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3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31화(231/482)
김우현은 제 손에 들린 편지 꾸러미를 보며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동시에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는 일이라도 하시는 건지, 까무잡잡하게 죽은 피부와 움푹 패인 뺨이 그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싹 마른 몸 위로는, 체형에도 안 맞는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낡고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엄청 유행했던 유명 브랜드의 점퍼였다.
아마.
딸 만난다고 멋 부리신 거겠지.
“이걸 어쩐담.”
김우현은 이 편지 꾸러미를 이효은에게 전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당장 이효은은 아버지를 거부하는 듯 보였으니, 현승이 말마따나 오지랖일 수도 있다.
하물며.
현재 이효은의 심경 또한 여러모로 복잡할 텐데 전하는 것이 맞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편지는, 편지의 주인공에게 전해 주는 게 맞겠지.
무엇보다.
김우현은 나름 이 바닥에 있으면서 사람의 눈만 봐도 어느 정도 판가름을 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버지의 눈빛은 진심으로 효은을 위하는 듯 보였다.
그래.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제 와서 애비 흉내를 내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 편지만 보더라도….’
김우현은 편지 꾸러미를 아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왠지 편지 봉투가 구겨지면, 아버님의 진심마저 구겨질 것만 같았던 까닭이었다.
터벅, 터벅-.
김우현은 이효은이 있을 연습실로 향했다.
끼이익-.
연습실 문을 열자,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효은의 모습이 보였다.
똑, 똑-.
김우현은 일부러 벽면을 두들겨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어, 본부장님….”
한차례 통화를 거쳤던 탓인지, 이효은의 얼굴은 놀랐다기 보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효은아.”
김우현은 그런 이효은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편지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거 아버님이 전해 달래.”
“제 아버지 아니라니까요.”
이효은은 곁눈질로 편지 꾸러미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평상시 밝고 싹싹하던 애가 이 정도인 걸 보면 마주하기 힘든 모양이다.
“너가 뭘 걱정하는지도 알고, 왜 그런지도 다 아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로 겁내고, 지레짐작으로 원망하면 너만 힘들어져.”
김우현은 허리를 굽혀 이효은과 눈을 맞췄고.
“설령 진짜 네 아버지가 아니어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딸을 위해 쓴 편지일 텐데 팬레터라 생각하고 받아 줄 수는 있잖아.”
싱긋 웃으며 다시 한번 팬레터를 내밀어 보였다.
“네에….”
이효은은 결국 못 이기는 척 편지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착하네.”
김우현은 그런 이효은의 머리통을 가볍게 톡톡 두들겨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만 간다.”
그러고는 이내 연습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뒷일은….
이제 두 부녀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니까.
* * *
연습실에 홀로 남은 이효은.
“하아….”
바닥에 주저앉아 몸 쪽으로 바짝 당긴 무릎 사이로 얼굴을 푹 박은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편지 꾸러미가 아슬하게 들려 있었다.
사락, 사락-.
편지 꾸러미는 에어컨 바람에 의해 살랑거렸다.
손때는 좀 묻어 있었지만 잘 정돈된 수십 장의 편지 봉투가 노란 고무줄로 엮여 있었다.
‘정말….’
고개를 들자 아기자기한 편지 봉투가 보였고, 절로 이효은의 고개는 다시 떨궈졌다.
그도 그럴게.
분홍색 편지 봉투에는 어린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캐릭터들이 새겨져 있던 까닭이었다.
아마.
제 아빠의 기억 속 자신은 공주 캐릭터를 좋아하던 5살에 멈춰져 있는 거겠지.
이효은은 차마 그런 아빠의 편지를 읽을 수가 없어, 한참 동안 고개만 처박고 있었다.
그래도, 읽어 봐야겠지.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던, 설령 아빠 또한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자신을 찾았다고 한들 직면해야만 했다.
절대.
피하고, 도망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테니까.
그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해야만 해.
사락, 사락-.
노란 고무줄을 풀자, 수십 개의 편지 봉투가 바닥에 비처럼 우두두 쏟아져 내렸다.
그중….
