
결코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캐롤?”
현승이 넌지시 중얼거린 말에, 김우현이 넙죽 “캐롤 좋다.” 하며 즉답했다.
“아, 근데 너무 뻔하고….”
그러나 현승은 그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혼자 자문자답을 하고 있었다.
겨울, 겨울, 겨울.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계절인 겨울.
사람들은 그래서 겨울을 좋아하고 설레며 기다린다.
그러나.
대망의 마지막 시즌을 장식할 곡이지 않나? 그런 뻔한 분위기와 심정을 담은 곡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김 실장님.”
“아니지.”
“아, 본부장님.”
“그래, 은쪽아, 왜?”
“아니죠.”
“아, 동쪽아, 왜?”
서로 별칭이 잘못된 탓에 몇 번의 소모적인 말이 오간 뒤에야, 현승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연애사업은 잘 돼 가십니까?”
“너 왜 아픈 곳 찌르냐?”
“아, 끝나셨어요?”
“난 그냥 일이나 하려고.”
“차이셨구나?”
그 말에 김우현은 제 심장 부근의 셔츠를 부여잡고는 고개를 푹 떨궈 버렸다.
“곡 만드는 데 남 연애사라도 들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 물은 건데, 전혀 도움이 안 되시는군요.”
덧붙인 말에 더욱 데미지를 입었지만, 김우현은 TV에서 본 육아 프로그램이 떠올렸다.
이름하여, 금쪽이 프로젝트.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아 맞다, 바로 울컥하거나 대응하지 말고 태연하고 나긋하게 상대할 것.
“우리 동쪽이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데 재주가 있구나-.”
“말투 왜 그러세요?”
“내 말투가 어때서-? 나긋하고 조곤조곤하지 않니-?”
현승이 적응이 안 되는지 “으.” 하는 소리를 내기도 잠시.
“그럼, 오늘 점심은 살면서 더 많이 차인 사람이 식권 쏘기 어때요?”
실실 웃으며, 마지막 칼날을 꺼내 들었다.
“혹시, 쫄?”
결국.
“이 극악무도하게 잔인한 놈….”
김우현의 금쪽이 프로젝트는 1분도 못 가고 끝이 났다.
* * *
LS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대표실과 가장 인접해 있는 전무실.
그 안에 놓인 고급스러운 명패 위로는 ‘박태묵’이라고 적혀 있었다.
슥, 슥-.
박 전무가 마치 보물을 다루듯 입김을 불어 가며 살살 닦아 내니, 명패가 번들번들 광이 났다.
“보기 좋구만.”
박 전무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보이는 것을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자신에겐 가진 것도, 보여 줄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을 독한 사람으로 규정지은 뒤, 스스로를 더욱 엄격한 규율로 통제했다.
성공.
그 하나만을 목표로, 엔터 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단 하루도 네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을 지경이었다.
물론.
임원에 오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천명이 되어 가는 중이었으나, 박 전무는 매일 새벽 5시면 눈을 떠 명상하기 일쑤였다.
스트레칭과 고강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깔끔한 식사를,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었다.
거대하되 기민한 몸을 유지하고, 오로지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널찍한 개인 집무실을 얻게 되었고, 그 안에는 가죽으로 이뤄진 고급 소파와 화려한 명패가 자리했다.
그리고.
탁상 위로는 액자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담겨 있었다.
탁-.
우수에 젖은 눈으로 사진을 바라보던 그가 별안간 액자를 가볍게 톡 엎어 놓았다.
끼이익-.
의자 등받이에 등을 누인 박 전무가 눈을 감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난 독종이니까.”
박 전무는 입버릇처럼 지금의 현대사회를 결투장에 비유하곤 했다. 늘 검투사의 마음으로 사는 이였으니까.
적의 목구멍에 칼을 쑤셔 넣을지언정, 새끼의 입에는 맛있는 음식을 넣어 주자는 게 그의 신조이자 좌우명이었다.
그가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된 건 가족들이 제 곁을 떠나던 날부터였다.
별안간.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다던 유학, 아이들을 위한 거라길래 덥석 그러자고 했다.
이후 제 가족들을 배웅하던 날, 출국장 앞에 선 아내가 미안한 얼굴을 해 보이던 때.
“괜찮아.”
박 전무는 이렇게 위로해줬다.
“나 독한 사람인 거 알잖아.”
실제로 그는 몹시 단단한 사람이었다.
바쁜 일과의 끝자락….
그를 맞아 주는 널찍하고 공허한 집. 아내와 아이들의 짐이 빠진 아파트는 휑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금세 체득할 수 있었다.
