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3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30화(230/482)
이효은은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김우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인물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닐까요?”
이효은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물었고.
─ 혹시 몰라서 보안팀에서도 몇 번이나 확인 절차를 거쳤는데, 따로 증명서 같은 걸 가져오신 건 아닌데 너 어릴 때 같이 찍은 사진을 가져오셨다더라고….
뒷말을 흐린 김우현은, 텀을 두고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 사진 뒤에 ‘9월 6일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해’라고 오래된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해서 연락한 거야. 혹시 맞아?
그 말에 이효은은 “9월 6일….”하고 중얼거렸다.
그 날짜는 제 생일이 맞았다.
하물며….
등본상 생일이 아니라 정말 태어난 날짜.
“그거 제 생일 아니에요. 제, 제 아빠 아니에요.”
이효은은 다급하게 종료 버튼을 누른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만나고 싶었던, 그리웠던 아빠였다.
“하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Villain daddy를 들으며 아빠를 그리워했었다.
제발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정 안되면 살아 있다는 소식이라도 알고 싶다고.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 어느 날인가 자신의 인터뷰 기사란 아래 달린 기사들을 본 적이 있다.
[ 내가 머리가 너무 썩은 거일 수도 있는데 꼭 이런 경우, 연예인 된 자식 등골 빼먹으려고 나타나는 부모들 많던데; 자기 버리고 나간 아빠 보고싶다는 말이 왜 이렇게 쎄하냐;; 나중에 소송 기사 뜨고 그러는 거 아니냐; ]자신이 아주 잠시 망각했던 불편한 진실을 꼬집던 댓글.
↳ 맞아; 그런 케이스 많자나; 실제로 연예인 자식 이름 팔아서 사기 치는 부모도 있잖아;
↳ 하; 한 번 버린 아빠를 왜 보고 싶어함? 이해가 안 가; 한 번 버린 사람이 두 번이라고 안 버리겠음?
그 아래로 달린 댓글들이 맘속에 깊은 음각처럼 새겨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종종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효은은 천천히,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당차게 자신이 해결하겠다던 포부는 아무래도 한낱 허세였나 보다.
물론.
아빠도 자신처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 품고 왔을 수도 있다.
다만.
다정했던 엄마마저 한순간 돌변해 자신을 노예쯤으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아빠라고,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이 어딨는가?
제아무리 천륜이라 해도, 물보다 피가 진하다고 해도….
어린 시절 이후 본 적도, 소식을 들어 본 적도 없으니 그만큼 애정도 없을 테지 않은가?
휙, 휙-!
이효은은 힘차게 고개를 털며, 다짐했다.
이제.
누구에게도 기대지도, 피해 주지도 않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더욱 굳세지겠다고 말이다.
* * *
한편.
김우현이 뚝 끊어진 전화에 난감하다는 듯 침음을 흘렸고.
“흐-음.”
현승은 그런 현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기 아빠 아니래요?”
“응, 아니라네.”
“걔가 아니라면, 아닌 거죠.”
김우현은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닌데….”
“얼른 쫓아내 버려요.”
“근데 왠지 난 맞는 것 같아서.”
그 말에 현승이 비스듬하게 기대어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맞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아니, 걔 아빠 보고 싶어 했잖아.”
김우현은 반감이 서린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가수가 돼서 아빠 찾고 싶다고, 저번에 단독 인터뷰에서도 네가 만든 Villain daddy 들으면서 아빠 생각 많이 했다던데.”
“이젠 아닌가 보죠.”
현승은 다시 테이블 앞으로 쭉 엎어지며 덧붙였다.
“걔가 자기 아빠인 걸 모를 리는 없잖아요. 근데 당사자가 안 보고 싶다는데, 만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앞으로 볼 수 없게 되면….”
“그건 소속사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본부장님답게 이성적으로 보셔야죠. 지금 너무 오지랖입니다.”
