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4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41화(241/482)
사라는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현승을 빤히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같은 멜로디 라인인 것 같은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마이너스한 느낌의 단조로 코러스 구간까지 계속 끌고 나가야 하는데….
곡이 별안간 당차고 밝은 분위기로 탈바꿈해 버렸다.
─ ♬ ♬ ♬
곡이 코러스를 거쳐, 마지막 브릿지 구간에 도달했을 땐.
툭!
새로 먹으려 뜯었던 미숫가루 팩을 바닥에 떨궈 버렸다.
걸쭉한 미숫가루가 새하얀 운동화는 물론이고,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 때까지 사라는 미동조차 없었다.
“아, 바닥 더러워졌잖아.”
그걸 확인한 현승이 미간을 찡그리며 핀잔을 줬지만.
“조용히.”
사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곡이 끝날 때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말.
코드와 멜로디가 하나의 음식이라고 가정하자면, 전부 뜯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거지?
대체 어떤 재료를 이용하고, 어떤 레시피로 만들었길래….
무엇보다.
어떻게 단 하루 만에 같은 재료로 아예 다른 맛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냐고.
물론 두 가지 버전이 다 그저 그런 맛이었다면 이런 걸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
그저 그런 맛이 아니니까!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맛이니까! 미숫가루보다 맛있으니까!
“저, 저기, 이봐!”
사라는 곡이 끝남과 동시에 격양된 어투로 현승을 불러 세웠다.
스-윽, 스-윽.
바닥에 엎질러진 미숫가루를 닦아 내고 있던 현승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왜? 아무래도 한 번 더 들어야 할 것 같지?”
그 말에 사라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스스로 곡을 다시 재생시켰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현승이 미숫가루의 끈적함이 남지 않도록 꼼꼼히 닦아 내는 동안 사라는 반복해서 곡을 들었다.
아니.
이건, 맛있게 먹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려나?
─ 음, 음, 음.
사람이 맛있는 걸 먹으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듯 사라의 입에서 스캣(*Scat)이 흘러나왔다.
마치 곡 위에 반주를 얹어 화음을 만드는 것처럼.
‘역시 한 번 더 편곡 보길 잘했어.’
현승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카페에서 톡 쏘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예감은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 음, 음, 음.
사라의 목소리가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자유롭게 멜로디를 넘나들며 풍부한 선율을 만들어 낸다.
─ 음, 음, 음.
처음에 으름장을 놓듯 자신에게 말할 때는 저음임에도 불구하고, 음이 떨리지 않고, 적절한 호흡을 내뱉어 내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앙칼지게 소리치는 소리에서 하늘하늘하면서도 단단한 울림통이 느껴져, 바로 편곡을 한 건데….
아니나 다를까.
자유로이 넘나드는 중고음대 또한 제법 듣기 좋았다.
그냥.
곡 위에서 뛰어노는 듯한 느낌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럼 녹음 들어가 볼까?”
사라가 그 말에 스캣을 딱 멈추고, 현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단둘이서?”
“그럼, 온갖 사람 다 불러서 파티라도 열어 볼까?”
“그런 게 아니라, 보통 디렉터랑 프로듀서, 엔지니어 다 같이 진행하지 않아?”
이내 둘뿐인 작업실을 훑어보고는 덧붙였다.
“원래 한국에선 작곡가 혼자 다해?”
현승은 핀잔을 주듯 되물었다.
“청소부 있는 것도 싫다고 별장 안 간 애가, 그렇게 사람 바글거리는 건 괜찮아?”
“아, 아니….”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잔말 말고 얼른 부스 들어가서 목이나 풀어.”
사라는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 미숫가루 팩 하나를 조심스레 챙겨 들었다.
하나.
“너 녹음 끝날 때까지 미숫가루 금지야.”
얼마 안 가 현승의 손에 압수되었다. 사라는 세상이라도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미숫가루가 뭐라고….
“하, 하나만.”
이내 사라는 팩 하나를 두 손에 꼭 쥔 채 간절히 청해 왔다.
“안 돼.”
그러나 현승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등을 떠밀 뿐이었다.
“녹음 다 끝나고 마셔.”
“지금, 딱 하나만.”
“끝나고 열 박스 사 줄게.”
