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0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00화(200/482)
다음 날 아침.
이효은은 몇 벌 없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으며, 부산을 떨었다.
“왜 아침부터 유난이야?”
이불에 드러누워 있던 엄마가 시비조로 물어왔다.
“선이라도 보러 가냐?”
“그런 거 아니야.”
엄마는 그런 이효은을 위아래로 훑어 보고는 혀를 찼다.
“하기야, 너를 누가 데려가냐. 네 아빠랑 쏙 닮아서 인물도 없고 그렇다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고.”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말들을 고스란히 듣고 서 있던 이효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 엄마는 아프다, 아프다.’
그 말을 되새기며, 아직 시간이 이르지만 집을 나서기 위해 작은 손가방을 집어 들었다.
6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 방에서 엄마를 피해 도망칠 방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때.
이효은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날카로운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오늘 알바 안 가?”
“오늘 오후에 출근해.”
“알바를 하나 더 늘려 보는 건 어때?”
아침 해가 다 뜰 때까지 진탕 술을 마시고 들어온 탓인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엄마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상대하지 말자.’
이효은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잠시.
“가만 보면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은데, 그럴 시간에 돈 더 벌어서 생활비에 더 보태면 좋잖아.”
결국 참지 못하고, 투정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엄마, 나 요즘 하루도 안 쉬고 알바해.”
당연히 돌아오는 건,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뿐이었다.
“이효은, 너 지금 돈 번다고 유세 부리는 거야? 아주 나중에 직장 다니면 엄마 무시하겠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워! 너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이효은은 날아오는 휴지곽을 피해, 황급히 집을 나왔다.
괜찮다.
어차피 일을 끝내고,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오면 엄마는 집에 없거나, 술에 취해 푹 자고 있을 테니까.
@볼드쿵-!
문을 열고 나오니, 철문 앞에서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딱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전하니, 아주머니는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붙였다.
“아휴, 너희 엄마는 왜 그렇게 너를 못살게 군다니? 정말 친엄마 맞는 거지?”
이효은이 애써 웃어 보이며 “그럼요.”하고는 아주머니를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지금 너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밀린 월세는 언제쯤 낼 수 있을까? 우리도 지금 대출금 상환 때문에 사정이 좀 급해서….”
“예? 분명 엄마한테 월세 드렸는데, 안 냈어요?”
“응, 너희 엄마는 나만 마주치면 귀신 보듯 도망가 버리는 통에 말을 못 해 봤어.”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난처해하며 요청하는 집주인 아주머니를 보며 괜스레 죄송스러움이 밀려 와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일주일 있다가 월급날인데 혹시 그때 드려도 될까요?”
“아유, 그래 주면야 너무 고맙지. 네가 너무 고생이 많다.”
등을 두들겨 주는 투박한 손길이, 어릴 적 자신의 등을 두들겨 주던 아버지의 손길과 닮아 있어 순간 울컥할 뻔했다.
“저 그럼,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효은이 낡은 철문을 넘어서, 걸음을 서둘렀다.
정말이지.
이 집의 문턱을 아예 넘어설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 * *
이효은은 현승과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한 탓에, 바로 인근에 위치한 제일 싼 카페를 들어왔다.
그러자.
잔뜩 우중충했던 마음이 왠지 모르게 들떠 올랐다.
[ 나 좀 일찍 도착해서 바로 근처에 백카페 들어와 있어! 다 와 가면 연락줘. 천천히, 조심히 와! ]이내 현승에게 문자를 보낸 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문 너머로는 척 봐도, 비싸고 따듯해 보이는 패딩을 껴입은 사람들이 돌아 다닌다.
스윽-.
고개를 숙여 제 옷차림을 살피니, 너무 추워 보였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정말 큰맘 먹고 인터넷으로 구매한 4만 원짜리 코트는 잔뜩 보풀이 올라와 있고.
그 안으로 받쳐 입은 2만 원짜리 니트는 목이 늘어난 채였다.
‘친구한테 옷이라도 빌릴걸.’
너무 볼품없는 차림새에 괜히 툭툭 코트를 털어 댔다.
