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7화(286/482)
마지막 리허설을 끝마친 뒤, 대기실로 돌아온 이들의 몰골은 마치 3시간짜리 단독 콘서트라도 끝내고 온 것마냥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
하나, 소파에 늘어져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땀에 지워진 메이크업과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정돈해야 했다.
머지않아 팬 미팅이 시작될 테니까.
현승 또한 가족과 도준·도희 남매를 VIP 초대석으로 안내해 준 뒤, 화장대 앞에 앉았다.
‘흐음….’
그러고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눈싸움을 하듯 뚫어져라 바라봤다.
지워지긴 했지만, 짙은 화장기가 남은 얼굴이 다소 어색해 보였다.
스윽-.
이내 현승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불꽃마크헬멧’으로 시선을 옮긴 찰나였다.
지잉, 지잉, 지잉-!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거세게 진동을 일으켰고.
“뭐야?”
확인해 보니, 액정 위로 ‘미숫사라’라는 글자가 떠오른 채였다.
참도 빨리 연락한다.
아마도 못 온다는 연락을 주려는 거겠지 싶어 느긋하게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다 막고 서 있어서, 들어가질 못하고 있잖아!
“뭔 소리야?”
─ 뭔 소리긴, 네 팬 미팅 보러 왔는데 지금 문턱에 막혀서 못 들어가고 있다니까?
“너 어딘데?”
─ 네 팬 미팅장 밖에 우글거리는 팬들 사이에 숨어 있지.
“뒤쪽으로 돌아와, 사람 내보낼 테니까.”
사라가 무어라 더 말하는 것 같았지만, 현승은 매정하게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안 올 줄 알았더니.’
현승은 곧장 문 앞에 대기 중이던 경호원에게 사라 스튜어트를 안내 해달라 요청했다.
이윽고.
경호원에 의해, 대기실로 들어온 사라 스튜어트는 거의 연행되는 범죄자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아래, 검정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린 채였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에 다 가려질 정도로 작은 얼굴이라던가 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금발의 머리칼이 사라 스튜어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현승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가 사라 스튜어트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누굴까요?”
“글쎄?”
장내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 그때.
“아, 팬 미팅장 한번 찾아오기 너무 힘드네.”
사라 스튜어트는 몹시 답답했는지 모자와 마스크를 한 번에 벗어젖히며 투덜거렸다.
“좀 미리미리 공항에 리무진도 보내 주고 그러면 좋잖아.”
그 말에 현승이 장난스러운 어투로 맞받아쳤다.
“뭐냐? 안 오는 줄 알았더니, 오늘 법원 출석하러 온 거야?”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마.”
“아니, 차림새가 딱 마약 혐의로 조사받으러 온….”
“됐고, 미숫가루는 준비해 뒀겠지?”
“물론.”
“내가 여기까지 온 만큼, 아주 넉넉해야 할 거야.”
“아버지가 너 주려고 바리바리 사 놓으셨더라, 끝나고 가져가.”
“역시, 미숫가루 천사!”
“너, 우리 아버지한테 이상한 별명 좀 붙이지 말라고.”
그런 둘을 바라보던 이들의 얼굴은 이미 넋이 나간 듯, 입술이 벌어져 닫힐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HS랑 너무 친해 보이잖아?’
다른 이유보다, 그 이유에서였다. 사라 스튜어트가 HS의 곡을 불렀다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렇기에 그녀가 여기 온 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HS와 허물없는 사이처럼 보여 놀란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 속 ‘미숫가루’가 어쩌면 우리가 아는 ‘미숫가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한몫을 보탰고.
“저, 저기-!”
그때 이효은이 별안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펜과 종이 한 장을 내밀어 보였다.
“패, 팬이에요! 사인 한 번만….”
그 모습에 현승은 이마를 감싸 쥐며 한숨을 내 쉬었다. 시골쥐2 아니랄까 봐, 하는 행동도 촌스럽다니까.
“OK.”
하나, 사라는 별안간 받은 사인 요청에 당황하기보단, 너무나 당당한 태도로 펜을 쥐었고.
『 ㅁ l 숙 ㄱㅏ누 』
머지않아 전해 받은 종이 위로는 한글이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한글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엉망진창이었지만.
“미, 미숙, 가누?”
이효은 또한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아무리 미숫가루가 좋더라도, 사인이 미숫가루인 건 좀….
“어때, 내 사인?”
하나, 사라 스튜어트는 자신의 사인이 마치 걸작이라도 되는 양 신나서 되물었고.
옹기종기 모여든 이들은 사라 스튜어트의 사인을 확인하고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정말이지.
태어나 본 사인 중, 가장 별로였다.
* * *
진보미는 서울 올림픽 공원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HS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경기장 외부에 설치된 부스에는….
농인과 동반하는 ‘오감 팬 미팅’이라는 컨셉에 맞게끔, 보청기를 끼는 환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최신식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골전도 스피커 같은 걸 아주 저렴히 판매 중이었고.
그 외에 HS와 관련된 굿즈들 역시나 말도 안 될 만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전부 청각장애인 단체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팸플릿이 이곳저곳 붙어 있었다.
