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5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51화(251/482)
제아무리 호텔급을 자랑하는 전용기라도, 오래 있으면 지루한 법.
“하-암.”
현승은 본래 잠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도착하지 않는 비행기 속에서 이미 지쳐 버린 채였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으려나?’
동숲도 질리고, 미연시도 질릴 무렵이 돼서야 챙겨 온 오선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혹시 몰라 챙겨 왔는데, 잘됐네.
슥, 슥-.
음표들이 다소 꼬부랑거리기는 하지만, 어차피 본인만 알아보면 장땡이지.
“음, 음-.”
비행기 엔진 소리를 비트 삼아, 떠오르는 악상들을 수놓고 있노라니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하고 있었다.
“벌써 도착했네.”
역시 시간 죽이기에는, 작업만 한 게 없었다.
“후-.”
현승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양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유니스 뮤직 그룹은 미국 내 본사가 있고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 지사를 두고 있었는데….
오늘 현승이 찾아온 곳은 본사인 미국이었다.
“따라오시죠.”
전용기에서 내린 다음에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준비된 리무진 안으로 몸을 실었다.
현승은 아주 조금의 숨 돌릴 틈도 없이, 리무진에 실려 한참을 달려 가야만 했다.
정말.
이대로면 대표 얼굴 보기도 전에 지치겠다 싶을 때쯤 차량이 부드럽게 정차했고.
“내리시죠.”
건장한 사내들로부터 철저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사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남자들에게 뒤쌓여 걸어가니, 흡사 어둠의 세계 속 보스가 된 기분이랄까….
썩 유쾌한 기분도, 경험도 아니었다.
‘쓰읍….’
현승이 애써 그 헬창 무리와 일행이 아닌 척 로비를 둘러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심플했지만, 고급 갤러리에 온 듯 곳곳에 걸린 미술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발길을 멈춰 세울 만큼 화려한 자태를 자랑했다.
‘잘 꾸며 놨네.’
로비 중앙에 세워진 시계탑은 도시적인 건물과 달리 엔틱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그 위로 달린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 로고는 자체만으로 멋스러움을 뿜어냈다.
터벅, 터벅-.
그렇게 현승은 짐승 같은 사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엘리베이터 안에 구겨지듯 몸을 실었다.
띡-!
그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엘리베이터 버튼 상단에 카드를 인식하자, 맨 꼭대기 층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오.’
아마 저 카드가 없으면 대표실이 있는 층 버튼은 누를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대표실은 아무나 쉬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건가.
하기야.
세계적인 유니스 뮤직 그룹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머무는 공간이라면 그래야 하겠지.
뭐….
그렇다고 위압감이 들거나 긴장감이 몰려오는 건 아니었다.
왜냐고?
이미 전생에서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실 문턱은 여러 차례 넘어 봤으니까.
아아.
물론 자신이 유니스 뮤직 그룹과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오스틴이라는 사람은 이미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띵-동!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엘리베이터는 맨 꼭대기 층에 도착한 채였고.
스르륵-.
문이 열리자, 묵직한 버건디 컬러의 카페트가 현승을 반겼다.
터벅, 터벅-.
자신을 에워싼 남성들은 기어코 대표실 문 앞까지 에스코트를 해 주고 나서야, 한 발자국 물러났다.
혹시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박 전무님이나 김 아빠와 비스름한 체형의 헬창 무리는 보내지 말아 달라고 덧붙여야겠다.
이윽고.
카페트와 곧 잘 어울리는 단풍 빛이 도는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서서히 대표실 내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로비도 마찬가지지만, 현승의 기억 속 대표실보다는 확실히 더 세련된 느낌이다.
전생에서는….
탐욕스러운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인테리어였달까? 번쩍이는 금장으로 덕지덕지 치장되어 있었는데.
물론.
전생의 현승은, 그런 부류와 얘기가 잘 통하기도 했고 말이다.
‘오스틴은 어떤 사람이려나?’
현승은 오스틴을 찾기 위해 대표실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저기요.”
장내는 현승의 목소리가 메아리칠 정도로 층고가 높고 드넓었다.
‘왜 안 보이지?’
아니, 지금 족히 100평은 되어 보이는 이곳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초면에 이런 건 재미없는데….’
현승은 인내심이 워낙 짧은 터라, 고작 1분을 버티지 못한 채, 얼굴 위로 짜증 난 기색을 드러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의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끼이이익-.
