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0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04화(204/482)
이효은은 현승에게 ‘노래하는 감자’가 되겠노라 맹세한 그날 이후, 매일 같이 홀로 마감 청소를 자처했고.
다들 퇴근하고 나면 텅 빈 매장에서 노래 연습에 몰두했다.
슥삭, 슥삭-.
물론 손으로는 열심히 청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하니까 폐활량 단련도 되는 것 같고 좋은데?
─ 내 손으로 둘의 손을 묶어 주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소.
이효은은 대걸레를 스탠딩 마이크 삼아 연신 흥얼거렸다.
─ 그렇게 될 줄 진작에 알았다면 못 본 채 스쳐 갈 것을.
이어폰으로 MR을 들으며 부르다 보니, 자신이 몹시 잘 부르는 양 느껴져 자신감이 한껏 오른 채였다.
─ 일평생 모르고 빗겨 갈 것을.
끝음 처리까지 완벽히 끝내고는, 고개를 치켜든 그때.
“아, 아….”
씩씩거리며 매장 문을 두드리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아마.
요 며칠 연락도 씹고, 엄마가 술에 취해 잠든 시간에 들어갔다가 해가 뜨기도 전에 도망치듯 나와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안 거지? 일하는 곳은 일부러 말 안 해 줬는데….
─ ♬ ♬ ♬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대조되는 굉음.
쾅, 쾅, 쾅-!
저대로 내버려 뒀다간 엄마 손은 물론이거니와, 매장 문도 박살 날 기세였다.
“휴우….”
이효은은 급격히 밀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짚고는 천천히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붉으락푸르락 구겨진 엄마의 얼굴이라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고함으로 다음 상황을 예측해 보건대….
“문 열어, 이 샹X아!”
순순히 문을 연다고 해서, 절대 대화로 조용히 넘어가진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엄마는 아픈 사람이잖아.’
닳을 대로 닳은 마음은 쉽게 꺾여 버렸다. 더군다나, 제 사업장도 아닌데 문이라도 훼손되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월세도 밀렸는데….
끝내, 이효은은 잠긴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짝-!
동시에 뻗어오는 손 하나가 뺨을 사정없이 휘갈긴다.
삐이이이이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귓가를 울리는 이명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
이효은이 뒤늦게 밀려오는 고통으로 작은 신음을 토해 내기도 잠시.
“엄마, 우선 밖에서 얘기하자.”
무작정 들어오려는 엄마의 어깨를 붙들고 밖으로 끌어냈다.
“지금 나 밀친 거야? 이젠 내가 엄마로도 안 보이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고,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을 막 패대기쳐요!”
“엄마, 제발….”
이효은은 제 엄마의 팔뚝을 꾹 부여잡은 채, 애원했다.
“이러지 좀 말아요, 제발….”
하나, 돌아오는 건 고약한 술 냄새가 뒤엉킨 욕설뿐이었다.
“뭘 이러지 마? 그러니까 네년이 연락을 꼬박꼬박 잘 받았으면 됐잖아! 왜 내가 여기까지 오게 해! 피해 다니면 못 찾을 줄 알았어?”
“아니, 일이 너무 바빠서….”
“뭐? 일이 바빠? 니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유세야!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월세 내라고 했어, 안 했어!”
“그거 이번 주 안으로 내가….”
“기분 좋게 술 마시고 들어가는데 주인집 아줌마가 날 붙잡고 딸내미 불쌍하지도 않냐면서 월세 내놓으라고 하더라? 참나, 내가 네까짓 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해?”
“네까짓 거…?”
“이게, 어디서 말꼬리를 잡아! 그럼, 남편 없이 널 혼자 키웠는데, 내가 불쌍하지, 네가 불쌍하냐?”
일순간 엄마의 말소리가 아득하니 멀어지고.
귓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아, 하아….”
누군가 목을 꽉 쥐어 오듯 숨쉬기가 갑갑해지고.