그 말에 김우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사실.
현승의 말이 다 옳았기 때문이다. 이효은의 사정을 알게 되고, 측은한 마음에 괜한 오지랖을 부리려 들었다.
더군다나.
김우현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던 터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효은만이라도 꼭 아버지를 만나, 이제라도 행복하길 바랐던 거 일지도 모르겠다.
“오지랖도 옮는다는데, 고새 이효은한테 옮으신 거 아니에요?”
현승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그러게, 내가 효은이한테 전염당했나 보다.”
“걔, 최근에 이상한 루머에 시달려서 마음이 변질된 걸 거예요.”
그 말에 김우현이 “변질?”하며 되물었다.
“예, 친구라는 사람들도 변하고 자신을 헐뜯는데 아빠마저 보고 싶어 했던 모습이 아닐까 봐 불안한 거겠죠.”
“아, 내가 효은이 아빠 찾아오셨다는 소식 듣고 놀라서 잠깐 그 사실을 망각해 버렸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무리 단단해도 작은 돌맹이를 계속적으로 던지면 조금씩 금이 가고, 어느 순간 와장창 깨져 버리잖아요.”
현승은 금방이라도 잠들 사람처럼 눈을 지그시 감아 버렸다.
그러고는.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속으로만 삼켜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난도질을 못 해서 안달일까.
마녀사냥 혹은 마녀재판.
12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 기독교가 대량으로 자행한 학살 행위를 칭하는 말이다.
하나, 현대 사회로 와서는 사회 안의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 혹은 소수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비난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설명만 본다면,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될 짓처럼 보이지만,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연예계에서는.
자신이 전생을 넘어, 현생에서조차 겪은 걸 보면 알 만했다. 현승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못해 신물이 났다.
대중들 앞에 서는 인물이라고 해서,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욕을 먹어야 하는 건가? 그걸 꼭 감수해야만 하는 건가?
물론.
아니라고 소리치고 억울하다고 한들, 별수 없다.
사회라는 집단은 그렇게 쉬이 변하지 않으니까.
아아.
현승 또한 자신이 세상을, 사회를 바꿀 마음은 없었다. 그래, 자신이 히어로도 아니고.
하나….
제 주변에서 반복되는 이 무차별한 난도질만큼은 없어지길 바랐다.
그래.
전생에서 겪었던 대중들의 무차별한 난도질은 무디다고 자부했던 자신마저 무너트렸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도….
이효은은 무너지고 있을 터였다.
끼이이익-.
현승이 의자를 뒤로 쭉 밀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은 다 괜찮은 척하는 거지, 사실 정말 괜찮은 건 아니거든요.”
김우현은 현승의 말에 왠지 가슴이 저릿했다. 어쩐지, 그건 현승이 자신 스스로에게 해 주는 말 같다고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래.
현승 또한 얼마 전 지독한 루머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지금은 잘 해결됐다고 하지만, 아마 맘속에 깊은 흉이 졌을 터였다.
터벅, 터벅-.
김우현은 ‘혹시 이효은을 보러 가는 걸까?’ -싶은 마음에 현승의 뒤를 따라 작업실을 나서며 물었다.
“갑자기 어디가?”
제 물음에도 현승은 묵묵히 복도를 가로지르며 걸음을 옮겼다.
“현승아?”
그래, 현승이 무뚝뚝해서 그렇지 제법 제 식구는 잘 챙기는 편이니까 아마도 이효은이 걱정되는 거겠지.
우리 현승이 녀석….
앞으로는 금쪽이라든가, 금동이라고 놀리지 말아야지.
터벅, 터벅-.
근데 어째 현승이 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이효은은 연습실에 있을 텐데….
“너 어디가? 연습실은 그 방향 아닌데?”
“제가 연습실을 왜 가요?”
“아, 아니, 그, 효, 효은이….”
“본부장님은 이효은 보러 가시게요? 그럼 얼른 가 보세요.”
