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6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66화(266/482)
현아는 잔뜩 신이 난 모양인지, 아침 준비 시간에도 몇 번이나 오빠 방 문을 열며 소리쳤다.
“오빠, 오빠!”
“왜, 또.”
일주일 뒤, 미국에 사라 스튜어트 콘서트도 볼 겸 놀다 오자는 말을 들은 이후로 계속 저런다.
“우리 진짜 미국 가는 거지?”
“응, 미국 갈 거야.”
“사라 스튜어트 콘서트도 보고?”
“어, 그렇다니까.”
“장난 아니고, 진짜 리얼 트루 맞지?”
현승은 몹시 귀찮다는 듯 손을 공중에서 휙휙 내저었다. 안 그래도 지금 편곡 볼 시간이 부족해 죽겠는데….
“민현아, 너 속고만 살았냐?”
“응, 맨날 오빠한테 속고 살았으니 그렇지!”
현아의 입에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나온 대답에, 현승은 할 말을 잃었는지 마른 입술만 달싹거렸다.
자신이 여태껏 여동생을 속이고, 놀려 온 전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까닭이었다.
“그냥 그건 다 장난….”
현승이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해 보려 했으나.
“아, 뭐 입고 가지? 지금 미국은 덥나? 춥나?”
“그냥 대충 아무거나….”
“아! 콘서트 대형 화면에 나 잡히면 어쩌지?”
“다들 시골 쥐 나타나서 놀라는 거 아니냐?”
“사라 스튜어트가 갑자기 마이크 건네주면 큰일인데!”
“걔가 아무리 괴짜라도, 지 콘서트 망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좋았어, 지금부터라도 노래 연습을 좀 해야겠어!”
“넌 타고난 악기가 아니라, 그게 연습한다고 단기간에….”
“지금 당장 코노 가야겠다, 코노-! 오빠, 나 오천 원만!”
현아는 그런 것 따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삥을 뜯어 휑하니 방을 나서 버렸다.
탁-!
아마 애초부터 현아에게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미국에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확인받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나름 시간을 거슬러 돌아와,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두 차례나 다녀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직도 ‘해외’에 나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렇게나 들뜨는 모양이다.
유니스 뮤직 그룹에서 보내 준 전용기를 타고 갈 거라는 말을 덧붙였으면 놀라서 거품 물고 쓰러졌겠지.
“저런 거 보면 애는, 애야.”
현승이 닫힌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그럼, 다시….”
끊겼던 작업을 이어 나가기 위해 헤드셋을 뒤집어쓴 찰나였다.
끼이익-.
그때 또다시 방문이 열렸고.
“민현아, 이제 그만….”
당연히 또 동생이겠거니 싶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자 문 앞에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든 채,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달그락-.
그런 아버지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려놓았다.
─ 아들, 과일 좀 먹고 해.
정성을 생각해, 현승은 바로 보는 앞에서 정갈하게 깎인 사과 하나를 집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입으로 가져갔다.
아버지는 오물오물 씹어 먹는 자신을 보며 등을 천천히 다독일 뿐, 다른 말은 없었다.
하나,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아버지는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뒤에 서 계셨다.
무슨 일이지?
톡톡.
현승이 그런 아버지를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 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 아니야, 아무 일 없어.
─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 아주 멀쩡해,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말과 달리, 아들인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거렸다.
분명, 뭔가 있는데….
현승이 그런 아버지를 침대에 앉힌 뒤, 눈을 마주하며 다시금 물었다.
─ 정말, 무슨 일 없어요? 아니면 저한테 따로 하실 얘기가 있다던가.
아버지가 손을 공중에서 멈춰 보이기도 잠시.
─ 그런 건 아니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지,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 혹시 옷 한 벌만 사 줄 수 있나?
현승은 조심스러운 물음에 무언가를 놓친 듯,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생활비를 적지 않게 드리고 있으니, 필요하신 건 알아서 구매해서 사용하시겠거니 생각했다.
참, 안일했다.
늘 검소하고, 자식 입 속 챙겨 주느라고 본인은 정작 아무것도 못 챙겨 먹는 게,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거늘.
아마.
지금껏 드린 생활비 중 단 한 푼도 오로지 자신의 사치를 위해 사용한 적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래.
계절이 바뀌면 알아서 사 드렸어야 하는데….
현승은 지금, 이 순간 잘 깎인 사과 앞에서 아직도 자신은 턱없이 부족한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바로 준비하고 나가서 사요, 우리.
현승은 곧장 헤드셋을 내려놓고는 나가자며 아버지를 부추겼다.
고작 옷 한 벌도 못 사 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한참이나 제 눈치를 살펴 대기도 잠시.
─ 근데, 저런 정장 같은 건 하나 맞추는 데 많이 비싸지?
벽 한쪽에 걸린 제 정장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 제 정장이요?
─ 응, 저런 건 보통 돈 십만 원 정도로는 못 사겠지?
현승이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려 정장을 바라봤다.
편한 옷을 좋아하는 현승이었기에, 딱히 입을 일이 없어 액자마냥 늘 저 자리에 걸어 놓았다.
제 미적 센스를 충족시킬 만한 디자인도 아니었고 말이다.
다만, 버리기는 싫었다.
처음 전남일 대표를 만났던 날, 김 엄마가 억지로 사 입혔던 정장인 까닭이었다.
비록 지금 현승이 벌어들이는 저작권료에 비하면 한없이 소박한 가격대의 정장이라지만….
직장인에게 있어선 퍽 부담스러운 가격을 자랑하는 커스텀 테일러 매장에서 판매되는 정장이었다.
