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1화(211/482)
현승은 별안간 휴가를 얻게 된 덕분에, 여태 못 잤던 잠을 몰아 잘 수 있었다.
그나저나.
벽에 달린 시계의 초침을 보니 족히 15시간은 잔 것 같은데….
“으.”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하게 굳은 몸을 풀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래도 15시간은 너무했나.
이내 빳빳한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거실로 나섰다.
“오빠, 잘 잤어? 기절한 것마냥 아주 곤히 자더라.”
“어, 간만에 푹 잤다.”
“잠귀 밝은 사람이, 암만 불러도 안 깨서 놀랐어.”
“그래? 전혀 몰랐네.”
현승은 대충 대답해 주고는 곧장 주방으로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등가죽에 붙은 것 같은 배를 좀 채운 뒤, 남은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오빠, 배고파?”
그때 여동생이 제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응.”
이내 자신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눈빛을 반짝이며 재차 물어왔다.
“혹시 그럼 소고기 어때?”
사실 물었다기보단 이건 그냥 먹으러 가자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지.
“소고기 먹고 싶구나.”
“요즘 오빠 기력도 쇠약해 보이는데, 소고기 먹고 몸보신해야지. 아빠도 마찬가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는 정성을 봐서라도, 먹으러 가 줘야겠지.
“그래, 소고기 먹으러 가자.”
“아싸! 소고기! 소고기!”
현아는 제 허락이 떨어지자, 좋아하기도 잠시.
“아 맞다, 근데 오늘 작업하러 안 가 봐도 돼?”
물끄러미 현승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어 왔다.
아마 늘 바쁜 오빠의 시간을 눈치 없이 빼앗는 건 아닌가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하여간.
‘쓸데없이 눈치를 너무 본다니까.’
현승은 지금, 이 순간도 머릿속에 차오르는 악상을 잠시 한 켠으로 밀어 놓았다.
이번 휴가는 가족과 온전히 보내야 하니까.
“응, 한 일주일 쉬기로 했어.”
“헐! 진짜? 대박!”
자신이 쉰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좋은지, 현아는 펄쩍 뛰며 빠르게 손뼉을 부딪쳤다.
그 모습이 꼭….
“얼른 아버지나 모시고 나와. 밥 먹으러 가게.”
“웅-!”
몹시 신난 물개처럼 보였다.
* * *
현아가 알아보았다는 식당을 찾았다.
“어때? 어때?”
이내 현아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자신을 붙들고 물어 왔다.
“내가 말한 그대로지? 완전 좋지? 최고지?”
현아가 아까 뭐라 그랬더라?
질 좋은 한우와 정갈한 밑반찬 그리고 프라이빗한 개별 룸에서 구워 주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만족할 만한 곳이라던가?
이 정도 브리핑이면….
거의 소고기를 먹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조사하고 준비한 것 같은데….
비록.
아직 물잔 말고는 구경도 해 보진 못했지만, 이 정도 정성이라면 그렇다고 해 줘야겠지.
“어, 좋네.”
무엇보다 현아의 말대로 식당 내부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정확하게 제 얼굴이 노출된 건 아니라지만, 팬미팅에서 옆모습을 보인 적이 있던 만큼 룸타입으로 이뤄진 곳이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또.
이효은처럼 동창생이었던 이가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헐! 오빠!”
그때 현아는 제 휴대폰을 보며, 토끼 같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이번에 또 신곡 내?”
“어떻게 알았냐?”
“뭘, 어떻게 알아?”
그러고는 황당하다는 듯 제 휴대폰을 들이밀며 부연했다.
“지금 포털에 기사 쫙 깔리고 팬카페에서 난리도 아닌데, 모르는 게 바보 아니야?”
현승은 눈매를 좁히며 액정 위에 떠오른 기사들을 살폈다.
[ [공식] HS의 이름을 걸고 만든 신곡 ‘Villain daddy’ 오는 11일 전격 발표 ]그런데.
기사 목록들보다 더욱 눈에 들어오는 건.
