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7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72화(272/482)
현승은 거진 이틀을 무리해서 쏟아부은 끝에, 초고속으로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여동생에게는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이틀이 다 지나서 오는 게 어딨어!”
“그래서 여행 가이드 불러 줬잖아.”
“불러 줬으니 된 거야? 진짜 너무해!”
현승은 겸연쩍은 마음에, 방 안으로 현아를 떠밀었다.
“내일 너 좋아하는 사라 스튜어트 콘서트 보러 가야 하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
현아는 제 말에 무언가 할 일이 떠올랐는지. 별안간 짐을 뒤져 대기 시작했다.
“어디 넣어 놨더라?”
그러고는 이내 무언가 잔뜩 들어 있는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깄다! 짜-잔!”
어쩜 저리 단순한지, 뾰로통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유난스러운 여대생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현아는 심드렁한 제 물음에 씨익 웃어 보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훗, 뭔지 알려 줘?”
“아니.”
“그냥 좀 들어 봐 봐.”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지금 무척 자랑하고 싶은 것 같으니 들어라도 줘야겠지.
현승은 알겠다는 양 대충 고개를 잘게 끄덕이고는 현아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봤다.
“이게 바로 모델링 팩이라는 건데, 하고 나면 피부가 되게 보드럽고 촉촉해지거든.”
“그래서?”
“내일 콘서트 갔다가 전광판에 잡힐 수도 있잖아?”
“근데?”
“그러니까 오늘 미리 피부 관리를 해 놔야지.”
저게 대체 무슨 말일까? 전광판에 잡히는 것과 피부 관리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현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 오빠의 뺨을 스윽 매만지며 물었다.
“아이고, 오빠 얼굴 상태 보아하니, 밤새웠지?”
“어떻게 알았어?”
“지금 피부가 딱 가뭄 난 것처럼 푸석하니까!”
그러고는 이내 양팔을 걷어붙이며 덧붙였다.
“기분이다! 특별히 내가 오빠도 해 줄게!”
“난 괜찮은데….”
“아냐, 오빠도 화면에 잡힐 수도 있잖아.”
“정말 너만 해도 돼.”
“아니? 얼른 당장 이거 차고, 세안하고 와.”
현승은 여동생이 정색하며 내미는 걸 받아 들었다.
바로, 연분홍빛 고양이 귀가 달린 세안 밴드였다.
“이걸 꼭 차야 해?”
현승은 기겁하는 얼굴로 물었지만….
“착용 후 세안하고 오는 데 1분 주겠다, 실시.”
여동생은 허리춤에 손을 척 하고 올려놓으며 조교 같은 어투로 즉답할 뿐이었다.
“하….”
현승은 생각보다 여동생 말에 취약한 편이었다. 더군다나 예상치 못하게 밤을 지새우고 밤이 다 돼서야 들어와 눈칫밥을 먹고 있으니, 대충 비위를 맞춰 줘야겠지….
“가오 상하게….”
궁시렁거리며 세안 밴드를 대충 머리에 끼워 넣던 찰나.
찰칵-!
별안간 번쩍이는 후레쉬가 눈을 강타했다.
“뭐 하냐?”
“협박용 사진이랄까?”
현아는 꺼림직한 미소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또 아빠랑 나만 두고 사라질 경우, 오빠 팬카페에 ‘HS의 민낯’이라는 제목 달아서 올려 버릴 거야.”
하여간, 치밀하다니까.
“그렇게 해.”
현승은 그길로 화장실에 들어가 세안을 끝냈다.
뚝, 뚝, 뚝-.
이내 턱 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채로 현아에게 향했다.
“됐지?”
현아는 그런 오빠를 보고는 기겁하며 수건을 가져와 얼굴의 물기를 가볍게 톡톡 두들겨 닦아 냈다.
“물기도 안 닦고 나오면 어떡해!”
“세안하고 나오라며.”
“세안을 했으면 물기도 닦아야지!”
“물기도 닦으라고 말했어야지.”
그 말에 말문이 턱 막힌 현아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런 오빠를 누가 데려갈까?’
정말 세상 사람들이 다 알기를 바랐다. 자신의 오빠는 잘생기고, 키도 크고, 능력도 좋지만 지독한 깡통 로봇이라는 것을.
