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0화(210/482)
현승은 제 생각보다 괜찮은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탕에서 오래 버티기 내기라든가, 냉탕에서 수영 대결하자는 것만 빼면 말이다.
“자, 아-.”
“아-.”
김우현이 까서 건네 준 계란을 아기새마냥 족족 다 받아먹고, 식혜로 입가심을 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그러고는 찜질방의 꽃이라 불리는 미역국 정식까지 야무지게 해치웠다.
거기다가.
육체 피로를 풀기 적합하다는 스포츠 마사지를 받고, 소금방에 누워 등을 지지기도 했다.
그러고 아주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인마, 여기서 자면 죽어.”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무거운 눈을 떠 보니,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제 걱정을 하는 김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깜빡 졸았던 모양이네.
아아.
몹시 아늑하니, 이대로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오빠, 한창 작업할 때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는데 웬만하면 집에 와서 자도록 해. 그래도 엄연히 작업실은 일하는 곳이잖아. 집만큼 편하진 않을 거 아냐.”
현승은 별안간 제 귓가에 울려 퍼지는 여동생의 땍땍거리는 잔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 지금 몇 시예요….”
“이제 밤이야, 얼른 집에 가자.”
이내 둘은 샤워를 마치고 사우나를 나섰다. 뺨에 스치는 늦겨울 밤바람이 춥다기보단,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래서 사우나를 오는구나.
“현승아.”
그때 김우현이 자신을 불러 세워, 단호한 투로 덧붙였다.
“너 일주일간 나오지 마.”
“예?”
“어차피 이미 작업 끝나고 유통사에 넘겼다며.”
“네, 그랬죠.”
“그다음은 누구 몫이라고?”
“회사 몫이요.”
김우현은 “그렇지.”하고 추임새를 넣어 보이고는, 이내 현승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넌 일주일 동안 푹 쉬고 와.”
“흠, 일주일이나 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러고는 제 말에 반문하는 현승을 향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첨언했다.
“쓰읍, 지시사항이야.”
“누구요?”
“아무튼, 높은 분의 지시사항이니까 나오기만 해. 보안요원들한테 내쫓으라고 할 거야.”
사실 김우현의 단독적인 지시였다.
하나.
믿는 구석이 있어서 뱉은 말이었다.
“그러다 쓰러지면 큰일이니, 본부장님이 바쁘시겠지만, 신경 좀 써 주셔야겠습니다.”
그래, 분명 전남일 대표가 자신에게 그렇게 지시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지시대로 이행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현승이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을 통째로 쉬고 온다고 한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아마.
일 년을 쉬고 오더라도, 차트 위에 ‘HS’라는 이름이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흐음.”
현승은 최근에 맘 편히 조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오늘의 휴식만으로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제 휴가행이라니….
“알겠어요.”
그럼, 현아 곧 방학 끝난다고 했으니, 그 전에 다 같이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김우현은 그런 자신이 기특하다는 양 머리칼을 잔뜩 헝클이며 덧붙였다.
“이발도 좀 하고! 정말 너 이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내가 나중에 네 아버님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예? 제 아버님을 본부장님이 왜 뵙는데요?”
“거참, 말 서운하게 하네. 원래 옆집 아버지도 내 아버지, 윗집 아버지도 내 아버지인 거야. 내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말도 몰라?”
“알긴 하는데,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요. 전혀 상황과 맞지 않잖아요.”
“으유, 하여간 금동이 아니랄까 봐. 한 마디를 안 져 줘요-!”
현승은 핏대까지 세워 가며, 씩씩거리는 김우현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오늘 자신을 힐링시켜 주겠다며 호언장담하던 그의 말은 틀리지 않은 듯 보였다.
* * *
김우현은 현승에게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발매 날짜는 왜 이렇게 촉박한 건지.
현승이 최대한 빠르게 잡아 달라고 했다더니, 정말 요청을 잘 들어준 모양이다.
하기야.
유통팀에서 ‘HS’라면 우선순위로 처리할 테니까.
“후….”