모니터 뒤로 숨겨져 있는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머지않아 그 실루엣이 천천히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왔고, 완벽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부 인테리어가 왜 이런지 알겠다.’
포마드로 쓸어 넘긴 백발 머리칼 아래로….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 데이비드 오스틴입니다.”
고급 포도주를 뒤집어쓴 듯 은은한 와인빛 컬러의 수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오스틴은 오랜만에 긴장으로 잠을 설쳤다. 평상시에도 잠은 얼마 못 자는 편이라지만….
누워서 단순히 밤을 새워 본 적은 오랜만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아주 오래전, 결혼식 전날 밤처럼 잠을 설쳤다.
‘이럴 정도는 아니잖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었다.
결국.
오스틴은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루틴에 맞춰 출근을 완료했고.
그 뒤로는….
재깍재깍 초침 바늘 넘어가는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온 신경이 바싹 곤두선 채였기 때문이었다.
1시간, 2시간, 3시간….
분명 쉴 틈 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시간은 느리게만 흘렀다.
그러던 중-.
수행비서로부터 HS가 도착했다는 안내를 받은 시점부터는, 별안간 시간이 곱절로 빨라졌다.
어느덧.
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HS를 마주하게 되었고.
‘어?’
오스틴은 연신 홑꺼풀이 짙게 자리한 눈을 깜빡이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왜냐고?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채였기 때문이다.
그래.
제 상상력을 돋구던 빌런 같은 헬멧이 보이질 않았다.
대신.
무척 탐미하고픈 한 점의 미술 작품처럼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서 있을 뿐이었다.
‘진정하자.’
예측이 어긋나 당황하기도 잠시.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 데이비드 오스틴입니다.”
차분한 어투로 물었다.
“작곡가 HS 씨, 맞으실까요?”
형식상 물어본 것이지만,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작곡가 HS에게 직접 와 달라고 요청했고, 그에 따라 전용기를 보내 주면 방문하겠다고 했으니, HS, 본인이 맞기는 할 테지만….
정말로 대리인일 수도 있지 않나?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그 남자의 붉은빛 입술이 열렸고.
“작곡가 HS입니다.”
오스틴은 그 입술 사이로 ‘HS’라는 말이 흘러나온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쉴 수 있었다.
“그럼, 앉아서 느긋하게 얘기 좀 나눠 볼까요?”
“네, 그러죠.”
이내 소파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고.
“그런데….”
HS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왜 상석이 아니라, 제 맞은편에 앉으십니까?”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어왔다. 뭐, 그럴 만도 하지.
으레 대표들은 어느 손님이 오던 소파 상석에 앉는 편이니까.
하나.
오스틴은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다.
“저는 HS 씨와….”
바로, HS에게 환심을 살 것.
“아무리 계약을 맺는 사이라 해도,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스틴은 신뢰 가득한 미소를 한껏 지어 보였다.
“생각보다 빈말을 잘하시네요.”
하나, HS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듯 보였다.
“이런 이미지이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그런가요? 그럼, 작곡가님이 생각한 제 이미지는 어떠셨나요?”
“뭐, 처음에 유통 수수료로 장난치신 거 보고, 괄괄한 악덕 기업 대표 이미지를 생각하며 왔거든요.”
오스틴은 쥐었던 찻잔을 놓칠 뻔했다. ‘괄괄한 악덕 기업 대표’라는 표현이야말로 자신이 들을 거라 예상치 못한 말이었던 까닭이었다.
달그락-.
컵이 받침대에 떨어지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었다.
“아, 그런 이미지….”
오스틴은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며, 알코올 향이 밴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스윽, 스윽-.
그러고는 이내 손바닥에 맺혀 가는 땀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반문도, 요구도 없기에 ‘별생각이 없는 건가?’ 싶었는데.
지금.
은근히 솟아 있는 가시들로 보아,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뭐, 그거야 재미나 보자고 한 일이실 테니 각설하고.”
HS는 정작 몹시 태연한 얼굴을 한 채, 완전히 제 페이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눠 볼까요?”
그 물음에 오스틴이 주도권을 뺏어 오고자, 입을 열려던 찰나.
“얼마나 후한 조건을 제시하려고, 저를 여기까지 불러들이셨는지 얼른 들어 보고 싶네요.”
HS가 앞서 말을 덧붙였다.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흘러나오는 여유는 마치 업계에서 오랜 시간 굴러먹은 듯한 사람 같아 보였고.
