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4화(214/482)
현승이 만든 ‘Villain daddy’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잘 되고 있었다.
혹 구체적으로 얼마나 잘 되었냐고 묻는다면….
여태까지 현승이 발매한 모든 곡을 통틀어 가장 단시간 안에 가장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 Villain daddy, 발매 30시간 만에 전 음원 플랫폼 1위! ] [ 작곡가 HS와 문범재, 다시 한번 가요계 휩쓸어… ]이효은은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Villain daddy’를 보고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현승이 진짜 멋지다.”
우연히 현승이 HS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시림 ‘민현승’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단 작곡가 ‘HS’가 걸어온 모든 길을 뒤쫓았다.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답게 너무 멋진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간에서는 몇만 년에 한 번 나올법한 천재라고 표현한다지만.
감히 판단해 보건대, 현승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냥 음악에 미친 독종이었다.
예술은 살짝 미친 사람이 하는 거라더니, 이효은은 얼마 전 현승과 녹음을 진행하면서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멋져….’
이효은은 서류들을 손에 꼭 쥔 채 딱딱한 바닥에 몸을 뉘었다.
LS 엔터테인먼트 전속 아티스트 표준 계약서와 전세 계약서였다.
팔락-.
낡은 창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서류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손에 힘을 풀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것처럼.
그래, 마치 꿈처럼.
아아.
꿈 맞지.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얻게 된 것도 모자라, LS 엔터 소속이라니, 이토록 꿈같은 일이 또 어딨겠는가.
이효은의 인생에서 ‘꿈’이란 정말 잘 때나 꿀 수 있는 ‘꿈’이 전부였다.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에서 엄마와 함께 죽지 못해 살아가리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하나.
이제는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 번호를 차단하고, 꿈을 찾아 홀로서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똑, 똑, 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겨 왔다.
“아가씨-.”
“아, 네!”
현재 이효은이 머무는 여관의 주인인 할머니였다.
“혹시 달방 더 연장하는가 확인차 물으러 왔어.”
이효은이 그 말에 고민하기도 잠시.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 내일 뺄게요.”
“어디 갈 곳이 생긴 거야?”
“네, 집 구했어요.”
“아이고, 잘됐네!”
달방 주인은 제 두 손을 꼬옥 쥔 채로 방긋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젊은 처녀가 이런 곳에서 지낸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주 잘됐네, 잘됐어!”
장사하시는 분이 이래도 되나. 자신이 나가는 게 이렇게나 기뻐할 일인가?
“감사합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달방 주인은 마치 손녀가 대학 합격 소식이라도 들은 것마냥 밝게 웃으며 축하를 전하고는 돌아가셨다.
이 모든 건-.
현승 덕분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 슬슬 짐을 챙겨봐야겠지.
─ ♬ ♬ ♬
이효은은 이어폰을 꽂은 채, 자신이 만든 ‘엣치스 모음곡’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켰다.
─ ♬ ♬ ♬
하나 같이 모두 들어보면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이야기를 전하는 곡들이라 몇 번을 거듭하여 듣더라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
곡들이 주인을 닮아 모두 좋았다.
사심을 담은 마음에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팬의 마음으로 하는 얘기였다.
사실 이효은은 현승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낸 채였다.
물론.
마음 정리라는 게 쉽게 될 일은 나지만, 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에겐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부터.
별안간 건넨 OST 참여라는 기회와 가수가 하고 싶다는 자신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계약서에 주소를 쓰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자신이 달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들키고야 말았고.
현승은 저작권료가 발생하기 전, 일종의 계약금을 명목으로 집을 얻으라며, 태어나 본 적도 없는 금액을 지급해 주었다.
덕분에….
반지하도 아니고, 월세도 아니고, 엄마가 있는 집도 아닌.
나만의 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마냥 좋지는 않았다. 신세가 쌓일수록, 현승과 자신 사이에 거리는 멀어져만 가는 기분이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니.
이효은은 현승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현승이, 자신을 여자로 본 적도, 볼 일도 없을 테니까.
─ ♬ ♬ ♬
몇 안 되는 짐들을 다 챙기고 나니, 때마침 이어폰에서는 ‘Villain dadd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들어도….
참 좋은 곡이다. 아니, 참 좋은 가사였다.
─ Villain daddy, 혹시 내가 미울 때면 얼마든 미워해도 돼.
