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1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19화(219/482)
평범한 가정주부인 임현진은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여보, 이거라도 좀 마시고 나가!”
남편의 정신없는 출근 준비를 서포트하고.
“이러다 지각하겠어, 얼른 일어나!”
잠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 학교를 보냈다.
이후에 찾아온 혼자 남은 시간.
아침 드라마를 라디오처럼 귀로 시청하며 폭탄에 맞은 듯한 주방을 치우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직장 동료들과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상사나 욕하며 사무실로 복귀하고 있었겠지.
관두고 싶지 않았다.
하나, 남편의 계속된 권유로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관두게 되었다.
뭐라 그랬지.
중요한 시기에는 엄마가 꼭 옆에 있어 줘야 한다나?
째깍, 째깍.
정말 막상 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참 잘만 간다.
TV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내용의 막장 드라마들이 줄줄이 방영되고 있었다.
“하여간, 저 집도 문제야, 문제.”
늦은 점심으로 마른 김에 밥을 대충 싸 먹으며 드라마 속 인물을 욕하기도 잠시.
달그락, 달그락-.
임현진은 자신이 먹은 밥그릇을 치우기가 무섭게, 마트로 향했다.
당장 저녁에 식구들을 해 먹일 저녁거리를 사기 위함이었다.
“아이고, 야채값이 아주 금값이네.”
임현진의 입에서는 여전히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팍팍하고, 타이트한 삶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
살림하는 가정주부라는 게….
참, 해도 해도 티가 안 나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는 직업이지 않은가?
우리 어머니는….
대체 일평생 어떻게 해 오신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마트에서 특가 세일이라는 말 한마디에 현혹되어 금세 잊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널어 두었던 빨래를 개키고 저녁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띠리리릭-!
오늘은 딸이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부쩍….
집도 늦게 들어오고, 와서는 친구들과 통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기에 딸의 이른 귀가가 반갑게만 느껴졌다.
“무슨 일이래, 우리 따님이 전화하기도 전에 먼저 귀가를 다 하네.”
그러나.
자신의 농담 한마디에도, 사춘기가 시작된 딸은 예민하게 대꾸했다.
“엄마는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하더라?”
“아니, 내가 뭘….”
“됐어, 나 우선 먼저 씻을 거니까 문 벌컥 열고 들어오지 마.”
딸은 그 말을 끝으로 책가방과 교복을 대충 벗어두고는 화장실 문을 “쾅!” 닫으며 들어가 버렸다.
“어휴.”
임현진은 상대할 힘도 없어, 딸이 벗어둔 교복을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저러는데, 본격적인 사춘기가 오면 얼마나 더 심해지려나.
보글, 보글.
딸이 왔으니 저녁을 차리기 위해 찌개를 다시 대피고 있노라니,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고생했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하나.
그가 들어옴과 동시에 양말을 대충 뒤집어 벗으며 건넨 첫 물음은….
“저녁 뭐야?”
가 전부였다.
“된장찌개랑 삼치 한 마리 좀 구웠어요.”
“또 된장찌개야? 좀 다른 거 뭐 없나?”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 아냐. 나 우선 씻고 나올게.”
이내 남편 또한 정장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뒤 안방에 있는 화장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솨아아아아아-!
온 가족이 모였지만, 들리는 소리라고는 물소리가 전부였다.
아아.
틀어놓은 TV에서 나오는 음방 소리도 함께 섞여서 들려왔다.
달그락, 달그락-.
상을 차려놓은 뒤, 가족들을 기다릴 겸 소파에 앉아 음방을 보니 죄다 모르는 어린 남자애들뿐이었다.
딸뻘, 혹은 딸보다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아이돌들의 화려한 무대를 보고 있다 보니, 이내 남편이 수건으로 머리틀 털며 거실로 나왔다.
물기 떨어지니까, 드레스룸에서 머리 좀 말리고 나오라니까.
말해 봤자 입만 아프지.
임현진은 구태여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인사는커녕, 반찬 투정만 늘어놓은 것에 대해서도 서운하다고 하지 않았다.
“밥 다 차린 거야?”
그저 씻고 나온 남편을 못 본 체하는 것으로 아주 작은 시위를 하기로 했다.
“내 말 안 들려?”
“저기, 식탁보면 몰라요? 다 차려 놨잖아요.”
“보여, 보이는데.”
남편은 자신과 TV 화면을 번갈아 살피고는 덧붙였다.
