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7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71화(271/482)
빈센트는 아주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냐는 물음에 ‘뉴욕 필’의 공연을 보고 싶다 답한 적이 있었다.
그땐 너무 어린 나이라, ‘뉴욕 필’의 공연 티켓이 얼마나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지 몰랐었다.
그저.
그때 당시 가장 좋아하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뱉은 말이었다.
아마.
제 부모님은 제법 어렵게, 어렵게 표를 구하셨을 터였다.
그리하여-.
어렵사리 보게 된 처음이자 마지막 ‘뉴욕 필’의 공연은 어린 빈센트에게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
실제로 듣게 된 오케스트라는 이어폰을 통해 들어오던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빈센트는 공연장을 압도하는 웅장한 연주 앞에서 입을 한시도 다물 수 없었다.
입 안이 바싹 말라, 침을 삼키기 어려웠던 그날의 전율은 빈센트를 음악의 길로 인도했다.
그랬는데….
지금 제 눈앞에 펼쳐진 뉴욕 필은 저항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이건 준비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탓이야.”
“변명은 됐어요.”
“이런 악보를 이틀 만에 완벽히 숙지하고 연주하라는 것 자체가 너무한 거 아니야?”
뉴욕 필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가 HS의 거침 없는 지휘봉 앞에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되겠지?”
비단 피아니스트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땀에 절어 버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애원했다.
그러나.
HS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요.”
그 말에 연주자들의 눈동자 위로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드리웠다. 하나, 그들은 프로다.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 바닥에서 꾸역꾸역 올라와 버텨 낸 이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활을 잡고 붉어진 손가락을 올려놓으며 다시금 연주할 자세를 취했다.
─ ♬ ♬ ♬
빈센트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뉴욕 필의 소리 합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새삼 감탄스러운 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앞에 당당히 지휘봉을 쥔 채 서 있는 HS의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사이에 곡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한낱 작곡가에 불과한 사람이, 지휘봉으로 뉴욕 필을 통제하고 컨트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저런 천재를 지금껏 이름 한 번 들어 보지 못했다고?
이윽고.
HS의 지휘봉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극으로 치닫던 연주 소리가 “딱” 멈춘 그 순간.
“우, 우엑!”
어디선가 구역질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우당탕탕 뛰쳐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합주가 시작되기 전, 빈속일 때 얼른 해치워 달라고 말했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입을 틀어막은 채 홀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 것이다.
아마.
연속된 합주와 고강도로 몰아붙인 연주로 위액이 쏠린 탓이겠지.
“또, 엄살이군.”
그에 반해 HS는 이마에 땀이 조금 맺혀 있을 뿐, 너무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 게이 새끼는 대체 정체가 뭐야?’
빈센트는 더욱 풍부해진 자신의 곡에 놀라운 것보다, HS에게 더욱 놀라고 있었다.
그때.
HS가 지휘봉을 내려 놓으며 연주자들을 향해 첨언했다.
“딱 30분 쉬고 바로 녹음 들어갈게요.”
그 말에 홀 위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30분이라니….”
직접 연주하지 않는 빈센트조차 징하다는 양 중얼거렸다.
제 손에 쥔 악보의 형태만 보더라도, 이건 단 하루 만에 완벽히 연주해 낼 수 있을 법한 악보가 아니었다.
물론.
‘뉴욕 필이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HS도 자신이 너무하다는 걸 아는지, 제법 미안한 눈치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하게도, 제게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요.”
그러자, 뒷짐지고 물러나 있던 폴이 껴들며 말했다.
“그럼, 한 시간만 쉬는 시간 겸 자율적으로 연습할 시간을 주는 건 어떤가?”
그 제안에 HS가 “한 시간이라….” 하며 고민하는가 싶더니.
“예, 그럽시다.”
-하고 짤막히 대답했다. 그 대답에 단원들은 엄청난 보상이라도 얻어 낸 사람들처럼 “아싸!” 하고 소리쳤다.
이거, 완전….