“어, 엄마….”
팔뚝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며 맥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목에 걸어 둔 이어폰에서는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 ♬ ♬ ♬
현승이 보내준 MR이었다.
왠지.
졸업식 날처럼, 현승에게 또 못난 꼴을 들킨 것 같아 창피했다.
그날, 꿈이 짓밟혔었지….
예대에 진학하고자 했던 꿈이 박살 나고, 난 평생 엄마에게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벗어나고 싶어. 숨 좀 쉬고 살고 싶어. 나도, 제발 인간답게 살고 싶어.
사랑받으면서.
“엄마.”
이효은은 완강히 엄마를 불러 세웠다.
“뭐! 네가 눈을 그렇게 뜨면 뭐 어쩔 건데?”
오히려 더욱 차분해진 어투로.
“내일 오전에 바로 월세 입금해 놓을게. 나 아직 마감이 안 끝나서, 미안한데 이만 가 주라.”
“진작에 그랬어야지! 너, 그러면 지금은 돈 한 푼도 없어?”
제 주머니를 더듬거리는 엄마의 탐욕스러운 손길도 마다하지 않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지닌 현금 12만 원을 모두 내어주었다.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
“꼴랑 12만 원밖에 안 들고 다니는 거야? 참나, 돈 번다고 유세 떨더니 뭐 별거 없네.”
엄마는 침을 묻혀 지폐를 몇 번이나 세 보고는 덧붙였다.
“야, 그리고 내일은 너 출근하기 전에 집 청소 좀 해 놔.”
이효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이 엄마와 닮아있을까?
아니.
아니면 좋겠다. 부디 흐릿한 기억 속 남아 있는 인자한 아빠의 얼굴과 닮아있기를 바랐다.
“엄마, 조심히 가.”
그렇게 이효은은 인사도 없이 뒤돌아 가버리는 엄마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엄마….
정말, 조심히 잘 가.
“내 인생에서.”
* * *
이효은은 그날부로 카페 알바를 관둔 뒤, 정산받은 돈으로 밀린 월세를 처리했다.
아마.
그럼, 엄마도 한동안 나를 찾지 않을 테니까.
“하아….”
잠은 찜질방에서 자고, 꼭두새벽부터 공장으로 단기 알바를 나갔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꼭 노래방을 찾았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 정도 반복하다 보니….
목은 쉴 대로 쉬고, 잠은 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내려놓겠다고 한번 마음먹으니, 이리 쉬운 걸 왜 여태 못 했나 모르겠다.
[ 내일 오전 10시 ] [ 앞에 와서 연락 ]이효은은 현승으로부터 온 투박한 문자를 확인하고는, 배시시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 웅 내일 봐!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조용한 수면실에 누워, 이어폰으로 현승이 만든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듯했다.
아마.
현승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더 이상의 폐를 끼치긴 싫었다.
가수도 뭣도 아닌 자신에게 OST 보컬 제안을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마당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나 늘어놓질 않았던가?
물론.
현승은 덥석 해 주겠다고 했지만, 혹시 자신 때문에 난처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나도 가능해서 하라고 한 거야.”
아니 근데, 너무 멋진 거 아니야?
정말이지.
너무 잘 큰 거 아니냐고.
“아, 진짜아-!”
이효은은 수면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육성으로 감탄사를 뱉었다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참 주접이야.’
이내 조용히 숨을 고르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토닥였다. 이러다가 수면실에서 자는 사람들 다 깨우겠네.
‘얼른 자야 하는데….’
정말이지, 스스로 마취총이라도 맞고 잠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
이효은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현승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날.
이효은은 자신이 햇감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 * *
다음 날.
이효은은 거대한 LS 엔터 사옥 앞에서 한 번, 로비에서 한 번,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 셀카를 찍었다.
이제.
날 위해 살기로 했으니, 매일 매일 행복한 자신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렇게.