빌런 대디라고 하지만, 어쩐지 이효은의 귀에는 슈퍼 대디의 다짐처럼 들렸다.
무엇보다.
아웃트로에 삽입된 이름 모를 누군가의 뜨거운 고백.
─ 잠든 딸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아이를 위해선 대신 죽어줄 수도 있겠다.
잠든 딸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봤던 것 같아.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사랑이더라고.
분명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제 아빠가 자신에게 전해 주는 말 같아서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아빠가 있었다면-.’
이효은은 그런 덧없는 생각을 이어 나가기도 잠시.
“아, 아빠아….”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보고 싶어….”
요즘 이 곡은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가슴을 울리는 곡이라 불린다던데.
왜.
아버지도 없는 제 가슴을 울리는 건지 모르겠다.
* * *
요즘 사내는, 특히 2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이 만든 Villain daddy가 초대박도 아니고 초초초대박을 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커피와 간식 대령이오.”
약속한 대로 김 아빠는 요즘 매일 같이 시간을 내어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커피와 간식을 사 들고 찾아왔는데….
“더 먹고 싶은 건 없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기색보단, 어쩐지 신나 보였다.
“좀 쉬엄쉬엄해, 동쪽아.”
이내 제 어깨를 살살 주무르며 나긋하게 건네오는 김 아빠의 한마디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왜 이러세요.”
“응? 뭐가-?”
백화점 데스크에서나 볼법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기야.
이젠 그도 매니지먼트 전체를 총괄하는 본부장이지 않은가?
어찌 보면.
일 년 목표 매출의 절반을 채워 줄 곡이 나온 셈이니, 지금 그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되는 바였다.
하나.
현승은 마냥 기쁘지 않았다. 박 전무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박 전무의 마음이 자녀에게 닿기를 바라며 만든 곡이었다.
제 뜻대로 잘 전달되었는지 알기 전까지는 아마 속 편히 기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이미 전달되었다고 하더라도, 박 전무가 쪼르르 달려와 자신에게 말해주진 않겠지만.
‘조만간 한번 찾아뵈어야겠군.’
현승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마스터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던 찰나였다.
“현승아.”
김 아빠는 제 스케줄러와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물어왔다.
“우리 오랜만에 점심 먹으러 같이 갈까?”
하나, 현승은 아주 단호히 거절했다.
“아니요.”
“왜?”
“바빠요.”
“또 뭐 하는데!”
김 아빠가 볼멘소리로 되묻자, 현승은 제 작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이효은의 표준 계약서 복사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데려와 놓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이제 곧 드라마 방영 시작하면 그때 홍보 자료 같이 돌리면서 데뷔하면 되잖아.”
“드라마 OST가 데뷔곡인 것보단, 그래도 이름 내걸고 데뷔시켜줘야죠. 제가 데려왔는데.”
그러고는 이내 콘솔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내려치며 덧붙였다.
“좀 떠오르는 악상도 있고요.”
현승은 그 말을 끝으로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치사해. 간다, 가!”
그러나 어째선지 김 아빠의 표정은 말과 달리, 서운한 기색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되레 기대감 비스름한 게 묻어난 눈동자로 현승이 찍어 둔 코드들 훑어보기 바빴다.
“아주, 작업 실컷 해라!”
이죽거리는 말투와 상반되는 손길로 현승의 등판을 톡톡 다독여 주고 있을 뿐이었다.
* * *
박 전무는 길어지는 회의 속에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라는 컨셉에 맞게, 컨설팅 마스터와 함께 준비를 끝마친 상황입니다.”
모든 보고사항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울린 진동과 함께 찍힌 부재중 전화 때문이었다.
[ 내 보물 님으로부터 부재중 1통 ]살짝 꺼내어 본 액정에는 역시나 문자도, 까똑도 없이 부재중 한 통만 찍혀 있었다.
잘못 건 걸까?
근 2~3년간은 통화 한 번 나눠본 적 없었다. 보통 애 엄마를 통해, 간혹 애들의 소식을 접해 듣기만 했었으니까.
다시 걸어 봐야 하려나?
박 전무가 테이블 아래로 시선을 고정한 채,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던 찰나였다.
“박 전무님?”
“어?”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신데.”
“별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럼, 계속 브리핑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박 전무는 “잠시만.”하고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우리 회의 내일마저 이어서 하는 걸로 하지.”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서로 눈치를 살펴대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박 전무를 필두로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그의 마음에 드는 안건이 나올 때까지 무한 브리핑을 진행해야만 했는데.
