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5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57화(257/482)
현승의 작업실은 아침부터 노크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챌린지 영상을 보고는, 자신과도 함께 찍어 달라 요청해 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아빠보다 엄마가 좋다더니!”
김우현부터 시작해서….
“작곡가님!”
강하준, 서지니, 정하린, 윤제이에 이르기까지 다들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재 오지라퍼 이효은이 스케줄로 바빠 잠잠하다는 것이었다.
띠링!
작업실이 한적해지기도 잠시.
[ 문범재 선생님: 챌린지라는 거 참여해 보려는데 어떻게 찍는지 좀 도와줄 수 있나? ]이젠 휴대폰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 조만간 작업실 들러 주세요. ]현승이 문범재에게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다시 한 통이 도착했고.
[ 망아지호: 저희 더문도 챌린지 참여했습니다. ]이내 현승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답장을 보냈다.
[ 어쩔티비 ]안 그래도 새로운 악기(*빈센트)를 연주할 최적의 곡을 작업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왜 이렇게들 정신없게 하는 건지.
휴대폰을 잠시 꺼 버려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전원 버튼을 꾹 누르던 찰나였다.
[ 자네.혹?나와의.대국을.잊은.것은.아니겟지?기다리고.있겠네.ㅡㅡ.생각날적,한번.들리겠나? 바빠도.김밥.먹으면서.대국.한번.하게나.. @))))))) 맛점. ]잠시 잊고 있던 이두석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간혹 명언이나 이상한 이모티콘이 적힌 안부 문자를 보내오시긴 했지만, 요즘 통 정신이 없었던 터라, 아예 까먹고 있었다.
한번 가야지, 가야지.
마음만 먹은 게 벌써 몇 달째인지, 이번 작업이 끝나면 꼭 한번 찾아뵈야겠다.
[ 선생님, 저 김밥 싫.. ]이두석에게 답장을 보내던 그때, 별안간 액정 화면이 까매지면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차.”
현승은 망연자실한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도 그럴 게, 받기 싫은 이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하필 패드를 두들기던 중이라, 받기 버튼이 눌려 버린 까닭이었다.
[ 붉은 실 담당자 ]액정 화면에 정확히 떠 있는 발신자명을 재차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붉은 실 담당자는 통화만으로 사람의 기를 모조리 빨아 가는 능력을 지닌 여자였다.
혹시 이 여자 뱀파이어는 아닐까? 사람의 피 대신 기를 빨아 먹는 그런 뱀파이어.
‘아, 망했네.’
현승이 잡생각에 잠겨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작곡가님? 안 들리시나요? 여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예?
어쩌지, 벌써 기 빨리는데… 그냥 끊어 버릴까.
아니다.
그럼, 또 집착적으로 전화를 걸어올 테니까.
“예, 여보세요.”
받아서 딱 잘라 얘기해야지.
─ 아! 이제 들리시나요? 무슨 일 있으신 줄 알고 걱정했어요.
“아무 일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미 드라마 종영한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시죠?”
─ 무슨 일이긴요! 늦었지만, 이번에야말로 꼭 식사 한번 대접해 드리려고 그러죠!
현승은 미간을 찡그리며 스피커에서 확 귀를 떼어 냈다. 이 여자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정말.
이 목소리를 앞으로 안 들으려면, 완강히 거절해 놔야겠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굳이 대접해 주실 필요 없으니까 정말 신경 안 쓰셔도 됩….”
─ 저도 저지만, 음악 감독님이나 연출 감독님도 꼭 한번 뵙고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하셔서요.
하나, 여자는 또다시 제 말을 자르며 애절한 투로 말을 이었다.
─ 너무 바쁘시겠지만, 하루만 시간 내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제발, 부탁드릴게요.
현승이 한숨을 쉬기도 잠시.
“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착 깔린 목소리로 단호하게 덧붙였다.
“저는 모르는 사람과는 곧 죽어도 같이 밥 안 먹습니다.”
─ 우리가 왜 모르는 사람이에요! 같이 작업했으면 다 같은 식구죠!
“대체 그게 무슨 논리입니까?”
─ 혹시 신상 노출이 걱정되셔서 그러는 거면, 외부에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는 기밀 계약서 작성하면 만나 주시나요?
