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6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62화(262/482)
데이비드 오스틴은 빈센트 마흐로부터 별안간 대표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속 가수이긴 하나, 서로 바쁜 스케줄로 중대한 회의나 계약 논의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오스틴은 자신이 앉은 소파의 팔걸이를 구석구석 닦아 내며 여러 추측을 세워 나갔다.
혹시….
소속사 이적을 하고자 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계약 조건에 대한 불만 제시?
그럴 리가.
세계적인 유니스 그룹보다 더 좋은 소속사가 있을 리 없다.
설령 누군가 빈센트만을 위한 1인 기획사를 차려 준다고 한들, 계약 조건에 있어서 유니스보다 만족시켜 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뭐지?
연애? 결혼? 그도 아니면 설마 사고라도 친 건가?
여러 추측이 난무하던 그때.
대표실 앞에 도착한 빈센트가 문을 두들겨 왔다.
똑, 똑, 똑-!
오스틴은 목을 가다듬은 뒤,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들어와요.”
머지않아 대표실 문이 열리고,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빈센트가 빠른 걸음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오스틴은 빈센트에게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바로 묻고 싶었지만, 우선 자리에 앉으라 명했다.
“목에 좋다는 따듯한 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천천히 들며 얘기해 보도록 하지.”
하나, 차분히 얘기를 나누려던 오스틴과 달리 빈센트는 소파에 앉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혹시, HS라는 사람 연락처 알 수 있습니까?”
뭐가 그리 급한지,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기세였다.
“HS?”
“네.”
사실 왜 묻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번 사라 스튜어트의 타이틀곡 때문이겠지.
절대 다른 작곡가의 곡은 받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사라 스튜어트가 다른 이의 곡을 불렀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졌으니, 궁금하겠지.
안 그래도 사라 스튜어트가 데뷔한 이후, 빌보드 차트 순위를 두고 경쟁하던 사이니까.
물론.
둘의 제작자랄 수 있는 오스틴의 입장으로선,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쪽이 더 반가웠다.
그래.
이미 가요계 정상에 오른 빈센트가 점차 안일해져 가던 찰나, 사라의 등장으로 다시금 긴장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아.
사라 스튜어트 또한 아닌 척하지만, 빈센트 마흐를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는 눈치고.
“그 사람 연락처는 왜 묻지?”
오스틴은 안절부절못해 보이는 빈센트를 천천히 훑으며 물었다.
하나.
빈센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이 예상한 것과 조금 달랐다.
“그 사람이 오스틴 통해서 연락하라고 했거든요.”
빈센트가 HS를 찾고 있는 게 아니라, HS가 빈센트를 찾고 있는 거였나?
하기야.
빈센트 정도라면, 전 세계 어느 작곡가나 탐낼 만한 가수이긴 했다. 빈센트는 데뷔 이래 굴곡 없는 가수, 빌보드의 황제, 신이 내린 목소리, 악마와 거래한 가수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인물이었으니까.
다만.
오스틴은 선뜻 HS의 연락처를 내놓을 수 없었다.
만약 HS가 빈센트 마흐를 원하는 게 맞는다면, 소속사를 통해 공문을 보냈지 않았을까?
그것도 번거롭다면, 자신에게 따로 요청해 보거나.
아, 물론 빈센트라면….
사라 스튜어트가 HS의 곡을 부른 일을 몰랐다는 가정하에 전미에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곡은 들어 보지도 않고 거절했을 테지만.
“내가 연락해 보는 걸로 하지.”
오스틴의 입에서 나온 답변에, 빈센트가 놀라며 되물었다.
“왜죠? 그냥 저한테 그 사람 연락처를 주시면….”
“아니, 내가 직접 연락해 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때 알려 주도록 하지.”
빈센트는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술만 뻐끔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니스 뮤직 그룹에 간판과 같은 오스틴이 직접 연락하겠다는 대목도 놀라웠거니와, 자신 같은 거물이 작곡가의 연락처를 묻는다면 당연히 작곡가로선 경사와 같은 일이거늘….
그와 반대의 처지가 된 것처럼, 작곡가에게 동의를 구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얘기하고 있질 않은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해.’
빈센트의 자존심에 엄청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따로 무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오스틴은 늘 음악 앞에서만큼은 미치광이 괴짜처럼 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음원 유통사이자 대형 레이블의 대표이다.
한마디로….
계산적으로 따졌을 때 자신에게 득이 될 만한 인물에게 우호적인 사업가의 기질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
그런 오스틴이 자신에게 이렇게 나올 정도라면, 분명 ‘HS’라는 인물은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제법 이득이 되는 인물이라 판단한 것이겠지.
그때.
장내에 흐르던 침묵을 먼저 깨부순 건, 오스틴이었다.
