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7화(217/482)
이효은의 이사는 아주 순조롭게 끝이 났다.
어차피 기본적인 옵션은 이미 다 있는 빌라이기도 했거니와, 짐도 박스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정말이지.
여자애 집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삭막했다.
“흠.”
현승은 무언가 화사한 가구 하나라도 시켜 놔 줘야겠다 생각하며 이효은을 데리고 자주 찾는 식당으로 향했다.
달그락, 달그락-.
다들 배가 많이 고팠는지….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을 해치우기 급급했고.
메인 요리까지 나오고 나니, 어느 정도 슬슬 배가 불러 오기 시작했다.
슥-.
그제야 현승은 고개를 돌려, 제 옆자리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김 아빠를 향해 물었다.
“근데 오늘 꼭 눈치 없이 끼셔야겠어요?”
“뭐, 너 효은이한테 오늘 프로포즈할 거야?”
그 말에 이효은은 먹던 스테이크를 도로 뱉어 낼 뻔했다.
하나.
눈치가 없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바로 현승 아니겠는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현승은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완강하고 단호히 즉답했다.
“쟤는 그저 친구이자, 새로운 악기라니까요.”
“그런 거라면 안 빠져도 되잖아?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부쩍 느끼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김 아빠의 사내 이미지와 자신이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달라, 가끔 괴리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아마.
자신과의 관계가 하도 편한 탓에, 본인도 모르게 속내를 다 비추는 것일지도 모르지.
“본부장님, 정말 음식 때문에 따라오신 거 맞아요?”
“물론이지.”
“진짜 맞아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 그럼!”
이내 다음 코스 요리를 내어 주기 위해 들어온 직원을 흘끔 살펴보는 김 아빠를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투명하게 다 비출까.
슥-.
현승은 그 여자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살폈다.
강설아.
자신이 손수를 예약하고 찾아올 적이면, 자주 담당으로 배정되던 직원이다.
‘아무래도 저 여자가 마음에 드시는 것 같은데….’
청순한 얼굴에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
‘저런 스타일 좋아하시는구나.’
남자답게 생겨서, 왜 여태 모쏠인가 했더니(*모쏠아님) 눈이 높은 모양이었다.
‘나보고 외모지상주의라고 뭐라 하더니….’
이윽고.
“저기요.”
현승은 요리를 올려 두고 나가려는 직원을 불러 세웠다.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실까요?”
“혹시 남자친구 있으신가요?”
그 물음에 직원은 얼굴을 붉히며 “예?”하고 되물었다.
“만나는 남성분이 있으신지 해서요.”
집요하게 되묻자, 이내 직원이 주억이며 답했다.
“네, 네에….”
“아쉽게 됐네요. 그럼, 후식 기대하겠습니다.”
현승 또한 가볍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전하자, 직원은 황급히 룸을 나가 버렸다.
한편.
현승을 제외한 두 사람은 충격에 빠진 채였다.
이효은은….
“켁, 콜록, 콜록….”
여자를 돌로 아는 것마냥 굴던 현승이 별안간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애인 여부를 물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물을 마시다 말고 사레가 걸렸고.
“이, 이럴 수가….”
김우현은 현승의 돌발 행동보다는 새롭게 마음에 들이기 시작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먹던 스테이크를 떨어트렸다.
툭-.
이내 김우현은 오늘 여기를 따라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쓰린 속을 찬물로 달래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현승은 그런 김우현의 넓은 등판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자, 본부장님의 사랑 이야기가 끝났으니….”
그러고는 이내 사례로 힘겨워하는 이효은에게 냅킨을 건네며 덧붙였다.
“이제 네 얘기 좀 들어 볼까?”
.
.
.
마지막 후식으로 나온 유자 샤베트가 녹아, 끈적하게 흘러내릴 때까지 아무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저.
이효은가 떨리는 제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뱉는 말들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 그냥 이게 다야.”
처음에는 얘기할 게 없다고 잡아떼는 바람에 사정을 알고 있어야 사 측에서 도와줄 수 있다고 설득했더니, 조심스레 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효은아, 우선 물 좀 마셔.”
김우현은 그런 이효은의 안색을 살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잔에 물을 가득 따라 주었다.