“아니,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 뭐든 맞출 테니, 한 번만 대접할 기회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사실 중간에서….
바짓가랑이 붙잡듯 말을 잇던 여자는 별안간 말끝을 흐렸고,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음.’
아마 이 여자도 온전히 제 의지로 이러는 건 아닌 듯 보였다.
감독들이 자신과 연을 터놓기 위해, 계속 식사 자리 한번 잡으라고 어지간히 닦달하는 모양이지.
─ 아, 아무튼!
머지않아 여자는 다시 밝은 목소리로 돌아와 소리쳤다.
─ 작곡가님 일정에 저희가 다 맞출게요! 식사 한 번만 꼭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음, 그럼, 식사는….”
현승이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다음 생에 하는 걸로 하고, 이번은 안 되겠습니다.”
─ 아, 작곡가님! 잠시, 잠시만요!
“예, 예,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매정하게 전화를 툭 끊어 버린 현승은 곧장 여자의 번호와 까똑을 차단해 버렸다.
구태여 외부에 아는 인연을 늘려 나갈 필요가 없기도 했거니와, 드라마 OST 작업에 딱히 큰 흥미를 못 느낀 까닭이었다.
“후….”
이제 정말 휴대폰도 꺼 버리고, 작업만 해야지.
빈센트는….
무조건 내 악기가 될 테니까.
* * *
김우현은 본부장이 된 이후 부쩍 바빠진 일정 속에서도, 현승에게만큼은 소홀한 적 없었다.
실장 때처럼 자주 보고, 밥을 먹는 건 불가능했지만….
출·퇴근하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외부 일정을 오가는 길은 꼭 현승이 만든 곡과 함께했다.
물론.
현승이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듣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김우현이 요즘 가장 꽂힌 곡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곧 발매 예정인 ‘look at me’라는 곡이다.
파워풀하면서도 절제된 리듬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래.
분명 이 곡이라면 빌보드 차트 1위쯤 무리 없이 해낼 터였다.
곡도 좋지만,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를 쓸어 버린 라이징스타, 사라 스튜어트가 부르기도 했으니까.
물론.
현승이 ‘빈센트’를 악기로 스카웃하기 위해 필요하다던, ‘빌보트 차트 3달 연속 1위 유지’라는 조건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지만….
사라 스튜어트의 유명세로 상위권까지 견인해 오면, 중독성 강하고 강렬한 멜로디로 맨 꼭대기 자리에 알 박기 해 버리면 게임 끝.
‘가능할 거야.’
적어도 김우현은 결단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승의 곡이니까.
현승이 언젠가 정말 제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다소 마음이 아팠지만….
누구보다 현승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지금은 ‘HS’라는 이름을 더 넓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봐야만 할 때였다.
똑, 똑, 똑-.
고민 가득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현승의 작업실 앞에 도착한 채였다.
“엄마, 오셨어요.”
“아이고, 작업실 꼴이 이게 뭐야.”
김우현은 현승의 작업실을 훑어보고는 곧장 쓰레기봉투 하나를 챙겨 들었다.
잠도 안 자고 작업하는 건지….
고카페인 음료 캔이 구겨진 채 굴러다녔고,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잔 수십 개는 탑을 쌓고 있다.
하물며.
저기, 카페인 알약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너 요즘 계속 이런 거 먹고, 잠 안 자면서 일하지?”
“그런 의미로 손에 있는 커피 좀 주시면 안 돼요?”
현승이, 제 손에 들린 커피를 가리키며 물어 왔고.
“아니,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 가면서 일을 해야지.”
“뭐, 어차피 잠은 죽어서 무덤 가면 실컷 자잖아요.”
“그러다 진짜 무덤에 프리 패스로 들어갈 수도 있어.”
이내 현승이 퀭한 얼굴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혹시 죽으라고 악담하러 오신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네 얼굴 상태 좀 봐.”
“제 얼굴이야, 늘 잘생겼는데 뭘 또 체크까지.”
“지금 저승사자가 제 동료인 줄 알 정도야.”
거울 앞에 선 현승이 때꾼해진 제 뺨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살크업 중인데 잘 안 되네요.”
김우현은 얼굴을 감싸 쥔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지금 살크업이 문제가 아니거늘.
