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3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33화(233/482)
어느덧 2분기 시즌이 다가왔다. 그 뜻은 머지않아 하반기가 찾아온다는 의미기도 했다.
달그락-.
오전에 한바탕 전쟁 같은 매니지먼트 전체 회의가 끝나자, 박 전무는 최 이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지만, 우선은 그냥 따듯한 차 한 잔이나 얻어 마실 겸 들린 거라고 해 두자.
슥, 슥-.
이내 박 전무는 축축한 물수건으로 난초를 닦아내는 최 이사를 보며 이죽거렸다.
“그놈의 난초를 왜 그렇게 애 다루듯 하는 거야?”
“난초는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관리를 잘 해줘야 하거든.”
“그러니까, 그걸 왜 키우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그 말에 최 이사는 은테 안경 안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세우며 되물었다.
“전무님은 운동 왜 하십니까?”
최 이사는 평소 둘이 있을 땐 반말을 하다가, 꼭 뭔가 기분이 상하면 존칭을 쓰고는 했다.
아마.
난초를 키우는 취미에 대해 트집을 잡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저걸 대체 왜….
“운동이야, 당연히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난초 또한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물론 몸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끝내 꽃을 피워 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흐뭇하기도 하죠.”
최 이사는 이제 상대하기 싫다는 듯 다시금 난초를 정성스레 닦아대기 시작했다.
슥, 슥-.
장내 안으로 난초를 닦는 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요즘 회사보단 뉴튜브 활동에 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던데.”
최 이사가 난초 위에 시선을 둔 채 넌지시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박 전무는 발끈하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첨언했다.
“다 회사를 위한 일이었어. 특히, 2팀을 위해 내가 특별히 힘 써준 거라는 걸 몰라?”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오늘도 그거 생색내려고 따라온 거지?”
“생색은 무슨, 내가 그런 작은 일로 생색낼 사람으로 보여?”
“그런 줄 알았지.”
박 전무가 그 말에 씩씩 대기도 잠시.
“진짜 그것 때문에 온 건 아니야.”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제법 심각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물론.
챌린지 영상으로 일주일 내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언급하려 했던 건 맞다.
하나.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 녀석 말이야.”
정말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었다.
“그 녀석?”
최 이사가 바뀐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물수건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그 녀석이라고 하면….”
그러고는 누굴 말하는지 알겠다는 듯, 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마 HS를 말하는 거겠지.
그래, 김우현 본부장이 자식처럼 아끼는 민현승 말이다.
“내가 요즘 그 녀석하고 새벽 운동을 하거든.”
“운동하면서 로비하는 건 아니고?”
“로비라… 걔가 먼저 로비를 걸어오긴 했지.”
“무슨 로비? 녀석한테 곡이라도 받기로 했어?”
“뭐, 그런 건 아니고….”
박 전무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기도 잠시.
“이번에 우리 딸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아이돌을 좋아하더라고.”
애꿎은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운동 알려주는 대신, 그 아이돌 만나게 해주기로 했어.”
최 이사는 그 말에 화색을 보이며 되물었다.
“오, 드디어 딸내미가 한국에 한번 놀러 오는 거야?”
“아니, 이번에 아예 정리하고 들어오기로 했어. 아들도 같이.”
“잘 됐다, 잘 됐어.”
꼴에 동기라고, 최 이사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듯 어깨를 다독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식은 품에 있어야, 자식이지.”
특히 최 이사는 박 전무가 결혼하고, 애 낳고, 기러기 아빠가 되는 모든 과정을 봤을 테니 같은 애 아빠로서 정말 잘된 일이라 여겼다.
“뭐, 그렇지.”
박 전무는 왠지 낯간지러운 기분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녀석이 한 말이 계속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최 이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말인데?”하고 되물었다.
“나중에 이 회사를 인수할까 싶다고 하더라도, 물론 농담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 말을 들은 최 이사가 눈을 깜빡이기도 잠시.
“녀석, 아주 포부가 크네.”
혈기 넘치는 어린애의 말이라 여겼는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한바탕 크게 웃어 보였다.
“그런 말을 신경 쓰고, 박태묵도 나이 들긴 했나 보네.”
“아니….”
“그리고 인수한다 한들 어쩌겠나? 새로운 오너로 맞아줘야지.”
박 전무는 그 말에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반문했다.
“그 말뿐이었으면 나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을 거야.”
“그럼?”
“레이블이나 하나 차려볼까요? 라며 순수하게 묻더라고.”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다시금 착 가라앉았고.
“…….”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승이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다.
이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
혈기 왕성한 이십 대의 포부 따위로 치부하고, 넘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그 녀석이 맘먹으면 당장에라도 레이블 하나쯤이야 차리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하물며.
HS라는 브랜딩이 확고해진 상태니,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넘쳐날 테고.
그렇다면….
금세 녀석의 레이블은 LS 엔터테인먼트를 위협할 만큼 몸집을 키워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비약이 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다.
“음….”
기나긴 적막을 깬 건, 최 이사였다.
“주시는 할 필요가 있겠어.”
입안이 바싹 타는지,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달그락-.
그러고는 빈 찻잔 안을 지그시 바라봤고.
“근데 말이야.”
이내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마 우린 이제 그 녀석을 통제할 수 없을 거야.”
그 말에 박 전무는 조용히 차를 들이켰다. 맞는 말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던 터였다.
* * *
대망의 동창회 날이 찾아왔다.
“휴.”
이효은은 아침 일찍부터 샵을 찾아, 한껏 치장했다.
