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6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64화(264/482)
별안간 노래가 툭 끊어진 장내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
이내 김우현은 현승의 어깨를 꽉 부여잡은 채 물었다.
“너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귀신 눈은 속여도 엄마 눈은 못 속인다고 했는가?
“별일 아니에요.”
김우현은 아무 일 아닌 척 넘기려는 현승의 속을 다 안다는 듯, 걱정 어린 눈으로 재차 추궁했다.
“정말 아니야?”
“그냥….”
현승이 한차례 텀을 두기도 잠시.
“제 얘기는 절-대 아니고, 그냥 아는 친구 얘기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서론으로 말을 이으려던 그때.
“금동이 친구도 있었어?”
김우현의 역질문에 현승이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질문이 뭐 그래요? 저도 친구라는 게 있어요.”
“아니, 너 입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봐서… 아, 혹시 효은이 얘기야?”
“제가 친구가 걔밖에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너무 다행이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현승이 그 물음에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혹시 엄마라면요.”
“너 어머니?”
“아니, 본부장님이요.”
“어, 나라면?”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말을 이었다.
“예전에 잠시 좋아했던 여자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김우현은 현승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 너무 의외라는 듯 아주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차분히 되물어 왔다.
“그때 좋아했다고 고백은 해 봤나?”
“아니요.”
“그럼,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떠나보낸 인연인 거야?”
“네, 사는 세상이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요.”
김우현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제 턱을 감싸 쥐었다.
“흐음….”
장내에 끝없이 이어지던 침음 소리가 끊어진 건 3분이나 흐른 뒤였다.
“난 그렇다면 바로 달려가서 얘기해 볼래.”
김우현이 확신에 찬 얼굴로 재차 덧붙였다.
“그때 참 많이 좋아했었다고, 솔직히 얘기라도 해 볼 것 같아.”
“지금은 아니더라도요?”
“지금도 이렇게 고민할 정도면 아예 정리된 건 아니지 않을까?”
그 말에 현승이 무어라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찰나.
“무엇보다 그땐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서 안 이어졌다고 한들, 지금은 아닐 수 있잖아.”
머지않아 김우현이 현승의 단단한 어깨를 양손으로 꽉 부여잡은 채, 되물었다.
“우리 현승이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
“아니, 글쎄 제 얘기가 아니라, 아는 친구 얘기라니까요.”
김우현은 발끈하는 현승을 보며 능글스럽게 “알겠어, 알겠어.” 하고 대답하고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냥 만약 나라면 그럴 것 같다는 얘기야.”
“근데 과연 억지로 연을 다시 이어 나가는 게 좋을까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저는 지나간 인연은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맞다 생각하거든요. 이전의 추억마저 모조리 엉망이 되어 버릴 수도 있잖아요.”
현승의 대답에 김우현은 멈췄던 노래를 재생시켰다.
─ ♬ ♬ ♬
별안간 장내에는 다시금 ‘꽃이 지고 나서야’가 잔잔히 깔렸다.
─ 꽃은 당연히 저무는 것 아니겠소.
속이 들끓는 듯한 애통함을 애써 숨기는 듯 덤덤한 목소리 앞에, 둘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바로 현승의 목소리였다.
─ 당신 몫까지 내가 울 테니, 그대는 부디 웃으며 가시오.
곡이 점차 끝이 나갈 무렵, 먼저 침묵을 깬 건, 김우현이었다.
“그래, 이 노래처럼 그렇게 꽃이 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 말에 현승은 대답 대신 고개를 잘게 끄덕여 보였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한다더니 결국 꿈을 찾기 위해 드라마국에 들어간 듯하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잘조잘 참 말도 많고 붙임성 좋은 것 또한 여전하니까, 그걸로 됐다.
그래.
기억 저편으로 아련히 흩어진 존재가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현승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정말, 그거면 됐다.
그냥 언젠가… 업무적 관계로나마, 식사 한 끼 정도야 대접해 줄 수는 있겠지.
“이거 내가 만들어 본 샌드위치인데 먹을래?”
그래, 전생에 녀석에게 얻어먹은 것도 있고.
딱 그 정도만.
억지로 연을 이어 나가려 애쓸 필요야 없지.
─ 우리가 연이 아니라 말하지는 말아요.
현승의 상념이 반복 재생되는 곡처럼 꼬리를 물던 찰나였다.
“못 피워 본 꽃을 피워 볼 수도 있을 테니, 애써 꽃이 피어나는 것을 모른 체 하지는 말고.”
김우현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는 이제 회의 있어서 간다.”
그러고는 현승의 머리통을 잔뜩 휘저어 놓고는 걸음을 돌려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탁-!
장내에 홀로 남은 현승은 괜스레 헝클어진 제 머리를 정돈하며 중얼거렸다.
“나름 잘 정돈해 놨는데, 이리 흩트려 놓으시네.”
* * *
빈센트는 이갈이 하는 새끼 강아지마냥 제 손톱을 쉴 틈 없이 깨물어 댔다.
딱, 딱, 딱-!
거실에선 계속 듣기 싫은 마찰음이 들렸고.
“아-!”
이내 분통에 차오른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스틴으로부터 전달받은 충격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 HS가 계속 센 척하면 새로운 제안은 안 받겠다고 하더군. ]당사자로부터 연락이 오거나, 연락처가 왔어야 할 타이밍에 별안간 이런 소식이 전해지다니.
“말도 안 돼.”
