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화(28/482)
하네다 공항[羽田 空港]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규모 있는 국제공항인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이었다.
현승이 수많은 인파를 뚫고 자연스럽게 공항 게이트를 찾아 나와서는 중얼거렸다.
“곧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런 현승의 뒤를 졸졸 쫓고 있던 현아가 넌지시 물었다.
“엥? 누가 와?”
“응, 마침 오네.”
현승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서 잘빠진 롤스로이스 세단 차량이 부드럽게 들어서고 있었다.
스르륵-.
이내 현승의 바로 앞에 멈춰 선 리무진 운전석에서 말끔하기 그지없는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내려섰다.
“민현승 님, 맞으시죠?”
그 말에 현승이 유창한 일어로 “예, 맞습니다.”하고 답하자마자, 운전기사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예약해 주신 페닌슐 오리엔탈 도쿄의 롤스로이스 픽업 서비스입니다. 캐리어는 두시고 편하게 탑승해 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현승이 자연스럽게 리무진에 올라탔고….
“납치 아니니까 얼른 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런 현승과 운전기사를 번갈아 보던 현아가 되물었다.
“오빠, 원래 호텔에서 차도 보내 주는 거야?”
“비행기도 보내 줘.”
“또 거짓말이지? 캐리어 막 실어 주시는데….”
“응, 얼른 타라니까.”
“차에 싣는 거 도와 드려야 하는 거 아냐?”
“아마 방해만 될걸?”
머지않아 현아와 아버지 역시 얼떨떨한 얼굴로 차량 뒷좌석에 올라타며 저도 모르게 “오….”하고 진심 어린 탄성을 흘려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아가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셀카 몇 장을 찍었을 무렵, 차량이 다시금 호텔을 향해 매끄럽게 나아가기 시작했고….
“어라?”
도쿄 중심부 사거리에서 신호가 걸린 찰나.
“지금 오빠가 만든 노래 나오는 거 아냐?”
현아가 ‘같이 걷자’가 흘러나오고 있는 번화가 쪽을 가리키며 거듭 되물었다.
“서지니의 ‘같이 걷자’잖아! 맞지? 맞네! 대박! 일본 한복판에서 들으니까 진짜 신기하다….”
창밖을 바라보니 큼지막한 빌딩 최상층의 광고판에도 서지니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는 상태였다.
일본 진출이 성공적이라더니 설마 이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잘됐네….’
이렇게 잘 풀릴 수도 있었건만 주인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자칫 계약 해지를 당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전광판 속에서 싱그럽게 웃고 있는 서지니의 얼굴을 바라보던 현승이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법 잘 어울리네….”
그러던 중, 현아가 별안간 말을 붙여 왔다.
“오빠, 좀 비켜 주라!”
“뭐?”
“아빠, 사진 좀 찍게!”
말을 마친 현아가 챙겨 온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얼른.”하고 채근했고….
“큼, 흠….”
현승이 마지못해 슬쩍 비키며, 연거푸 헛기침을 뱉어 내자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왜 그래? 목 아파?”
“아니.”
“갑자기 기침하길래.”
“그게-.”
무어라 말을 이어 나가려던 현승이 뒷말을 도로 삼켜 냈다.
사진.
실은 다 같이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생에는 가족사진 한 번 찍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가족사진은 고사하더라도 어딘가 그럴싸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차마 ‘다 함께 사진 한 장 같이 찍자.’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그때.
“도착했습니다.”
운전사의 말에 곧장 창 너머를 살펴보니 이미 호텔 앞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배웅을 나와 준 호텔리어를 따라 로비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터벅, 터벅-.
한껏 사치스럽게 꾸며 놓은 호텔 로비를 살피던 현아가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진짜 대박이다….”
아시아 호텔 중 단연 최고의 호텔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로비에는 온갖 현대 미술품이 진열된 채였으며 천장부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유감없이 반짝여 대는 중이었다.
“오빠, 진짜 대박이지 않아…?”
현아가 넋을 놓은 채 로비 풍경을 촬영하던 찰나.
“현아야, 뭐랄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널 보니까 문득 유명한 동화가 떠오르네.”
“혹시 신데렐라 아냐? 왕자님의 연회에 초대받은 공주님이 된 기분이긴 하거든.”
“아니,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동화인데 그 중 시골 쥐가 서울에 막 상경하던 장면이….”
