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5화(215/482)
현승은 별안간 안지호가 굳이 굳이 저녁을 사겠다고 우겨 대는 통에 작업을 하다 말고 사옥을 나서야 했다.
“정말 귀찮게.”
하나, 약속한 한정식집이 가까워질수록 배꼽은 알림 시계처럼 꼬르륵 소리를 냈다.
‘이왕 간 거 많이 먹어야지.’
주차를 끝낸 뒤 한정식집으로 발을 들여놓자 맛있는 냄새가 자신을 반겼다.
“작곡가님!”
예약된 룸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안지호가 자신을 반겼다.
덩치가 산만 한 놈이 저렇게나 반겨주니, 영락없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귀엽다거나, 반갑다거나 하진 않았다.
“딱 맞춰 오셨네요.”
안지호는 자신이 자리에 앉을 동안 과하리만큼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직접 의자까지 빼 주기에 이르렀다.
“너 뭐 잘못 먹었냐?”
부담을 느낀 현승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안지호는 순수한 얼굴로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요? 오실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기다렸는데요.”
“근데 왜 이렇게 나사 하나 빠진 애처럼 헤실헤실 거려.”
안지호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를 못 했는지 “제가요?”하고 되물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너가요.”
현승은 그런 안지호를 미심쩍은 눈으로 흘겨보고는 덧붙였다.
“갑자기 밥 사겠다고 나서질 않나, 설마 곡 달라고 이러는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구는 건데?”
안지호가 그 말에 입술만 달싹거리기도 잠시.
“감, 감사해서요.”
기어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오늘 안지호가 현승을 불러낸 이유는 드라마 첫 촬영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안지호는 현승이 부른 곡을 들으며 연기를 연습했고, 그 덕분에 첫 촬영부터 잡혀 있던 감정 씬을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현승이 알 리가 만무했다. 안지호 또한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아마.
이 얘기를 전한다면, 현승은 징그럽다며 온갖 인상을 쓴 채로 자신을 바라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뭔 소리야?”
역시나 현승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어 왔다.
“그냥 이런저런 일들로 감사해서 꼭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었어요.”
제 대답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진 않았지만, 입만큼은 만족스럽다는 듯 에피타이저로 나온 스프를 들이켜고 있었다.
‘잘 드시니 다행이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안지호는 불현 듯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딱!”치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저희 제작 발표회 뒷풀이하는데, 작곡가님도 오실래요?”
현승은 입가에 묻은 스프를 닦아 내고는 즉답했다.
“절대 안 가.”
“왜요?”
“관계자들 다 올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렇죠?”
현승이 기억을 곱씹듯 미간을 찡그리기도 잠시.
“거기 집요하고 시끄러운 여자 하나 있어서 안 가.”
안 그래도 그 여자로부터(붉은 실 담당자) 이미 제작 발표회 뒷풀이 초대는 받은 채였다.
안 간다고 몇 번을 거절했음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안부 문자가 오는 통에 죽을 맛이었다.
문자뿐이랴?
전화도 죽어라 해 대는 통에 차단을 할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미.
드라마 끝나면 음악 감독과 함께 식사하자고 해 놓은 채인데, 그건 어떻게 빠져나갈지 벌써 고민이었다.
“시끄러운 여자가 누구예요?”
안지호의 물음과 동시에, 룸 너머에서 여자가 통화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금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정신 사납고 아저씨 같은 여자 하나 있….”
이내 말끝을 흐린 현승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갔다.
그래.
저 목소리다. 얼굴은 모르지만, 저 목소리가 확실했다.
“작곡가님?”
현승은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제 입에 가져다 대며 “쉿.”하고 조용히 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만약.
문턱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붉은 실 담당자가 맞는다면, 안지호의 목소리를 듣고 눈치채는 순간 아는 척해 올 게 분명했다.
그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야, 나가자.”
현승이 먹던 수저를 내려놓은 채 말했다.
“지금요-?”
“응, 당장.”
“아직 코스 한참 남았는데요?”
“그냥 나가자니까?”
안지호는 무어라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먹는 것에 진심인 현승이 밥을 먹다 말고 나가자는 걸 보면,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곡가님이 이렇게 당황하시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절대 짓지 않을 것 같던, 당황한 표정으로 보아….
급한 일 수준이 아니라.
수습하기 힘든 대형 사고로 위험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럴 때 자신이 힘이 되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알게 모르게, 그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으니까.
“작곡가님.”
안지호는 도망치듯 차에 올라타려는 현승을 불러 세웠다.
“왜?”
낯간지러워서 말로 표현은 잘 못 하는 편이니,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나마 보답해야겠지.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도울 테니까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안지호는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눈빛을 빛내며 마지막 말을 첨언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꼭이요.”
다만.
돌아온 건….
“이젠 우는 거 대신, 폼 잡는 걸로 컨셉 바꾼 거야?”
다시금 차분해진 얼굴과 심드렁한 대답이었다.
“폼지호, 간다.”
역시.
그럼, 그렇지. 그에게 위기 따위는 없었다.