별안간.
내일마저 이어서 하자고 하니, 혹 마음에 드는 안건이 없으니 다시 준비해 오라는 말을 돌려서 전하는 건가 싶어서였다.
“그럼, 이만 일어나지.”
하나, 박 전무는 그런 직원들의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내, 내일 뵙겠습니다!”
이내 직원들이 따라 일어나 전하는 인사를 등진 채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터벅, 터벅.
걸음의 보폭이 점차 넓어지고.
결국.
복도를 내달리듯 걸음을 옮겨, 전무실에 도착했다.
“후우-.”
박 전무는 참아온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거친 심장 소리가 빨리 걸어서인지, 아니면 긴장된 마음 때문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박 전무의 엄지손가락은 ‘전화 걸기’라는 버튼 위로 향했다.
그래.
혹시 녀석이 만든 곡을 듣고 전화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화 한 통, 목소리 한 번 정도는 들어도 되지 않을까.
잠깐.
지금 거기 시작이 몇 시지? 지금 여기가 낮 1시니까, 거긴 자정 정도 되었으려나.
너무 늦었겠지….
박 전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너무 늦어 버렸어.
한참 성장기인 딸아이의 밤잠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던 찰나.
지이이이잉-!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 위로는 [ 내 보물 ]이라는 글씨와 함께 딸아이가 방긋 웃고 있는 사진이 떠올랐다.
꿀꺽.
박 전무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아마 대표 앞에서도 이토록 긴장한 적은 없을 터였다.
“큼, 흠.”
박 전무는 얼른 목을 가다듬으며, 휴대폰을 귓가 쪽으로 가져갔다.
이러다가 또 금방 끊겨버리면 다시 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최대한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내.
조용했던 수화기 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 아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딸아이의 목소리였다.
“응, 거기 밤늦은 시간 아니야? 왜 안 자고.”
이게 아닌데.
맘과는 달리, 으레 아빠들처럼 잔소리가 먼저 앞섰다.
─ 잠이 안 와서 전화했어.
하나, 딸은 늘 전화하던 사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 아빠, 밥은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 밥 잘 챙겨 먹어야 해.
“응, 딸도 편식하지 말고.”
제 상상과는 다르게 정말 평범한 부녀지간 같은 통화 내용이 오갔다. 늘 통화로 안부를 물어왔던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금세 또 정적이 흘렀다. 괜히 먼저 입을 열면 ‘공부 열심히 해라’ 같은 진부한 잔소리나 늘어놓을 것 같아서 침묵을 택했다.
─ 아빠.
침묵을 먼저 깬 건, 딸아이였다.
─ 엄마가 그랬는데, 사실 아빠가 자꾸 엄마를 때려서 외국으로 우리 데리고 도망쳐 온 거래.
“뭐?”
─ 그리고 이제는 다른 여자 생겨서 생활비도 안 보내주고 우리도 다 잊은 채 잘살고 있으니까 아빠 찾지 말랬어.
“그, 그게 무슨….”
─ 어려서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까 아닌 것 같아서 전화했어.
박 전무는 황당해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자신은 가족에게 폭력은커녕, 폭언조차도 해본 적 없었다.
하물며.
진심으로 다른 여자를 만난 적도, 생활비를 안 보낸 적도, 핏덩이 같은 자식들을 잊어 본 적도 없었다.
자식을 잊고 살아갈 부모가, 세상천지 어딨다고.
하나.
크나큰 배신에 대한 분노보단 이성이 앞섰다.
“미안해, 딸. 아빠가 그랬어.”
제 웃음기 섞인 말에도,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딸이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르지만.
“근데 딸을 잊고 산 적은 없었어.”
이 말 만큼은 꼭 해 주고 싶었다.
“생활비는 이번 달부터 다시 보낼 거야.”
전부를 걸고,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여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잘 자고,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비록 제 아내가 자신에겐 실망을 안겨 주었다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여전히 존경스러운 엄마이길 바랐다.
“딸, 아빠 회의 들어가야 해서 나중에 또 통화하자.”
이내.
“잘 자고, 사랑한다.”
그 말을 끝으로 먼저 전화를 끝냈다.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는 끊기지 않은 채였다.
“하아….”
박 전무는 이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들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자신을 미워해도 상관없으니까.
엄마를 존경할 줄 아는 딸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