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2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23화(223/482)
한바탕 태풍이 휘몰아치고 나니, 어느새 이효은의 데뷔곡 발매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곡명은….
“to me! 너무 잘 지은 것 같지 않아?”
바로 ‘나에게’라는 의미로, 이효은이 직접 ‘to me’ 라 정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바꿀 기회 줄게.”
“아니! to me, 입에 딱 붙고 좋은 거 같아!”
현승은 들떠 보이는 이효은을 만류하기보단, 마음대로 하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원래 같으면, 현승이 선택했을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의미가 있겠지.’
이번만큼은 이효은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안간 오케이 난 녹음을 뒤엎고, 스스로 한 번 더 녹음하고 싶다고 말한 거라든가.
이후.
단번에 달라진 감정선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이효은에게 지금과는 다른, 어떠한 심경 변화가 벌어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엄마’와 연관되어 있겠지.
“야.”
현승은 제 기사를 찾아보며 히죽거리는 이효은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이내.
“너 엄마랑 평생 안 보고 살 거야?”
꾹 참아 왔던 물음을 건넸다. 그냥 넘길까 싶었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였다.
만약.
이효은이 엄마를 끝내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사 측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만약.
아예 끊어 낸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이효은의 엄마가 찾아오기 전에 확실히 조치를 취해 놓을 요량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이제는….”
이효은이 망설이기도 잠시.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주려고.”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저 타고난 오지라퍼는, 그런 엄마라도 엄마라고 버리질 못하나 보다. 하기야, 천륜을 끊어 내기가 어디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야 엄마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거든.”
하나….
이효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다음 말을 들은 현승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호자여야,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계속 입원시켜 놓을 수 있거든.”
마냥 회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런 준비를 한 걸까.
“처음에는 접근 금지 신청 같은 걸 먼저 알아봤는데, 기간도 있을뿐더러 매일 경찰들이 나 지켜 주고 있을 것도 아니니까….”
“아예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그런다 한들, 평생 구속되어 있을 게 아니기 때문에 나오게 된다면 보복하러 올 수도 있잖아.”
아직 엄마라는 존재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겨 낸다고 참 애썼다고.
그러나.
현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우선 지금은 너만 생각해. 내 곡 받았다고 전부 다 끝난 게 아니니까. 정말 시작은 지금부터야.”
이게 전부였다.
“응, 나 너한테 피해 안 되게끔 잘 해 낼 거야.”
이효은의 대답도 간결했다.
어찌 보면….
이효은은 지금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끝냈다고 할 수 있었지만.
혼자가 되었다.
그러니 더욱 이를 꽉 깨물고, 본인의 앞날을 잘 살아 나가야만 했다.
“연예계에서 오지랖은 금지야.”
현승이 당장 해 줄 수 있는 말은 쓰디쓴 충고와 당부뿐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너무 착한 것도 죄야, 죄.”
이효은의 가족이 되어 줄 수도, 인생을 책임져 줄 수도 없으니까.
“조금은 이기적이고, 보다 영악해져야만 해.”
제 말에 이효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데뷔곡 잘 되겠지?”
현승이 바로 “뭐?”하고 되묻자, 이효은은 제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맡았던 가수들에 비해 특출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혹시나 잘 안 되면, 네 명성에 누를 끼치는 거니까.”
그 말에 현승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이내 눈꼬리에 맺힌 눈물까지 훔쳐 내며 덧붙였다.
“신박한 걱정이네.”
정말, 이 오지라퍼를 어쩌지?
“내가 선택한 악기의 연주는 언제나 훌륭했어. 지휘자가 훌륭하니, 당연한 얘기지만.”
현승은 이효은과 시선을 맞추며 부연했다.
“더군다나 내가 만든 곡이 초히트는 못 치더라도 망할 일은 없으니까 그런 시덥지 않은 걱정할 시간에 연습이나 한 번 더 해.”
“그렇지만 혹여나 내가 예외로….”
“야, 이 바닥에서는 오지랖 부리는 거 금지라 했지.”
“네에….”
이내 단호한 어투에 이효은이 입매를 꾹 다물고, 제 가방과 외투를 챙겨 들었다.
아마.
연습하러 가려는 거겠지.
“야.”
현승은 다급히 나가려는 이효은을 불러세웠다.
이윽고.
다시 한번 꾹 참아 왔던 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너 유명한 가수 돼서 아빠 찾고 싶다며.”
너무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찾게 되면 뭐라고 땡깡 피울지나 생각해 봐.”
이 녀석에게도 희망 한 줌 정도는 남겨 놔야겠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진짜 가족 한 명쯤은 말이다.
“거진 20년 치는 밀려 있을 거 아니야. 미리 스크립트라도 짜 놔야 하는 거 아니냐?”
제 장난에, 이효은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응, 그럴게!”
지금, 이 순간에도 ‘이효은’과 ‘HS’라는 이름이 기재된 홍보 기사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 *
현승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김에, 곧장 출근길에 올랐다.
사실.
작업이 급해서는 아니었고, 박 전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아침 운동을 해 보기 위함이었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헬스장 내부는 뜨거운 열기보단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
철-컹!
하나, 헬스장 구석에서는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바벨을 내려놓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스-윽.
누군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나 박 전무였다.
“후-우.”
땀으로 젖은 반팔티를 집어 올려, 이마를 닦아 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째선지 현승의 눈에는 그 모습이 진정한 수컷처럼 보였다.
‘좀 멋진데.’
현승은 박 전무에게 운동을 배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어,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
안 그래도 요즘 체력이 받쳐 주지 않는 느낌을 종종 받고는 했으니까 운동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요즘.
어려진 나이만 믿고, 너무 체력 소비를 많이 하긴 했지.
“전무님.”
제 부름에 박 전무는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렸고.
