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2화(212/482)
현승의 휴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냥….
으레 평범한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아주 소소한 일상을 보냈다.
“그만 자고 나와서 밥 먹어!”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가, 동생이 차려 준 밥상 앞에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어머! 뭐, 저런 엄마가 다 있어!”
“좀 조용히 봐 주면 안 돼?”
“원래 드라마는 이렇게 보는 거야.”
쇼파에 나란히 앉아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하고.
“아버지, 봄에 입을 옷 좀 사 드려야겠다.”
“오빠, 무조건 같이 가. 절대 혼자 고르지 마.”
“너 따라와서 네 옷 사 달라고 하려고 그러지.”
“아니, 오빠의 미적 감각이 영 불안해서….”
다가올 봄옷을 사기 위해 가족끼리 복합쇼핑몰을 찾았다.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문범재와 약속한 ‘거래’를 준비해야 했기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오라버니, 한우 자주 먹게 돈 많이 벌어 오소서.”
“오냐.”
“아, 그리고 잠은 집에서 자고, 이왕이면 일찍 들어오고!”
“거참, 되게 찍찍거리네. 누가 시골쥐 아니랄까 봐.”
이윽고.
대망의 ‘Villain daddy’ 발매일이 찾아왔다.
분명.
‘Villain daddy’라는 곡은 현승에게 의미 있는 곡임은 맞았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난제였던 곡이기도 하거니와, 늘 강인해야 했던 아버지들을 위한 곡이니까.
현승에게 있어선….
자신의 아버지 또한 늘 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기에, 곡을 만들며 자신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익-.
그렇다고 해서 현승이 다르게 행동할 건 없었다.
김 아빠가 준비를 잘해 놓았을 테니, 자신은 늘 그래 왔듯이 작업을 이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탁-!
현승은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콘솔 앞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히트를 쳐야 할 텐데.’
사실 어느 정도 히트는 치겠지만, 이번만큼은 유달리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지금껏보다 더 히트를 치면 좋겠다고, 해외에서도 이 곡이 유행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박 전무의 딸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라고, 그냥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 * *
한편.
Villain daddy의 발매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세간은 점차 뜨거운 관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 엣치스가 또 작정했네 ] new– 빌런대디라니 제목부터 흥미로워; 뭐 어떤 곡일지 감도 안 와서 오늘 일도 못하고 계속 곡만 상상중임; 바로 스밍 할 준비중이야.. 나만 그런 거 아니지?
↳ 난 오늘 자체 휴강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기중이야.
↳ 난 오늘 반차 내고 온전한 정신으로 대기중이야.
↳ 난 친정에 애기 맡겨놓고 마음 편하게 대기중이야.
↳ 윗댓들 도랐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르륵, 스르륵-.
[ 어쩐지 이번 엣치스 곡도 내 눈물버튼이 될 것 같음 ] new-내가 홀아버지 손에 커서 그런지 아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 쏟는 편인데,, 대놓고 곡명부터 대디가 들어가잖슴 이건 암만봐도 내 눈물버튼이 될게 분명함. 엣치스는 정말 나쁜남자 같음. 날 너무 울려..
↳ 내가 생각해도 울릴 작정하고 만든 곡 같기는 함
↳ 근데 반전으로 올해 여름 클럽을 강타할 개 신나는 곡일 수도 있잖아.
↳ 그럼 곡명 아빠들의 반란 이런 걸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님?ㅋㅋㅋㅋㅋ
↳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애들아 지금 발매 30분 남았음 ㄷㄷㄷ
박 전무는 자신도 모르게 커뮤에 올라오는 글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사실.
모니터링 할 필요는 없다지만, 자신을 모티브로 잡고 만들었다고 하니 계속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였다.
똑, 똑, 똑.
그때 박 전무는 별안간 들려온 노크 소리에 다급하게 창을 꺼 버리곤 들어오라며 소리쳤다.
“박 전무님, 안녕하십니까.”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1팀의 오 실장이었다.
“실적 보고서입니다.”
그는 제 품에 꼭 껴안고 있던 결재판을 제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마.
그는 늘 그랬듯 서명하기 전까지, 저러고 기다릴 터였다.
사락, 사락-.
박 전무는 잠긴 배경화면에 떠오른 시간을 곁눈질로 살펴보고는 재빨리 결재판을 넘기며 서명을 채워 나갔다.
탁-!
이내 결재판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들고 가 봐.”
원래 같으면, 가볍게 사담이라도 나누고 보낼 터였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는 없었다.
하나.
오 실장은 이대로 가기엔 아쉬웠는지 결재판을 품에 안은 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눈치를 살펴댔다.
“저기, 전무님-.”
그러고는 나지막이 그를 부르며,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 모션을 취해 보였다.
“혹시 오늘 한잔 어떠십니까?”
그 물음에 박 전무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다음에 하지.”
오늘 술을 마시고 싶기는 했지만, 마시게 되거든 혼자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내 오 실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탁-!
박 전무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하마터면 발매 시간 놓칠 뻔했네.
이윽고.
박 전무는 자신의 서랍에 넣어둔 줄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어느새 Villain daddy의 발매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들어 보네.
