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6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69화(269/482)
한바탕 ‘악기 만세 삼창’ 소동이 지나간 이후.
가족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온 현승은 별안간 얼굴에 닿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음…?”
여동생은 물론이고, 아버지 또한 에피타이저로 나온 스프를 입에 떠 넣고 있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현승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냅킨을 집어 들어 입가를 박박 문질렀다.
자신의 입가에 무언가 묻어 바라보는 것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하나.
그 이후에도 둘의 진득한 시선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왜 밥 안 먹고 날 쳐다보는데?”
현승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여동생을 향해 물었다.
“어?”
그제야 현아는 자신이 오빠의 얼굴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너무 신기해서….”
하지만 계속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대한민국에서만큼은 가장 잘나가는 작곡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지만….
사라 스튜어트에 이어 세계적인 팝스타 빈센트 마흐에게 곡을 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뭐랄까-.
자랑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묘하다고 해야 하나?
“뭐가 신기한데?”
현아가 그 물음에 고민하기도 잠시.
“내가 모르는 새 오빠가 점점 큰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수저를 “달그락” 내려놓고는, 상념에 잠겨 들었다.
그래.
현아에게 있어서 오빠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분명 어릴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입을 닫더니 방문조차 닫아 버렸다.
같은 지붕 아래 있어도 한마디 안부조차 건네질 않는 사이가 되어 버린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오빠는 자신과 달리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관심 따위도 없어 보였다.
하고 싶은 것도, 하고자 하는 것도 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한심하기도 했다.
귀가 안 들리는 아버지.
늘어 가는 고지서.
교재 한 권 살 수 없는 형편.
그런 와중에도 오빠는 미래에 대해 딱히 생각하고 있질 않은 것 같으니, 현아로선 부담감이 증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아는 성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에만 매달렸다. 이왕 공부해서 성공할 거라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현아는 오빠에 대한 미움이 생겨났다.
오빠는 왜 아무것도 하질 않지? 나도, 아빠도, 뭐라도 하려고 애를 쓰는데 왜 오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체마냥 방구석에만 있는 거지?
“휴….”
현아는 늘 닫혀 있는 오빠의 방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밤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돌연 작곡으로 돈을 번다고 했을 땐, 놀랍고 신기하면서도 그래도 밥벌이는 하는구나 싶어 조금 안도했었다.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된 건 아니었다.
으레 예술 계통에선 애매한 재능이 사람을 가장 괴롭게 갉아먹는다고 하질 않는가?
실력 좋은 사람이야 차고 넘치는 판이니까, 작곡이라는 능력으로 평생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걱정을 비웃듯, 제 오빠는 어느 순간 대한민국 작곡가 중 ‘탑’이라 불리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음원차트 상위권 자리는 늘 오빠가 만든 곡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늘 오빠가 만든 곡이 흘러나왔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오빠 얘기를 해 댔고, 기사부터 뉴스까지 온통 오빠와 관련된 얘기였다.
그와 동시에 우리 집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밀린 고지서를 붙잡고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일이 사라졌고.
자신은 친구의 헌 교재를 빌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뿐이랴?
사는 집이 달라졌고, 타는 것이 달라졌고, 입고 먹는 것이 달라졌다. 그중 제일 많이 달라진 건….
자신의 오빠였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 많아지더니, 밖으로 나가는 일이 생겨나고, 바쁜 와중에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하는 날이 늘어났다.
대체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주변 환경이 오빠를 그렇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
한마디로 현아는 요즘 오빠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해 봐라.
지금 자신의 나이에 고급 스포츠카를 보유하고, 여유롭게 용돈 받으며 최신 기종의 노트북과 패드로 공부하는 대학생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하물며.
미국이라는 먼 나라를 전용기를 타고 오는 것도 모자라, 5성급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유니스 뮤직 그룹으로 견학을 다녀오질 않았나?
더군다나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건 사라 스튜어트와 빈센트 마흐.
정말.
이런 삶을 살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학생은 자신뿐일 터였다.
그래, 그런데….
현아는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아니, 아니야.”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마치 자신이 알던 오빠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아니지.
점점 오빠가 유명해지고 잘나갈수록 자신과 먼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이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이번 여행도 오빠는 작업해야 되서 바쁘겠지?
‘그래도 이해해야지, 가족이니까.’
아마 앞으로는 얼굴 보는 것 또한 어려울 만큼 바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
사실 그렇더라도….
제일 힘든 건 오빠일 테니, 서운치 말아야지.
현아의 마음속에서 무어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그때였다.
딱-!
별안간 제 이마에 닿는 촉감과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아야-!”
얼얼한 기운에 제 이마를 감싸쥔 채 고개를 들어 보니, 오빠인 현승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야, 시골 쥐.”