“아줌마가 아이돌 보고 헤벌쭉해 하고 있느라고, 남편 말도 다 무시하는 거야?”
그 말에 임현진은 발끈하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언제 헤벌쭉했다고 그래요?”
“아주 요조숙녀처럼 앉아서 보더만, 뭘.”
“당신이랑 싸울 힘도 없으니까, 가서 식사나 하세요.”
“나중에 내가 벌어온 돈으로 딸이랑 같이 아이돌 콘서트나 다니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참나, 나는 아이돌한테 관심 없거든요?”
임현진은 그 말을 끝으로 채널을 돌려, 늘 이 시간대에 방영되는 연속극을 틀었다.
“아줌마 아니랄까 봐.”
남편은 이죽거리듯 중얼거리고는, 식탁으로 향했고.
딸은 언제 다 씻었는지 잠옷 차림으로 달려 나왔다.
“저녁 안 먹어?”
“응, 안 먹어.”
“왜? 밥을 먹어야지.”
“나 드라마 봐야 해.“
그러고는 제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아, 소파 정중앙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늘 그랬듯, 딸에게는 능글스러운 어투로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 웬일로 오빠들 안 보고, 드라마를 본대?”
하나, 딸은 지금….
“우리 오빠가 나오는 드라마 볼 거거든?”
고3보다 무섭다는 중2였다. 제 아빠에게 새침한 말투로 톡 쏘아붙이고는, 빠르게 채널을 돌렸다.
임현진은 왠지 섭섭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나는… 이 집의 식모인 건가?’
지금은 저녁 밥상을 치우기 전 잠시나마 여유롭게 티비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라디오가 아니라, 진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간.
분명.
가족들이 다 먹고 남은 밥상을 치우고, 씻다 보면 밤이 돼서 티비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마저도 딸에게 빼앗기고 나니, 이상하게 황망함이 몰려왔다.
근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속으로 꾹 눌러 담는 것뿐이었다.
그래.
엄마가 돼서, 사춘기가 온 딸이랑 리모컨 하나로 입씨름이나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근데, 무슨 드라마야-?”
“드라마가 그냥 드라마지, 뭐.”
“아니, 뭐 장르 같은 게 있잖아.”
“걍 사극이야.”
“사극? 재밌겠다! 어느 시대….”
“아, 조용! 이제 시작하잖아!”
말이라도 좀 붙여볼까 하여 계속 물음을 이어 나갔지만, 딸은 짜증을 내며 대화를 단절했다.
그래, 티비나 봐라, 봐!
임현진이 욱하는 마음을 참으려 멍하니 티비로 시선을 옮긴 찰나였다.
─ ♬ ♬ ♬
맑은 피아노 소리와 함께, 주연으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천천히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라 그런지, 자신이 보는 막장 연속극과는 삽입곡의 느낌부터 달랐다.
─ 내가 떠나거든, 부디 울지 마소.
왠지.
영상과 어우러지는 삽입곡을 듣고 있노라니, 얼른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게끔 했다.
“이거 누가 부른 거야?”
“엣치스잖아.”
“엣치스? 엣치스가 누구더라?”
“아, 엄마는 엣치스도 몰라? 맨날 집에서 티비만 보면서, 어떻게 엣치스도 몰라?”
그 물음에 임현진은 기가 죽은 채 “에이치오투는 아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드라마가 시작되고 2화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어? 우리 딸이 엄청 좋아하는 안호지네?”
“아니, 엄마! 안지호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해?”
임현진이 “아, 맞다.”하고는 입매를 꾹 다물었다. 어째 말을 붙이면 붙일수록, 괜히 딸의 짜증만 늘어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잠시.
“와….”
1화를 안 본 탓에 정확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어느새 몰입하여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드라마 자체가 재밌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OST가 드라마에 더욱 몰두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 못다 한 말 너무 많지만, 부디 울먹이지도 마소.
임현진은 OST를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너무나 구슬프게 들려왔다.
─ 꽃은 당연히 저무는 것 아니겠소.
투박한 듯, 다정한 목소리.
─ 우리가 연이 아니라 말하지는 말아요.
그 목소리는 오늘 하루, 아니 엄마 임현진을 어루어 달랬다.
─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
때마침 장면도 과거, 남주가 먼저 떠나간 연인을 회상하는 씬이었기에 감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 당신 몫까지 내가 울 테니, 그대는 부디 웃으며 가시오.