“그럼, 이만 나가 보도록.”
이쯤 되니, 빈센트의 속에선 알 수 없는 오기가 샘솟았다. HS라는 인물을 애타게 만들고 싶다는, 그런 오기 말이다.
“잠시만요.”
빈센트가 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이 말도 꼭 같이 전해 주세요. 그쪽이 내기의 조건을 충족지 못했으나, 특별히 다른 내기를 제안하겠다고 말이죠.”
그러고는 급히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오스틴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다, 이내 깊은 침음을 흘렸다.
“흐음….”
둘 사이에 오갔다는 내기의 내용이 몹시 궁금했던 까닭이었다.
* * *
김우현과 현승은 오랜만에 한정식집을 찾았다.
“아, 배부르다.”
맛있게 배를 채운 뒤, 수정과로 입가심할 때까지 김우현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아주 휴대폰에 들어가시겠어요.”
현승의 이죽거리는 어투에도 김우현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네 곡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렇지.”
김우현의 말대로 현승이 만든 ‘Look at me’는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많은 팝스타의 커버 영상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뿐이랴?
현승이 편곡을 봐준 ‘Black angel’은 단순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막상 당사자인 현승은 기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 백날 ‘Black angel’이 1위를 한다고 한들, 직접 작곡한 ‘Look at me’가 1위를 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었다.
“네 팬들이 해외로 진출할 땐 하더라도, 팬 사인회만큼은 꼭 하고 가라는데?”
하나, 김우현은 현재 현승의 기분이 몹시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 현승은 본인의 일도 마냥 남 일인 것처럼 의연하게 구는 놈이었으니까.
김우현은 이번에도 단순히 그런 거라 여기고, 신나서 떠들어 댔다.
“진짜 조만간 팬 사인회 한번 열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 시작하면….”
“본부장님.”
“어?”
“수정과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그 말에 김우현은 수정과가 담긴 찻잔을 내려다봤다. 이거, 차가운 수정과인데 뭐가 식는다는 거지?
“금동아, 너 어디 아파?”
“다 드셨으면 이만 일어나죠.”
현승은 묵묵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현재 ‘Look at me’가 빌보드에서 1위를 못 하고 있는 건, 순전히 제 능력 탓이니까.
그래도, 투정은 조금 부려 볼까.
“저 기분 꿀꿀하니까, 엄마가 계산해 주세요.”
“어?”
“정말 오늘 기분이 너무 꿀꿀해서 그래요.”
김우현은 뻔뻔하게 계산해 달라는 현승의 말에, 거의 반강제로 계산대 앞에 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내 식당 가자고 할걸….
‘반응이 참 좋단 말이지.’
현승이 난처해 보이는 김우현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남몰래 웃음을 참아 내던 찰나였다.
띠링-! 띠링-!
별안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이 연속적으로 울려 댔고.
“음?”
액정을 통해 보낸 이를 확인한 현승은 눈썹을 들썩거렸다.
[ 알콜중독자님으로부터 온 새 메시지 +2 ]다름 아닌, 오스틴이었다.
처음 마주한 그에게는 단 하나의 세균도 허락지 않을 것 같은 알코올 냄새가 풍겨 왔었기도 하거니와.
소파에 소독용 알코올을 뿌리고 앉고, 알코올 향이 진득하게 밴 손수건을 사용하는 것 같길래 ‘알코올 중독자’로 저장해 두었다.
스-윽
현승은 재빨리 잠금 패턴을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
[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첫 번째 메시지를 봤을 땐 고개를 갸웃거렸고.
[ 다름 아니라, 빈센트 마흐 관련해 드릴 얘기가 있으니 가능하실 때 전화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메시지를 확인했을 땐, 입가에 미소가 서서히 퍼졌다.
이윽고.
현승이 김우현의 어깨 너머로 카드 한 장을 슥 내밀며 말했다.
“기분이 다시 좋아졌어요. 이걸로 계산하시죠.”
* * *
식사를 마친 뒤, 현승은 오스틴과 통화를 나누기 위해 곧장 작업실로 복귀했고.
김우현은….
식후 커피를 사기 위해, 카페 테라스로 향했다.
뚜르르르-.
홀로 남은 현승은 곧장 오스틴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머지않아.
수화기 너머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바쁘실 테니, 본론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역시 이 아저씨 마음에 든다니까.
─ 빈센트 마흐에게 저를 통해 연락 달라고 하셨다는데 맞을까요?
“네, 그랬었죠?”
─ 안 그래도 오늘 빈센트가 작곡가님의 연락처를 묻더라고요.
현승은 들리지 않게, 입 모양으로만 ‘오’ 하고 환호를 질렀다.
