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3화(282/482)
HS의 오감 팬 미팅.
대망의 1차 신청을 하는 날이 찾아왔다. 구민기는 신청하기에 앞서, 어머니의 방을 찾았다.
똑, 똑-.
비록 듣지 못할 테지만, 괜히 문을 두들겼다. 그래, 예전처럼 “응, 들어와.”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을 테니까.
끼이익-.
문을 열어 보니, 어머니는 이불에 누워 음 소거가 된 TV를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다.
자신의 어머니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밝고, 씩씩한 분이셨다.
그래.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 처자식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 하나로 출근하시던 길에 뺑소니로 사망하셨다.
시간이 이르기도 했고, 외진 곳이라 CCTV나 목격자도 없었기에 범인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청력을 잃었고.
머지않아 웃음도, 의지도, 말수도 잃어버렸다.
구민기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수어를 배우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가족들을 위해 수어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되었다.
하나.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오는 건 무리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면,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으셨다.
고요한 세상 속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라던가?
그렇게….
어머니는 점차 집이라는 작은 상자에 고립되어 갔다.
톡톡.
등을 보인 채 누워 있는 어머니의 옆에 조용히 앉아, 놀라지 않게 어깨를 다독였다.
─ 어머니, 저랑 조만간 나들이 가실래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는, 이내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바람 쐬고 와요.
이번에는 손을 들어 맥없이 흔들어 보였다. 완강한 거절이었다. 그러나 구민기도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나 줄 생각이 없었다.
─ 실은, 저의 첫 제자가 이번에 공연을 하거든요.
어머니는 ‘제자’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기셨는지 슬쩍 상체를 일으켰다. 물론, 철저한 계약 관계로 알려 준 것이라 ‘제자’라고 칭하기엔 양심이 좀 찔렸다.
하물며, 민현승은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작곡가 ‘HS’이지 않나? 자신이 그런 사람을 가르쳤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배움을 준 건 사실이니, 거짓말은 아니지.
─ 우리 아들한테 제자가 있었어?
어머니는 화등잔만 해진 눈을 한 채 물어왔고.
─ 꼭 수어로 무대를 꾸며 보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서 도와줬어요.
─ 그 친구도 혹시….
머지않아 움직이던 손이 공중에서 갈 곳을 잃은 양 뚝 멈췄다, 서서히 떨어졌다.
아마 그 친구도 너처럼 농인 가족이 있는 거냐고 되물으려던 모양인데….
그럼, 결국 자신도 아들에게 ‘농인 가족’이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이니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일 터였다.
또다시 어두워진 어머니의 안색.
어머니는 아주 뒤늦게 청력을 잃어서인지, 자신이 농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힘들어하셨다.
더군다나.
아버지도 억울하게 잃은 마당에, 하나뿐인 아들에게 짐이 되었다는 생각마저 하시는 듯 보였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보여 주고 싶었다. 농인과 함께하는 오감 팬 미팅인 만큼, 많은 농인들이 올 테고.
그렇다면 어머니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그래.
HS가 만든 Dear my Beethoven에 나오는 가사처럼.
남은 우리 가족도 잘 살아 보자고, 행복하게 살자고.
꼭 얘기해 주고 싶었다.
─ 제가 계속 함께 있을 거니까, 우리 같이 보러 가요.
자신의 완강한 말에 어머니가 고민하시기도 잠시.
─ 알겠어. 같이 가자.
가볍게 웃어 보였다. 역시, 자식을 이길 수 있는 어머니는 없었다.
* * *
현승의 팬 미팅 1차 신청은, 조건을 붙인 게 무색하리라 만큼 많은 이들이 신청했다.
드르륵, 드르륵-.
마우스 휠을 긁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신청자 목록 앞에, 김우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고, 1차 신청에서 벌써 6천 명이 넘어 버렸어. 일반 신청자들은 어쩌냐….”