“뭐야.”
자신을 발견하자, 이죽거리는 어투로 덧붙였다.
“너 내 스토커 하냐? 요즘 우연이라기엔 우리 너무 자주 마주치는 것 같은데.”
“제가 뭐가 아쉬워서 전무님 스토킹을 합니까?”
“그건 또 그렇지.”
박 전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몸을 뉘인 뒤 바벨을 꽈악 잡아 들어 올렸다.
그가 하고 있는 운동은, 운동을 잘 모르는 현승이라도 알고 있는 삼대 운동이었다.
벤치 프레스.
근육량이 정말 많은 하체나 코어의 근력을 사용하는 스쿼트나 데드리프트에 비해 벤치 프레스의 경우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 등을 대고 그 상태에서 지면 반발력을 이용하기에 개입할 수 있는 근육도 많이 제한 되어 있어 무게를 치기 어려운 운동이라 손꼽힌다.
그런데.
지금 저거 몇 kg인 거지?
“혹시 지금 무게 얼마나 치고 계신 거예요?”
“120kg.”
“저번에 말하신 삼대 오백이 허언은 아니셨나 봐요.”
“당연하지.”
“근데 연세도 있으신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말했잖아.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날이 분명 올 거라고. 그때까진 들어야지.”
현승의 눈동자는 오랜만에 반짝이며 빛을 냈다.
왠지.
수컷 중에 단연 으뜸 수컷을 만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운동 좀 알려 주세요.”
“헛소리 그만하고, 저기 가서 러닝이나 해.”
“알려 주세요.”
“운동할 때 말 시키면 자세 흐트러진다고, 저리 가.”
현승은 바들거리는 손으로 바벨을 들어 올리는 박 전무를 잠자코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꼭 이 남자에게 운동을 배워야겠노라 다짐했다.
아아.
얼마나 갈 결심일지는 모르겠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합치면 도합 40년 가까이 되는 삶에서 운동과 친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지금만큼은 정말 배우고 싶었다. 오랜만에 곡 작업 말고, 열정이 들끓어 오른 건 처음이었으니까.
철-컹!
현승은 박 전무가 다칠 수 있으니, 바벨을 내려놓기를 기다렸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PT 값은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뭐 이놈아?”
박 전무가 기가 차다는 듯 웃어 보이기도 잠시.
“얼마나 줄 건데?”
장난스레 되물어 왔다.
“전무님이 원하시는 만큼이요.”
“내가 얼마나 원할지 알고?”
“상식적인 선이라면 가능합니다.”
그 말에 박 전무는 고민에 빠진 듯 턱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가라는 식으로 손을 내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귀찮아질 것 같아.”
“어차피 이쯤 맨날 운동하신다면서요. 시간은 제가 맞추겠습니다.”
“내 운동하기도 벅찬데, 너랑 같이 운동하면 시간 너무 많이 걸려.”
“소비하시는 시간만큼 금전으로 보상해 드린다니까요?”
“아니, 무엇보다….”
박 전무는 완강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첨언했다.
“그러면 너랑 친한 사이 같아 보일 거 아니야.”
“예?”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너를 무척 싫어해.”
“맘에도 없는 소리 하시기는.”
현승은 귀여운 변명에 피식 웃어 보이고는, 자신이 챙겨 온 물통을 내밀며 다른 말로 화제를 전환했다.
“제 곡으로 전무님의 일상에 운동 말고 무언가 다른 일은 안 생겼습니까?”
박 전무는 물 한 통을 다 비우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생겼지.”
현승은 작게 호응한 뒤, 곧장 “뭔데요?”하고 물었다.
“책임져야 할 자식이 주렁주렁 생겼지.”
“자식은 원래 있으셨잖아요.”
“올해 안으로 아들, 딸 둘 다 거기 학교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거야. 이제 내가 그 아이들에게 엄마이자 아빠가 되어 줘야 해서 막막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 전무의 표정은 행복해 보일 따름이었다.
‘하여간.’
입만 열면 뻥을 치신다니까.
“그럼 더 열심히 버셔야겠네요. 요즘 한국에서 자녀 한 명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시는 줄 아시죠?”
“그렇기야 하지.”
“그런 의미로 부업하신다 생각하고 PT나 해 주시죠.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됐다니까 그러네.”
“어찌 되었건, 제 덕분에 자녀분들과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 건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차마 박 전무는 반박하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
“…….”
둘만 있는 헬스장 내부는 정적이 흘렀고.
“그럼….”
적막을 먼저 깬 건 박 전무였다.
“PT 비용은 됐고, 우리 아들이 강하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던데, 데뷔할 때 네가 곡 하나 해 줘라.”
“아드님이 몇 살인데요?”
“올해로 10살.”
자신이 말하고도 민망한지, 박 전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요즘 데뷔 연령이 낮아지고는 있다지만, 10살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 나중에 달라는 거지….”
그러기도 잠시.
박 전무는 무언가 불현듯 떠올랐는지 벤치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어왔다.
“야, 근데 너 더문에 안지호인가? 걔랑 좀 친하지?”
“뭐, 가끔 연락 오기는 하는데….”
“보통 그런 걸 친하다고 하는 거야, 인마.”
현재 현승의 눈에 비친 박 전무는 군침을 삼키는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는 듯….
박 전무의 눈동자에는 어쩐지 불안한 광기가 넘실거렸다.
“PT 해 줄게.”
“진짜죠?”
“챌린지도 해 줄게.”
“예-?”
이윽고.
박 전무가 제 두 손을 꼬옥 부여잡으며 간절하게 매달려 왔다.
“우리 딸 들어오면 안지호랑 한 번만 만나게 해 줘라, 부탁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딸바보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말은 해 볼게요.”
“고맙다.”
그렇게 두 수컷의 계약이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