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9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99화(199/482)
평화로운 오후.
현승은 오랜만에 자신의 개인 작업실도, 사옥 내 카페도 아닌, 외부 카페를 향했다.
터벅, 터벅-.
혹시 몰라, 헬멧 대신 눈매를 가리는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연예인도 아닌데, 이래야 하나.
아.
‘팬미팅 때 제작한 모자 쓰고 올걸.’
현승은 두꺼운 목도리 속으로 고개를 파묻은 채, 카운터 앞에 섰다.
저 알바생 눈에는 몹시 수상한 범죄자 같아 보일 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로 하나요.”
이내 현승은 신속 정확히 주문을 끝마치고는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손수 자리까지 가져다준 알바생은, 자신을 흘끔거렸다. 그렇게나 수상해 보이나.
아무튼.
이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외부로 나온 건.
늘 같은 자리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이따금 자신의 사고가 갇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음….”
현승은 책상 위로 노트와 볼펜 하나를 올려놓았다.
곡 작업을 하러 나왔다기엔, 준비물이 조촐했지만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술술 풀려 가는 드라마 OST와 별개로, 아직 코드 하나 찍어 보지 못한 숙제 하나.
박 전무.
그를 모티브… 아니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감이 안 잡히네.’
현승은 노트를 넘겨, 글자가 잔뜩 쓰여 있는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그 위로는….
딸, 사랑, 아빠, 가장, 책임감.
라는 글자가 몇 번씩 덧대어 적혀 있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어렴풋이 짐작해 보는 것조차 무거운 단어들이다.
‘딸, 딸이라….’
내가 여동생인 현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려나?
아니지.
만약 누군가 여동생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어 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단번에 그럴 거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음, 사랑….’
이것 또한 현승이 잘 모르는 영역의 단어다.
딱, 한 번.
애정을 품은 적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사람 관계에 서툴렀던 탓에 스스로 감정에 대한 인지조차 못 한 채 떠나보냈었더랬다.
다음으로.
‘아빠….’
현승은 ‘아빠’라는 단어 위로 동그라미를 연속적으로 치고는 볼펜 끝을 깨물었다.
‘이걸 키워드로 잡아야겠네.’
그러고는 혼자 “daddy, daddy….”하고 중얼거리기도 잠시.
“아-!”
현승이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튕겨 나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드르르르르륵-!
동시에 의자가 뒤로 밀려 듣기 싫은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아….’
그 바람에 카페 내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쏟아졌다.
원치 않던 집중.
현승이 황급히 노트와 펜을 챙겨 들어 나가려던 찰나였다.
“동율고등학교?”
어디선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 이름이 들려와,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쪽에는 제게 커피를 내어 준 알바생이 서 있었다.
“동율고등학교 다녔던 민현승 맞지?”
그 알바생은 목도리를 풀어, 드러난 제 얼굴을 보고 확신이 들었는지 성큼 다가와 말을 건넸다.
“현승아, 진짜 오랜만이야!”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누구더라?”
현승은 이 알바생을, 아니지 동창생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가지런한 치아 사이로 덧니 하나가 귀엽게 튀어나온 알바생은, 꽤 민망할 법도 한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친하진 않았지만, 우리 그래도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는데 너무해!”
“아, 그랬냐….”
“졸업한 지 엄청 오래된 것도 아닌데, 기억력 무슨 일이야!”
지금 내 나이로 보면 얼마 안 됐지만, 전생까지 합치면 고등학교 졸업한 지 족히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 기억이 나는 게 신기한 거지.
-라는 말은 삼켰다.
여성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슬쩍 눈치를 살피고는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내가 너무 존재감이 없었나? 하하.”
“존재감이라면 내가 더 없었지.”
현승은 진심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것도 모자라, 알아본 이 알바생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 붙임성도, 사회성도 없던 현승은 3년 내내 이렇다 할 친구 하나 없었다.
동아리, 축제, 모임.
어디에 속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은 채 겉돌기만 했다.