하기야.
이런 얘기를 듣고, 어떤 누구라도 쉽게 입을 열 수는 없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효은의 입에서 나온 가족사는 자신의 가족 그리고 만나온 가족과는 또 다른 비극적 서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효은이 아주 어릴 적….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 또한 사업을 하셔서 무척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만큼 부모님은 바빴지만, 누구보다 다정했기에 무척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하나.
어머니의 사업이 급격히 망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끈끈하게 묶여 있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무지 복구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빚을 지게 되며,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가까스로 친척의 도움으로 반지하 집을 얻었다고.
그러나.
그건 불행의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자포자기한 엄마는 매일 같이 술을 입에 대셨고, 머지않아 그 술병은 아빠를 향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없이 아빠와 둘만 집에 있게 된 날.
아빠는 말없이 이효은을 꼬옥 안아서 재워 주었고.
눈을 뜨니….
곁에 누워 있던 아빠는 홀연히 사라진 채였다고 했다.
그날 이후….
엄마와 이효은만 남은 집에는 늘 고성이 들려오고, 물건이 날아다녔다고 한다.
술을 안 마신 상태의 엄마는 멍했고,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이효은은 속으로 엄마를 ‘아픈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픈 사람이니까.
아프니까.
엄마는 아프니까.
그 어린 여자애가 엄마의 폭언과 폭력을 견뎌 내며, 속으로 이 말들을 계속해서 되뇌였단다.
아픈 엄마를 경찰에 구속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효은에게는 다른 도피처도 없었으니까.
끝내.
이효은은 자신이 엄마를 버렸다며, 남들이 자신을 욕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절규하듯 내뱉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현승은 고개를 내저었다. 분노를 느꼈다. 세상에 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다지만.
이건 가족이란 이름으로, 벗어날 수 없는 덫을 쳐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적어도.
현승에게 있어선, 지금 이효은이 가족이라 칭하는 관계는 가족이 아니었다.
“야.”
제 부름에 이효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밝기만 한 줄 알았던 얼굴이, 집을 잃은 강아지마냥 애처롭다.
“너 이런 얘기 남한테 해 본 적 없지?”
“응….”
“그럼, 네 이야기를 노래로 해 보는 건 어때?”
“뭐?”
이효은의 안색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달랑 두 명에게 얘기하는 것조차 힘에 겨웠는데, 이런 얘기를 대중들에게 하라니.
“꼭 그래야만 할까?”
이효은이 그건 아니라는 뉘앙스로 되물었다.
하나.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니라,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정말 네가 엄마를 버린 거라고 생각해?”
“어…?”
“네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현승은 입매를 꾹 다문 이효은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내가 남 가정사에 왈가왈부할 건 아니라지만….”
김우현이 이효은의 눈치를 살피며 제 옆구리를 쿡 쑤셔 왔지만….
“어딘가 너처럼 생각할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하니까 속이 답답해져서 말이야.”
현승은 얘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 얘기를 구구절절하라는 게 아니라, 너처럼 미련하게 굴지 말라고 얘기하라는 거야.”
그 말에 이효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래.
비단 자신에게만 국한된 비극적 서사는 아닐 터였다.
가정폭력 신고 건수에 대한 자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건….
제2의 이효은이, 제3의 이효은이 어딘가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을거라는 얘기였다.
그래.
가족이라 하여, 눈과 귀를 닫은 채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살아가선 안 되지 않겠나?
그 생각까지 치닫자….
이효은은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 다짐했다.
“나 해 볼게.”
이내 심지를 단단하게 굳힌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 해 보고 싶어.”
김우현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뜨거운 자갈을 삼킨 듯 속이 달궈졌다.
‘금동이 녀석….’
오늘 구태여 따라나선다고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과연….
‘이효은의 이야기를 어떤 곡으로 만들어 낼까?’
알 수 없는 기대와 더불어 웅장함이 온몸을 휘감던 찰나였다.
톡톡.
현승이 제 입가를 가린 채, 아주 작게 속삭여 왔다.
“저 녀석이 예전부터 오지랖이 넓었거든요. 역시 이렇게 말하면 한다고 할 줄 알았어요.”