문자 내용 보고 얼추 예상했던 내용이긴 한데, 콧대 높은 빈센트가 웬일이지? 아직 빌보드에서 1위 연속 3달은커녕, 1달도 못 해 봤는데.
하나.
이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그러면서 내기의 조건을 충족지 못했으나, 특별히 다른 내기를 제안하겠다고 전해 달라고 하던데….
그럼, 그렇지.
하여간 전생에서부터 재수 없기는 매한가지라니까.
─ 빈센트 보고 직접 연락하라고 할까요?
“잠시만요, 혹시 제 연락처 알려 주셨나요?”
─ 아직 안 알려 줬습니다만.
“그럼, 연락처 대신 제 말 좀 전해 주시겠어요?”
그래.
이번 생에야말로, 빈센트의 드높게 치솟아 오른 콧대를 꺾어 놓든지 해야겠다.
“계속 센 척하면 제안은 안 받겠다고.”
상대편에서는 지독한 침묵이 흐르기도 잠시.
─ 네, 그렇게 하죠.
짤막한 답변을 끝으로, 전화는 종결되었다.
“아, 씨….”
현승은 까매진 휴대폰 액정을 보며 후회했다.
3대 몇 치냐고 물어봐 달라고 할걸.
저번에 어깨 부딪쳐 보니까 좀 치는 것 같던데.
똑, 똑, 똑-!
때마침 커피를 사러 갔던 김우현이 돌아왔다.
“근데 언제까지 네 커피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하는 거야?”
“그냥 이렇게 된 거, 퇴직하시고 제 로드 매니저 하시는 거 어때요?”
“본부장보다 연봉 높게 맞춰 주냐?”
“업무가 커피 및 간식 배달밖에 없는데, 그 정도 연봉이면 너무 양심 없으신 거 아니에요?”
현승이 김우현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던 찰나였다.
“붉은 실 담당자라는 사람이 너 찾던데?”
김우현이 덧붙인 말에, 현승이 사레에 걸려, 마시던 커피를 왕창 입 밖으로 쏟아 냈다.
“큼, 흠, 누구요?”
그 광경을 본 김우현은, 얘가 갑자기 왜 이러냐며 물티슈를 가져와 옷가지를 닦아 주었다.
“왜 그렇게 놀라?”
“제가 언제요.”
“아무튼, 드라마 붉은 실 담당자랑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까먹거나 그런 거 아니지?”
“혹시 여자예요?”
“어, 꽤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현승은 아주 잠깐 솔깃했지만, 다시금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래.
제아무리 예쁘다고 한들,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악기로서 가치가 있는 목소리도 아니고.
“설마 그 사람한테 기다리라고 한 건 아니죠?”
“내가 널 아는데, 설마 그랬겠냐? 너 한 번만 보게 해 주면 안 되냐고 보안 요원 잡고 통사정을 하고 있길래, 확인해 보고 연락 줄 테니 우선 돌아가라고 했지.”
그 말에 현승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여자, 좀 지독한 건 알고 있었는데 연락처 차단했다고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왜 그렇게 널 찾는 거야?”
“몰라요. 제가 봤을 때는 아마 그냥 위에 감독들이 저랑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해 놓으라고 지시한 것 같아요. 걔도 좀 불쌍하긴 한데, 아무튼 좀 지독해요.”
“어쩐지 눈에 광기가 가득하더라, 아주 너 못 만나면 안 돌아갈 기세기는 했어.”
현승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설마 아직 안 돌아간 건 아니겠죠?”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몇 날 며칠이고 기다린다고 드러눕는 거 아니야?
아.
그 여자라면 혹시 모르지.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까 돌아갔겠지.”
현승은 김우현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헬멧을 챙겨 들었다.
“갑자기 어디 가?”
“확인해 보려고요.”
“만약 안 갔으면?”
“가라고 해야죠.”
김우현은 그런 현승의 뒤를 따라나서며, 만류했다.
“괜히 그 여자한테 잘못 잡혀서 귀찮아지면 어떡하려고?”
“계속 귀찮게 하기 전에, 얼굴 보고 딱 잘라 한번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러나, 현승은 이번에야말로 그 여자를 통해 방송사 사람들에게 확실히 얘기해 둘 요량이었다.
다신.
HS가 OST 작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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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주 단호히 의사를 전하려고 했는데….
현승은 코너를 돌아 로비에 접어든 순간, 후회했다.
저 멀리….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향해 다가갈수록.
“진짜, 딱 한 번만요! 딱! 한! 번! 만! 전해 주시면 안 돼요? 그냥 얌전히 기다릴게요!”
너무나 낯익은 얼굴의 인물이 서 있던 까닭이었다.
그래.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 한편으로 지워졌던 그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