박 전무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현승에게 먼저 들어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체면 때문에 유통팀에게 곡을 먼저 받아 볼 수도 없었으니 발매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쓰읍.”
박 전무는 곡을 듣기에 앞서, 제 찬장에 놓인 양주 한 병과 잔 하나를 꺼내 왔다.
왠지 긴장되는 마음에 술을 한잔하고 들어 볼 요량이었다.
쪼로로록-.
이내 박 전무는 목마른 사람처럼 다급히 글라스 잔에 양주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
목구멍이 뜨겁게 타오르는 느낌에 미간을 찡그리며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쓴 걸 들이켜며, 힘든 것을 망각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지.
띠, 띠, 띠-!
6시 정각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에 박 전무는 곧장 음원 플랫폼 앱을 실행시켰다.
“얘 왜 이래?”
이상한 로딩창이 떠오르며, 좀처럼 다음 창으로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탁, 탁, 탁-!
박 전무는 곧장 제 휴대폰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기적처럼 메인 홈화면이 떠올랐다.
역시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는구만.
톡, 토독, 토도독-.
박 전무는 제 두꺼운 손가락을 움직여 다급히 HS라는 글자를 찾아 헤맸다.
[ Villain daddy – 문범재 ]굳이 검색하지 않더라도, 메인 홈화면에 뜬 ‘실시간 신곡 추천’이라는 탭에 대문짝만하게 떠오른 채였다.
이윽고.
박 전무는 다시 한번 잔을 들어, 남은 술을 들이켰다.
꿀꺽.
그러고는 이내 곡을 듣기 위해 ▶ 버튼을 눌렀다.
─ ♬ ♬ ♬
잔잔한 음율이 곡이 시작을 알렸다.
“참나.”
박 전무는 생각보다 평범한 인트로에 콧방귀를 뀌었다.
어마어마한 곡을 만들 것처럼 큰소리 치더니.
─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야.
하나, 문범재의 노래가 시작된 순간 홀린 듯 이어폰을 더욱 귓구멍 안으로 쑤셔 넣었다.
─ 작은 발바닥을 손안에 쥐었던 때부터였던 것 같아.
오히려 복잡스러운 사운드가 섞이질 않으니, 문범재의 목소리에 힘이 실어지는 느낌이었다.
─ 이 작은 발이 험난한 세상을 걸어 나가야 할 테니.
박 전무는 그제야 사운드보다 가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 더 독해져야만 해. 나는 꼭 그래야만 해.
자신이 홀로 중얼거리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같은 가사들이, 콕콕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 스며들어 온다.
─ 내가 앞서 걸어야만 해.
이내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곡의 분위기를 전환 시키고.
─ Villain daddy, 혹시 내가 미울 때면 얼마든 미워해도 돼.
문범재는 과감하게 자신의 보컬을 폭발시켰다.
─ 나는 그것마저도 감수할 테니까.
하나, 박 전무에게 그런 건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 네가 아프지 않고, 네가 울지 않을 수 있다면.
그저 책상 위에 덮어놓은 가족사진을 다시 올려 세우고 싶단 생각만이 머리를 잠식할 뿐이었다.
─ 나는 얼마든지 악역을 자처할 테니까.
가족만을 알고 살아온 박 전무였지 않은가.
그래, 가족….
사진을 덮어놓은 순간부터 이미 가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마음은 변질된 상태였다.
그저.
버틴 거였다. 일말의 책임감 하나로 자신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버텨 낸 것뿐이었다.
안 그러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자음과 모음으로 뿔뿔이 찢어져 조각나 버릴 것 같아서.
‘더 많이 말해 줄걸.’
아빠는 너희를 무척 사랑한다고.
─ 미안했다고 이제야 말해 본다.
나조차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 인색했다고.
─ 처음이라, 그랬어.
혹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꽉 안고 말해 주고 싶었다. 아빠는 너희를 위해 존재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혹시 한 번만 다시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를 안아 줄 수 있겠느냐고.
그러나.
음악 하나로 이런 제 마음이 전해질 리가 만무했다.
단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러라고 했던 거였다.
“하아….”
박 전무가 곡이 끝난 줄 알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려던 찰나.
─ 잠든 딸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별안간 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 아이를 위해선 대신 죽어줄 수도 있겠다.
이걸 그대로 곡에 쓸 줄은 정말 몰랐는데….
─ 잠든 딸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봤던 것 같아.
설마, 녀석이 자식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게 이걸 말한 거였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제 딸이 이 곡을, 제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쩌면.
예전처럼 활기차고 귀여운 목소리로 자신을 “아빠”라 부르며 전화해 오지 않을까?
─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사랑이더라고.
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날 것처럼, 눈동자 뒤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나.
기대는 늘 실망감이라는 놈의 몸집을 키워 낼 뿐이었다.
쪼로로록-.
박 전무는 술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기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다짐 같은 행위였다.
결국.
박 전무는 곡이 끝남과 동시에 책상 위로 엎드렸다.
이내.
그의 바다처럼 드넓은 어깨가 잘게 흔들렸고.
“흡, 흐읍….”
휴대폰 화면 위로는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도.
박 전무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할 터였다.
그저.
홀로 술에 의지해 버텨 내겠지.
박 전무는, 아니, 박태묵은….
누구보다 강한 아빠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