김우현은 별안간 자갈이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 * *
박 전무는 요즘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요즘 부쩍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절해졌달까?
“안녕하세요, 전무님-!”
당연히 전무인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비위를 맞춰 주는 편이었다고는 하지만….
“오늘도 힘내시고요!”
뭔가 자신을 대하는 표정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 같으면…
최대한 자신을 피해 다니기 일쑤에, 어쩌다 맞닥뜨리면 억지로 치켜올린 입꼬리가 경련 날 듯 파르르 떨리고.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즉시, 표정을 굳히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즐거운 아침입니다!”
저 멀리서부터 웃으며 달려와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니겠는가?
“오늘도 너무 멋지십니다!”
하물며, 매니지먼트 2팀 녀석들마저 자신을 마주치면 방긋 웃으며 엄지까지 올려 보인다.
“쓰읍.”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잠시 머리나 식힐 겸 옥상에 올라가야겠다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저기, 전무님이 빌런 대디잖아!”
복도 저편에서 자신을 두고 떠드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 그 노래 마지막에 들리는 목소리?”
“응! 맞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셔!”
“와, 이미지랑 달리 엄청 딸바보이신가 봐.”
아무래도.
현승이 만든 Villain daddy 속 목소리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사내에 퍼진 모양이었다.
‘젠장….’
왠지 모르게 창피함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현재 ‘Villain daddy’는 ‘아빠 챌린지’라는 릴스가 유행하면서 인기는 사그라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고.
[ 아니 Villain daddy 마지막에 삽입된 목소리 주인공 대체 누구임? 문범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던데? ]↳ 딱 들어도 문범재가 아니잖아;
↳ 혹시 HS 본인 아님?
↳ 윗댓 HS 목소리 모르시져;
↳ 그럼 HS 아빠 아님?
↳ 윗댓 HS 성별 모르시져;
대중들은 아웃트로에 삽입된 목소리가 대체 누구냐며 궁금해했다.
[ 내 생각에는 마지막에 삽입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 곡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아닐까? 한마디로 진정한 빌런대디인 거지.. ]↳ 그렇다면 찐이 보여주는 아빠 챌린지 기대해 봅니다.
↳ 이거 보고 계신가요 대디? 함 시원하게 갈겨주시죠.
↳ 이름 모를 대디,, 우리들의 빌런대디가 되어주세요,,
심지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직접 아빠 챌린지에 응해 주기를 바란다는 글도 종종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사실.
녀석 덕분에 망설여 왔던 벽을 허물고,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고, 딸을 데려올 수 있게 되었으니 곡 홍보차 한 번 해 줄까?
-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 보긴 했었다.
하나.
그런 짓을 했다간, 창피함에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다.
띠링-!
그때 딸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아빠, 내가 동생한테 잘 설명하고 같이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 엄마한테도 우리 의사 확실하게 밝혔고! 엄마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제 혼자 밥 먹지 말아요! ]박 전무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문자를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이 얼마나 기특한가?
아내가 아무리 밉고 잘못했더라도, 아이들을 낳아 준 엄마였기에 자식 둘을 다 빼앗아 오는 건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국에 아들을 홀로 남겨 놓기도 걱정되었었는데, 딸이 제 동생까지 챙겨서 데리고 온다니….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누구 딸인데!
하….
핏덩이 같은 두 자식을 혼자 키워 내려면 앞으로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는걸.
스윽-.
문자창을 나가니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커뮤글이 떠올랐다.
[ 내 생각에는 마지막에 삽입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 곡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아닐까? 한마디로 진정한 빌런대디인 거지.. ]↳ 그렇다면 찐이 보여주는 아빠 챌린지 기대해 봅니다.
↳ 이거 보고 계신가요 대디? 함 시원하게 갈겨주시죠.
↳ 이름 모를 대디,, 우리들의 빌런대디가 되어주세요,,
까짓거 애송이 녀석한테 힘 한 번 보태 줄 겸 챌린지나 올려 볼까?
“Villain daddy, 혹시 내가 미울 때면 얼마든 미워해도 돼-.”
기분이 좋아진 박 전무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정말.
지금만큼은 챌린지가 아니라, 아예 ‘Villain daddy TV’라는 채널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