그러고는 장난스러운 어투로 자신을 불러 세우며 말했다.
“왜 음식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고 있냐?”
“남이사, 고사를 지내든 말든 왜 때리는데!”
자신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른 현아는 멋쩍은 탓에, 테이블 위에 놓인 빵 하나를 쥐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얼씨고? 시골 쥐가 성내고 빵 갉아 먹는다.”
“시골 쥐 아니라고.”
“알겠어, 아메리칸 쥐 시켜 주면 밥 먹을래?”
“아메리칸 쥐가 더 싫어!”
하여간, 저놈의 장난!
아무래도 오빠는 자신을 놀리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흐음….”
현승은 여동생의 얼굴을 살펴 댔다. 삐죽 튀어나온 채 오물거리는 입술이 분명 무언가 심술이 난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민현아.”
이내 현승이 가족들 앞으로 메인 요리를 담아낼 접시를 놓아 주며 무심히 불러 세웠다.
“왜 불러?”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어?”
“뭐가 되었건, 그냥 하지 마.”
“무슨 소리야?”
그러고는 제 말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여동생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여동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래, 현아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었으니까.
“나는 너를 챙길 거고, 너는 아버지를 챙겨 드리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살아갈 거야.”
아마 걱정이 되는 거겠지. 자신이 바빠질수록 가족 사이에 생길 빈틈에 대하여.
“가끔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갈 거야.”
“오빠, 헛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먹어.”
잠자코 듣고 있던 현아는 자신이 먹으려 짚었던 마늘 바게트 한 쪽을 조용히 제 앞 접시에 올려 놓았다.
그래.
책임이라는 무게감 앞에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속 깊이 이해해 줄 가족이기에….
“고맙다.”
그 틈은 자신이 노력으로 메꿔 나가면 될 일이었다.
* * *
이후 명소 몇 군데를 둘러 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가족들은 깊은 숙면에 빠져 들었다.
물론, 현승은 제외였다.
가족이 잠든 걸 확인한 현승은 곧장 챙겨 온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분명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빈센트에게 들려주고 나니 스스로 아쉽다 느껴진 까닭이었다.
톡, 토도도독-!
아마 미국에 있는 동안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 이렇게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해 작업을 이어 나가야 할 터였다.
뭐, 어쩌하리.
이마저도 현승,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었다. 빈센트와 콘서트, 두 일정을 한큐에 끝내려던 욕심이 부른 결과였다. 사실 편히 갈 수 있는 방법이야 있었다.
지금 진행하고자 하는 편곡도 안 해도 되는 과정이고, 빈센트 정도라면 녹음도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테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었으면,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겠지.
현승은 자신이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겠는가? 자신이 3%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3%를 채워야 하는 성격인 것을.
그래.
아무리 듣고, 거듭 수정을 거쳐도 딱 3%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마치 소고기가 빠진 미역국이라던가 참치가 빠진 김치찌개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결코 맛없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하아….”
현승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몸을 일으켜 조용히 룸을 빠져나왔다. 코드만 죽어라 두들긴다고 해서, 기막힌 머니 코드가 탄생하는 건 아니니까.
터벅, 터벅-.
호텔을 벗어난 현승은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전생에 수도 없이 걸었던 길목이라,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전생에도 종종 오선지 위에 악상을 토해 내고 싶을 때마다 찾던 분수대가 보였다.
‘오랜만이네.’
현승은 왠지 오랜 단짝 친구를 만난 기분에,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록 지금 자신에겐 오선지도, 머릿속에 그럴싸한 악상도 떠오르지 않은 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까닭이었다.
‘분수….’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분수대에서는 푸르스름한 불빛과 불그스름한 불빛이 교차되어 퍼져 나왔고.
어디선가 조용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멋스러운 물줄기의 향연이 이어져 나갔다.
‘멋지네.’
현승이 속으로 짧게 한 줄 평을 남기고는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 ♬ ♬ ♬
별안간 흘러나오던 클래식이 격동적인 탱고 음악으로 바뀌었고.
툭-.
현승은 걸음을 우뚝 멈춰서 분수대를 바라봤다.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뿜어내는 물줄기는, 화려하다 못해 생동감이 흘 러넘쳤다.
“아.”
그 순간, 현승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휴대폰을 꺼내 들기 위함이었다.
“젠장….”
그러나, 주머니에 든 거라고는 먼지뿐이었고.
휙-, 휙-.
종이 따위를 빌릴 사람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현승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저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는 공연 홍보 현수막 한 장.
터벅, 터벅-.
현승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사람마냥, 펄럭거리는 현수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거야.”
그러고는 이내 어딘가 흉흉한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뉴욕 필하모닉….”
반갑다, 내 거대 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