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6화(216/482)
박 전무와 헤어진 뒤,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이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빤히 들여다봤다.
‘운동 좀 해야 하나?’
살이 잘 안 찌고,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크게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골격이 작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해야 해. 들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 테니까.”
그에 말마따나 사람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몸이 허락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
자신조차 전생에서 공황장애를 겪었을 때는, 제일 쉽다고 생각했던 곡 작업조차 제 뜻대로 되지 않았었으니까.
지금이야….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되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몸이 건강해야 단단하게 버텨 낼 수 있겠지.
‘그까짓 거, 해 보지.’
현승은 조만간 그를 따라 헬스장에 가 보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일이 생긴 건지, 후기도 좀 들어야겠고.’
이내 현승이 콘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은 오늘의 일정대로 곡 작업이 먼저니까.
그에 앞서….
[ 시간 나실 적에 커피와 간단한 브런치 부탁드립니다. 늘 당신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김 아빠에게 룸서비스(?)를 공손하게 요청해 두었다.
villain daddy 아웃트로 구간에 삽입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박 전무’가 맞는지 확인받는 대신, 그는 약 한 달간 자신의 벨보이가 되어 주기로 했다.(*그런 적 없음)
“자아….”
현승은 이제 본격적으로 곡을 작업하기에 앞서 노트를 펼쳐 들었다. 요즘 부쩍 생긴 습관이었다.
그래.
돈이 되는 곡이라든가, 악기에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기 시작하며 생긴 습관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자 함이었다.
사락, 사락-.
현승은 자신만 알아볼 수 있게끔 대충 ‘이효은’이라고 휘갈겨 놓은 뒤, 예전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었는데.
지내다 보니, 흩어졌던 파편이 하나씩 모여드는 것처럼 떠올랐다.
“이효은.”
입으로 소리 내어 불러보니 썩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애초에 현승은 친하게 지냈다고 표현할 만한 동창이 없었다.
그럼에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내일까지는 꼭 제출해 줘야 해.”
“이동 수업 시간이야.”
“이거 부모님 사인 받아야 하는데.”
이효은은 자신의 단잠을 깨우는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늘 웃고, 늘 시끄럽고, 늘 오지랖을 부리고 다녔다.
‘오락부장이야, 뭐야.’
졸업식 날에도 인사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졸졸 쫓아와서 모른 척 무시했었다.
아는 척 해 봐야, 자신만 귀찮아질 게 뻔하니까.
그러다, 어떻게 되었더라?
뭔가 걔 엄마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한바탕 뒤가 시끄러워져 고개를 돌리니 서류 하나가 제 앞으로 팔락이며 떨어졌었지.
제 기억이 맞다면….
수시 합격자들에게 발부된 예치금 고지서였다.
그것도 실용음악학과.
오락부장에게 잘 어울리는 학과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
그때의 분위기라든가, 현재 이효은의 상황을 바라보았을 때 결국 대학은 못 간 모양이다.
아.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오락부장스러움은 잃지 않았다는 거였다.
아마.
데뷔만 제대로 시켜 놓는다면, 어떻게든 혼자 잘 살아남을 케이스다.
“흠….”
근데 어떤 사정이 있기에, 달방에서 지내는 걸까.
물론.
지금이야 계약금으로 집을 구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여자애가 홀로 여관방을 전전하며 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만약 그 사정을 알게 되면 머릿속에 점처럼 찍혀 있는 수많은 악상을 이어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픈 구석을 괜히 들쑤시는 꼴이려나?’
그러고 보면.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남 일에 관심이 있었던 거지? 이상하네.
똑, 똑, 똑-.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문 너머에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요청하신 커피와 간식 가지고 왔습니다.”
삼중으로 굳게 잠긴 문을 열어 주니, 벨보이(*김우현)가 양손 가득 커피와 간식을 든 채로 서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자신의 오지랖이 시작된 건, 김 아빠부터였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집은 들어간 거야? 또 작업실에서 밤샌 건 아니지?”
현승은 걱정으로 뒤엉킨 김우현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누가 보면 정말 아빠인 줄 알겠네.
“집에서 자고 좀 일찍 일어나서 나온 거예요. 본부장님은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처리할 일도 많고, 이제 효은이도 식구인데 이사할 때 가 보려고. 그런 날 어른 한 명은 있어야지.”
오지랖도 옮는다고, 아마 자신도 모르는 새 옮은 모양이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김우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너도?”하며 되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너 효은이 좋아해?”
“저는 예쁜 여자 좋아해요.”
“이 외모지상주의 같은 놈.”
하기야, 김 아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런 오지랖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나.
지금은 이런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다. 가수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으니, 제대로 한 번 만들어 줘야겠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수로.
“진짜 같이 갈 거야?”
그때, 김우현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어왔고.
“예.”
현승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외투를 챙겨 들며 덧붙였다.
“제가 데려온 악기잖아요.”
오지랖은 성미와 맞지 않았지만….