뉴욕 필이 HS 손에 주물러지고 있잖아? 현존하는 관현악단 중 가장 권위가 드높은 곳이라 불리는 뉴욕 필이 대체 어쩌다 저런 어린 동양 청년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녹음이 시작된 이후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숨을 참듯이 꽈악 움켜쥐어야죠.”
“최대한 호흡 길게 빼면서 함께 맞춰 가야 해요.”
“손에 힘이 빠져 가잖아요. 이러면 소리가 비어요.”
HS의 능력은 악기별로 녹음이 따로 진행되면서부터 더욱 빛을 바랬다.
애매한 지적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보다 확실한 답안지도 없었다.
잘 모르는 일반인이 듣기에도 소리가 한층 더 좋아질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HS는 자신을 계속 녹음실에 함께 머무르게 했다.
아마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흡수시켜, 노래에 녹여내라는 뜻이겠지.
‘저 게이, 보기보다 제법이군.’
빈센트는 졸린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해가 넘어가고, 밤이 찾아오고 이른 새벽이 올 때까지 녹음실에서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합주 녹음이 끝날 때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HS의 한마디에 그들은 기절하듯 자리에 털석 주저앉거나, 악기 위로 엎어졌다.
인자한 웃음을 유지하던 폴마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번에도 대, 대단했네….”
폴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음악 감독은 언제쯤 한번 해 줄 수 있는 건가?”
“다음에 꼭 한번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다른 악기 연주… 뭐야, 너 아직도 있었어?”
HS는 말을 잇다 말고, 뒤에 앉아 있던 자신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물어왔다.
아니.
설마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가?
“계속 뒤에 있었잖아.”
“가도 됐는데, 뭘 또 기다렸어.”
진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건가? 그럼, 일부러 머무르게 하려던 뜻이나 의도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거라는 말이잖아.
‘젠장!’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기야 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래도 뉴욕 필의 연주를 실시간으로 들은 건 제법 좋은 경험이었으니까.
“빈센트.”
그때 HS가 자신을 넌지시 불러 세웠다. 고개를 들어본 HS는, 조명이 쏟아지는 홀 단상 가운데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에 빈센트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들었다.
마치.
그와 자신 사이에 간격이, 실력의 차이라는 걸 알려 주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내.
HS는 천천히 단상 끝자락으로 걸음을 옮겼고.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역광으로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 위로는 사악한 웃음이 떠오른 채였다.
“지금 싹 해치워 버리자.”
빈센트는 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까 전 입을 틀어막고 뛰쳐나가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떠오를 따름이었다.
* * *
오스틴은 앤드류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황급히 일정을 끝낸 뒤 사옥으로 향했다.
빈센트의 녹음이 새벽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된 까닭이었다.
진짜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자신이 알던 빈센트는 지금껏 녹음을 1시간 이상 넘겨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어떤 프로듀서도 빈센트를 데리고 1시간 넘게 녹음을 끌고 가 본 적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 터였다.
근데….
녹음한 지 반나절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경험자인 사라 스튜어트에게도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터벅, 터벅-.
대체 어떤 디렉팅이 진행되기에 빈센트 같은 가수를 반나절 넘게 데리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HS는 늘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는 인물이었다.
끼이이익-.
오스틴이 녹음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히자, 엄청난 사운드가 귀에 때려 박혔다.
그래.
말 그대로 엄청난 사운드였다. 여러 악기가 뿜어내는 웅장한 사운드 앞에서 오스틴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쉿-.”
그리고 그 순간 인기척을 느낀 HS가 자신을 흘겨보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별것도 아닌 그 행동 하나에, 오스틴은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그래.
뭔가 절대 방해하면 안 되는 시간을 침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
결국 오스틴은 그 자리에 쥐 죽은 듯 서 있어야 했다.
“왜 오셨어요?”
HS가 한 테이크를 끝낸 뒤, 먼저 말을 걸어올 때까지.
“녹음 잘하고 있나 싶어서….”
“보시다시피 잘하고 있어요.”
“어, 뭐, 그, 그런 것 같네….”
오스틴이 부스 창 너머로 바라본 빈센트의 얼굴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마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얼굴 위로는 어두침침한 빛이 돌고 있었다.