사라는 자신 넘치는 어투로 꼭 약속 지키라며 재빨리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
며칠간 미숫가루는 구경조차 못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채로.
* * *
한편.
사내에선 또 흉흉한 괴담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사라 스튜어트가 현재 LS 엔터 사옥 어딘가에서 엄청난 녹음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데 엣치스 정도면 충분히 그럴듯한 얘기 아냐?”
“에이,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된다!”
사내 경리를 맡고 있던 지안이 그 말을 못 믿겠다며 손을 내저었다.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있는 동기가 그러던데, 유니스 뮤직 그룹이랑 공문 오가는 거 보니까 심상치 않다고.”
다른 경리의 말에 지안이 포털 사이트에 ‘사라 스튜어트’를 검색해 보기도 잠시.
“헐! 사라 스튜어트도 유니스 뮤직 그룹 소속이네! 그럼, 진짜 아냐? 대박, 대박!”
별안간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져 버렸고.
“하기야, 엣치스라면야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지!”
언제 의심했냐는 듯, 이내 다른 경리 직원과 함께 호들갑을 떨어 대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 보태서 말하자면 엣치스가 실력으로는 월클이긴 하지.”
“맞아, 그리고 얼마 전에 사라 스튜어트가 villain daddy 영상도 올렸었잖아!”
“헐, 맞네! 그런 의미로 나도 챌린지 영상 올려 볼까? 그럼 엣치스가 봐 주지 않을까?”
지안이 제 두 뺨을 감싸 쥐며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으나.
“너 유튜브 구독자 100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찾아 봐.”
동료의 현실적인 발언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씨, 근데 어떻게 사옥에서 한 번을 안 마주치냐.”
지안이 괜스레 수저로 식판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같은 사옥에 근무하고는 있는 게 맞는가 싶었다.
물론.
지안은 LS 엔터 임직원은 맞으나, 사무직원이다 보니, 다닐 수 있는 구역도 통제되어 있었고 구내식당도 딱 정해진 시간만 올 수 있었던 터라 더 마주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소속 연예인들보다 얼굴 보기가 어렵냐고!
그때.
“어차피 너 엣치스 얼굴도 정확히 모르잖아.”
다른 경리 직원이 말을 덧붙였다.
“마주친다고 한들, 엣치스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나 있겠어?”
“대존잘이면 당연히 알아보지!”
“여기에 대존잘이 한두 명이야? 연습생들도 다 들락거리는데.”
“그래도, 팬미팅 후기 보니까 아우라가 아예 다르다던데….”
“그렇다고는 하더라.”
“아무래도 내 남편감으로 딱인 것 같지?”
“아니, 정말 옳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
“근데 여자친구 있겠지?”
“없는 게 이상하지. 정산표 정리할 때 슬쩍 봐도 벌어들이는 수입도 엄청나던데….”
“헐, 설마 사라가 여자친구인 거 아니야?”
“야야, 너무 비약이 심해. 내가 봤을 땐 사라가 챌린지 영상 올리고 얼마 안 있다가 공문 오간 얘기 나온 거 보면, 사라 측에서 곡 요청하려고 일부러 쇼맨십한 거 같아.”
“오, 타이밍 봐선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겠는데?”
지안은 탐정이라도 된 것마냥 자신의 추론을 이어 나갔다.
“맞아, 생각해 보니까 사라 스튜어트 요즘 아예 곡도 안 내는 것 같던데, 너무 안 나오니까 엣치스한테 곡 좀 달라고 요청한 거네.”
그러고는 이내 다 먹은 식판을 대충 챙겨 들며 덧붙였다.
“지금 Villain daddy도 외국에서 챌린지로 엄청 핫하니까, 인기 편승하려고 했을 수도 있고.”
지안은 분명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랬는데….
별안간 어깨에 가해진 악력에 의해 도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휙-.
고개를 돌리니 웬 남자가 서 있었고.
“누구세요?”
모자를 푹 눌러쓴 채라, 얼굴의 절반이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내린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입술만큼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그려 놓은 듯, 대칭이 완벽한 남성의 입술이 열렸고.
“엣치스한테 곡 달라고 안 했어.”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엣치스가 사라 스튜어트한테 곡 주겠다고 한 거라고.”
“예…?”
