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5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53화(253/482)
서양인이 ‘삼고초려’라는 사자성어를 아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런 ‘삼고초려’의 마음을 새기며 누군가를 찾아가는 경우는?
오스틴은….
본인이 처음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요청하신 조건으로 수정했습니다.”
오스틴은 HS가 머무르는 호텔을 다시금 찾았다. 물론, 손에는 수정된 계약서를 든 채로.
“…….”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
오스틴은 애써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어차피 더 안달이 난다 한들,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온 걸음이었으니까.
이윽고.
날카로운 눈매로 계약서를 살펴보던 HS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고대하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찾아온 걸음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사락, 사락-.
HS의 사인이 새겨진 계약서를 보자,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보며 보람차 했던 적이 언제였더라?
‘역시 신선해.’
오스틴은 결과물을 얻어 낸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하고픈 말도, 나눠 보고 싶은 주제도 많았지만….
추후를 기약하며 일 보 후퇴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
‘HS 한정’이라는 조건을 ‘LS 엔터테인먼트 전체’로 변경해 달라고 했을 때, 지금 당장은 어떤 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HS를 제 사람으로 끌어당기는 건 어렵겠다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오스틴은 단 한 번도 원하는 바를 손에 못 얻어 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는 기필코 HS를 제 사람으로 만들겠노라 결심하며 인사를 전했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자신의 발목을 잡은 건, 의외로 HS였다.
“저, 번외로 요청 사항이 하나 있는데요.”
대체 또 뭘까….
“예, 얘기하시죠.”
걸음을 멈춘 오스틴은 아예 HS를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또.
얼마나 신선한 요청을 하려는 건지 들어 볼까 싶어서였다.
머지않아.
HS의 입술이 열리고.
“돌아가기 전에 유니스 뮤직 그룹 견학 체험 가능한가요? 저작권 보호와 같은 문제로 불가능하다면 괜찮습니다.”
오스틴의 얼굴 위로는 알 수 없는 화색이 돌았다.
“얼마든지, 언제든지 구경해 보셔도 됩니다.”
* * *
김우현은 현승이 미국으로 떠난 뒤,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너무 오래 걸리는데…….’
거리가 있으니 오고, 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채였다.
─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하물며, 연락도 받질 않으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잠식해 나갔다.
설마, 감금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 와중에, 윗선에선 유통 계약 변경 건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재차 확인 요청을 해 왔다.
아니.
애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거 보면, 이 바닥은 정말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로 만들어 낸 정글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이 바닥이 굴러가는 순리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김우현 또한 누군가에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법한 인물이었고 말이다.
다만, 예외란 항상 있는 법.
“녀석, 걱정되는데 문자라도 해 주면 손가락이 부서지나….”
김우현에게 있어선 현승이 예외였다.
톡, 토도독-.
김우현은 임원 회의에 참석하는 와중에도 휴대폰을 붙잡은 채, 현승에게 문자를 써 내려 갔다.
[ 민현승, 보아라. 너는 어찌 그 멀리 가서 연락 한 통이 없느냐. 목이 빠져라, 너의 안부를 걱정하는 이 아비의 심정을 정녕 몰라 그러느냐. ]아, 너무 오바했나? 다시, 다시.
[ 현승아, 오늘의 운세 타로 카드를 봤는데 너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더라… 혹시 거기서 진정 새로운 인연을 찾은 것일까? ]아, 이건 너무 전 남친 같고.
[ 현승아, 구내식당 영양사님이 바뀌면서 음식 맛도 좋아지고, 메뉴도 다양해졌더라. 얼른 먹으러 와. ]괜찮기는 한데… 유치하게 먹는 걸로 꼬시는 것 같고.
[ 현승아, 걱정되니 이거 보면 연락 한 통 해 줘라. ]역시 심플 이즈 베스트지.
김우현이 흡족하다는 얼굴로 문자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 민금동 ]그토록 기다리던 민금동, 아니, 현승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 녀석아!”
김우현은 차분히 전화를 받으려던 마음과 달리, 걱정되었던 마음이 한 번에 몰려와 자신도 모르게 호통을 내질렀다.
─ 목청이 아주 날로 갈수록 좋아지시네요.
상대편에서는 늘 그랬듯, 능글스러우면서도 태연한 현승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요즘 저 몰래 뭐 좋은 거 챙겨 드세요?
“됐고, 너 지금 어디야?”
─ 지금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 내 엔지니어실이요.
“혹시 지금 협박을 당하고 있다던가, 그 측으로부터 감금당하고 있는 상황인 거야? 대답하기 좀 그러면 수화기를 두 번 두들겨 줘.”
─ 아무래도 본부장님 이상한 범죄 스릴러나 느와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설마 유니스 뮤직 그룹으로 이적을….”
─ 예?
“타로 카드에서 새로운 인연이 온다는 말이 진짜였던 건가?”
수화기 너머에서 현승의 한숨 섞인 “또 시작이네.”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잠시.
─ 유통 계약 수정은 완료했고, 조금 구경하다 귀국할 거예요.
김우현이 이상한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딱 잘라 팩트만 전달했다.
“재계약 완료한 거야? 근데 왜 말을 안 해 줬어.”
─ 들어가서 말하려고 했죠.