그 말에 휴대폰을 만지던 현승이 무심히 입을 열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청각 장애인 분들이 많다는 얘기죠. 그리고 그분들도 그냥 일반 신청자일 뿐이에요.”
“그, 그렇지….”
이내 김우현이 스스로 입술을 찰싹 때렸다. 그런 실언을 하다니, 더군다나 저 녀석 앞에서….
“혼자 뭐 하세요?”
“그, 그냥….”
“자학이 취미예요?”
“어, 어….”
현승의 표정으로 보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맘이 좋지 않았다.
“악취미네요.”
현승이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잠시.
“그럼, 공평하게 이렇게 하죠.”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을 이었다.
“1차 신청자는 가족 동반을 우선순위로 4천 명, 2차 신청자는 추첨으로 천 명만.”
현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우현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바로, 이번 현승의 팬 미팅과 관련된 전반적인 컨설팅을 맡아 준 공연 디렉터 담당자였다.
“지금부터 1차 신청자 중, 가족 동반자를 우선으로 추려서 4천 명만 선정해서 리스트 공지 올리고, 안내 문자 발송해.”
─ 4천 명이나요? 그럼, 2차 신청자들 원성이 자자할 것 같은데….
“팬 미팅 주인공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별수 있나.”
─ 저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데 괜히 HS님이 팬들한테 욕먹을까 봐 걱정돼서요.
그 말에 김우현이 곁눈질로 현승을 흘끔 바라보기도 잠시.
“됐고, 잘 좀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고는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래, 저렇게 마음 따듯한 녀석을 욕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설령 있다면 찾아가서 말해 줄 거다.
‘우리 금쪽이가 애는 착해요.’
* * *
[ HS의 오감 팬 미팅, 드디어 하루 앞으로 다가와.. ]멀게만 느껴졌던 현승의 팬 미팅이 단 하루만을 남겨놓은 채였고….
규모가 커진 만큼, 조명과 음향 그리고 이동 거리까지 꼼꼼히 체크를 해야 했기에 하루 전인, 오늘 사전 리허설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거, 판이 안 맞아서 달그락거리는 것 같은데 무대 설치팀한테 확인해 달라고 해.”
김우현은 깐깐한 시어머니마냥 팔짱을 끼운 채, 설치된 무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렸다.
현승이 무대를 선보이다, 넘어지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니 더욱 철저히 살펴야만 했다.
물론.
요즘 시대에 무대 사고는 잘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우리 금동이 지켜.’
무대 상태를 체크하며 돌아다니고 있노라니, 누군가 공손히 인사를 건네 왔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바로, 강하준이었다.
“인마, 나 본부장 된 지 반년 넘어 가는데 기억 좀 해 줄래?”
“아, 맞다! 죄송해요.”
“나한테 관심 없는 거 티 좀 내지 마. 서운해지려고 그래.”
가만 보면 강하준은 착하고 예의 바른 청년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한테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였다.
아아.
현승한테는 과다해 보이지만.
“너 근데 왜 왔냐?”
“왜 오긴요, 리허설 하러 왔죠.”
“아, 그래?”
“네, 작곡가님이 저한테 직접 게스트 가수로 무대를 도.와.달.라.고 하셨거든요.”
대체 왜 도와주러 왔다는 말을 스타카토로 끊어 말하며, 강조하는지 모르겠지만.
“아, 그랬어? 요즘 안 그래도 바빠서 힘들 텐데, 고생 좀 해라.”
“고생은요, 갓치스님을 도울 수 있다면 이까짓 고생쯤이야.”
“어, 어, 그래….”
어딘가 광기 어린 강하준의 눈을 마주치기 불편해, 대강 얼버무리며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오랜만입니다.”
우직한 돌멩이처럼 생긴 남자가 앞을 가로막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어, 그래.”
이번에는 안지호였다. 그 뒤로는 같은 멤버인 최정혁이 능글스럽게 웃음 짓고 있었다.
“망아… 아니, 지호랑 정혁이네.”
안지호가 “망아”라는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기도 잠시.
“작곡가님은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어 왔다.