김우현은 양손 가득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오랜만에 홍보실을 찾았다. 두 손에 들린 커피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안 그래도 바쁜 애들인데….’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의 곽 팀장 표정이 눈앞에 훤했던 까닭이었다.
아마.
삽시간에 안면 근육이 딱딱히 굳어가기도 잠시.
팀원들 눈치를 살피다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겠지.
“하하, 하하….”
그래, 지금처럼.
“본부장님, 농담 마십쇼….”
커피를 받아 든 곽 팀장의 얼굴은 무척 어색하게 굳어 버린 채였다.
“미안하게도 농담이 아니야.”
제 말에 곽 팀장은 현기증이라도 온 건지 살짝 비틀거리기도 잠시.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그러는데, 언제 발매라고요?”
김우현이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일, 일주일 뒤….”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그걸 왜 이제야 알려 주시는 거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하, 이미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으니 어쩌겠어요.”
역시, 곽 팀장은 참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니까.
투덜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재빨리 일을 해결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
그게 바로….
곽 팀장이란 사람이었다.
‘아주 똘똘해.’
김우현은 자신에게 기회가 된다면 곽 팀장만큼은 꼭 진급 후보 명단으로 올려놓겠노라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나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HS 씨라서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지.”
“사실 그분은 홍보빨이 필요 없으시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솔직히 HS 씨는 발매 기사 하나만 송출해도 될걸요.”
“그렇기는 하겠지.”
“본부장님, 왜 자꾸 똑같은 대답만 하세요?”
“어? 곽 팀장이 맞는 말만 쏙쏙 골라서 했잖아.”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내 김우현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덧붙였다.
“그런 의미로 담배나 하나 피우러 갈까?”
김우현의 단단한 팔뚝에 졸리기라도 했는지, 별안간 곽 팀장이 캑캑거리며 즉답했다.
“본부장님, 저를 죽일 셈이세요?”
진심이었는지 눈꼬리 끝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미, 미안.”
김우현은 미안함에 재빠르게 팔을 풀면서도….
‘그래,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피지컬이라고!’
제 우람한 팔뚝을 훑어보며 으스댔다.
아무래도.
목욕탕에서 느꼈던 패배감으로 인한 부작용이 분명해 보였다.
* * *
옥상에 올라온 김우현은 곧장 으슥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
곽 팀장은 눈치를 살피기도 잠시.
“혹시 정말 오늘 저의 제삿날인 건가요?”
살짝 떨어진 곳에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마치 그 모습이 거대한 육식동물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가련한 초식동물처럼 보였다.
“인마, 내가 널 살리면 살렸지. 왜 죽이겠어?”
“그렇죠? 그냥 단순히 편하게 담배 피우시려고 이렇게 으슥한 곳에 앉으신 거죠?”
김우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에 누가 없는지 곁눈질로 살피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뭐, 네 말대로 이젠 본부장이다 보니 남들 눈이나 귀가 더 신경 쓰이는 것도 맞고.”
“맞고…? 저 오늘 맞아요?”
“아니, 아까부터 왜 이렇게 실없는 농담을 해?”
“본부장님이 본인 팔뚝으로 목이 한 번 졸려 보셔야 이 공포를 알 텐데.”
이내 제 두 팔뚝을 쓸어내리고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거 참… 내가 또 너무 남자다운 탓에 괜한 공포심을 안겨 주고야 말았군.”
곽 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원래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 분이 아니었는데….
‘본부장으로 올라가서 기분이 좋으신가….’
그래, 좋을 만하지.
김우현은 신인 때부터 능력도 좋고, 성실하여 실장직까지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고작 ‘로드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이상의 문턱은 계속 밟지 못하고 있었지 않은가?
그에게 있어서 직급이 오른 건….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던 유리천장이 뚫린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터였다.
‘그러니 허세 부려도 좀 받아 줘야지.’
이내 곽 팀장은 넉살 좋게 웃으며 그의 팔뚝을 두 손으로 꽈악 부여잡았다.
“이야, 진짜 남자다우십니다.”
“좀 그런 편이긴 하지.”
그래, 이것도 다 사회생활의 일부분 아니겠는가.
