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7화(197/482)
안지호는 대사 연습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빚을 갚고, 꼭 사옥으로 이전하겠다는 다짐을 이루기 위해 들어오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해치우다 보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사람 인생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약조는 하지 맙시다.”
어느새 웹드라마를 넘어 정규 편성된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으로 발탁된 채였다.
“대신 이리 합시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보고 싶으면 보고, 나란히 걷고 싶으면 걸으면서 그렇게 우리 함께 합시다.”
제법 우수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눈앞에 없는 여인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 모션을 취해 보기도 잠시.
“하,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이내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는 미간을 구겨 버렸다.
“큼, 흠!”
그러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아아-.”
안지호는 자신의 굵고 무거운 발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러 목소리와 톤을 구현해 나갔다.
확실히 배우도 발성이 중요하구나.
발성의 신이라 불리는 강하준이 떠올랐다.
‘바쁘겠지….’
안지호는 자신의 발성 트레이너를 해 주었던 강하준이 절실하게 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나.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거였다.
시대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것도 분명 맞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가수’라는 길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삶이었기에, 절절한 연애 감정을 표현하는데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졌다.
어딘가 어설픈 표정….
애틋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냐, 하다 보면 점진적으로 실력이 좋아지겠지.
“우리 함께 합시다. 아, 좀 어설픈데.”
그 생각으로 거듭하여 연기 연습을 이어 나갔다
우리, 함께, 합시다. 합시다. 합시다. 하, 이 느낌이 아닌데.”
대본 위로 글씨가 빼곡해지다 못해 닳아 버릴 때까지.
과연.
이 시대 속 남자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정답은 모른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진 질문이다.
“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모든 일이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어찌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됐소?”
거울을 마주한 채, 대사 하나를 무심히 툭 던지던 찰나였다.
띠링-!
청량한 소리와 함께, 액정 위로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갑자기 웬 메일이지?
톡, 톡-.
안지호는 보낸 이에 적힌 ‘HS’라는 글자를 확인하자, 반사적으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군기가 바싹 든 이등병처럼, 각 잡힌 손을 들어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내려 받았다.
[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일명이 ‘01’, ‘02’, ‘03’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파일 형식이 mp3로 되어 있는 걸 확인하자, 안지호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심장이 뛰었다.
쿵쾅, 쿵쾅!
대체 나에게 갑자기 왜 음원 파일을 보내신 거지?
꿀꺽.
안지호가 마른침을 삼키며 곧장 다운이 완료 된 파일 ‘01’을 재생시켰다.
─ ♬ ♬ ♬
맑은 피아노 선율이 시작을 알리고.
─ 내가 떠나거든, 부디 울지 마소.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못다한 말 너무 많지만, 부디 울먹이지도 마소.
그 목소리에 안지호는 가볍게 너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현승인 까닭이었다.
─ 꽃은 당연히 저무는 것 아니겠소.
살살 긁으며 맺는 끝음이, 단조로운 멜로디를 참 애절히 느껴지게끔 만든다.
노래로 연기를 한다는 말이 이런 걸까?
─ 우리가 연이 아니라 말하지는 말아요.
그 비주얼에 이 정도 노래 실력이라면 작곡가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
아마 작곡가님은 연애도 많이 해 보셨겠지?
그래.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담은 곡을 만들고 부르실 수 있는 거지.
‘에라이, 불공평한 세상.’
안지호는 투덜거리면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현승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했다.
─ 당신 몫까지 내가 울 테니, 그대는 부디 웃으며 가시오.
일순간 눈 앞에는 멋스러운 궁의 모습이 펼쳐지고.
한 폭의 수채화가 펄럭이고, 단아한 한복의 치맛자락이 제 손끝을 매섭게 스친다.
저어기 멀리.
자신을 바라보며 웃지도, 울지도 않는 여인이 보인다.
‘가지마소.’
속으로만 외치며, 여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달음에 뛰어간다면 품에 안을 수 있을 텐데.
‘가지마소.’
발목이 꽉 묶여 버린 듯 움직이질 않았다.
‘잘 가시오.’
그렇게 여인은 제 손을 벤 치맛자락을 살랑이며 아름다운 벚꽃잎 사이로 사라졌다.
이내.
불어오지도 않는 바람을 타고, 아릿한 감정이 고스란히 자신을 향해 불어온다.
‘보고, 보고 싶소.’
아아.
이런 감정인 걸까?
안지호는 일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에 완전히 몰입한 채였다. 눈시울이 뜨겁다.
어쩐지.
절대 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조차, 곡이 전해 준 감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안지호는 다음 녹음 파일을 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보단.
울음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여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꽈-악.
핏기가 사라질 때까지.
정말.
이 감정을 고스란히 지닌 채, 연기한다면 막히던 중요 장면을 모두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작곡가님은 아마 이런 상황 또한 미리 다 예상하시고, 도움이 될까 싶어 보내주신 거겠지.
툭-.
안지호는 대본을 쥐고 있던 손을 떨구고, 몸에 힘을 축 빼며 지금 몰아치는 감정에 빠져들었다.
“어찌 이런 나를 사랑하게….”
그러나, 한 문장도 채 다 해내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울컥 치고 올라오는 감정에 말을 잇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아니야, 해내야 해.
이 감정을, 이 느낌을 잊으면 안 돼. 작곡가님이 특별히 신경 써서 제작한 OST 음원도 보내주셨잖아.
“후-우.”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프로지. 안지호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입술을 떼냈다.
“어찌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됐….”
그러나, 또 안지호는 대사 한 문장을 끝마치지 못했다.