하물며.
자신이 어쩌다 아파서 학교를 못 가도, 담임조차 자신의 등교 여부조차 모르고 지나간 적도 있을 정도였는데….
‘얜 나를 어떻게 바로 알아봤지?’
여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에이.”하며 추임새를 넣더니, 곧장 말을 이었다.
“네가 어떻게 존재감이 없어? 너 학교에서 유명인사였잖아.”
“내가?”
“응, 몰랐어?”
“전혀.”
제 반응에, 여성은 “허!”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되물었다.
“전교생이 너 보겠다고 맨날 우리 반 앞에서 기웃거리고 그랬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자느라고.”
“아, 맞아. 넌 맨날 자고 있긴 했어. 그러다가 점심시간만 되면 귀신같이 일어나서 혼자 밥 먹으러 가고.”
여성은 자신을 제법 잘 알고 있다는 양 신나서 떠들어 대며, 혼자 키득거렸다.
잠자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제법 독특하고 재밌는 악기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뭔가.
어린애처럼 통통 튀면서도 울림이 있다. 동시에 가냘픈 가을바람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슥-.
흥미가 생긴 현승이 여성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시선을 옮겼다.
「 이효은 」
털털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얼굴과 제법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억 속에는 없는 이름이고.
그때.
다른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 이효은은 “잠시만요.”하고 소리치고는, 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 알려 줄래? 가끔 동창회도 열리고 하는데, 너한테는 연락해 줄 방법이 없었거든.”
현승은 ‘동창회’라는 단어에 선뜻 알려 주기가 껄끄러워져 쉬이 휴대폰을 받아 들지 못했다.
‘귀찮아질 것 같은데.’
이효은은 내밀고 있던 제 손이 상당히 민망했는지, 다시금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 불편하면 괜찮아!”
현승은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고는 도로 넣으려는 휴대폰을 낚아챘다.
톡, 톡, 톡-.
그러고는 이내 키패드에 제 번호를 입력해, 전화까지 걸어 확인했다.
“자, 여기.”
“고마워!”
“고맙기는.”
이효은은 이만 일하러 가 봐야겠다며 주근깨가 가득한 볼 위로 인디언 보조개가 파이도록 활짝 웃어 보였다.
“동창회 잡히면 연락 줄게!”
이윽고.
“아니, 그건 됐고.”
현승은 단호한 어투로 이효은을 잡아 세웠다.
“조만간 밥 한번 먹자.”
“어?”
“할 얘기가 있어서.”
그 한마디에 이효은의 하얀 뺨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 * *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은 우선 드라마 OST 녹음부터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콘솔 앞에 앉았다.
그래.
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이지. 드라마 OST 먼저 끝내고, 본격적으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물론.
노트 위로는 카페에서 떠오른 악상들을 빼곡히 기재해 놓은 채였다. 마지막으로 페이지 맨 상단에….
[ 가제: daddy ]라고 적은 뒤 노트를 닫았다.
탁-.
그러고는 이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 너 언제 시간 되냐 ]아까 전에 보고 왔던 이효은에게 보낸 문자였다.
조만간이라고 하긴 했지만….
현승은 인내심이 좋지 않은 편이었으므로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 볼 생각이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이유는 단순히 ‘궁금증’ 때문이다.
그래.
이효은이 지닌 목소리에 음률을 붙인다면 어떻게 들릴까? –라는 궁금증 말이다.
비록.
가수는 아니지만, 꼭 가수만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건 아니니까.
딸칵-.
현승은 트랙 ‘02’을 재생시켰다. 제목은 이미 작업실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선정해 놓은 채였다.
월하노인 月下老人
사실 이 곡을 부를 악기는 이미 선정해 놓은 채였지만, 어쩔 수 없다. 더 적격인 악기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모른 체 하는 건, 바보이지 않은가?
머지않아.
스피커에서 대금과 낡은 피아노 소리가 어우러져 흘러나왔다.