“넌?”
“오늘 점심 제육볶음이라, 얼른 안 가면 야채만 남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현승은 “먼저 가 볼게요.”라며 순식간에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아.”
김우현은 갈 길을 잃어, 홀로 어정쩡하게 복도에 걸음을 멈춰 섰다.
“금은동쪽이 녀석….”
괜히 분위기 잡아서 사람 오해하게 만들고 말이야.
“또 속았네, 또 속았어.”
뭐, 어쩌겠나.
자신은 일평생 현승에게만큼은 속아 주고 있을 게 뻔한데.
* * *
보안실 장내 안에는, 한 남자가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이효은의 아빠 이창준이었다.
“으음….”
자신의 딸인 이효은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자, 보안요원들은 “또….”라는 반응을 보이며 몇 차례 확인 절차를 거치더니, 보안실에 들어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래도.
제 딸아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창준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머릿속이 새하얘진 까닭에 식은땀만 흐를 뿐, 정리되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입술은 바싹 말라 갔고, 초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이창준이 이토록 긴장한 이유는….
딸이 자신을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딸아이가 5살 무렵, 와이프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워지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하나.
이제와 돌이켜 보면 무너진 건 사업이 아니라, 가정이었다.
“너를 만나서 내 인생이 이 모양이 된 거야.”
아내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점차 포악해졌고.
“너만 안 만났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늘 남을 탓하며, 점차 망가져 갔다.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무지 나아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점차 심해지는 폭언과 손찌검….
결국 이창준은 딸아이를 생각해 꾹 참아 왔던 이혼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나.
와이프는 자신을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숨겨 놓은 여자가 생겼다며 자신을 추궁했고.
끝내.
와이프는 딸마저 인질로 잡고 협박했다. 양육권을 포기하면 이혼해 주겠다고 말이다.
“내 배 아파서 내가 낳은 내 딸이야. 네가 뭔데, 내 딸을 데려가?”
“네 딸이기 전에, 내 딸이기도 해. 그럼 가끔 얼굴이라도 보게 해 줘.”
“아니, 절대 못 보여 줘. 내가 그 여자 손에 내 딸을 맡길 것 같아?”
“여자 없다고 몇 번을 말해! 애 먼 사람 좀 잡지 마!”
엄청난 고민 끝에, 그래도 딸은 엄마 손에 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애 엄마니까 분명 아이를 위해서라도 금방 정신을 차릴 거라고.
그때.
이창준이 할 수 있던 건, 양육권을 포기하고 이혼하는 대신 딸아이를 위해 빚을 전부 자신이 감당해 줄 수 있는 것뿐이었다.
그 뒤로는….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택배부터, 막노동, 대리까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서 아득바득 빚을 갚아 나갔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을 들어왔을 때, 자신을 반겨 줄 딸이 없다는 사실은 사무치게 슬펐지만….
딸아이에게 부모의 산더미 같은 빚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는 없었으니, 참고, 또 참고 견뎌야만 했다.
아아.
물론 어느 정도 빚이 청산되었을 때, 딸아이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사 주고 싶단 생각에 용기 내어 딸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하나.
이미 이사를 간 다음이었고, 양육권도 포기한 채라, 아무리 자신이 아빠라 해도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젠 내가 효은이 아빠가 아니구나.’
애통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 자신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무너질 수는 없었다.
언젠가.
혹시라도 딸아이가 자신을 찾아 주는 날이 온다면, 지금껏 못 사 주고 못 해 준 것들을 다 해 줘야 하니까.
다시금 아득바득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티비로 마주한 딸은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예쁘고 밝게 자라 주었다.
자신이 해 준 것도 없는데, 너무 기특하지 않은가? 당장이라도 찾아가 꼬옥 안아 주고 싶었다. 사느라고, 아빠 없이 살아나느라고 너무 고생 많았다고.
하나.
