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5화(284/482)
사라 스튜어트는 안대를 치워 내고는, 미스트를 꺼내 얼굴이 흠뻑 젖을 만큼 뿌려 댔다.
칙, 칙, 칙-!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해, 피부가 건조해진 까닭이었다. 제아무리 퍼스트석이라 할지라도, 건조한 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용기를 훔쳐서라도 타고 올걸.
“흐음….”
착륙을 완료한 비행기 밖의 풍경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보아,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이렇게 금방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라 스튜어트는 케이스에 넣어 놨던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안 그래도 요즘 본인의 콘서트 영상이 뉴튜브에서 화제가 되어, 다른 나라에서도 제법 얼굴이 알려진 것 같으니, 더욱 조심해야겠지.
사라 스튜어트는 이번에도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가, 조용히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
HS의 팬 미팅만 보고 돌아가야지.
아마.
사라 스튜어트가 타국의 작곡가 팬 미팅을 보기 위해 내한했다는 기사라도 뜨면, 분명 말도 안 되는 찌라시가 따라붙을 터였다.
자신은 늘 구설수 속에 사는 사람이라 괜찮지만….
그 괴짜는 아니니까.
사라 스튜어트는 모자와 선글라스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공항을 빠져나왔다.
회사 측에 보고하기도 민망해서, 전용기도 타지 않고, 매니저 한 명 없이 홀로 타국에 왔더니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지?
이내 길을 찾기 위해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눌러 켰고.
띠링, 띠링, 띠링-!
너무 오랜 시간 꺼 둔 탓인지, 전원이 켜지기가 무섭게 액정 위로는 알림이 솟구쳤다.
처음 확인한 알림은 HS로부터 온 문자였다.
[ Aren’t you coming to get the grain powder? ]미숫가루 받으러 안 오냐는 물음으로 보아, 아마도 자신의 팬 미팅에 안 오냐는 거겠지.
‘왔다, 왔어.’
하여간, 고작 미숫가루 하나 가지고 생색은 더럽게 많이 낸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미숫가루를 대량으로 가져갈 방안을 모색해서 가져가야지.
[ Where else did you go after skipping the schedule?] [ Did you drink again? ] [ Sarah, call me as soon as you see the text.. ]이후에 온 연락은 전부 매니저와 실장인 앤드류였다.
다들 스케줄 펑크 내고 대체 또 어디로 사라졌냐는 물음뿐이었다. 대체 또라니….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자신의 업보였다.
사라 스튜어트는….
간혹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날이면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 하염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오선지를 들고 가 떠오르는 악상을 그리다가 오곤 했으니까.
그래.
회사 측에서 어디 갔다 왔냐 물으면, 그때마다 대충 술병이 났었다고 핑계를 대곤 했으니 그들에게 자신은 ‘악동’ 정도로 여겨질 터였다.
뭐, 어쩌겠나?
우선 지금 당장은 HS의 팬 미팅을 가야만 하는걸.
그들의 연락을 무시하고 다시 게이트로 향하던 그때.
띠링-!
뒤늦게 온 문자 한 통에 사라는 누군가 발목이라도 잡은 듯, 그 자리에 뚝 멈췄다.
[ 문자 보면 연락하렴. ]그건 바로 연락을 끊고 지낸 지, 족히 5년은 넘은 한 남자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이 사람이 왜….’
정확히 말하자면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꽈-악.
사라는 휴대폰을 손가락이 새하얘질 때까지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만약 여기가 공항만 아니었더라면, 당장 휴대폰을 내던지고 소리라도 질렀을 터였다.
아버지는 꼭 이런 식이다.
어릴 적부터 늘 자신 마음대로, 제 뜻대로, 명령조로 얘기하곤 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수가 되고 싶다던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아픈 줄도 모른 채 홀로 병들어 가던 엄마에게 바쁜 자신을 이해하라고 강요했다.
결국 엄마를 죽인 건 아빠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떠난 그날, 사라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꿈을 짓밟으려는 아빠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분명.
엄마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행복하게 살길 바랄 테니까.
그렇게 다신 찾지 말라는 통보와 함께 집을 나왔고.
어느 날인가는 엄마의 무덤 앞에서, 어느 날인가는 엄마와 함께 갔던 광장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이 나면, 어딘가에서 엄마의 박수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격히 통제받으며, 감정을 표현해 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라에게 있어서 노래는,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던 중.
오스틴 데이비드, 그러니까 지금의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이사에게 스카웃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자신은 그저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가수가 되고 싶었던 건데, 오스틴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며 다가왔으니까.
무엇보다.
가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면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거나 혹은 자신이 가수 생활을 할 수 없게 통제하려 들까 봐.
그래.
아버지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니까.
하나.
오스틴이 뭐든 원하는 대로, 노래만 하고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여 덜컥 계약하게 되었고.
그는 약속한 대로 방송 노출은 최소한으로 하고, 음악 위주의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서포트 해 줬다.
물론….
애초에 성격상 방송 활동은 맞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스틴도 몇 번 시도해 보더니 ‘자제령’을 내렸다.
SNS도 하지 말라던가?
아직 데뷔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여태껏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연락이나 영향을 받진 않은 걸 봐선, 이젠 남남처럼 살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왜 연락이 온 걸까.