─ ♬ ♬ ♬
현승은 그 멜로디 위로 이효은의 목소리를 덧붙여 상상했다.
역시.
적격이다.
─ ♬ ♬ ♬
그 과정이 지속될수록 현승의 입꼬리는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좋았어.”
현승은 트랙을 무심히 정지시키고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 나 알바하는 시간 말고는 다 가능해! ]이효은에게 답장이 온 채였다.
아니.
새로운 악기지.
* * *
“여기 맞나?”
현승은 처음으로 본부장실을 찾았다.
똑, 똑, 똑-.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문을 두들기니, 안에서는 “들어오세요.”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가 본부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뭐, 좀 흐뭇하네.
끼이이익-.
현승이 한 텀을 두고, 문을 열자 제법 널찍한 집무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 현승아.”
결재판에 고개를 박고 있던 김우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반갑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 있으니 제법 본부장님 같으시네요.”
“같은 게 아니라, 본부장이거든.”
“여하튼, 널찍한 책상이 풍채와 잘 어울리네요.”
김우현이 “다이어트를 하든가 해야지.”라며 콧방귀를 껴 보이고는 결재판을 닫고 일어섰다.
“점심 먹자고 온 거지? 지금 당장은 좀 어려운데.”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
“요청이 좀 있는데, 바쁘면 나중에 다시 오고요.”
그 말에 김우현은 집무실 내부에 놓인 소파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공적인 거라면, 앉아서 얘기해.”
현승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푹신한 소파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지금 커피는 없고, 차 한 잔 내줄까?”
“아니요, 커피 마시고 오는 길이라.”
“그래, 그럼 요청할 게 뭔지 얘기해 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김우현은 실장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겨 왔다.
진지하면서 공적인 태도.
‘왠지 낯서네.’
현승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OST 녹음 작업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 벌써?”
“네, 그래서 섭외 리스트 넘겨 드리려고요.”
김우현은 제 두 손을 비비며 되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누구를 괴롭혀 보려고?”
“괴롭히다니요.”
“너 새디스트라고 소문 자자해, 너만 모르지?”
그 말에 현승은 아까 전 만났던 동창생, 이효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학교에서 유명인사였잖아. 몰랐어?”
현승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저만 모르는 게 많네요.”
“왜? 뭘 또 너만 몰랐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3명만 섭외해 주시면 돼요.”
그 말에 김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왜 3명이야? 저번에 5곡인가 보냈다고 했잖아. 설마 거기서 3곡만 쓰겠데?”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
“한 곡은 제가 부르게 됐고.”
“아, 한 곡은 현승이 네가… 뭐라고?!”
김우현은 제 말에 따라 말하다 말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는 집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아, 귀 아파요.”
“미안, 근데 너무 놀래서.”
“뭘 놀래요. 지난 앨범에서도 직접 불렀는데.”
“그건 그런데, 아예 본격적으로 이제 노래도 해 보려는 거야?”
“그건 아니고, 그냥 제가 따 놓은 가이드 보컬 느낌 그대로 살리고 싶다더라고요.”
이내 김우현이 손가락으로 코를 슥 훑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들 듣는 귀가 좋은가 보군.”
현승이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어 보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곡은 제가 직접 섭외할 거예요.”
“네가 직접? 누군데?”
“있어요, 아직 근데 확실한 건 아니에요.”
“아마 이 세상에 너가 만든 곡을 거절할 가수는 없을걸?”
현승이 그 말에 잠시 텀을 두고는 답했다.
“가수가 아니거든요.”
일순간 장내는 고요함이 감돌았고.
“어-?”
김우현은 다시금 본부장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벙 찐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뭐라고?”
현승은 다시 한번 되짚어 얘기했다.
“가수가 아니라고요.”
이윽고.
다시 한번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김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어-?!”
김우현 본부장이라 적힌 명패가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의 공명이 담긴 외침이었다.
정말이지.
우리 금쪽이는 한눈만 팔면, 새로운 사고를 갱신해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