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6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63화(263/482)
현승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체 그게 뭐길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노래나 영화, 드라마로 만드는 걸까?
애초에 ‘사랑’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맛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지 않나?
하물며.
일부 과학자들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저 화학반응에 의한 것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현승이 도출해 낸 정답은 ‘사랑이란 건 없다.’였다. 적어도 전생에선 그랬다.
그래서 죽어라 일만 했다.
집도 변변치 않은 놈이, 주머니에 든 것도 없어서 그런 화학반응에 놀아날 시간 따위는 없다고.
아픈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을 먹여 살려야 할 놈이, 그런 여유 따위를 부려서야 쓰겠냐고.
자신을 타이르고 억눌렀다.
그랬는데….
다시금 떠오른 기억에 현승은 속절없이 과거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전생의 현승은, 지금과 달리 군대 전역 이후 한량처럼 집에서 시간을 축내곤 했다.
딱히 자격증도, 전공한 것도 없었기에 변변찮은 직장은 꿈조차 꿔 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 있기는 눈치가 보여, 아버지가 일이 끝나고 들어오는 저녁 시간이면 집과 제법 떨어진 공원에 나가, 밤늦게까지 걷다 들어오곤 했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어? 오늘도 나왔네!”
해가 질 무렵, 공원에 나가면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인사를 건네곤 했다.
몇 번이나 무시해도, 거듭 말을 걸어왔다.
“조용히 좀 해.”
“어? 말했다!”
“너 친구 없어?”
“나 친구 있어!”
혼자 조용히 생각 좀 하고 싶은데 어찌나 조잘거리는지.
“근데 왜 맨날 귀찮게 해.”
“너가 내 친구니까!”
“내가 왜 네 친구인 건데?”
“말을 나누면 친구가 되는 거야!”
처음에는 참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애인가 보다 했다.
그래서.
오죽 심심하면 저럴까 싶어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민현승.”
“내 이름은 안 물어봐?”
“뭔데.”
“……래야!”
그때,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분명 들었는데….
그 뒤로 이름으로 불러 본 적이 없어, 기억이 흐려졌다.
“그럼 나이는?”
“23살.”
“헉, 2, 23살?”
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나이를 못 들었네.
“너 나보다 어리지?”
“그, 글쎄?”
“근데 왜 계속 반말해?”
“친구니까!”
얼렁뚱땅 웃으며 넘기던 그 얼굴을 보며 아주 잠시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잠깐.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여자애는 한동안 공원에 오지 않았다.
계속 귀찮게 굴던 애가 없으니, 차분히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계속해서 귓가에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면, 바보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딱히 기다린 건 아니다.
키우던 강아지가 사라져도, 허전하다 느끼고는 하니까.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홀로 조용히 노래를 들으며 걷는 것에 익숙해져 가던 때였다.
“……승! ……현승! 민현승!”
이어폰을 뚫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뭐냐?”
“뭐긴, 너 친구 …래지!”
혼자인 게 익숙해질 무렵, 그 여자애는 또다시 불쑥 내 걸음을 쫓아와 웃음 지었다.
하늘을 물들인 노을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넌 사람이 왜 맨날 별 이유 없이 웃어?”
“웃으면 좋은 거지!”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실실 웃으니까.”
그냥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왜 한동안 공원에 오지 않았던 거냐고 물어보면 될 일이었는데.
걱정했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어깃장을 부렸던 것 같다.
“흠….”
속마음 하나 솔직히 말도 못 하는 자신에게, 여자애는 오뉴월에 핀 들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기던데? 무엇보다 오늘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맞지!”
그날부터 현승은 공원에 가기 전, 거울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뭐, 그렇다고 딱히 신경 쓴 건 없었다.
안 바르던 스킨을 좀 바르기 시작한 정도?
“아, 민현승! 내 스킨 좀 그만 뺏어 바르라고!”
물론, 여동생 스킨을 몰래 뺏어 바른 거지만.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다.
서로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공원에 나와 함께 걸었다.
“민현승, 손!”
“아, 그것 좀 하지 말라고. 내가 강아지냐?”
서로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이름과 나이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었다.
그냥.
그 아이랑 손을 잡고 걸으며, 웃는 얼굴을 볼 때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런 날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어, 엄마!”
여자애의 엄마를 마주친 순간, 현승은 본능적으로 손을 놓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요즘 저녁마다 어딜 가나 했더니, 네가 지금 연애질이나 할 때야? 하물며 저런 놈이랑!”
여자애의 엄마는 자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콧방귀를 끼었다.
뭐, 그럴 만 했지.
다 늘어난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 슬리퍼 차림이었으니까.
“엄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얘는 친구야!”
“됐고! 이번에는 꼭 의대 가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너 아빠가 아시면 큰일 나는 거 몰라서 이래?”
여자애는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자신의 눈치를 살피기도 잠시.
