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6화(285/482)
서울 올림픽 공원 내 경기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많은 현장 스태프는 무대 점검을 진행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뛰어다녔고.
간이로 설치된 대기실 내부에선 가수들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목을 풀고, 스트레칭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현승은 홀로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자신이 초대한 사람 중 밍구와 미숫사라가 아직 연락이 안 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승이 수어 퍼포먼스라는 걸 해 보겠노라고 결심하게 해 준 당사자와 수어 퍼포먼스를 알려 준 스승이 빠져 버린 셈이니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뭐, 사실 아버지만 오면야 됐지.’
현승이 미련을 접어 둔 채, 휴대폰을 내려놓던 찰나였다.
쿠-웅!
힘차게 열린 대기실 문 안으로 작은 형체 하나가 뽈뽈 달려 들어왔다.
“부꼬마크맨-!”
그러고는 현승의 품 안에 폴짝 뛰어가 안겼고.
“음?”
현승은 별안간 자신의 품에 안긴 작은 형체를, 꽉 안아 주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새 좀 컸나?’
애들의 성장은 참 무서웠다. 못 본 지 고작 몇 달밖에 안 된 것 같은데 그새 훌쩍 큰 느낌이었다.
“김도희, 그러면 안 돼. 이리 와.”
머지않아 김도준이 난감한 얼굴로 따라 들어와, 그런 도희를 떼어 내려 손을 뻗었지만.
“시러어!”
이제 제법 고집이 세질 나이인 어린아이를 말릴 수는 없었다.
“우리 도희 착하지?”
하지만, 뛰는 도희 위에 나는 도준이었고.
“말 잘 들으면 끝나고 솜사탕도 사 주고, 미미 스티커도 사 줄게.”
“허어억! 진짜아-?”
“물론이지, 대신 오늘 하루 동안 오빠 말 잘 들으면 사 줄 거야.”
도희가 못내 아쉽다는 얼굴로 현승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하던 그때.
꽈-악.
현승이, 제 품에서 도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힘을 주었고.
“부꼿마크맨?”
이내 도희의 귀에 아주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굳이 안 가도 돼.”
“하지마안 나는 솜사탕이랑요 미미 스티커가 가지고 싶은 걸요… 미아내요, 부꼬마크맨.”
“그거, 나도 사 줄 수 있어.”
“허어억! 지인짜?”
“물론이지. 몇 백개, 아니 몇 천개나 사 줄 수 있어.”
“우와아아! 그러며는 호옥시 오십 개도 사 줄 수 있오?”
현승은 도희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오십 개는 너무 적게 바라는 거 아니야?”
“아냐아! 오십 개가 제일 많은 거자나!”
아무래도 도희의 세상 속에서 50이라는 숫자가 가장 큰 모양이었다. 어린애한테 맞춰 줘야지.
현승이 대강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도희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자그마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귀, 귀여워….”
장내의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무슨 얘기를 나누길래, 귓속말로 은밀히 속삭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퍽 다정한 부녀지간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나는 부꼿마크맨을 버릴 쑤 업서! 미아내, 오빠!”
도희의 선전포고에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김도준은 그렇게 오늘도 불꽃마스크맨에게 밀려났다.
* * *
부산스럽게 준비를 끝마친 현아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을 나섰다. 현승의 팬 미팅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오빠가 여기 서 있으면 데리러 올 거라고 했는데….”
현아가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도로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때였다.
빵, 빵!
크락션 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니, 새까만 밴 한 대가 서서히 제 앞에 멈췄다.
탁-!
머지않아 운전석을 열고 나온 남성은 자신과 아버지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맞네.”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얼른 타라며 뒷좌석 문까지 손수 열어 주었다.
하나.
생전 처음 보는 남성의 차를 따라 탈 바보가 세상천지 어딨겠는가? 현아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남성을 부라리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남성은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웃으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걱정 마세요, 저는 LS 엔터 소속 매니저이자 HS 님이 가족들 모시고 와달라 해서 나온 거예요.”
그러고는 제 명함까지 내밀어 보였다. 현아는 그 명함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잠시.
“오빠한테 전화해서 확인 먼저 하고 탈게요!”
곧장 자신의 오빠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팬 미팅 준비로 정신없어서 휴대폰을 못 보는지, 연결음은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현아는 애타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굴러 댔다.
이러다가 늦을 것 같은데, 명함도 확인했고 그냥 확 타 버릴까?
아냐.
혼자도 아니고, 아버지도 있는데 위험할지도 모르는 사람의 차에 오를 수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아니, 잠깐만.
이러다가 늦어지면 팬 미팅장 입구도 못 밟아 보는 거 아냐?
‘아 씨, 왜 안 받아….’
현아가 망했다는 얼굴로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
─ 어, 왜.
수화기 너머에서 무심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 바빠, 얼른 말해.
“오빠가 밴 보낸 거야?”
─ 어, 그거 타고 와.
“검은색 밴, 맞지?”
─ 그거까진 모르겠는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면 어떡해!”
─ 너가 그토록 좋아하는 강하준이 매일 같이 타는 밴이니까 얼른 타고 오기나 해.
수화기 저편에서 “부꼿마크맨, 또! 또!”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잠시.
툭-.
전화는 매정하게 끊겨 버렸다.
“혹시….”
현아가 멋쩍은 얼굴로 남성을 불러 세웠고.
“우리 하준이 오빠, 매니저세요?”
“네, 맞아요.”
“저희 어디로 타면 된다고요?”
이내 언제 의심했냐는 듯, 밴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다.
* * *
현아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그냥 불편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불편했다.