“이제 여기 앉아 봐.”
이윽고, 현아는 현승의 손을 이끌어 화장대 앞에 앉히고는 알로에 겔을 바른 뒤, 양 볼에 잘 섞어 놓은 모델링 팩을 얹어 놓았다.
“아, 차가워.”
현승은 제 얼굴에 닿는 차가운 이질감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뭐야?”
“말하면 안 돼.”
“느낌이 영 구린… 웁.”
현아는 시끄럽다는 양 “조용히 해.”라며 자신이 쥔 붓으로 현승의 입술 위를 훑어 버렸다.
정말 느낌이 영 구리긴 했지만, 즐겁게 웃고 있는 여동생을 봐서라도 참아 보기로 했다.
“나는 물광 피부가 되어야 하니까 더 듬뿍 발라야지!”
이내 현아는 제 얼굴 위에도 덕지덕지 바르고는,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까지 소환시켰다.
스윽-, 스윽-.
결국 현아는 아버지 얼굴 위에까지 정체 모를 액체를 바른 이후에야, 만족스럽다는 듯 붓을 내려놓았다.
현승이 그런 여동생과 아버지를 바라보며 옅게 웃음 지어 보이던 그때.
“이리르 아바.”
“므라그?”
“이리르 으라구.”
현아가 입술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말하는 탓에,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짓하는 것으로 보아 대강 자신 쪽으로 오라는 말을 하는 듯 보였다.
이윽고.
현아가 아버지와 오빠 사이에 앉아 폴라로이드를 들어 올렸고.
“하나, 두울, 세엣.”
그 말을 끝으로 “찰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필름을 토해 냈다.
팔락, 팔락!
현아가 필름을 흔들자, 그 속에 묘하게 닮은 세 명의 얼굴이 나란히 드러났다.
“잘 나왔다, 그치! 헉, 말하면 주름 생기는데!”
“너 원래 주름 있지 않아?”
“내가 무슨 주름이야! 나 아직 21살이거든?”
비록 아름다운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한바탕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아, 여동생‘만’.
아침 댓바람부터 얼굴이 부었다며, 얼음을 문질러 대질 않나, 제 주먹으로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문질러 대기도 했다.
“부을까 봐 일부러 조금만 잤는데!”
“그런다고 더 예뻐지진 않을 거야.”
“시끄럽거든? 준비나 마저 해!”
“나랑 아빠는 진작에 다 했어.”
현아는 옷을 다 갖춰 입은 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빠와 오빠를 확인하고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 금방 할게!”
현승은 방으로 뛰어 들어가 얼굴에 분칠하는 여동생을 슬쩍 보고는, 앞으로 최소 1시간은 더 걸리겠다 싶어 오선지를 꺼내 들었다.
시간 때우기엔, 이만한 게 없지.
한참 오선지 위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음표를 그려 나가던 그때.
“음?”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제 뒤에서 슬쩍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 보여 드려요?
현승은 곧장 악보를 내밀며 수어로 말을 건넸다.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혼자 작업에 몰두한 것 같아 민망해진 까닭이었다.
─ 잠시 봐도 될까?
하나, 아버지는 뭐든 좋다는 양 악보를 받아 들었고.
팔락, 팔락-.
천천히 눈으로 담아내기도 잠시.
─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저 웃음을 보고자 여태껏 열심히 일한 거구나 싶다가도 왠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몰아쳤다.
그래.
아들이 만든 음악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 볼 수 없던 까닭이었다.
‘아직 청력 재생 세포 연구는 진척이 없다지….’
이뤄질 듯, 이뤄지지 못했다는 연구 진척에 대한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현승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때.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아시는 건지, 아버지가 천천히 손을 들어 말을 건네 왔다.
─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건, 마음에 담는 거라더라. 아빠는 우리 아들이 만든 곡을 늘 마음에 담고 있어.
그 말에 현승이 무어라 대답을 잇지 못하고 있던 찰나.
“나 준비 다 했어!”
준비를 마친 현아가 뛰쳐나와 소리쳤다.
“이제 가자!”