쉬이 찾아갈 수 없었다. 혹여라도, 성공한 자식 등쳐 먹으려고 찾아온 파렴치한 아빠처럼 비추어질까 노파심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 부치진 못했다. 딸에게 하고 싶던 말들을 한 장에 가득 메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젠가….
그래, 언젠가는 전해 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던 중.
딸 아이의 기사를 봤다. 한눈에 척 봐도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럴 리 없어.’
제 딸은 그럴 애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따듯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다.
버려진 강아지를 보고 쉬이 지나치질 못했고,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 사탕을 건네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이 길어져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날이면 자신을 꼬옥 안아 주던 그런 속 깊은 아이였다.
그런 내 딸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이용한다니?
어거지도, 이런 어거지가 세상에 또 어딨는가?
‘내 딸에 뭘 안다고.’
그 길로 이창준은 제 딸아이가 소속되어 있다는 LS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찾았다.
무작정 찾은 걸음,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했다.
하나.
제 딸이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데, 모른 척하고 있을 아빠가 세상천지 어딨던가?
딸아이가 자신을 원치 않는다 해도, 미워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말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이 다 널 미워하고, 싫어해도 아무 조건 없이 널 사랑해 줄 아빠가 있으니 기죽지 말라고.
언제든 아빠 뒤에 와서 숨어도 된다고. 우리 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아빠는 다 안다고.
“효은아….”
이창준이 낡은 사진 한 장을, 마치 금은보화라도 되는 듯 품에 꼬옥 안았다.
제게 유일하게 남은 딸아이의 사진이었다.
이혼을 앞두고, 딸아이의 생일날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마지막으로 놀이공원에 데려가 줬을 적에 찍은 사진이다.
‘아직도 놀이공원 좋아하려나?’
아아.
‘이제 연예인이라서 놀이공원 같은 곳도, 쉽게 못 가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웃음 짓던 찰나였다.
똑, 똑, 똑-.
보안실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꿀-꺽.
딸아이 사진을 보며 풀렸던 긴장감이 급격히 몰려 왔다.
끼이익-.
하나, 들어온 건 제 딸아이가 아닌 웬 처음 보는 남성이었다.
체급은 보안요원 같은데, 차림새를 보아 사내 고위직 임원 정도 되어 보였다.
“효은이 아버님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남성은 여타 보안요원들처럼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다.
“얼굴만 봬도 알겠네요. 효은이가 누굴 닮았나 했는데, 아버님을 쏙 빼닮았습니다.”
되레 정중하게 예우를 갖춰,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아, 그런가요. 근데 우리 딸이 훨씬 예쁘죠.”
“아뇨, 선한 인상이 딱 아버님을 닮았는 걸요.”
이내 남성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 대기도 잠시.
“아버님께는 정말 외람된 말씀이지만, 효은이가 누구와도 만나고 싶어 하질 않습니다.”
제 눈치를 살피면서도, 완강한 어투로 덧붙였다.
“아실지도 모르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음이 좀 복잡해서 그런 것 같으니 너무 상심하진 마시고요.”
어느 정도 예상했다. 이곳을 찾을 때 예상했고, 남성이 홀로 들어올 때 확신했다.
“괜찮습니다.”
이창준은 애써 웃음 지으며 제 품 안에 가득 넣어온 편지 꾸러미를 남성의 앞으로 쭉 밀어 넣었다.
제발.
거절치 말아 달라는 것처럼.
“대신 이것 좀 전해 주시겠어요?”
남성은 자신이 내민 편지 꾸러미를 보며 복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아….”
이윽고.
편지 꾸러미를 집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히 전해 드려야죠.”
그러고는 조심히 들어가시라며 구십도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먼저 보안실을 나섰다.
탁-.
보안실 안에 홀로 남은 이창준은 웃고 있었다.
비록, 딸 얼굴은 못 보고 가지만….
딸아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무거웠던 맘이 놓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