빈센트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분명 HS라는 청년은 자신에게 먼저 악기 운운하면서 곡을 불러 달라고 청해 왔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렇게나 당당하게 외치던 빌보드 차트 3달 1위 유지라는 조건도 달성하지 못했으면서….
물론.
그 조건은 빈센트에게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현재 빈센트가 오롯이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사라 스튜어트의 말대로면 HS의 편곡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black angel’이라는 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것뿐이었다.
그 곡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듣기만 해도 군침이 질질 흐르는 곡이었다.
진정한 가수라면 꼭 한번 소화해 내보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들끓게 하는 그런 곡 말이다.
극단적일 정도로 마이너한 단조로 이어지는 그 곡은, 다른 어떠한 곡보다 단단한 음성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부를 수 있는 곡이었으니까.
그래.
제 경쟁자인 사라 스튜어트와 목소리만으로 진정한 승부수를 펼쳐 볼 수 있는, 그런 곡.
다만.
현존하는 가수 중 원탑이라 불리는 빈센트가 ‘센 척’이라는 말까지 들은 마당에, 체면 구기며 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까짓거, 안 부르면 그만이야.
“됐다.”
빈센트가 휴대폰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 놓은 채 벌러덩 드러눕기도 잠시.
“아, 진짜.”
상체를 스프링처럼 튕겨 올리며 다시 휴대폰을 손에 잡았다.
톡, 톡토도도독-!
그러고는 이내 오스틴에게 답장을 보냈다.
[ 알겠으니, 연락 달라고 하시죠.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나름 간추려 보낸 답장이었다.
“휴-.”
빈센트는 다시 한번 몸을 소파에 눕혀,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거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웅장하리라 만큼 거대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 ♬ ♬ ♬
바로, 사라 스튜어트가 부른 ‘Black angel’이었다.
─ Come deep into the darkness
다른 사람의 귀까지는 모르겠지만, 빈센트의 귀에는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들려왔다.
─ Come deep into the darkness
베토벤이 죽음의 끝자락에서 끝끝내 피워 낸 운명의 교향곡처럼, 제 목을 옥죄어 오는 듯한 곡의 멜로디가 다시금 땅끝으로 자신을 집어삼켰다.
─ Don’t be scared.
이런 곡을 어찌 탐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 Darkness isn’t a bad thing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어떠한 가수라도 탐낼 만한 곡이었다.
단지.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쉬이 불러 볼 수 없을 뿐일 터였다.
‘안 되겠어.’
빈센트는 곧장 다시 몸을 일으켜 오스틴에게 문자 한 통을 연달아 다시 보냈다.
[ 최대한 빨리 연락 달라고 해 주시겠어요? ]톡, 토도도독-.
[ 그때 복도에서 했던 제안, 받아들이겠다고. ]빈센트는 마지막 문자까지 전송이 되고 나서야 맘 편히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연락이 오겠지.”
빈센트는 예전부터 줄곧 이래 왔다. 자신이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미가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끔 만든 것일 터였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휴대폰에 처음 보는 번호가 떠올랐다.
“벌써?”
이내 빈센트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웃음 지어 보였다.
보나, 마나, HS가 오스틴으로부터 내용을 전달받고 연락해 온 것이겠지.
자신이 애를 태웠던 것처럼….
이쪽도 좀 안달이 나게끔 조금 더 느긋하게 받아 볼까?
지이이이이잉-!
빈센트가 끊어질 듯 간신히 울려 대던 휴대폰을 집어 들던 찰나였다.
지잉-!
전화는 맥없이 끊어졌고, 머지않아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를 MMS로 넘어갈 때까지 채워서 보내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빈센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한참이나 문자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지금 자신을 조련하려는 건가?
뚜루루루루-!
빈센트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곧장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 지금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5초도 채 되지 않아, 안내 음성으로 넘어갔다.
일부러 전화를 넘긴 것 같은데….
아니, 진짜 저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채운 문자를 보낼 때까지 연락하지 않겠다는 건가?
톡, 토도도도독-.
빈센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문자를 두들겼다. 자신에게 벌어진 적도, 벌어지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 앞에서 이미 정신이 흐려진 상태인 까닭이었다.
[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악기가 되겠습니…. ]빈센트가 복사 붙여 넣기도 없이, 손수 빼곡히 채워 나간 문자 창을 들여다보던 찰나.
지이이이이잉-!
자신을 정말 조련이라도 할 셈이었는지 문자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HS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 여보세요?”
그러나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빈센트는 혹시나 다시 끊어질까,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상대편에서 몹시 흡족하다는 듯한 HS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주 잘했습니다.
“아, 예….”
─ 제 악기가 되겠다고 선언해 주셨으니, 특별히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선심이라도 써 주는 듯, 거만한 어투에 빈센트는 대답할 힘조차 잃은 채였다.
“아….”
HS는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다는 양 제 얘기를 쏟아 냈다.
─ 가는 일정은 잡히는 대로 연락드릴 테니까 한동안 스케줄은 널널하게 잡아 두시기를.
그러고는 이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뭐, 이런…?”
빈센트는 전화가 끊어진 액정 화면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자신이 수일 밤을 고민하고, 애끓은 것에 비해, HS와 첫 통화는 고작 30초도 채 되지 않은 채 끊어졌으니 황망함이 밀려올 만하지 않은가?
정말이지.
처음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느꼈지만….
“이거 완전 순 변태 또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