“백스테이지에 있어. 근데, 넌 왜 온 거야?”
“왜라뇨? 작곡가님이 하도 도와 달라니까 왔죠.”
그 말에 대답을 이은 건, 자신이 아닌 강하준이었다.
“작곡가님이 몇 번이나 도와 달라고 연락하셨는데요?”
“예?”
“정확히 횟수가 어떻게 되냐고요.”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우현은, 적지 않게 놀란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런 강하준을 빤히 바라봤다.
“예?”
당황스러운 건 안지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 강하준의 이미지와 달리, 공격적으로 물어 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평상시에도 나한테만 유달리 냉랭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안지호는 기분 탓이라 여기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한 말이고, 문자로 부탁한다길래 알았다고 한 게 전부예요.”
그 말에 강하준이 심장을 쓸어 내리기도 잠시.
“그럼, 그렇게 얘기하셨어야죠.”
다시금 순한 얼굴로 돌아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작곡가님이 부탁하시길래 넙죽 오케이 했다고.”
왠지 안지호는 지금, 이 순간 등골에 오싹함이 몰려왔다.
뭐랄까? 마치 눈치 없이 굴다가 ‘여친’에게 꼽을 먹는, ‘여사친’이 된 기분이랄까.
느껴 본 적도, 앞으로 느껴 볼 수도 없는 감정이었지만, 얼추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
장내의 공기가 차갑게 냉각되어 가던 그때였다.
“본부장님-!”
어디선가 밝고 청량한 목소리가 구세주처럼 들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정아린이 힘차게 인사하며, 비타민 음료 CF의 한 장면처럼 청량하게 웃어 보이자 강하준과 안지호 사이에 흐르던 어색함 또한 흐려졌다.
“어, 아린아!”
김우현은 지금, 이 순간 정아린이 너무 반가웠다.
“잘 왔다, 너무 잘 왔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냥 반가워서 그러지.”
정아린이 이상하다는 양 바라보기도 잠시.
“근데, 저 늦지는 않았죠?”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을 살피며 물어왔다.
“뭘 늦어?”
“오늘 리허설 말이에요.”
“너도 게스트 가수야?”
“네! 무려 두 번이나 게스트 가수로 오르게 되었답니다!”
정아린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박수를 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 댔다. 정말 꽃가루라도 뿌려 줘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또각, 또각.
머지않아 정아린의 꺄르르거리는 웃음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고.
“뭐야.”
모습을 드러낸 건, 서지니였다.
“K-DOME 두고 왜 이렇게 작은 곳에서 해요?”
뒤에 똘마니마냥 이효은과 윤제이를 주렁주렁 달고 와서는, 마뜩잖다는 얼굴로 경기장 내부를 살펴 댔다.
“팬 미팅 장본인이 여기서 한다는데, 어떡해.”
“그래도 HS라는 이름값이 있는데, 너무 작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녀석이 내 말 듣겠냐?”
“안 듣겠죠. 알면서 해 본 말이에요.”
그러고는 재차 물어 왔다.
“설마, 아무리 좁아도 대기실은 있겠죠?”
“대기실?”
“이러고 리허설 할 수는 없잖아요. 스케줄 끝나고 바로 오느라고 못 갈아입었단 말이에요.”
이내 쇼핑백을 흔들어 보이며, 얼른 말해 달라고 채근했다.
“지니, 너도야?”
“뭘요?”
“게스트 가수.”
“아니면 제가 여길 왜 오겠어요.”
그 말에 김우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에 서 있던 윤제이와 이효은에게도 물었다.
“너희도?”
둘은 뭐가 잘못된 거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허-.”
김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고.
‘대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서지니, 이효은, 윤제이, 정아린, 최정혁, 안지호 그리고 강하준까지.
‘무슨 팬 미팅을 벌이려고….’
아무리 다시 살펴봐도 이건 단순 팬 미팅 게스트 가수의 라인업이 아니라, 연말 가요대제전 라인업 같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