집을 나간다고 했을 때도, 그럼 어디 가서 자신의 딸이라 말하지도 말고 지원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며 단호히 말했던 아버지다.
하물며 이후에도 5년간 연락 한 통 없었는데 말이다.
“fuck….”
사라 스튜어트는 미간을 구긴 채 욕을 중얼거렸다.
참 찜찜하면서도, 더러운 기분이다.
이윽고.
사라 스튜어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게이트를 통과했다.
찰칵, 찰칵.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리는지도 모르는 채.
* * *
진미소는 아침부터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뭐 입지? 아, 미치겠네.”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HS의 두 번째 팬 미팅을 가는 날이었으니까.
“오빠! 준비됐어?”
진미소는 방에서 꾸무적거리고 있는 오빠 방문을 벌컥 열고 닦달해 대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근데 꼭 가야 해?”
진미소의 오빠인 진시우는 귀찮다는 얼굴로 재차 따져 물었다.
“너 내 장애인 등록증이 필요해서 같이 가자고 그러는 거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HS인지 뭔지 팬 미팅 조건이 그거라며, 청각 장애인 가족 동반.”
그 말에 진미소는 입매를 꾹 다물었다. 그래, 사실 저 말도 맞다. 만약 오빠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2차 신청을 했어야 할 테고….
그럼, 아마 절대 갈 수 없었을 테지.
“오빠.”
진미소는 진시우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 나지막이 불러 세웠고.
“왜.”
한동안 고요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지금, 이 순간 오빠가 한 말이 일부 맞았기에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속이 상한 까닭이었다.
자신의 오빠는….
학생 때까지는 음악을 무척 사랑해서 밴드부로 활동도 했던 사람이었다. 늘 주머니에는 이어폰을 넣고 다니고, 어딜 가던 음악을 들었다.
그러던 중.
사고로 왼쪽 귀의 청력 자체를 잃게 되었고.
오른쪽 귀 마저도 보청기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 뒤로 이어폰이란 이어폰은 전부 다 가져다 버렸다.
그렇게 점차 음악을 꺼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아예 사람과 만남 자체를 꺼렸다.
자신의 왼쪽에 누군가 앉거나, 지나가는 게 무섭다며, 자신의 세상은 반만 살아 숨 쉰다고, 그 기분이 너무 싫다고 했다.
진미소는 그런 오빠를 보는 게, 너무 속이 상했다.
자신의 오빠는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이었고 자신 또한 그 영향을 많이 받아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같이 뮤지컬과 콘서트를 보러 다니고, 새로 나온 신곡에 대해 떠들던 날이 다시 오길 기도했다.
하나.
아예 청력이 손실된 것에 대해선 보청기는 물론이고, 인공삽입술 또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오른쪽 귀는 보청기를 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다시 오빠가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으로 치유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힘들 때마다 위로를 많이 받았던 HS의 곡을 들려주고자 애썼지만, 그럴수록 오빠는 점차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던 중.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 HS가 ‘오감 팬 미팅’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조건에 ‘농인 동반’이라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래.
음악은 꼭 귀로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는 거니까.
“아직 음악 좋아하잖아.”
“안 좋아해.”
“거짓말, 나 다 봤어.”
“뭐를 봐?”
“저번에 내가 집에 뭘 두고 와서, 나갔다가 얼마 안 돼서 들어온 적이 있었거든?”
제 말에 오빠는 어딘가 불편한 얼굴로 “근데?” 하고 퉁명스레 되물었다.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걸, 들킨 건가 싶어 불안한 얼굴이었다.
“아, 아니야.”
진미소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오빠가 불편해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그날의 장면은 자신 또한 떠올리기 힘든 까닭도 있었다.
그래.
집을 나섰다가,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갔던 그날, 진미소는 오빠의 동굴 속 세상을 보게 되었다.
─ ♬ ♬ ♬
방문이 흔들릴 만큼 거대한 음악 소리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헙!”
진미소는 그대로 입을 틀어막은 채,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오, 오빠….’
납작 엎드려 두 귀를 내려치던 오빠와 그 앞에 버려진 보청기.
그리고 그런 오빠의 괴로운 신음 소리가 뒤엉킨 음악의 선율.
자신이 태어나 본 어떤 장면보다 비통하고 애석하고 처절했다.
“오빠아, 오빠, 귀… 흡, 어떡해….”
처음 청력을 잃었다는 소식에 펑펑 울던 자신에게 오빠는,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다행인 거 아니냐며 덤덤하게 말했었다.
이후에도 음악을 끊고, 밖을 나가지 않을 뿐이었지. 가족들과는 밝게 잘 지냈다.
정작.
본인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심정이었으면서….
“아무튼 같이 가자. 오랜만에 동생이랑 데이트 좀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진미소는 차마 그 얘기를 꺼낼 수 없어, 애써 웃으며 오빠에게 찰싹 달라 붙어 애교를 부려 댔다.
“내가 맛있는 것도 사 줄게! 같이 가자아! 웅? 웅?”
진시우가 그런 여동생을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알겠어.”
등을 떠밀며 덧붙였다.
“옷 갈아입고 나갈게.”
그제야 진미소는 밝게 웃으며 방을 나섰고.
부디.
오늘의 오감 팬 미팅이 오빠에게 새로운 음악을 선물해 주길 바라며 유유히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