까똑! 까똑! 까똑!
화면 상단에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까똑 미리보기 창이었다.
[ 윤정2: 우로빠 또 일냈다; ] [ 윤정2: 무한스트리밍 ㄱㄱ ] [ 소현: 당연; 얼마나 또 좋을까? ] [ 윤정2: 그런 의미로 아무래도 나 엣치스랑 결혼할..더보기 ] [ 소현: 아마 엣치스는 너랑 결혼할 생각 없을걸. ] [ 윤정2: 오늘에야말로 너랑 절교다. ]아마 현아의 친구들인 모양인데, 친구들이 내 팬덤인 건가?
‘저 사이에서 제법 난처하겠네. 오빠를 오빠라 부르지도 못하고.’
현아는 뒤늦게 눈치챘는지, 휴대폰을 도로 “휙” 낚아채 가져갔다.
“어? 아! 이건 그냥 내 친구들이 오빠 팬이라서 그냥 주접떠는 거야. 잊어버려.”
“귀엽네. 근데 윤정이란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연하 취향은 없다고 전해 줘.”
“내가 뭐라고 전할까? 우리 오빠가 사실 엣치스라고, 너는 취향이 아니래! 이럴까?”
“그래도 되기는 하는데, 네 인생이 제법 시끌벅적하고 귀찮아질 텐데 괜찮겠어?”
“아, 아니이-.”
“잘난 오빠를 둔 탓이니, 겸허히 받아들여.”
“으, 정말….”
현아는 매섭지도 않은 눈초리로 자신을 째려보며, 씩씩거렸다.
“얼씨고?”
그 모습을 보던 현승이, 무어라 더 장난을 치고자 입술을 달싹이던 찰나였다.
지이이이이잉-!
주머니에 든 휴대폰이 있는 힘껏 진동했다.
[ 김아빠 ]하여간, 하루가 채 지나기 전부터 찾을 거면서 나오지 말라고 큰소리치시기는.
아마도.
발매 일자 잡혔고, 홍보자료 뿌려놓았으니 아무 걱정 말라며 생색내시려는 거겠지.
“현아야,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거랑 너 먹고 싶은 거 주문해 놔. 전화 좀 받고 올게.”
“빨리 와! 안 그럼, 내가 오빠 몫까지 다 먹어 버릴 거야.”
“시골 쥐 아니랄까 봐, 식탐은.”
“뭐어-?!”
이내 현승은 도망치듯 룸을 나섰다. 전화는 이미 끊어진 채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던 찰나.
다시금 전화가 걸려 왔다.
─ 현승아, 잘 쉬고 있어?
수화기 너머에서는 평상시보다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상하다.
원래 같으면 다소 질척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잘 쉬기도 전에 전화하셔서 못 쉬고 있잖아요.”
─ 미안, 근데 이건 미리 전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김 아빠는 차분하다 못해 힘이 넘치는 어투로 첨언했다.
─ 이번 Villain daddy, 발매 일자 잡혔다. 너 휴가 딱 끝나고 돌아오는 날이야.
“안 그래도 기사 봤어요. 날이 딱 좋던데요.”
─ 이미 봤어? 그래, 앞으로 서포트는 우리 몫이니까 넌 아무 걱정 말고 푹 쉬기나 해.
역시나, 제 예상은 적중했다.
“전화를 끊어 줘야 쉬죠.”
─ 으유! 하여간, 금쪽이 아니랄까 봐. 끊어 준다, 끊어 줘!
그 말을 끝으로 정말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나?’
현승이 문자라도 보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든 찰나였다.
지이잉-!
별안간 문범재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나와 한 거래를 잊지 않았겠지? ]현승은 잊고 있었다는 양 “아차.”하고 소리를 내고는 대강 [ 네네 ] 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무래도.
남은 휴가 6일 중 2일은 거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겠네.
우선, 지금은-.
톡, 토독, 톡.
김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는 일이 더 먼저였다.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늘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시는 분이니까.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어.”