꿀-꺽.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스틴은 그런 빈센트를 보고 있노라니 기대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빈센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를 보며 ‘성장’이라던가 ‘고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빈센트의 두 뺨 위로 가장 안 어울릴 것 같던 그 두 단어가 적혀 있는 것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하게.”
오스틴은 제대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빈센트의 고난과 그에 따른 성장을 말이다.
하나.
HS는 그럴 마음이 없다는 양, 대답했다.
“있는데, 어떻게 없다고 생각해요?”
“어? 그냥, 계속 하던 대로….”
“그래도 대표가 있는 건 좀 그런데.”
“아, 그, 그럼 비켜 주겠네.”
“그냥 인기척만 내지 말고 계세요.”
인기척을 내지 말고 있으라니, 이 정도면 거의 숨도 쉬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 아닌가?
“어, 어… 고맙네.”
하지만, 오스틴은 그마저도 괜찮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들어 보고 싶었다.
슬쩍 들었던 반주부터 귀를 사로잡을 만큼 좋았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빈센트의 목소리와 어우러지면 어떨까 싶었고.
이내.
HS가 다시 한번 손으로 녹음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자, 빈센트는 다시금 바싹 마른 얼굴로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그 모습이 제법 안쓰러웠지만, 뭐 별수 있나?
회사에서 등 떠밀 듯 시킨 작업이 아니다.
이건 순순히 빈센트가 하겠다고 나선 작업이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황홀한 선율이 오스틴의 귀를 사로잡았다.
─ ♬ ♬ ♬
어떻게 코드로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낸 거지?
아니.
잠시만, 이거 코드로 찍어 낸 게 아닌 것 같은데?
저벅, 저벅-.
오스틴은 발소리를 죽인 채, 천천히 중앙 컨트럴 부스 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록 다가간다고 더 잘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더 가까이서 듣고 싶던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오스틴은 눈매를 좁히며 반주에 더욱 집중했다.
‘직접 연주한 걸 녹음한 것 같은데?’
결국 궁금증이 한계에 치닫은 오스틴은, 인기척을 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HS의 어깨를 덥석 잡아챘다.
“저기.”
헤드셋으로 한쪽 귀를 막고 있던 HS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답했다.
“왜요?”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요?”
“이거 반주 직접 연주한 건가? 자네가 전부?”
“그럴 리가요.”
“그럼….”
그러고는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넌지시 대답을 내놓았다.
“뉴욕 필하모닉이요.”
“뉴욕 필하모닉?”
오스틴은 일순간 ‘out of sea’라는 곡이 떠올랐다. 그래, 뉴욕 필하모닉이 피처링을 서 준 그 곡 말이다.
명성 높고, 콧대 높은 뉴욕 필에서 한국 작곡가의 곡에 피처링을 해 줬다기에 대체 어떤 작곡가일까 궁금했는데….
HS한테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이후로 찾아보지 않았던 작곡가 ‘최지현’이 만든 곡, ‘out of sea’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최지현도 함께 찾았지만, 최지현 측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싶었는데, 설마….
동일 인물은 아니겠지?
오스틴은 아닐 거라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이상하게 촉이 계속 번쩍거렸다.
끝내 조심스럽게 “혹시 최지현….” 하고 운을 떼었고.
“어떻게 아셨어요?”
HS가 흠칫 놀라며 되물어왔다.
“그, 그냥 어쩌다….”
되레 당황한 오스틴은 대충 말끝을 흐려 버렸다.
자신이 눈여겨보고 찾았던 두 작곡가가 사실 동일 인물이었다니, 놀라우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가 싶었다.
그 순간.
HS는 별안간 잘 흘러나오던 MR을 툭 꺼 버렸고.
“아, 이렇게 하죠.”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덧붙였다.
“이번 빈센트 곡 유통할 때 작곡가 명에 한글로 또박또박 ‘최지현’이라 기재하는 걸로.”
그 모습이 어쩐지 자신의 다섯 살배기 아들만큼 장난스러워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