김우현은 정말 이러다 빌보드보다, 하늘나라를 먼저 찍는 건 아닐는지 걱정이 앞섰다.
“안 되겠다. 너 이틀 정도 강제 휴가 다녀와라.”
“그건 안 돼요. 아직 작업 안 끝났거든요.”
“어차피 사라 곡도 발매하려면 이틀 남았고, 3달 이상 1위 해야 빈센트 스카웃할 수 있다며? 그러니까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그 말에 현승이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짝-!
김우현은 무언가 떠오른 듯, 손을 맞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아, 얘기 나와서 묻는 건데 사라 발매 관련해서 홍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안 그래도, 곽 팀장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의아해서 꼭 물어야겠다 생각했던 점이었다.
비록.
유니스를 통해 발매된다고는 하나 전 세계로 유통되기 때문에 한국 음원 플랫폼에도 풀릴 텐데 왜 홍보를 하지 말라는 거지?
HS X 사라 스튜어트
사람들은 이 둘의 이름만 보더라도 열광할 텐데, 이만한 홍보 효과가 어딨다고.
“유니스 측에서 전미 투어 콘서트 시작과 동시에 신곡 발표할 거라는 기사뿐이길래요.”
김우현은 현승의 대답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니스 측과 우리 측 홍보는 당연히 차이를 둬야 하는 거 아닌가?
일절 홍보 없이, 발매되어 버리면 대중들은 그 곡을 HS가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물론.
작곡·작사란에 적힌 필명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걸 일일이 확인해 보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이내.
김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유니스 측에서 홍보 안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미숫사라가 다른 작곡가한테 곡 안 받고, 본인이 만든 곡만 부르기로 유명하다잖아요.”
“미숫사라?”
“아, 사라 스튜어트요.”
사라 스튜어트가 남 곡 안 부르는 건 무슨 상관이지? 미숫사라는 또 뭐고?
김우현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현승의 말들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연했다.
“근데 어차피 저작권자에 네 이름 실려 있어서 머지않아 대부분 다 알게 될 텐데-.”
현승은 고개를 내저으며 완강히 대답했다.
“물론 그렇죠. 근데 미숫사라가 구태여 먼저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에 김우현이 말을 잇지 못한 채 금붕어마냥 입술을 뻐끔거렸다. 지, 지금 우리 금동이가 남을 먼저 생각한 거 맞나?
요즘 매일 같이 철을 들더니, 진짜 철이 든 건가?
그때.
현승이 헤드셋을 벗어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그럼, 저는 엄마 말대로 오늘은 이만 들어갈래요.”
심지어, 내 말을 듣겠다고 하지 않는가?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고카페인으로 뇌가 손상되었다던가….
“그래. 그럼, 얼른 들어가서 밀린 잠 좀 자자.”
“네, 그리고 내일 새벽 일찍 나와야겠어요.”
“어? 그냥 내일도 푹 쉬고 모래 나오라니까.”
“안 돼요, 운동하러는 꼭 나와야 하거든요.”
“에이, 운동 하루쯤 쉬어도 되잖아.”
일순간, 현승이 굳은 얼굴로 김우현을 불러 세웠다.
“엄마.”
“어?”
그러고는 제 셔츠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뱃살을 뚫어져라 보며 물었다.
“요즘 살 좀 찌신 거 알죠?”
“큼, 접대해야 할 자리가 늘어나다 보니….”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러다 일 년이 되는 겁니다.”
현승의 촌철살인 같은 말은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아무리 바빠도 운동 좀 하세요. 30대 되면 나잇살이라, 잘 빠지지도 않을 텐데.”
기어코 자신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꺼냈다.
“지금 근돼 같아요.”
“근돼?”
“예, 근육 돼지요.”
그럼, 그렇지.
“마치 지방 적절히 잘 섞인 오겹살 같달까?”
“뭐라고, 이놈아?”
“농담이고, 지금 집 가서 오겹살 먹어야겠네요.”
“어휴, 내가 앓느니 죽지.”
진정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저런 비수 같은 말을 사람 면전에 두고 하지는 못할 터였다.
한마디로-.
무거운 ‘철’을 좀 들게 되었다고, 진짜 ‘철’이 드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래.
한번 금쪽이는, 영원한 금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