하물며 홍보도 전투적인 걸 보면 아마 김우현의 입김이 어느 정도는 들어갔을 터였다.
톡, 토독, 톡.
여기까지가 그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힐링 코스겠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나도 좀 더 어른스럽게 그에게 먼저 손길을 내밀어야겠다.
톡, 토독, 톡.
문자는 아주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전송이 완료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
.
[ 혹시 삐짐? ]* * *
LS 엔터 내 엔지니어실 안으로는 엔지니어를 비롯해, 한 팀장과 곽 팀장까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자, 자-!”
이내 기연선은 그들의 앞에 서, 마치 조교라도 된 것마냥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네!”
“목소리가 너무 작습니다!”
“네에-!”
그제야 기연선이 흐뭇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유통 담당자가 안 된다는 걸, 제가 애원하고 또 애원해서 받아 낸 것이니 다들 입단속 잘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특히, 그 사람 귀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알죠?”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보였다.
여기서 ‘그 사람’이라 하면-.
바로, 현승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현승이 엔지니어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단독적으로 음원을 넘기면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A&R 소속 사람들은 궁금함을 못 참고 유통팀을 찾아갔고.
“절대 발매할 때까지 공유하지 말라 했어요.”
예상과 달리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하나.
백번 찍어서 안 넘어오는 나무는 없다고.
“제발, 제발… 우리 사이에 이럴 거야? 내가 나중에 진짜 비싸고 좋은 술 살게.”
유통 담당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기연선이 애걸복걸한 덕택에, 음원을 받아 낼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지금 이곳에서 영웅은 기연선이었다.
“자, 그럼 더 이상 끌지 말고 바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곧장 스페이스 바를 힘차게 눌러 보였다.
탁-!
그와 동시에 장내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
모두 기대에 찬 눈빛만을 반짝일 뿐이었다.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선율이 흘러 나왔다.
‘그래, 이거지.’
기연선은 어렵게 구해 낸 음원이라 그런 건지, 이번 음원이 유달리 더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일련의 쾌락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 ♬ ♬
기연선은 엔지니어인 만큼 평상시에도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비중을 두고 듣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멜로디 위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주위를 살펴보니, 몇몇 엔지니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왜 저러지?’
기연선이 느낀 음율은 그렇게까지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잔잔한 구간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코러스 부분은 되레 락발라드처럼 일렉의 사운드가 주를 이루며 강렬한 느낌이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였다.
─ 미안했다고 이제야 말해 본다.
노래가 아니라, 말하듯….
아니.
울음을 꾹 참는 듯한 문범재의 목소리가 곡의 끝을 알렸다.
─ 처음이라, 그랬어.
기연선은 곡이 전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이상하게 그 가사가 제 심장을 저릿하게 쥐여 오는 듯했다.
“후우….”
까딱하면, 쪽팔리게 울 뻔했네.
─ ♬ ♬ ♬
문범재가 애드리브로 넣은 스캣이 마지막 가사가 지닌 감정을 재차 이어 나갔다.
그리고.
별안간 낯선 듯,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든 딸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주 차분하고, 덤덤하게.
─ 이 아이를 위해선 대신 죽어 줄 수도 있겠다.
문범재의 스캣과 어우러져 그의 목소리는 무척 절절하게 들려왔다.
‘아씨,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기연선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괜스레 덥다고 중얼거리며 손부채질을 해 댔다.
─ 잠든 딸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 봤던 것 같아.
아아, 현재 실내 온도는 24도였다.
─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사랑이더라고.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몇몇 이들도 눈가를 벅벅 문질러 대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며 장내를 나갔다.
‘나도 아버지한테 오랜만에 전화나 좀 드릴까….’
기연선이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던 찰나였다.
“근데. 있잖아….”
한 팀장이 눈물은커녕, 건조한 눈매를 좁히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들린 목소리… 전무님 같지 않아?”
그 물음에 정적이 돌기도 잠시.
“푸하하하하하-!”
“팀장님,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곳곳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울다 웃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만큼 한 팀장의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엔지니어들의 상식선에서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