“아니, 계속 헛다리 짚고 있길래 정확히 알려 주려고.”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볼일을 다 봤는지, 미련 없이 구내식당을 빠져나갔다.
다만.
여성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못 떼어 내고 있었다.
‘분명해.’
떨리는 이 심장,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우라.
‘저 남자다.’
저 남자가 바로, 엣치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좀만 더 머물러 주지….’
여성은 아련한 손길로 그의 손이 닿았던 외투의 어깨 부근을 만지작거리며 다짐했다.
이 외투는 일 년간 빨지 않으리.
* * *
녹음을 시작하기로 한 시점부터 약 4일이나 흘렀다.
과정은 몹시 혹독했다.
현승의 집에서 머무른 시간은 약 4일 중 12시간 남짓.
사라에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 시간이, 하루에 3시간 남짓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군대도 아니고.
3시간 남짓 만에 어떻게 씻고, 밥도 먹고, 잠도 자란 말인지.
거기까진 참을 만했다.
어차피 사라도 곡 작업에 빠지면 며칠씩 잠을 안 자고는 했으니까.
‘복수할 거야.’
사라가 가장 참을 수 없던 건….
고단한 몸을 이끌고 현승의 집에 잠시 들를 때마다 아버님이 슬쩍 챙겨 주던 미숫가루를 현승이 낼름 다 뺏어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복수할 거야.’
사라는 부스 너머로 악착같이 현승을 노려보며 간신히 버텨 내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을 테야.
이미 풀릴 대로 풀려 버린 다리는 사정없이 후들거렸지만.
맥없이 쓰러질 수는 없었다.
‘미숫가루….’
얼른 끝내야만 미숫가루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이제 한 파트만 끝내면 되긴 하는데, 잠시 쉬었다 갈래?”
헤드셋을 통해 HS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부스 창문 너머로 얄미운 얼굴이 보였다.
혼자 미숫가루를 어찌나 맛있게 쪽쪽 마셔 대는지.
당장이라도 뺏어 마시고 싶었지만, 약속은 약속.
도리도리.
사라는 괜찮다며 거절하고는 다시금 스탠딩 마이크 앞에 다가서, 목을 가다듬었다.
─ 아, 아.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HS에게 졌던 기억뿐이다.
기 싸움도, 말싸움도, 자존심 싸움도, 하물며 작곡 능력에서조차 자신이 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녹음판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나 원테이크로 한 번만 쭉 가 봐도 돼?”
사라가 요청했고.
“그러던가.”
현승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윽고.
각자의 헤드셋을 통해 반주가 흘러나왔고.
─ What do you know about me?
사라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현승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 Yeah, just do whatever you want.
현승은 그런 사라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곡에 온전히 녹아들듯 살랑이는 몸짓과 달리 눈빛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 번들거린 까닭이었다.
─ If you’re happy when you curse at me, do it.
기필코 녹음을 끝낸 뒤 미숫가루를 먹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달까?
정말이지.
저 여자는 괴짜가 맞다니까.
─ But I won’t curse you.
물론 사라가 단순히 미숫가루 하나 때문에 악착스럽게 버텨 내고 있는 건 아닐 터였다.
현승도 그걸 알기에, 디렉터를 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용납과 타협도 해 줄 수 없는 거고.
─ I’m busy loving myself.
이내 모든 소절이 끝이 났다.
“…….”
사라는 잠자코 사인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제 입에서 “오케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이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얼른 미숫가루 한 박스 사 줘.”
-였다.
“너 지금 바로 출국할 거야?”
“아니, 최종까지 체크해야지.”
“그럼, 출국하기 전에 사 줄게.”
사라가 “왜?”하며 반문했고.
“미숫가루는 금방 상하거든. 너 미국가서도 먹으려면 출국 바로 직전에 사야 해.”
사실 당장 사 주기 귀찮아서 한 말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사라는 “아.”하고 탄식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한 손을 쭉 내밀며 덧붙였다.
“그럼, 지금 하나라도 줘.”
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 쓰디쓴 시간을 꾹 눌러 담고, 참아 가며, 악착스레 버텨 낸 시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HS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절망적이었다.
“다 먹었는데?”
농담이 아니라는 듯.
“fuck….”
휴지통 안으로 바싹 마른 팩들이 잔뜩 버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