어지간한 꼼수 따위로는 그를 컨트롤할 수 없을 거라는 경보음이 머릿속에서 강렬히 울려 대고 있었다.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시는 듯 보이니, 서론은 접어 두고….”
물론.
오스틴도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인 유니스 뮤직 그룹의 수장 격인 그는 이런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저런 사람에겐 되레 직구가 더 잘 먹히는 법.
“음원 발매 등록 비용은 당연히 면제고, 음원 유통 수수료를 10%까지 내려 드리겠습니다.”
“10%요?”
“네, 10%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건 LS 엔터 내에서도 작곡가 HS 님에게만 한정된 조건입니다.”
역시, 먹혀들 줄 알았지. 제 예상대로 HS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얘기하자면….
15%로 설정을 잡아 뒀지만, HS라는 인물의 특성을 고려해 즉흥적으로 퍼센트를 줄여 본 것이었다.
쉬이 거절할 수 없을 만큼 탐스러운 조건을 내밀어야, 그가 유니스 뮤직 그룹에 가졌던 반감을 덜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10%라는 수수료는, 제법 이름을 알리는 해외 가수들에게 제시되는 조건이기도 했다. HS도 바보가 아니라면 알 테고.
“어떠신가요?”
페이스를 온전히 되찾은 오스틴이, 자신만만한 어투로 물었고.
“아….”
HS의 입술 사이로 알 수 없는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잠시.
“어쩌죠? 괜히 계약을 파기하고 싶어지는데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튀어 나왔다. 오스틴은 당황한 나머지, 기대고 있던 상반신을 쭉 내밀며 “예?” 하고 되물었다.
“아니, 이 멀리까지 불러들이길래, 저는 세상이 뒤엎어질 만큼 파격적인 조건이라도 제시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HS는 기운이 빠진 듯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오히려 힘 빠져서 이 유통 계약 자체를 해지하고 싶어질 정도로 실망스럽네요.”
그러기도 이내, 똑같이 상반신을 앞으로 쭉 내밀며 덧붙였다.
“좀 더 성의가 듬뿍 담긴 조건으로 제시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오스틴은 HS의 능글스럽다 못해, 징그러울 만큼 뻔뻔한 얼굴빛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럼, 가능하시리라 믿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한번 만나 뵙고 얘기하죠.”
이 와중에.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윽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더욱 기가 막혔다.
“아 참,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되나요?”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긴 오스틴은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애꿎은 손수건만 꽉 쥐어 보일 뿐이었다.
“여기 대표실 인테리어가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입에 모터라도 달린 것마냥, 신랄하게 말을 이어 나가던 HS는, 이내 바닥에 내려놨던 정체 모를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거 사라 스튜어트한테 좀 전해 주시겠어요?”
이미 기가 빨린 오스틴은 앞선 얘기에 대해선 말할 힘을 잃어버렸다.
“대체 이게 뭡니까?”
그저 박스로 시선을 옮긴 채, 맥 빠지는 투로 물을 뿐이었다.
“사라 스튜어트 가져다주면 좋아할 겁니다.”
HS는 명확한 대답 대신, 애매한 답변만 늘어놓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먼저 선톡 주세요.”
그러고는 이내 입꼬리만 싱긋 올려 보이고는 긴 다리를 휘적이며 대표실을 나가 버렸다.
“아….”
오스틴은 그런 HS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테이블 위에 놓인 명함을 집어 들었다.
songwriter. HS
010-xxxx-xxxx
ts.hs@ls_entertainment.com
명함을 보고 있노라니, 절대 남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선언한 사라 스튜어트가 별안간 HS의 곡은 부르겠다고 한 건지 알 것도 같았다.
‘음….’
사라 스튜어트도 어디 가서 뒤처지지 않는 괴짜라지만, HS는 아예 결이 다른 괴짜였다.
그래.
영화 속 매력적인 악역처럼, 절대 마음대로 컨트롤하거나, 손에 쥐어 낼 수 없지만 계속 지켜보고 싶은 그런 인물이었다.
‘승부욕도 좀 불타오르고….’
이윽고.
명함에 적힌 번호를 저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번호는 오스틴의 휴대폰에 처음으로 저장된 ‘작곡가’의 연락처였다.
“흠….”
그러고는 이내 다시금 박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쓰읍….’
혹시 이게 사라 스튜어트를 얌전하게 만든 묘수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