맨 위에 있는 편지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고.
사락-.
편지지를 꺼내 보니, 깨알 같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자랑스러운 내 딸, 효은이에게.
오늘 동료 기사가 제 딸아이 자랑을 늘어놓더라고, 녀석 어찌나 자랑해대는지 얄미워죽겠더라니까.
나도 자랑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어. 딸이 가수라고 하면 분명 귀찮게 굴게 뻔하거든.
우리 딸은 안 그래도 요즘 귀찮고 피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럴 때 나라도 고생했다고 꼭 안아줘야 하는데, 옆에 있어 주질 못해 미안하다, 참 미안해.
한 장, 한 장, 한 장….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내 딸, 효은이에게.
오늘은 유난히 딸이 보고 싶은 날이야. 일이 참 안 되고, 고단해서 그런 가봐. 이런 날 딸이 꼭 안아주면 모든 피로가 싹 풀어지고는 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을게. 언제든 딸이 나를 찾아주는 날, 여태 못했던 아빠 노릇 한 번 꼭 할 수 있도록 아빠는 절대 쓰러지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게.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너무 보고 싶은 날이구나. 아빠답지 못하게 투정 부려 미안하다.
편지에는 아버지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그날 있던 일과, 감정, 그리고 자신을 향한 마음까지.
너무 예쁜 우리 딸, 효은이에게.
요즘 TV에 우리 딸 얼굴이 종종 보여서 아빠는 참 행복해. 어릴 때 얼굴 그대로 너무 예쁘게 자랐더라.
해준 것도 없는데 너무 밝고 예쁘게 자라줘서 고맙고, 참 면목이 없네.
늘 주변을 밝게 해 주는 우리 딸이라 그런지,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빠로선 우리 딸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남이 하는 말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 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아빠가 제일 잘 아니까.
우리 딸, 사랑하고 늘 미안해.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렴.
이효은은 다 읽기도 전에 힘이 빠진 듯 편지지를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편지가…,
사랑의 편지 같기도, 사죄의 편지 같기도 한 까닭이었다.
아아.
이 편지를 써 내려갈 때 대체 어떤 기분이셨을까?
이 편지 봉투를 정리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이 편지를 전해 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벌-떡!
이효은은 무언가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을 나섰다.
물론.
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또 혼자 고단한 몸을 이끌고 쓸쓸히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어쩌면 자신의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 줄 가족일지도 모르지 않나?
터벅, 터벅-.
이효은이 보안실로 향하기 위해 코너를 꺾은 순간, 거대한 남자와 탁 부딪쳐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아야….”
바닥에 부딪친 엉덩이를 살살 어루어 만지며 고개를 들자….
“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현승이 보였다.
“몸개그 하냐?”
현승은 장난스럽게 이죽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이내 그 손을 붙잡아, 다시 몸을 일으켰고.
“내가 개그우먼도 아니고, 몸개그를 왜 하겠어.”
“난 또, 넘어지는 모양새가 하도 우스꽝스러워서 ‘개가수’라도 준비하는 줄 알았지.”
이효은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승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주다니….
그때.
현승은 이효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너 어디 가냐?”
“그, 그게….”
“아버지 만나러 가?”
그 말에 이효은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잘게 끄덕여 보였다.
“흠.”
현승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심각해진 얼굴로 침음을 흘려 대기도 잠시.
“아니다, 괜찮겠다.”
뭐가 괜찮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승은 얼른 가 보라며 제 어깨를 가볍게 툭 쳐 보였고.
“응, 먼저 갈게.”
다급히 인사를 건넨 뒤, 현승을 지나쳐 걸음을 재촉하던 찰나.
“야, 이효은.”
머지않아 뒤에선 자신을 부르는 현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자신을 따라온 건지 현승이 바싹 뒤까지 쫓아와 있었고.
“그래도 이건 좀 털고 가.”
이내 제 머리칼에 붙은 먼지를 무심히 툭툭 털어 주며 덧붙였다.
“아버지 만나러 가는데, 거지꼴이면 되겠냐.”