밴에서 내리자, 경호원들이 양쪽으로 따라붙었고.
그들을 따라 경기장 뒤편에 위치한 관계자 통로로 향하는데….
그게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가 된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경기장 주변은 온통 팬 미팅을 보러 온 오빠의 팬들로 바글거리다 보니, 배려해 준 모양인데….
‘이게 더 눈길을 끌 것 같은데….’
현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경호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재빨리 내부로 들어섰다.
“우와….”
장내에 들어서자, 많은 인원이 무전기를 들고 발에 땀이 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관계자만 들락거릴 수 있는 통로에 젊은 여자애와 중년의 남성이 드나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눈길조차 줄 시간도 없다는 듯 각자의 일을 수행하기에만 급급해 보였다.
‘대박.’
이 모든 이들이 오빠의 팬 미팅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괜스레 자랑스러워졌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경호원 중 머리를 바싹 올려 묶은 여성이 그 말과 동시에 문을 두들겼고.
끼이익-.
문이 열리자, 믿지 못할 인물이 서 있었다.
“어-?!”
현아는 제 눈을 의심하며 들어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한 채 눈을 끔뻑거렸고.
문 안에 서 있던 남성 또한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넘어질 뻔했네.”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현아의 팔뚝을 잡아 이끌었다.
물론.
그건 현아를 더욱 떨리게 할 뿐이었다.
“아, 안, 안지호오….”
현아는 귀신이라도 본 듯 손가락으로 남성을 가리키며 중얼거렸고.
머지않아.
다른 손에 의해 활짝 개방된 문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뭐 하냐, 너?”
바로, 자신의 오빠인 현승이었다. 근데, 왠 어린애를 안고 있는 거지? 아역 배우인가?
아니, 잠깐만.
지금 아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 어, 아니이….”
현아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더욱 놀라 몸이 굳어 버렸다.
최정혁, 윤제이, 정아린, 서지니, 이효은은 물론이고.
‘강하준 오빠까지!’
하나, 자신의 최애인 안지호와 강하준이 하필 동시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난감스러웠다.
그래.
현아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몹시 고단한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 것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휴….”
현승은 그런 현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기도 잠시.
품에 안고 있던 도희를 의자에 내려놓고는, 밖에 서 있던 가족을 대기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야, 민현아.”
그러고는 이내 여동생인 현아를 향해 이죽거렸다.
“넌 왜 잘생긴 놈들만 보면 말을 절어?”
“뭐? 내가 언제?”
“방금도 아, 안, 지, 호 이러고 있던데?”
“아니거든!”
장내에 사람들은 티격거리는 현승과 현아를 보며 생각했다.
‘확신의 남매다.’
저렇게 유치하게 싸우는 걸로 보아, 분명했다.
더군다나 여성의 얼굴이 현승의 얼굴을 보다 여성스럽게 잘 빗어 놓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런 현아를 보며 대기실에 있던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저 얼굴로 왜 연예인을 안 하는 거지?’
현승도 마찬가지지만, 여동생 또한 연예인 정도는 우습게 할 수 있을 듯한 비주얼을 보유하고 있었다.
‘저, 집은 대체….’
두 남매가 아웅다웅하기도 잠시.
“얼른 사람들한테 인사나 해.”
현승은 땍땍거리는 여동생의 뒤통수를 억지로 잡아 누르며 대신 말을 이었다.
“여긴 내 여동생, 민현아고.”
그러고는 이내 멀뚱히 서 있던 아버지를 제 옆으로 바싹 잡아당기며 덧붙였다.
“이분은 내 아버지야.”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세요! 작곡가님의 아버지를 만나 뵙게 될지 몰라, 빈손으로 와 버렸는데 죄송해요.”
“와, 작곡가님이 누굴 닮아 그리 잘생기셨나 했는데 아무래도 아버님을 닮았던 모양이에요!”
강하준과 정하린이 넉살 좋게 다가와 말을 건넸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음만 지어 보이셨다.
아무래도 귀가 안 들린다는 걸 티 내면 내가 조금 그럴까 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시는 눈치였다.
“우리 아버지, 농인이셔. 너네 인사는 내가 대신 전해 줄게.”
현승의 말에 장내는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
강하준은 조용히 제 입술을 찰싹 때렸다. 입이 방정이라고, 왜 나서서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래.
어쩐지, 수어 퍼포먼스를 준비하신다고 도와 달라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은 채였다.
다른 이들도 이제야 수어 퍼포먼스를 준비한 이유를 알겠는지,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하나.
현승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분위기 왜 이래? 뭐, 우리 아버지가 시한부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귀 좀 안 들린다고 한 건데.”
“그런 게 아니고, 저희가 너무 눈치 없이 군 것 같아서….”
“혹시 지금 다들 우리 아버지한테 미안한가?”
그 물음에 장내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안하단 말이지….”
현승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기도 잠시.
“그럼.”
이내 입꼬리를 장난스레 올려 씩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 아버지한테 좋은 무대 보여 주기 위해, 너희가 오늘 최선을 다 해 줘야겠지?”
“예?”
“Dear my Beethoven, 우리 아버지를 위한 무대거든.”
장내에 또 한 번 정적이 찾아왔고.
머지않아.
사람들은 장내가 떠나가라 “물론이죠-!”라며 대답했고.
지금, 이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던 현아에게 있어선….
자신의 오빠가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밖에서는 “마지막 리허설 스탠바이 할게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현아, 이 꼬맹이 데리고 아버지랑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으, 응!”
“부꽃마크맨 화이티잉-!”
드디어 고대하던 HS의 팬 미팅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