“우선 집 가서 얘기해요.”
곧장 엄마의 손을 붙들고, 고급 외제 차에 몸을 실었다.
아마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하는 노파심 때문이겠지.
“아….”
현승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 말고, 탄식을 내뱉었다.
여태껏 뭐 한 거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
그 길로….
공원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대신 일용직 막노동을 나갔다. 덕분에 생활비도 보태고, 몸이 힘드니 잡생각을 하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간만에 쉬기로 마음먹은 날.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아쉬워, 걸음이 닿는 대로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샌가 공원에 도착한 채였다.
아직 해가 떠 있는 낮이니까 없겠지.
터벅, 터벅.
현승은 늘 걷던 길을 따라 공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제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차피 그 여자애는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래.
여자애의 엄마라는 사람의 외형이라던가, 나누던 대화라던가, 올라탄 외제 차로 미루어 봤을 때….
자신과 달리, 부유한 집에서 애지중지 귀하게 자란 딸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터벅, 터벅.
현승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돼서야, 걸음을 돌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나.
그 마음 또한 이젠 접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승! ……현승! 민현승!”
또다시 이어폰을 뚫고 들어온, 익숙한 목소리에도 환청이겠거니, 보폭을 더 넓혀 나갔다.
“허억, 허억, 아니, 뭐 이렇게 걸음이 빨라!”
하나, 환청이 아니었는지 여자애는 한 뺨 정도 자란 머리칼을 찰랑이며 제 손목을 낚아챘다.
“너, 뭐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왜 여태 안 왔어?”
“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왜 한 번도 오지 않았어?”
여자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날 왜 기다려.”
“우리 친구잖아.”
“친구? 그건 그냥 네가 맘대로 정한 거잖아.”
“그날 일 때문에 그래? 그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끝내 여자애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닦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너랑 친구 할 생각 없으니까, 이제 아는 척하지 마.”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에, 더욱 모질고 차갑게 밀어낸 뒤 도망치듯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래.
이미 친구가 될 수 없는데, 친구는 무슨 친구.
현승은 그날 이후 공원에 단 한 번도 간 적 없었다. 대신 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해가 거듭 지나고, 현승은 어느 날 우연히 직접 곡이라는 걸 만들게 되었다.
그저.
취미에서 파생된 일이었는데, 그게 업이 되었다. 그날로 미친 듯이 일만 했다.
‘부’라는 탐욕만을 쫓았다.
자신에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여자를 맘에 들일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살아가게 되자, 기억은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잊혀만 갔다.
그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느 날인가.
매번 그랬듯 떠오른 악상으로 곡을 만들고, 곡을 부르고, 그 곡의 이름을 붙여 주던 그때.
“꽃이….”
─ 꽃이요?
“응, 꽃.”
─ 어, 방금 반말….
“아닙니다.”
아주 오래되어 잊고 있던 그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꽃이 저물고 나서야.”
하지만, 추억은 그저 기억의 일부 조각일 뿐이라 여겼다.
어차피.
파편에 지나치지 않는 조각이니까.
‘그랬는데….’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파편이었던 조각들이 모여 하나로 완성되었다.
“혹시 그럼 이거 쪽지라도 좀 전해 주시면 안 돼요?”
옆에 달라붙어, 귀찮게 굴던 목소리.
“붉은 실 담당자, 조나래라고 전해 주시면 알 거예요!”
한 번도 불러 주지 않았던 이름.
“귀찮게 해 드려 너무 죄송해요. 근데 정말 너무 중요한 거라서 꼭, 좀 부탁드려요!”
오뉴월 들풀같이 흐트러지던 미소.
모든 기억이….
아니, 추억이 한 번에 모여들었다.
터벅, 터벅-.
그러나 현승은 이번에도 반대로 걸음을 옮겼다. 더욱 보폭을 넓혀, 자신의 작업실까지 도망치듯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왔네?”
작업실 문을 열자, 노래에 심취해 있던 김우현이 손을 들어 보였다.
“붉은 실 담당자는 잘 처리했어?”
그러나, 현승은 아무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때마침 김우현의 휴대폰에서 ‘꽃이 지고 나서야’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꽃은 당연히 저무는 것 아니겠소.
현승의 인생에 딱 한 번 환하게 피었던 꽃은 그렇게 저물었다.
─ 당신 몫까지 내가 울 테니, 그대는 부디 웃으며 가시오.
꽃이라는 건, 왜 이렇게 빠르게 저물어 버리는 건지.
그래도.
꽃이 저물어야, 다음 해 다시 피어날 꽃을 기다릴 수 있는 거겠지.
“금동아, 너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
현승은 자신을 붙들고 걱정스럽게 물어 오는 김우현을 향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
내 전생의 꽃은 저물었지만, 이번 생에도 예쁘게 핀 것을 확인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