왠지 반지하 냄새가 배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고등학생들이네.’
그때 창가 너머로 교복을 입은 학생 두 명이 보였다.
‘왠지 고등학생 때 생각나네.’
이효은은 턱을 괸 채, 두 고등학생을 바라보기도 잠시.
“못 본 척 해 줄게.”
천천히 회상에 잠겼다.
.
.
현승이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음-?”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고 반으로 돌아오니, 맨 뒤자리에 고개를 처박은 채 자고 있는 남자애가 보였다.
‘일진인가….’
이내 담임 선생님이 자리 배정을 할 테니, 한 명씩 나와서 쪽지를 가져가라는 말에 이효은은 성큼성큼 걸어가 남자애의 어깨를 두들겨 깨웠다.
톡, 톡-.
원래부터 오지랖이 넓기도 했고, 일진이라고 무서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지.’
한참 미동이 없던 남자애는, 자신이 재차 흔들어 깨우자 “으음.”하는 신음을 내며 고개를 들었다.
“어….”
아무렇게나 삐죽거리는 검정 머리칼 사이로 오목조목한 얼굴이 드러났고.
‘미친.’
정말 그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개 잘생겼다.’
다행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 다, 담임이 자리 배정한다고, 쪽지 뽑, 뽑으러 나오래.”
남자애는 아무 대꾸도 없이 몸을 일으켜, 책걸상 사이를 가로질러 교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남자애를 따라 이동했다.
누가 보더라도 미형적으로 생긴 얼굴이었던 터였다.
‘와, 씨, 대존잘.’
이효은은 정말 처음으로 첫눈에 반했었다.
물론.
그건 비단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여자들은 모이면 입을 모아 그 남자 얘기를 떠들기 일쑤였다. 다른 학년 선배들까지 현승을 보러 쉬는 시간마다 내려왔고.
머지않아.
근처 학교까지 소문이 났다.
그나마 다행이랄 건, 쉬는 시간이면 머리통을 박고 자기 일쑤였고 등하교길에는 늘 이어폰을 꼽은 채, 고백하려는 여자애들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곤 했다.
하물며.
남자인 친구조차 만들지 않았다. 외딴섬에 홀로 놓인 사람처럼, 아주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일진인 줄 알았는데.
그냥 학교 생활에 흥미가 없는 아주 조용한 학생 1 정도랄까?
‘그래, 차라리 쭉 혼자 지내라!’
이효은은 차마 고백할 엄두도 못 냈었다. 그래, 나 같은 애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그저 3년 내내 현승에게 여자친구가 안 생기길 간절히 바라며,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을 축하한다! 고생했다!”
짧은 담임의 말을 끝으로 친구들은 가족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꽃다발을 한아름 가득 품었다.
당연히.
자신에게 꽃다발을 안겨 줄 가족은 없었다.
휙-.
지금 이런 걸로 우울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이라도 찍자고 해 봐야지.
‘어딨지?’
이효은은 같이 사진을 찍자는 친구들에게 “잠시만!”하고는 황급히 두리번거리며 현승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이랑 이미 가 버린 건가?
복도로 황급히 나서니, 홀로 우뚝 솟아오른 머리통이 보였다.
‘저깄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유명 인사였던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벅, 저벅.
이효은은 조심스럽게 현승의 뒤를 따라 학교 건물을 나섰다.
무어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냥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정말 말을 걸어 봐야겠다 싶어, 목을 가다듬던 찰나였다.
“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휙-.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엄마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서 있었다.
“이효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 소리에 이효은은 황급히 현승이 서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현승도 큰소리에 놀랐는지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쪽팔려.’
그냥 따라오지 말걸.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채였다.
“너, 너 이거 뭐야! 너 대학 가려고?”
엄마는 제 얼굴에 학자금 대출 서류를 냅다 집어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원룸이라 마땅히 숨길 곳이 없어, 서랍 깊숙이 숨겨 놨는데 어떻게 발견한 모양이다.
“네 아빠처럼, 너도 집 나가려고? 어?”