이왕이면 세 보이게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뭐….
그런다고 성격이 세지진 않겠지만, 아주 조금은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터였다.
이윽고.
한서윤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연예인이 된 자신을 배려해, 자신의 아버지 별장에서 동창회를 하기로 했다던가?
늘 한서윤은 이런 식이다. 자신의 재력으로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통제했다.
띠링-!
하지만, 이제 전혀 부럽지 않다. 자신 또한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벌고 있기도 하거니와.
[ 딸~ 오늘 동창회 간다고 했나 ? ㅎ ㅎ 즐겁게 놀구와! ㅎ ]늘 내 편이 되어줄 아빠가 생겼으니까.
또각, 또각-!
이효은은 높은 하이힐이 어색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절대 넘어지면 안 돼.’
온 정신을 발바닥에 집중한 채, 별장 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안에는 이미 사람이 많이 도착했는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고.
끼이익-.
머지않아 별장의 주인인, 한서윤이 문을 열고 나왔다.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를 가진 한서윤은 자신을 내려다보다, 이내 입꼬리를 쭉 찢으며 웃었다.
“어머, 효은이 왔네? 이게 얼마 만이야! 애들이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들어와, 들어와!”
어쩐지 그 웃음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그래, 마음 단단히 먹자.
이효은이 다시 한번 다짐을 새기며, 문 안으로 들어가 구두를 벗으려던 찰나였다.
“효은아, 뭐해?”
한서윤이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물어왔다.
“어? 신발 벗으려고….”
그러고는 배를 붙잡은 채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 하여간 효은이는 정말 엉뚱해서 귀엽다니까?”
그 소리에, 이미 도착해 있던 동창생들이 구경이라도 난 듯 현관 쪽으로 달려 나왔다.
“여기는 외국식으로 지어진 집이라 신발 안 벗고 들어와도 돼!”
그 말에 이효은이 제 발아래를 훑어봤다. 놓인 신발이 한 켤레도 없는 건 물론이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아, 그랬구나. 몰랐어.”
이효은은 짐짓 태연자약한 얼굴로 한서윤을 지나쳐 긴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야……?”
그런 이효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서윤의 얼굴이 싸늘해지기도 잠시.
띵-동!
다시 한번 울린 초인종 소리에 표정을 고쳐 지었다.
“어머, 유진아! 이게 얼마 만이야!”
.
.
생각보다 동창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대놓고 자신에게 조롱하거나 비난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효은이 너무 예뻐졌다!”
자신 주변을 둘러싼 채,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같이 하트 해주면 안 돼?”
반가운 얼굴이 몇몇 있기야 했지만, 대부분은 따로 연락해 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었다.
찰칵, 찰칵-!
플래시를 터트려 찍는 게 요즘 트랜드라던가? 이효은은 사방팔방에서 자신을 향해 터트리는 플래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관심일 텐데, 나쁠 이유야 없지.
정말 단순히 눈이 아팠다.
“효은아.”
그러나, 그건 단순히 내 사정이었던 걸까?
“아니, 친구들이 너 오랜만이라 반갑고 좋아서 그러는 건데, 그렇게 싫은 티를 내야 해?”
한서윤이 바로 그 점을 꼬집으며 지적해 왔다.
“아니, 난 눈이….”
“효은이 눈 아파서 그런 것 같은데?”
자기 대신 반박을 해준 건, 다름 아닌 채유진이었다.
사실 채유진과는 친하지도, 모르지도 않는 딱 그런 사이다.
워낙 노는 부류의 친구들이 달랐기에 얽힐 일도 없었다.
“그치, 효은아?”
채유진은 자신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차가운 인상과 달리, 성격은 좋아 보였다.
이후.
동창회의 분위기는 한참 물어 익었고, 현승은 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지.’
현승은 학창 시절부터 사적인 모임에 절대 참여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명성을 얻고 있는 지금, 괜히 왔다가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아아.
‘그 얼굴이면 그냥 인생이 귀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이효은은 쓸데없는 생각들로 시간을 죽이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이럴 거면 왜 왔냐고?
때를 봐서, 한서윤과 둘만 남게 된다면 자신의 루머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정말.
네가 내게 서운해할 자격이나 있냐고 말이다.
이왕이면 앞으로 절대 엮이지도, 마주치지도, 아는 척도 하지 말자는 얘기도 덧붙일 생각이다.
그래.
사실 얘기가 아니라, 경고하러 온 걸음이었다.
더 이상 건드린다면, 이젠 진흙탕 싸움이 되더라도 기꺼이 상대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불청객, 아니,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찾아왔다.
띵-동!
나가보라는 닦달에 못 이겨, 남자애 하나가 “더 올 사람이 있었어?”라고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고.
벌-컥.
문이 열리자, 성큼 안으로 들어온 남성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누구더라-?”
고요함에 이상함을 감지한 여자들이 뒤따라 나왔고, 이내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는 자신들도 모르게 “꺅!”하고 소리쳤다.
“헐, 미친, 걔 아냐? 걔?”
“아! 누군지 알겠다!”
“야, 쟤가 여길 어떡해?”
“그게 중요하냐! 온 게 중요하지!”
여자들은 멀찍이 떨어져 자신들끼리 수군거렸고.
이윽고.
누군가 “쟤 별명이 뭐였더라?”라고 묻는 말에, 느지막이 따라 나온 이효은이 조용히 대답했다.
“8반…, 잠자는 숲속의 왕자….”
부디.
현승이, 이 별명을 죽는 날까지 모르길 바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