“나 안 그래도 곧 임원 회의 참석하는데, 보고 드리게 얼른 말해 줘. 최종적으로 어떻게 협상 완료했는지.”
─ 음원 발매 등록 비용 없이, 수수료 3%.
그 짤막한 대답에 김우현이 소녀처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와, 3%? 이게 말이 돼?”
그도 그럴 것이.
현 국내 엔터들은 유니스 뮤직 그룹과 유통하려면 기본 20%대 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고,
해외 유명 프로듀서나 팝 스타들도 아무리 적어도 5~10%대 수수료를 지불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3%라니? 이 정도면 형식적으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라 치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요즘 ‘엣치스’라는 네임벨류의 값어치가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니스 뮤직 그룹에서 그 정도로 낮추고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데 이 정도까지 맞춰 줄 거면 처음에는 왜 사람 빈정 상하게 그런 조건을 내밀었을까?”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 봤자 금동이한테는 안 되는데 말이야.”
현승이 김우현의 주접에 피식 웃어 보이기도 잠시.
─ 그래도 재밌었어요. 아, 맞다. 이걸 까먹었네.
무언가 떠올랐는지, 곧장 말을 덧붙였다.
─ LS 엔터테인먼트 해외 유통 곡 전부 동일 조건 부여.
그 말에 김우현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눈만 깜빡거렸다.
입술이 굳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이거 꿈인가?’
혹은.
‘내가 잘못 들었나?’
애꿎은 휴대폰만 양손으로 번갈아 고쳐 잡으며, 바지춤에 땀을 닦아 내던 그때.
─ 임원 회의 들어가신다고 하셨죠? 들어갈 때 어깨에 힘 좀 잔뜩 주고 들어가세요.
현승이 덧붙인 말 때문에, 김우현의 사고 회로는 아예 멈춰 버렸다.
─ 그럼 귀국해서 연락 올릴게요.
전화가 맥없이 끊길 때까지, 김우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현승은 처음 놀이공원이라도 놀러온 어린아이마냥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 내를 누비고 다녔다.
‘오.’
호텔식 뷔페 버금가는 구내식당부터 최고급 장비가 갖춰진 엔지니어실을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덧 피로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 구경할 만큼 한 것 같으니, 한국으로 돌아갈까.
[ 금동아 구내식당 영양사 선생님이 새로 오면서 메뉴도 많아지고 맛도 더 좋아졌어. 돌아오면 일 년 치 식권 사 줄게. ]무엇보다, 김우현으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하고 나니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
제아무리 호텔식 뷔페 버금가는 브런치와 육즙 터지는 소세지가 가득한 구내식당이라 할지라도.
역시 한국인이라면 흰쌀밥에 제육볶음을 비벼 먹고, 구수한 된장국으로 입가심을 해야 하는 법.
이내.
현승이 제 옆만 쫄쫄 쫓아다니는 앤드류에게 말했다.
“견학 체험은 이쯤이면 충분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로 리무진과 전용기 준비해 둘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그가 어디론가 전화 통화를 끝내고는 계속 제 곁을 지키기에, 지그시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혹시 안 바쁘세요?”
“가시는 길, 배웅은 해 드려야죠.”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요, 그래도 중요한 파트너….”
“제가 알아서 시간 맞춰 로비로 나갈 테니, 차량이랑 전용기만 잘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현승이 말을 딱 자르며 완강히 즉답하자, 앤드류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기도 잠시.
“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20분 정도 있다가 로비 내려가시면 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물러났다.
그래도 눈치가 제법 있는 편인 모양이었다.
‘뭐….’
유니스 뮤직 그룹에서 실장직을 맡고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당연한 얘기였다.
‘20분동안 뭐 하지?’
현승이 로비로 걸음을 옮기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갔다.
가만히 기다리는 걸 제일 못하는 편이었으니까.
‘가만 있어 보자….’
닌텐도는 이곳에 오기 전, 가져온 옷가지와 함께 전용기에 미리 실어 놓도록 보내 놓은 상태였고.
여분의 오선지 또한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흠….”
현승이 팔짱을 끼운 채, 심오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찰나.
툭-.
어떤 남성의 어깨와 강하게 맞부딪쳤다. 아니, 이렇게 넓은 복도에서 이렇게 부딪힐 일인가?
스-윽.
무엇보다 꽤 단단한 팔뚝의 감촉이 느껴졌던 탓에, 현승이 고개를 돌려 남성을 바라봤다.
상대 남성 또한 비슷한 이유로 현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헬창은, 헬창을 알아보는 법.
“눈을 어떻게 뜨고 다니는 거야?”
사실 헬창이 아니어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꼭 부딪친 게 아니라도, 한 번쯤 돌아봤을 것이다.
왜냐고?
지금 현승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명실상부 ‘팝의 황제’라 불리는 남자였으니까.
전 세계적으로 그를 모르는, 아니,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무엇보다.
작곡가는 훌륭한 악기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
또한.
전생에서조차 연주해 보지 못했던 악기여서일까?
“하이.”
“왓?”
현승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에 강하게 새겨 들었다.
‘그래, 기회란 왔을 때 잡는 법.’
현승은 자신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남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너, 내 악기가 돼라.”
별안간 어릴 적 재밌게 봤던 만화의 명대사가 떠오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