“그까짓 게, 뭘 무거워.”
박 전무의 말을 빌려 오지랖 부리는 것쯤이야.
그까짓 게, 뭐라고.
한 번 부려 보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며 겪을 일에 비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 * *
이효은은 박스 하나를 낑낑거리며, 이사할 집을 향했다.
“어후….”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외투 안으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구나.’
운전도 할 줄 모를뿐더러, 트럭을 빌릴 만큼의 짐도 아니었기에 직접 두 다리와 두 팔로 이동하기로 했다지만….
“어후.”
이러다간 박스보다 제 어깨가 먼저 빠질 지경이다.
“잠시만 쉬었다 가야겠다.”
이내 이효은은 이상한 기합과 함께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벤치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엄마아-! 아빠아-!”
그때 어디선가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휙” 돌리니,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제 몸보다 큰 패딩을 입은 채 뒤뚱거리며 뛰어 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여자애를 따라 두 손을 맞잡고 걸어오는 젊은 부부도 보였다.
“영은아, 그러다 넘어질라.”
“그래, 엄마 아빠랑 같이 걸어가야지.”
부모님의 만류에도 여자애는 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쫄쫄 뛰어나갔다.
“나 잡아 봐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 위로는 걱정과 미소가 공존하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제 부모님도 저런 표정을 지어 주셨던 것 같다.
행복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으쌰.”
이효은은 멀어지는 세 가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박스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적어도 지금은 추억에 잠겨 있을 때도, 자신을 버리고 학대한 부모님을 원망할 때도 아니다.
이제야….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 쥐던 가족이란 그림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니까.
그래.
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괴롭히긴 해도, 버리지는 않았던 엄마를.
알코올 중독으로 아픈 엄마의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러니까.
하나뿐인 가족을 버린 독한 년이 되기로 했으니까, 더욱더 독해져야만 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이효은은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 내린 뒤,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저 멀리 이사 갈 집이 보이기 시작한 찰나였다.
빵-!
어디선가 울린 크락션 소리에 흠짓 놀라며 고개를 두리번 거리자, SUV 한 대가 서 있었다.
머지않아.
운전석 창문이 “지잉”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너 혼자 뭐하냐?”
현승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 채 물어왔다.
“동네 사람들 기선 제압하려고 힘자랑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야?”
“뭐어-?”
“그것도 아니면 박스 들고 왜 쿵쿵 거리면서 걸어 와?”
“딱 보면 몰라? 이삿짐이잖아.”
이내 차에서 내린 현승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박스를 대신 들어주며 말했다.
“아니, 누가 이삿짐을 이렇게 무식하게 도보로 옮기냐고.”
“짐이 이것뿐이기도 하고, 어차피 안 멀어서….”
“그럼, 나나 본부장님한테 도와 달라고 말을 하면 되잖아. 아니면 택시라도 타던가.”
이효은은 이상하게 현승의 다그침에 눈물이 날 것처럼 코끝이 찡하게 울려왔다.
무서워서도 아니고, 이런 걸로 혼나고 있는 게 창피해서도 아니다.
도와 달라고 말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사무치도록 감격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 건지.
툭-.
고개를 떨구자, 눈물 한 방울이 사정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야, 우냐?”
현승이 당황했는지, 어설프게 손을 뻗어 오며 물었고.
“야, 너 왜 애를 울리고 그래?”
조수석에 타 있던 김우현 본부장도 따라 내려서는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효은아, 저 녀석이 말은 저렇게 해도 나쁜 놈은 아니야.”
“흡, 끄윽….”
“현승이가 지독하게 사회성이 없는 애라는 거 잘 알지?”
그 말에 현승이 눈썹을 꿈틀대며, 물어왔다.
“본부장님, 그게 무슨 의미죠?”
“아니, 우선 애부터 달래자는 거지.”
“지독하게 사회성이 없다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아…?”
“돌아가실 때 알아서 걸어가세요.”
“야, 너 치사하게 그럴래?”
“걷는 거 싫으면 택시 타시던가요.”
이효은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풉.”
그 웃음 덕분에 둘의 다툼은 잠시 일단락되었다.
“너 울다 웃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현승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짐 별로 안 되니까, 얼른 정리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응, 밥이나 먹으면서 너 데뷔 곡에 대해 얘기 좀 해야지.”
“데뷔곡? 드라마 OST 말하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그건 그냥 프로젝트 참여곡이고, 너만의 데뷔곡 말이야.”
그 말에 이효은이 제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꺅!”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말이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이야?”
“응.”
“진짜 나한테 곡을 준다고?”
현승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대신 네 이야기를 좀 들려줄래.”
이효은은 그 물음에 갸웃거렸다. 내 이야기라니? 무슨 얘기를 말하는 거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자, 현승이 뒷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덧붙였다.
“예전에 못 본 척해 줬던 일에 대해 말이야.”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젠 못 본 척할 수가 없을 것 같네.”
현승은 돌려 말하는 걸 잘 못하는 타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