결국….
톡, 톡-.
임현진은 주책맞게 딸 앞에서 눈물을 흘려버렸다.
“엄마, 뭐야? 울 정도로 슬픈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물음에 임현진이 당황하며 눈물을 훔쳐내던 그때.
“뭐야, 당신 진짜 울어?”
밥을 다 먹고 배를 벅벅 긁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벌써 갱년기 온 거 아니야?”
임현진은 갑자기 욱하고 단전에서 화가 끓어올라, 자신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당신 때문에 갱년기보다 우울증이 먼저 오겠어!”
그러고는 이내 옷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하나.
문을 걸어 잠근 게, 민망할 정도로 옷방 문을 두들기는 사람은 없었다. 밖에서는 드라마 소리와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나쁜 놈….”
임현진은 바닥에 주르륵 주저앉아, 옆에 놓인 전신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로 확인한 자기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였다.
“아….”
늘어난 티셔츠에는 된장 국물이 튀어 얼룩져 있었고.
질끈 묶은 머리칼은 흘러 내려와, 지저분해진 채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좋은 여자이기보단, 누군가의 좋은 아내, 자식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우악스럽고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삶에 여유도 없고, 드라마 한 편조차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본 드라마는 불만이나 딴지 거는 일 없이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아니.
듣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방문 너머로 들리는 또 다른 OST.
─ ♬ ♬ ♬
이 드라마는 왠지, 한 편의 뮤지컬 드라마를 보는 것마냥 곡이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각각의 장면마다 적절하게 삽입된 OST들은 인물들의 서사를 담아내고 있었다.
고작.
한 편을 채 보지도 못한 드라마지만, 앞으로 어떤 내용과 어떤 곡들을 들려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 근데 아까 딸이 누구라 했더라?
임현진은 자신이 화냈던 사실도 금세 잊어버린 채, 삽입곡을 불렀다는 가수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아취스? 에치스?”
하나, 포털사이트에는 작곡가 ‘HS’라는 인물만 떠올랐다.
아, 작곡가가 아닌데….
임현진은 무조건 가수일 거라 생각했다. 무명이라도, 가수일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이 듣기에도 목소리라던가 가창력도 뛰어났고, 하물며 가사 전달력마저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
그러던 중, 포털사이트 내 기사 한 줄을 발견했다.
[ HS, 드라마 ‘붉은 실’에서 메인 OST 보컬로 참여! ]임현진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 기사를 클릭하기에 이르렀다.
[ 작곡가 HS는, 화제의 드라마 ‘붉은 실’의 오프닝크레딧 삽입곡이자 메인 OST인 ‘꽃이 지고 나서야’를 직접 작곡·작사·편곡에 이어 노래까지 직접 참여.. (중략)HS는 이번 드라마 OST뿐만 아니라, 지난 제이블과 콜라보 앨범에서도 타이틀곡 ‘Letter’를 직접 부르며 보컬 실력을 뽐낸 바.. (중략) ]
임현진은 기사를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HS가 불렀다는 다른 곡을 듣기에 이르렀고.
자신도 모르게, HS 곡 모음집이라는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른 채였다.
─ ♬ ♬ ♬
볼륨을 작게 틀어놓은 채, 옷방에서 홀로 곡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위로도 받다 보니….
어느덧.
임현진은 ‘갓치스’라는 팬카페에 가입해, 등업을 위해 열혈이 댓글을 남기고 있었다.
[ 반갑습니다 ^^ 이번에 엣치스에게 빠져 가입하게 된 새싹갓치스 해린맘입니다 ,, 잘 부탁드려요~! ]자그마치 등업 인사 게시물 10개와 댓글만 50개.
이 정도면 금방 등업할 수 있겠지?
흐뭇하게 웃으며, 팬카페 창을 내려다보던 찰나.
“여보-! 내 셔츠 못 봤어?”
자신을 찾는 남편의 목소리와 동시에, 옷방의 작은 창으로는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다려서 걸어놨잖아요.”
“아니, 대체 어디?”
또다시, 전쟁의 시작이었지만.
“저기 장롱 칸에 잘 보면 있어요. 미안하지만, 나가면서 해린이 좀 깨우고 가는 길에 아침 대충 좀 사 먹을래요?”
“뭐?”
“저는 갱년기라 그런가? 잠이 쏟아져서 좀 자야겠어요.”
“아, 응….”
임현진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아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