“후-우.”
이제 허세를 부리는 건 관두기로 했는지, 돌연 김우현의 표정이 꽤나 심각하게 변해 갔다.
“본, 본부장님-?”
곽 팀장은 그런 김우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무슨 일 계신 거죠?”
“별일은 아니고.”
“아닌 것치고는 너무 심각한데요?”
김우현은 “그래?”하고 영혼 없이 되묻고는, 연거푸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들숨과 날숨에 뿜어내는 연기 속에서 현승의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까 곽 팀장이 그랬잖아. 그나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HS라서 다행이라고.”
“그랬죠.”
“HS는 홍보빨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하니까, 발매 기사 하나만 송출해도 될 거라고.”
곽 팀장은 괜히 쫄았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고.
“혹시 그 말이 신경 쓰이셨던 거예요? 에이, 본부장님도 참! 제가 설마 진짜 그러겠어요.”
김우현은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완강히 내저었다.
“네 말대로 그래도 돼. 녀석은 이미 자체 브랜딩이 되었으니, 보유한 홍보 채널의 3분의 1만 태워도 충분하거든.”
“그렇기야 한데….”
“근데 그건 다른 때고, 이번만큼은 사력을 다해 달라고 부른 거야. 비록 일자는 촉박하지만, 그 안에 총동원해 줄 수 있겠어?”
모순적인 그의 부탁에, 곽 팀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예?”하며 되물었다.
아니.
원래부터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총력을 다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김우현의 말대로 ‘HS’는 이제 유명 브랜드와 같은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헤드라인에 ‘HS’라는 글자만 끼워져 있어도 메인 배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물며.
대중들이 알아서 커뮤나 SNS 채널로 퍼다 나르는데….
총동원하여 사력을 다해 달라니?
우선 김우현이 자신에게 사력을 다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체 왜….’
개인 앨범도 아니고, 해외 라이징 스타를 가수로 내세운 것도 아닌데.
「 HS x 문범재 」
이 조합만으로도 세간은 떠들썩해질 텐데, 사력을 다하면 오버 조금 보태서 지구가 통째로 흔들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고작 2년 정도 봤지만….”
곽 팀장의 상념이 길어지던 찰나, 차분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깃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건 처음 봤어.”
고개를 돌리니, 김우현이 빈 갑을 “와그작” 구긴 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어떤 의미가 담긴 곡인지는 모르겠는데, 녀석이 문까지 걸어 잠근 채 오랜 시간 골몰하여 만든 곡이라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
“아, 저는 현승 씨가 신분 노출 문제라던가 방해받지 않고 작업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내가 어제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주 얼굴이 때꾼하니 곧 쓰러질 사람 같더라고.”
“천하의 현승 씨가요?”
“응, 아마 녀석한테는 지금 발매할 곡이 자신을 갈아 가면서까지 완벽하게 만들고 싶던 곡인 것 같아.”
“와, 씨… 저 그럼, 지금 바로 유통팀 가서 들어 보고 올래요.”
김우현이 피식 웃어 보이고는 “깜짝 놀라서 나자빠지지 말고.”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고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어 대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 고작 애 찜질방 데려가서 좀 쉬게 해 준 게 다였다.”
곽 팀장은 작게 “아.”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김우현이 현승을 아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각별한 마음이 오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둘은….
단순히 공적으로 윈윈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 이상의 더 깊고 끈끈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었구나.
“금동이 녀석이, 직접 방송에 나가서 홍보할 리도 없고….”
이런 각박하고 거대한 콘크리트 속에서 싹트기 어려운 감정인데.
어찌 보면….
참 부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너희 팀 손 좀 빌리자.”
그래, 곽 팀장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현승이 아주 조금 부러웠다.
자신을 위해 후임에게 아쉬운 소리를 기꺼이 할 사람이 있다는 게….
“예, 얼마든지.”
아직 규모를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지만.
“고마워, 다음번에 홍보실 애들 다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본부장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한우로 사신다는 말씀이겠죠? 그럼, 사활을 걸고 해 보겠습니다.”
핵폭탄급 사고 정도는 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