현승의 작업실 앞에서 설레어 하는 제 얼굴을 담으려 카메라를 어플을 켠 찰나였다.
끼이이익-.
작업실 문이 열리고 웬 남자와 부딪치고야 말았다.
“아야.”
그 남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너무 안색이 어둡고 곧 쓰러질 것마냥 퀭해서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아니, 잠깐만….
방금 저 남자, 가수 박신후 아니야?
“어머, 어머!”
이효은이 호들갑을 떨며, 멀어지는 박신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뭐하냐?”
문 안쪽에 서 있던 현승이 짝다리를 짚은 채 물어왔다.
“바, 방금 나간 사람 가수 박신후 아니야?”
“촌스럽게 호들갑은, 얼른 들어오기나 해.”
현승의 핀잔에 이효은은 못내 아쉽다는 듯 입술을 다시며, 작업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빨리 올걸.’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 발라더라고 불리는 박신후와 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날리다니.
‘근데 왜 그렇게 얼굴색이 안 좋았지?’
의문은 잠시 뒤로 밀어 둔 채, 땅을 향해 박치기할 기세로 허리를 접어 보였다.
“안, 안녕하세요! 이효은이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 이분이 마지막 악기구나.”
“근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러게, 이름도 처음 들어 봐.”
눈 밑이 퀭한 남자들이 장내 곳곳에 자리를 잡은 채 늘어져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관계자들로 보인 까닭이었다.
그래.
보통 이런 녹음 하나 진행하기를 작곡가부터 프로듀서와 디렉터 그리고 엔지니어까지 모인다고 하질 않는가?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
아무튼 가수가 되고자, 현승을 따라 LS 엔터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잘 보이는 게 좋겠지.
“아는 것이 없어, 많이 부족하지만 잘 부탁….”
그때.
“잠깐, 인사 다시.”
현승이 컨트럴 콘솔 정중앙을 꿰차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이효은이야.”
“응?”
“앞으로 넌 뭐라고 했지?”
이효은은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는, 손뼉을 치며 “아!”하고 잘게 주억거렸다.
“안녕하세요, 노래하는 감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다시금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
알 수 없는 정적이 감돌아, 고개를 빼꼼히 들어보니 남성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어째.
웃음기 서린 얼굴들이 미묘한데….
‘노래하는 감자라는 말이 웃긴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그들은 장난기 섞인 농담을 한마디씩 내놓기 시작했다.
“현승 씨, 아무리 그래도 사람한테 노래하는 감자가 뭐야, 감자가!”
아니, 농담 반 진담 반이랄까?
“큭, 그러게! 차라리 그냥 연주만 하는 악기가 낫다. 그치?”
진짜 속마음이 섞여 있기도 하고.
“아이고, 감자 아가씨 우리야말로 잘 부탁해. 잘해서, 다 같이 살아 나가 보자고!”
하나, 전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효은은 그들을 따라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으레 남자들이 겁주려고 치는 짓궂은 장난이라 생각했다.
“연습 많이 했어?”
“응, 나름!”
“넌 일반인이 나름해서 되겠냐?”
그 말에, 조금 전까지 장난치던 남자들의 얼굴이 별안간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뭐, 뭐야? 일반인이야?”
“네.”
“연습생도 아니고?”
“네.”
“그럼, 뭐 하던 애인데?”
“카페 알바생이요.”
그 말에 한 남성이 울상을 한 채, 쥐어짜듯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이러다, 다 죽어….”
그러나 현승에 의해 아주 무참히 무시당했다.
“어이, 노래하는 감자.”
“응?”
“노래하는 감자, 삼창 실시.”
“가, 갑자기?”
“목 풀어야 할 거 아니야.”
이윽고.
이효은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양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삼창을 시작했다.
“노래하는 감자! 노래하는 감자! 노래하는 감자!”
정말이지.
일반인한테마저,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군.
“저, 독종.”
“변태.”
“미치광이.”
엔지니어들은 이효은의 모습이 애잔해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