그 말에 현아가 “야!”하고 소리쳤고….
“정숙해야지.”
능청스럽게 답한 현승이 곧장 카운터 앞에 다다랐다.
“체크인 도와 드리겠습니다.”
호텔리어는 총책임자처럼 보이는 남성에게 인도해 준 뒤 뒤로 물러났고.
“이번에 예약해 주신 펜트하우스는 요청하신 대로 전망이 좋은 49층으로 배정해 드렸습니다.”
현승이 예약해 둔 펜트하우스는 일일 숙박료가 한화로 자그마치 200만 원에 육박하는 초호화 객실이었다.
더군다나….
현승은 고가의 롤스로이스 픽업 서비스까지 이용한 특급 VIP 고객이었기에 호텔 측에서도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짐은 객실로 올려놔 드릴까요?”
그 말에 현승이 곧장 “네, 부탁드리겠습니다.”하고 답했고….
“저….”
아버지를 돌아보며 수화로 물었다.
– 아버지, 혹시 피곤하시지는 않으세요?
– 아냐, 괜찮다.
– 피곤하시면 조금 쉬었다가 나갈까요?
– 바로 가자꾸나.
이내 아버지께서 재차 말씀하셨다.
–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라도 더 봐야지.
그 말에 현승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가족들과 한 곳이라도 더 많이 다녀야지.
* * *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던 도중이었다.
“오빠, 오빠.”
현아의 부름에 현승이 괜히 시큰둥하게 답했다.
“한 번씩만 불러.”
“왜!”
“귀에서 피 나겠어.”
그 말에 현아가 잠시 현승을 흘겨보다가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일본어를 왜 이렇게 잘해?”
“누가? 내가?”
“응! 아무리 들어도 너무 유창하던데?”
현승은 공항에서도, 호텔에서도, 심지어 식당에서도 원어민급의 일어 구사 능력을 선보였다.
그 말에 현승이 귀찮다는 듯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는 능청스레 변명을 둘러댔다.
“비밀인데 사실은 중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어 전공했거든.”
현아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따지듯 물었다.
“누굴 정말 바보로 아네! 나도 전공했거든? 제2외국어로 일어 전공했다고 그렇게 잘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일본어 학원들은 전부 문 닫았어야지! 빨리!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데!”
이내 현승이 재차 뻔뻔스럽게 답했다.
“애니메이션으로 공부했어.”
“헐…?”
“나루토, 원피스, 러브 라이브….”
현아가 “뭐야? 진짜야…?”하고 마냥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자 현승이 피식 웃음 지었다.
‘하여튼, 잘 속는다니까.’
사실 일본이라면 전생에서 정말 질릴 만큼 많이 와 보고 또 와 본 곳이랄 수 있었다.
우동이 먹고 싶어서 점심 비행기로 왔다가 밤 비행기로 돌아간 적도 있었으니까.
사실 일본에 주로 방문했던 목적은 일본 레코드사들과의 미팅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오빠, 여긴 어디야?”
그 말에 현승이 눈앞으로 펼쳐진 정원을 둘러보며 답했다.
“황궁 정원.”
그리고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수화로 물었다.
– 여기는 황궁 정원이라는 곳이에요.
– 그래, 한적하니 좋구나.
– 산책로 따라서 좀 걷다가 들어갈까요?
– 좋지, 조금 걷다 들어가자.
아버지의 얼굴에 푸른 초원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찰칵, 찰칵-.
느닷없는 셔터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필름 카메라를 꺼낸 현아가 아버지의 얼굴과 정원 풍경을 번갈아 가며 찍어 대는 중이었다.
“오빠, 좀 비켜 봐. 정원 바탕으로 아빠 좀 찍어 드리게.”
그녀의 말에 현승이 다시금 헛기침해 대며 눈치를 살폈다.
“큼, 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고 싶다.
한데….
곧 죽어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해? 좀 나와 달라니까?”
이윽고.
“저기-.”
현승이 없는 용기를 쥐어 짜내다시피 하며 말문을 열었다.
“다 같이 찍자.”
“엥, 다 같이?”
“그래, 다 같이.”
“웬일이야?”
현아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오빠, 사진이라면 질색하잖아?”
그 말에 현승이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그냥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들 하잖아….”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기념 삼아 찍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현승이 재차 기어들어 가는 투로 덧붙였다.