징, 징, 징-!
별안간 울린 휴대폰 액정 위로 [ 구세주 ] 라는 글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자신을 위해 OST 음원을 보내준 작곡가 HS의 전화니,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아마.
음원 잘 받았냐고, 어떠냐는 질문 같은 걸 하시려는 거겠지?
“큼, 여보세요?”
이내 안지호가 목을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 목소리 왜 그러냐?
수화기 너머로는 날카로운 질문이 돌아왔다.
“뭐, 뭐가요?”
─ 너 또 울었냐?
신기가 있으신가? 어떻게 알았지….
─ 하여튼, 우는 연기 하나는 잘하겠네.
현승은 마치 놀릴 목적으로 전화한 사람마냥, 어딘가 신난 어투로 이죽거렸다.
“아니, 저 안 울었다니까요!”
그렇게 소리치는 안지호의 코끝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 그건 그렇고 너한테 메일 하나 도착했지?
“네, 드라마 OST죠? 덕분에….”
─ 아, 맞구나. 그래도 너한테 보내서 다행이다.
“예? 그게 무슨….”
이윽고.
살짝 너스레가 섞인 현승의 답변이 돌아왔다.
─ 내가 술 마시고 실수로 너한테 보냈더라고.
안지호의 얼굴은 별안간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슬퍼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했었다는 게 창피해서였다.
“그래서 그냥 듣지도 않았어요.”
─ 잘했네. 고생해라.
툭-.
이내 전화가 무심히 끊겨 버렸고.
“아.”
자신이 그런 기대를 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곡을 듣고 울컥했다는 건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가져가야겠다.
* * *
한편.
현승은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다음에야, 자신이 안소정이 아니라, 안지호에게 음원을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과음했군.’
그래도 잘못 보낸 상대방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지호라 다행이었다.
타, 다다다다닥-.
현승은 안지호와 통화를 끝낸 뒤, 안소정에게 재빨리 다시 메일로 제작한 음원 파일을 전송시켰다.
슥, 슥-.
그러고는 까치집이 된 뒷머리를 대충 문지르며 거실로 나섰다.
여동생은 학교에 갔는지 집은 고요했고, 아버지는 음소거가 되어 있는 TV로 자막 방송을 보고 있었다.
톡, 톡-.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다,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인기척을 냈다.
─ 아들, 오늘은 늦게 출근하나 보네?
그러자, 아버지는 늘 그랬듯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수어로 말을 건네온다.
─ 어제 과음을 좀 해서요. 이제 나가 봐야죠.
─ 아들, 무리하지 마. 몸 상하겠다.
아버지의 걱정 어린 표정을 살피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차피.
무리 아니라 해도, 아버지 눈에는 무리로 보일 테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 해도 걱정하실 분이니까.
터벅, 터벅-.
현승이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걸음을 옮기기도 잠시.
끽-.
돌연 마찰음을 내며, 급하게 발을 멈추고 돌아섰다.
“아버지.”
너무 급한 나머지 육성으로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하나.
아버지는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들으셨는지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자신을 마주해 온다.
─ 혹시 현아의 잠든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하세요?
문득 박 전무가 주사마냥 주절거리던 말이 떠올라,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이미 답변이 준비되어 있던 사람처럼 손을 움직였다.
─ 이 예쁜 얼굴에 눈물 날 일은 없어야 하는데.
마치 지금 잠든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백하듯.
─ 이 목숨 까짓거 다 내어 주더라도 무조건 지켜야 하는데.
어찌 보면 낯간지러운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해 온다.
─ 아버지, 그럼 혹시 제 잠든 모습을 보면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었어요?
현승이 제 몸을 감싸는 낯간지러움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내.
아버지가 한 번 싱긋 웃어 보이고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 참, 미안하다.
아주 느릿하지만, 진심을 담아.
─ 못난 아비 만나서, 너무 빨리 철들게 해서 미안하다.
현승은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며, 다급히 물었다.
─ 만약에, 정말 만약에요. 엄마가 아직 살아계시는데 다른 남성을 만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떡하실 거예요?
아버지가 제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 네 엄마는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들 너희를 낳아 준 엄마이지 않니.
아주 어린 시절, 악몽을 꾸고 달려오며 따스하게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던 그때처럼, 아버지는 변함없이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슥슥 매만져 주고는 덧붙였다.
─ 참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려야겠지. 그런 이유만으로, 내 자식을 엄마 없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진 않을 것 같구나.
아.
이게 아버지의 사랑인 걸까? 내가, 고작 내가 이 감정을 알 수 있을까? 현승은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울음을 참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상하게 아버지의 진심과 마주하면 작고, 약해진다.
─ 아들도 언젠가 잠든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면 알 거야.
아버지는 그런 자신과 진득하게 눈을 맞추며, 수어를 이었다.
─ 눈 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와 닮은 눈매 위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자리했다.
─ 자식을 대신해 죽을 수도 있다는 그 헌신에 대해서 말이야.
현승은 그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그 새벽에 했던 다짐을 지켜내겠노라 되새겼다.
그래.
이 세상, 아버지들의 굳건하고, 곧은 마음을 닮은 곡을 만들어야지.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
그들의 마음처럼.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곡을 만들어야겠다.
“아버지.”
현승은 아무 소음도 없는 집에서 아버지를 소리 내어 불렀다.
그러고는 이내.
애써 그를 따라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수어를 덧붙였다.
─ 곧 건강검진 받는 날인 거 알죠? 꼭 같이 가요.
지금.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애석하게도 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