일순간 현승과 아버지의 시선이 현아에게로 쏠렸고.
“야, 치마가 너무 짧잖아!”
“그래도 이쁘잖아!”
“안 예뻐. 당장 갈아입어.”
현아는 도와 달라는 듯 아버지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 아빠, 예쁘지 않아?
하나, 아버지 또한 영 마뜩잖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당장 바지로 갈아입고 나와.”
“오늘 입으려고 새로 산 건데….”
결국, 현아는….
“안 갈아입으면 콘서트 안 데려가.”
“꼰대! 틀딱! 조선인!”
“어쩔 삼전 OLED 85인치 TV.”
다시 한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 * *
한편.
김우현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안 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고 나서야 꿈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어후, 꿈이었구나.”
그러고는 휴대폰 시간을 확인한 이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꿈이 생생하던지, 하도 몸부림을 쳐 대는 통에 이불은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읏-차!”
김우현은 곧장 몸을 일으켜 이불을 정리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텁텁하게 마른 입을 축이기 위해 칫솔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치카, 치카-!
거울을 바라보며 이빨을 세게 닦아 내기도 잠시.
“후….”
세면대를 붙잡은 채,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우현이 이렇게 새벽녘부터 잠을 설치며 땅이 꺼지도록 숨을 내뱉는 이유는 다름 아닌 금쪽이….
아니, 조금 전 ‘악몽’ 때문이었다.
현승이, 박 전무님과 함께 미국에서 ‘헬스 보이’라는 그룹명으로 데뷔하는 꿈이었는데….
현승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줬더니, 별안간 캐리어를 가득 싸 와서는 싸늘한 얼굴로 얘기했다.
“저, 이제 엄마 필요 없어요.”
진짜 자식에게 듣는 말도 아닌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제 저는 아빠만 있으면 돼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미국에서 아빠랑 살래요.”
“잠, 잠깐만!”
“이거 놔요. 미국에서 아빠와 새로운 악기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구요.”
“아, 안돼-!”
꿈에서 현승의 바짓가랑이를 하도 붙잡고 늘어졌더니, 아직도 손아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뭐, 이런 꿈을 꾸냐….”
아마, 현승이 미국에 다녀온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이 오지 않고 있으니, 걱정되는 마음이 꿈에 반영된 것이겠지.
“녀석, 문자 한 통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김우현이 푸념과 함께 대충 입을 헹군 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때였다.
지이이이잉-.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고.
“어-!”
김우현은 액정에 떠오른 ‘금동이’라는 글자에, 황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녀석, 가만 보면 호랑이라니까.
“여보세요?”
─ 엄마.
“너, 인마! 미국 가서 문자 한 통도 안 하고!”
─ 하지만 발매는 빨랐죠?
장난스러운 어투로 보아,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 같기는 한데.
별안간 발매라니….
사라 스튜어트와 추가로 작업을 진행한 건가?
“발매? 그게 무슨 소리야?”
─ 작업 끝내서 유통 넘겼고, 음원 파일도 메일로 넣어 놨어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좀 풀어서 설명해 줘.”
수화기 너머에서는 답답하다는 듯한 현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번에 말했잖아요.
“저번에?”
─ 빈센트 마흐 말이에요.
“엉? 그건 사라 스튜어트 타이틀곡 1위 3달 유지 조건 달성 시 하기로 했던….”
─ 어찌저찌 그렇게 됐어요.
“지, 진짜, 그럼, 빈센트 마흐랑 작업을 한 거야?”
─ 빈센트 마흐만 했겠어요?
“그, 그럼?”
오묘한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 뉴욕 필하모닉도 같이 했어요.
“허어….”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김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힘 빠지는 소리를 토해 냈다.
하나.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는 듯, 현승은 곧장 말을 덧붙였다.
─ 그런 의미로 이번 곡은 최지현으로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참고해 주시고요.
그러고는 이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나중에 통화하자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어 버렸다.
“허….”
전화가 끊어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김우현의 입술 사이로는 계속해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빈센트 마흐와 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최지현.
이 조합이 김우현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그림인 까닭이었다.
이윽고.
김우현은 비장한 얼굴로 옷을 챙겨 입은 뒤, 회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