“우리 가족, 첫 해외여행이잖아.”
현아가 얼떨떨한 얼굴로 현승을 바라보던 찰나.
“줘 봐.”
현승이 필름 카메라를 “휙-.”하고 낚아챘고….
“실례하겠습니다.”
행인 한 명을 붙잡고 정중히 사진을 찍어 달라며 부탁했다.
쿡!
그때 현아가 현승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오빠, 어디 아파? 더위 먹었나?”
“뭐가.”
“사림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까불지 마라.”
현아가 짐짓 정말 걱정이라도 된다는 양, 현승의 안색을 살피던 순간.
“찍겠습니다!”
행인이 소리치자 남매의 다툼은 잠시 일단락되었고.
“민현아, 아버지 옆에 얼른 서 봐.”
이내 현승과 현아가 아버지를 사이에 둔 채로 자리했다.
그리고는.
현승이 손을 들어 어색하게 브이(v)를 만들던 찰나였다.
쿡!
곁눈질로 오빠의 브이를 발각한 현아가 질색하며 옆구리를 찔러 댔다.
“너 민현승 아니지? 귀신이지?!”
“뭔 개소리야.”
“우리 오빠, 어디 있어? 우리 오빠 돌려내!”
“쉿. 사진이나 찍게, 웃기나 해.”
현아가 거듭해서 장난스러운 손끝으로 찔러 대자, 현승이 곧장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 말라니까?”
“해즤 맬래니깨?”
“야, 그만 까불지?”
“야, 그먕 까불쥐?”
“너 진짜 죽는다?”
“눠 진쫘 쥭는돠?”
그 순간.
“이게 진짜-!”
현승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고….
“크큭….”
덩달아 현아가 익살스럽게 웃음 지어 보였다.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화기애애해 보이는 남매를 지켜보시던 아버지 역시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시던 찰나였다.
찰칵!
셔터 소리가 한차례 울려 퍼졌다.
처음이었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게.
대체.
이게 대체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 * *
이른 아침행 비행기를 타고 온 탓인지, 아버지와 현아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잠들어 버렸고….
“음.”
현승은 영 잠이 안 온 탓에 몸을 일으켜 도쿄 거리로 나섰다.
“어디로 가지….”
예약해 둔 온천 이용 시간까지 장장 서너 시간을 녹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던 중 우연히 『Jazz』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했고….
‘간단하게 술이나 한잔할까.’
마음을 정한 현승이 바의 입구로 들어서자 꽤 아기자기한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로 하얀 벽지는 이미 노랗게 바랜 상태였으며….
한쪽 벽면에 빼곡히 정렬되어 있는 LP판만 보더라도 주인장이 지닌 음악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면에는 유명 뮤지션들의 사진과 이번 달로 예정된 공연 라인업에 대한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매일 공연하는 뮤지션이 다른가 보네?’
이내 현승이 자연스럽게 바 테이블 한자리를 꿰차고 앉아서는 능숙하게 간단한 안주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렇게 한 모금을 홀짝이려던 찰나 “잠시만요….”하고 중얼거린 주인이 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음?”
가게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널찍한 무대였다.
앙상한 체구의 주인은….
별안간 홀로 무대에 올라서는 자기 몸체만 한 콘트라베이스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직접 연주하기도 하는 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콘트라베이스는 안 그래도 보기 힘든 악기 중 하나랄 수 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흔히 쓰이는 4현이 아니라 5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대감이 차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 않은가?
그러나.
머지않아 기대감이 차게 식으며 가라앉았다.
‘다룬 지 얼마 안 된 건가?’
콘트라베이스를 조율하는 주인의 손길이 마냥 서툴러 보이기만 했던 까닭이었다.
“흠….”
처음에는 홀로 온전히 조율을 마칠 때까지 잠자코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으리라.
분명 그랬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잘근 씹어 댈 수밖에 없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로군.’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저 콘트라베이스가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빛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한눈에 “척” 보더라도 고가의 악기였다.
저 사람의 연주 실력이 엉망이라도 신경 쓸 건 없지만, 아예 못 본 체하기엔, 저 콘트라베이스가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빛을 잃는 꼴은 볼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
이왕이면 멋들어진 연주까지는 못 듣더라도 황홀한 선율로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 되겠어.’
이윽고.
“저기.”
현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인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콘트라베이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 조율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