홀로 밥을 차렸고, 먹은 식기를 도로 닦아 놓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시답지도 않은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 수사자는 제 눈앞에서 암사자가 죽어 갔지만,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발돋움을….
그는 다큐멘터리 속 맹수를 사랑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피식자의 목덜미에 박아 넣되, 무리를, 가족을 지키는 이중성에 어마어마한 매력을 느꼈다.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었다.
‘나도 저런 맹수가, 저런 남편이, 저런 아빠가 되어야지.’
고대하던 여름 휴가.
그는 말없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뉴저지의 주택을 찾아갔다. 불이 켜진 통창, 식탁 앞으로 식구들이 모여 앉아 웃음 짓고 있었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기던 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내의 옆자리에는 생면부지의 외국인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가 제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행복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그의 손은 아내의 허리를 두르고 있고, 제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박 전무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줄담배를 피웠다. 마지막 담배꽁초를 땅에 버리고, 불씨를 구둣발로 비벼 끄며 나지막이 주문을 읊었다.
“괜찮아, 난 존나 독한 놈이니까.”
그의 생을 관통하는 주문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박 전무가 눈을 떴다.
“들어와.”
그 말에 직속 후임이 예의를 갖추고 들어와 결재판을 내밀었다.
“오늘 결재해 주셔야 할 서류들입니다.”
박 전무는 기계처럼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여태껏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살았다.
칠칠맞게 눈물을 흘린 적도 없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의 왕래 역시 점차 뜸해졌다.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본래 우두머리 수컷이란 이런 사사로운 일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법이다.
무엇보다 뱉은 말은 지켜야 했다.
아이들이 미국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생계를 책임지기로 했으니까, 그저 약속을 이행할 뿐이었다.
못 본 체하면 그만이고, 모르는 체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언젠가 모든 게 제 자리로 돌아올지 모를 노릇이지 않나?
그저.
독하게 마음을 먹은 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따금씩 밀려오는 헛헛하고 황망한 마음에 억지로 술독에 빠져 보기도 했고, 젊은 여자를 품어 보기도 했으나….
그런 방황 역시 즐겁지 않았다.
아내를 사랑하진 않았으나, 강력한 동료애를 느꼈다. 동료를 배신하는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이 썩 달갑지 않아 그조차 금세 관둬 버렸다.
그저.
더욱 강력한 규율로 자신을 통제할 뿐이었다.
주 평균 10권의 책을 읽었고, 열심히 몸을 관리했으며,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에만 집중했다.
이따금 악인을 자처하기도 했다.
본래 악당은 제 가족만큼은 끔찍이 챙기는 법이다. 자연의 생리 속에서 맹수란 악의 반열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노릇일 테니까.
비록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달갑게 맞이했다.
“후….”
모든 일을 끝마치고, 사옥을 나섰다. 오늘은 왠지 차를 끌고 싶지 않아 그냥 발이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한적해 보이는 포장마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인걸.”
늘 룸이나 바에서만 술을 마셔 버릇하니, 허술해 보이는 포장마차가 반가웠다.
“여기 우동 하나랑 소주 한 병이요.”
천을 거둬내고 들어갈 때는 어색하더니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자연스럽게 주문을 마쳤다.
쪼로록-.
돌연 떠오른 기억들 때문인지, 아련하게 잊히는 아이들 얼굴 때문인지 오늘따라 술이 참 달다.
얼마나 마셨을까?
빈 병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닐 때쯤에야, 땅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속이 진탕인 데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쪼르르륵-.
하나, 박 전무의 손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쪼르르륵-.
난 진짜 개 독한 놈이니까 괜찮아, 재차 중얼거리며 다시금 빈 잔을 채우던 찰나였다.
“박 전무님?”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인 건 현승의 얼굴이었다.
“여기서 혼자 뭐 하십니까? 궁상맞게.”
“…….”
“말 안 해도 알 만하긴 합니다. 그러게 마음 좀 곱게 쓰시지. 불같은 성미 감안해 보면 사내 왕따 안 당하시는 게 불가사의한 일이겠죠.”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입에 발린 말은 해 본 적도 없는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다.
그러나 그만큼 편하기도 했다.
그래, 자신에게 아부 떨기 바쁜 사람들 속에, 이런 놈 하나쯤 껴도 되지 않겠는가.
“쥐방울만 한 자식이 뭘 안다고….”
박 전무가 이죽거리듯 중얼거리고는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사장님, 여기 잔 하나만 더 주세요.”
이윽고.
“다른 건 몰라도, 술맛은 잘 알죠.”
현승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덧붙였다.
“그런 김에 쥐방울만 한 놈한테 한잔 따라 주시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박 전무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