* * *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해가 뉘엿뉘엿 올라오는 이른 아침.
“다녀오겠습니다.
현승은 아버지 방문 앞에 대고 인사를 전한 뒤 집을 나섰다.
얼른 출근이나 해야지.
머릿속에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악상을 옮겨 담고 싶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뻥뻥 뚫린 도로를 내달리기도 잠시.
끼이이익-.
매끄럽게 주차 타워 안으로 들어선 현승은, 좋은 자리를 물색하고자 코너를 돌았다.
끼이이익-.
어릴 적 운전 게임에서 들을 법한 타이어 마찰음이 널찍한 내부를 채우며 울려 퍼졌다.
“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서 드리프트로 명당을 향하던 그때.
끼이이익-!
또 다른 코너에서 달려 나오던 차와 마주했다.
다행히도….
속력이 적었기에 접촉사고는 면할 수 있었다.
“음?”
다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상대편 차량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박 전무님?”
동시에 그도 상대 차주가 자신이라는 걸 발견했는지 문을 열고 나와서는 괜스레 호통을 쳐 댔다.
“야, 인마!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사고날 뻔했잖아!”
이젠 저런 모습이 마냥 싫게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의 이면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누가 봐도 제가 직진이고, 전무님이 튀어나온 거거든요?”
“이 쥐방울만 한 게, 운전에 대해서 뭘 안다고 훈수야?”
그 말에 현승이 발끈하듯 반박했다.
“제가 운전한 지 족히 십 년은….”
“뭐? 십 년?”
“아니요? 삼 년이라고 했는데요.”
이내 시치미를 뚝 떼고는 다른 말로 화제를 전환 시켰다.
“근데 왜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나오셨어요? 으레 전무 정도 되면 느지막이 출근하지 않나요.”
“내가 그런 전무였으면 여기까지 못 올라왔어. 나는 늘 이 시간에 나와서 운동하고 출근해.”
“이 꼭두새벽부터 아침이요?”
“그래, 사옥 내 있는 헬스장은 이 시간에 가야 사람이 없거든.”
“그럼, 전무님 삼대 몇?”
“오백은 기본으로 쳐야, 남자랄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무슨 보디빌더 준비하시는 줄 알겠어요. 안 무거우세요?”
“그까짓 게, 뭘 무거워.”
아무리 무거워 봐야, 들 때만 잠깐 무거운 법이기도 하고.
박 전무의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가난이라는 게 그랬고.
전무라는 게 그랬고.
가장이라는 게 그랬다.
특히.
아빠라는 이름이 무서울 정도로 무거웠다.
다만.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었다. 깔려 뭉개 죽는 한이 있어도 짊어지고 있어야만 하는….
아마.
제 앞에 서 있는 이 녀석도, 아버지가 되면 알게 될 터였다.
“역시 그 거대한 풍채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군요.”
그 말에 박 전무가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해야 해. 들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 테니까.”
현승이 입은 재킷의 깃을 무심히 툭툭 다듬어 주며 덧붙였다.
“그리고 남자라면 자고로 늘 옷가지가 흐트러짐이 없어야 해.”
이내 소리 없이 웃어 보였다. 그의 미소에 담긴 건 감사함이었다.
그래.
어찌 보면 딸에게마저 거부당한다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회피해 왔던 일인데.
저 녀석의 한마디에 힘을 얻어, 마주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박 전무님이시잖아요.”
박 전무는 현승이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젠 딸아이와 언제든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정말 잊어선 안 되겠지.
띠링-!
때마침 딸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 지금 한국은 아마 아침이겠지? good morning, villain daddy! 밥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자신이 곁에서 지켜 주지 못한 사이에 딸아이는 너무 부쩍 커 버린 채였다.
얼마나 컸는지….
이젠 제 거짓말 또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연락을 나눈 다음부터.
딸아이는 부쩍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는 연락을 자주 해 왔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분명.
딸아이를 위한, 그리고 가정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 여겼으나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아내와는 깔끔하게 협의 이혼을 하고, 딸아이는 자신이 데리고 오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어차피 곧 미국에서의 초등학교 과정도 끝이 나니, 졸업과 함께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뭐라더라?
더문을 실제로 보고 싶다던가? 좀 섭섭하기는 해도,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원한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딸아이와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언제든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우선은 그걸로 됐다.
멀어진 거리는 서서히 추억으로 메꿔 나가면 될 일이었다.
[ 딸도 밥 항상 잘 챙겨 먹고 조만간 아빠가 갈게 ]박 전무가 답장을 전하던 찰나였다.
“누군데 그렇게 웃으세요?”
현승의 물음에 박 전무는 표정을 고쳐 지으며 괜스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맨날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작업만 하지 말고, 운동 좀 해.”
그러고는 이내 언젠가 현승에게 크게 보답하겠노라 생각하며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빵-!
이윽고.
익살스럽게 웃으며 비키라는 듯 경적을 울렸다.
“자기 할 말만 하시고 가시네.”
현승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 보이고는 자신도 차에 올라탔다.
앞 유리창으로 비친 그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훨씬 편안해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아주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듯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