그래서 버리지도, 입지도 못한 채 걸어 놓고 전시 중이었는데 아버지 눈에는 저 옷이 예뻐 보이셨나?
─ 하나도 안 비싼 거니까, 얼른 사러 가요.
─ 그래? 그럼, 저런 거 그냥 하나 맞춰 보고 싶은데….
─ 근데 혹시 정장은 갑자기 왜 필요하신 거예요?
아버지는 바깥에 잘 나가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장이 크게 필요하리라고 생각해 보진 못했던 터라, 갑자기 아들에게 눈치 보며 부탁할 만큼 정장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신 건지 궁금했다.
설마.
민현아, 이거, 또 남자친구 만나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쪽 부모가 한번 뵙자고 한 거 아니겠지?
‘남자는 나 빼고 다 믿으면 안 된다니까.’
현승이 별안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당장 코노에 간 여동생을 찾으러 나갈 기세로 엉덩이를 떼어 내던 찰나였다.
─ 다름 아니라.
아버지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수어로 말을 이었다.
─ 그 미숫가루 아가씨 만나러, 우리가 아가씨 나라에 가는 거잖아.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미숫가루 아가씨?” 하고 되물었다가, 이내 사라 스튜어트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다음 이어진 아버지의 말에 목이 서서히 밀랍 인형처럼 빳빳하게 굳어져 갔다.
─ 그러다 혹시라도 아가씨 쪽 부모님이라도 만나 뵈게 될 수도 있으니까 좀 번듯하게 차려입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딸은 콘서트에서 혹시나 부르게 될 노래를 연습하러 코노에 가고, 아빠는 혹시 모를 상견례를 위해 정장을 맞춰 입는다니.
이런 걸 보고 부전여전(*父傳女傳)이라고 하는 건가?
─ 정장도 맞춰 드릴 수 있고, 뭐든 다 사 드릴 수 있는데.
아버지는 대체 왜 사라 스튜어트 쪽 부모님을 만나 뵐 수도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 아버지, 혹시나 국제 상견례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저 현승은 지금 죄송스러웠다.
─ 그냥 혹시나 했을 뿐이야. 다른 의미는 없어!
─ 옷 사러 나가는 김에 미숫가루도 좀 사야겠네요.
상견례는커녕, 평생 손주 한 명 안겨드리지 못 해 실망만 안겨 드릴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아니지.
현아라도 결혼해서 안겨 드리면 될 일이지 않은가?
아….
잠깐만, 근데 현아를 누구한테 보내야 하려나.
이것 참.
강하준이고, 솔로지호고, 마음에 쏙 드는 놈이 없어 큰일일 따름이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드디어 미국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물론, 오스틴에게 전용기는 요청해 둔 채였다.
“야, 민현아.”
그때 제 몸보다 큰 가방을 짊어진 채,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여동생을 보고 있노라니 괜스레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노래 연습은 좀 했어?”
“응! 오빠가 한번 들어 봐 줄래?”
“아니, 내 귀가 별로 안 듣고 싶데.”
“오빠, 죽을래?”
“그래, 차라리 네 노래를 들을 바엔 죽음을 택하겠어.”
“오냐, 소원대로 해 줄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고?”
현승은 여동생에게 옆구리를 가격당하면서도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여동생이 쥐에서 사람으로 진화하게 해 주세요.”
“너, 진짜 가만 안 둬!”
거대한 가방 뒤에 숨어 쿡쿡거리며 여동생을 놀리는 와중에도, 가방 밑을 손으로 받쳐 주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나 무거워.’
보나, 마나, 또 옷 잔뜩 챙겨 왔겠지. 누가 보면 혼자 패션위크라도 온 줄 알겠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전용기 탑승구에 도착했고.
“이, 이게 뭐야?”
안내 요원이 따로 나와 짐을 받아 들자, 현아와 아버지는 눈이 튀어나올 듯 두리번거렸다.
“오, 오빠, 우리 진짜 이거 타고 가는 거야?”
“그럼, 따로 이코노미 끊어 줄 테니까 타고 올래?”
현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아, 아니!” 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동생이 거품 물고 기절하진 않았다는 거였다.
스-윽.
고개를 돌려 보니 아버지도 짐짓 아닌 척하고 계시지만, 꽤 놀란 눈치였다. 그러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따사롭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 미소 속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에만 신기할 뿐.
무려 14시간이라는 오랜 비행 시간 앞에서 결국 세 가족은 모두 넉다운하고야 말았다.
“아….”
그러던 중 현승이 착륙하는 느낌에 눈을 떠 보니, 창밖으로는 얼마 전 봤던 풍경들이 가득 차오른 채였다.
“또 왔네.”
한동안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이 채 바뀌기 전에 다시 이 먼 땅에 오게 되었다.
그냥.
이 정도면 전용기를 따로 구매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한동안 계속 미국과 한국을 오가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 까닭이었다.
이왕이면 번거롭게 숙소 잡을 필요 없이, 미국에 별장도 하나 사 놓고 안에 개인 작업실도 마련해 놓는 거지.
“흐음….”
현승이 전생에 자신이 소유했던 전용기와 미국 내 별장 가격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오빠, 우리 지금 미국에 도착한 거야?”
활주로 위에 완전히 멈춰서자, 여동생이 꿈에서 덜 깨어난 얼굴로 물어 왔다.
“응, 난 짐 좀 챙겨야 하니까 넌 얼른 눈곱부터 떼고 아버지 좀 챙겨 드려.”
이윽고.
현승이 미숫가루가 든 박스를 양손 가득 챙겨 들었다.
마치.
그 모습이 아예 다른 두 악기를 두 손에 움켜쥔 미치광이 지휘자처럼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