엄마의 말대로, 기숙사를 핑계 삼아 엄마와 멀어지고 싶었다.
어차피 턱없이 부족한 살림에 알아만 보고, 갈 생각은 못 했지만.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알아만 본 거야.”
“이년이, 거짓말을 해? 너, 너 어디로 도망치려고!”
엄마의 입에서 지독한 알코올 향이 뿜어져 나오는 걸로 보아, 또 술을 마셨나 보다.
그래.
‘엄마는 아픈 거야, 아픈 거.’
이효은은 그런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절부절하면서도, 곁눈질로 현승을 살폈다.
어째선지.
현승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하필….’
이효은이 거의 울 것처럼 인상을 찡그리자, 엄마는 그 모습에 더욱 분노를 터트렸다.
“이년이 지금 엄마가 말하는데 인상을 써?”
높게 올라간 엄마의 손.
꽈악-.
이효은은 본능처럼 두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
그러나, 들려온 건 엄마의 호통소리 뿐이었다.
“너, 너, 뭐야! 이거 안 놔?”
눈을 떠 보니, 현승이 제 앞을 막고 서 있었다.
“혀, 현승아. 네가 왜….”
“네 남자친구야?”
“아, 아니야! 같은 반 친구야.”
“당장 이거 안 놔?”
현승은 부여잡고 있던 제 엄마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고.
“야, 애들이 졸업 기념으로 놀자고 오래.”
“응? 무슨….”
별안간 제 손목을 잡고는, 다시 학교 방향으로 잡아당겼다.
아니, 친구도 없는 애가, 무슨 졸업 기념이라는 건지….
하지만.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 준 것도 모자라, 손목을 잡아 주기까지 했으니, 잠자코 따라갔다.
‘참 속도 없었네.’
현승이 제 손목을 놓아준 건, 학교 교문을 통과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뱉은 말은 고작 “이제 가라.”였다.
이게, 끝이라고?
이번에는 이효은이 돌아서려는 현승의 손목을 붙들었다.
“왜?”
무심히 고개만 돌리며 물어오는 그 말에, 바보마냥 아랫입술만 잘근거리던 그때.
“못 본 척 해 줄게.”
무심히 던진 그 말을 끝으로, 현승은 제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게.
자신이 기억하는 현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쉴 새 없이 일을 하며 지내는 바람에 ‘민현승’은 무심하면서도, 다정한 사람 정도로 묻어 두고 지냈다.
그러던 중.
일하는 카페에 영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가 왔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로 하나요.”
너무 익숙한 목소리.
“카드 받았습니다.”
카드에 영문으로 새겨진 이름.
분명.
민현승이었다.
주변 테이블을 정리하며, 타이밍을 노리던 찰나.
드르르르륵-!
현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목도리를 풀어 훤히 드러난 하관이 딱 자신의 기억 속 그 얼굴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이효은이 용기를 내 말을 걸었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누구더라?”
였다.
역시, 나 혼자만의 추억이었나 보다.
그래도.
친구로라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톡, 톡, 톡-.
용기를 내어 번호를 달라고 하니, 잠시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못 이기는 척 번호를 찍어 주었다.
그래, 이게 어디야.
졸업식 하던 날.
못 본 체 해 주겠다고 말해 줘서 고맙다고,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전하지 못 했었는데.
이걸로 됐다.
그렇게 위안 삼으며, 이번에는 이효은이 먼저 뒤돌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조만간 밥 한번 먹자.”
현승이 그때처럼 무심히 툭 말을 내뱉었다.
“할 얘기가 있어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는 애다. 이러니, 내가 긴장이 안 되겠냐고!
진정하자, 진정해.
회상을 이어 나가다 보니, 다시금 떨려오는 심장을 추스르려 심호흡하던 그때였다.
똑, 똑-.
별안간 옆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리니-.
“사람 온 줄도 모르고,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입학실 날 봤던 그 모습처럼, 현승이 테이블에 엎드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지금 놀란 표정 진짜 웃긴데.”
여전히.
“못 본 척 해줄게.”
멋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