이효은은 수줍게 “고마워”라며 말을 전한 뒤, 곧장 다시 아빠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를 만나면….
내 옆에 아빠처럼 다정한 남자가 있다고 꼭 말해 줘야지.
비록.
짝사랑이지만….
* * *
부랴부랴 보안실로 달려갔지만, 역시나 아버지는 되돌아간 뒤였다.
“하아, 하-.”
벅찬 숨을 가다듬으며, 아쉬움에 보안실 안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 저 근데….”
제 곁에 서 있던 보안요원은 이 말을 빼먹었다며 부연했다.
“본부장님 가신 다음에도, 한참이나 앉아 있다 가셔서, 가신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왜 중요한 사실은 항상 뒤늦게 알려 주는 걸까.
“감사합니다!”
그 길로 곧장 보안실을 나섰고.
탁, 탁, 탁-!
반 대표 계주했던 실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회사 로비로 향했다.
마치 미어캣처럼 고개를 쭉 빼고 두리번거렸지만, 지나치는 사람 중 아버지는 없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 속 아버지의 얼굴이 많이 흐려졌거니와 늙어 버린 모습은 알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탁, 탁, 탁-!
그런 확신까지 들자,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쉬이이이잉-!
자동 회전문을 마치 수동문처럼 재빠르게 밀어서 통과한 이효은은 사옥 앞을 지나치는 많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 댔다.
그중, 몇 명은 이효은을 알아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헐, 대박! 야, 저기 저 사람 이효은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츄리닝 입고 있으니까 완전 그냥 일반인 같지 않냐?”
이효은은 그런 말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
터벅, 터벅-.
이내 이효은은 멈췄던 걸음을 옮겨,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 쪽으로 향했고.
왠지.
눈에 밟히는 뒷모습을 발견했다. 마른 남성은 두꺼운 점퍼를 입었음에도 추운지, 한껏 몸을 움크린 채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터벅, 터벅-.
이효은은 좀 더 속력을 내어 그 남성과 거리를 좁혀 나갔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다섯 발짝 남짓.
천천히 속력을 맞춰 뒤따라 걷기 시작한 그때.
‘어….’
이효은이 눈매를 좁히며 그 남자의 점퍼를 살폈다.
‘저거….’
제 기억이 맞는다면 아버지가 즐겨 입던 점퍼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말이 안 된다. 제 기억 속이라면 18년 정도 전이라는 건데….
‘에이, 설마-.’
이효은은 아닐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휙휙 내저으면서도 어째선지 눈앞은 점차 흐려졌다.
이윽고.
걸음을 뚝 멈춰서 버렸고, 그와 동시에 앞서 걷던 남성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어…….”
남성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기도 잠시.
“왜 울어?”
금세 걱정 어린 얼굴로 다가와, 제 뺨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 얼굴 위로 제 얼굴이 겹쳐졌다.
“아, 아빠아….”
다 끊어질 듯 힘겨운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부른 한 마디.
“딸, 우리 딸.”
그 한 마디에, 아버지는 곧장 자신을 꽉 안아 주며 등을 다독였다.
“아빠가 미안해, 미안해.”
편지에도 미안하다는 말이 한가득이더니, 아빠는 자신을 만나서 처음 한다는 소리가 미안해였다.
“왜, 왜 나를 두고 간 거야?”
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닌데.
“왜, 왜 그랬어, 왜!”
정말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대체 어디 갔다, 이제야 찾아와?”
아빠는 나 안 보고 싶었냐고 투정 부리고 싶었는데.
입이 삐뚤어지기라도 한 건지, 제 맘과 달리 날카롭게 날이 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아빠와의 재회는 제 생각과 달리 엉망진창이었다.
결국.
이효은은 무너져 내리듯 아버지의 품에 더욱 파고들며 목 놓아 울어 버렸다.
토닥, 토닥-.
그러자, 그토록 그리워했던 따스한 손길이 제 등을 일정한 속도로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더 울어도 된다는 듯 아버지는 한참이나 괜찮다고, 괜찮다고 거듭 되뇌었다.
정말이지.
그 말대로 이제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