손 글씨가 적힌 팸플릿이 말이다.
안녕하세요, HS입니다. 먼저 당일 ‘오감 팬 미팅’을 찾아 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하나, 오늘은 제 팬 미팅보단, 여러분들의 이웃과 가족들을 위한 날이라 생각해 주시면 좋겠고, 따듯한 시선과 배려로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굿즈 판매로 발생된 수입금 전액은 ‘청각장애인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오니, 모두 자신의 이웃과 가족을 위해 따듯한 마음 한번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오늘이 당신에게 있어서 인생 최고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미소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린 채였다.
그래.
이래서 HS를 좋아한다니까.
자신이 여태껏 지켜봐 온 HS라는 사람은 이상하게 따스했다.
어느 날인가는 고양이마냥 츤츤거리고, 또 어느 날인가는 마음을 부둥켜안아 주는 것마냥 따사로웠다.
이러니….
다른 이에게 한눈을 팔래야 팔 수가 없다니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제이블과 음원 내기에서 이겼을 적에도, 농인 단체에 기부하기를 요청했었지?
이번에도 농인을 위한 팬 미팅을 개최한 걸 보면….
혹시 자신처럼 청각 장애를 지닌 가족이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몰라.’
진미소는 자신과 HS 사이에 공통점이 생긴 것 같아, 새삼 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제 왼쪽에 바싹 붙어, 주위를 살피고 있는 오빠는 영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오빠, 우리도 저어기 굿즈 티셔츠 하나 사서 같이 입을까?”
“아깝게, 뭘 저런데 돈을 써?”
“아깝다니! 가격 대비 퀄리티도 좋고, 무엇보다 판매금도 좋은 곳에 쓰인다잖아.”
“넌 그런 말을 믿어? 저거, 다 장삿속이야.”
“아니거든? 가격을 봐라, 저게 장사하려고 내놓은 가격인지!”
제 말에, 오빠 진시우는 판매 부스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바라봤고.
1. signature helmet: 15,000원
2. helmet T-shirt: 3,000원
3. a sign language necklace: 3,000원
이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눈매를 좁혀, 재차 가격표를 확인했다.
뭐지?
헬멧이 15,000원, 티셔츠가 3,000원, 그리고 목걸이도 3,000원이라고?
터벅, 터벅-.
진시우는 무언가에 홀린 양, 판매 부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부스에 가득 쌓인 굿즈를 바라봤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바로 목걸이였다.
‘저건….’
존경의 의미를 담은 수어 모양이 달린 은색 목걸이가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분명, 판매 전략일 테고 저것 또한 이미지 메이킹의 수단으로 만든 것일 테지만 이상하게 사고 싶단 생각이 솟구쳤다.
“저, 저기….”
진시우가 자신도 모르게 부스 안에 서 있던 요원을 조심스레 불러 세우려던 찰나였다.
“오빠, 저 목걸이 하나 살까?”
바로 뒤따라온 진미소가 그의 눈빛을 읽고는 곧장 물었지만.
“아니, 안 사.”
진시우는 언제 눈동자를 빛냈냐는 듯, 표정을 굳히며 다시금 뒤돌아 가버렸다.
“에휴, 왜 나오기만 하면 저렇게 까칠한지.”
어째 쉽지 않은 나들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저 목걸이 두 개 구매할게요.”
진미소는 제 오빠가 바라보던 목걸이를 구매한 뒤,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아갔고.
“같이 가!”
때마침 순서대로 입장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 * *
한편.
어머니를 모시고 HS의 팬 미팅 장을 찾은 구민기는 놀라움에 휩싸인 채였다.
우선 첫 번째로….
웬만한 연예인 팬 미팅급 못지않은 규모에 적지 않게 놀랐다.
곡만 찾아 들어 봤지, HS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었기에 당일 팬 미팅장에 와서야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돌도, 배우도 아닌데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 거지? 단순히 곡이 지닌 힘인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구민기 또한 ‘Dear my Beethoven’이라는 곡을 미친 듯이 듣고, 그 곡으로 위로받았었으니까.
‘나도 팬이라면, 팬이랄 수 있지.’
그리고 두 번째로는 팬 미팅 부스에서부터 농인을 위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액을 농인 단체에 기부한다니….’
자신에게도 말도 안 되는 금액의 수강료를 제시했던 걸로 봤을 때, 모두 사실일 터였다.
하물며.
지금 앉은 좌석마저 청각장애인 전용 시트(*뮤직 시트)였다.
대체 얼마나 벌면 이런 팬 미팅을 무료로 진행해 주는 거지?
‘정말이지….’
다시 한번 HS라는 인물이 지닌 재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부럽기도 하고.
비단, 놀란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톡톡.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수어로 말을 걸어 왔다.
─ 아들, 제자라는 사람이 작곡가 HS였어?
─ 네, 오늘 저한테 배운 무대를 보여 줄 거라더라고요.
─ 우리 아들이 그만큼 실력이 좋으니, 이런 사람도 배우러 오는 거겠지? 대단하네.
어머니는 흐뭇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저렇게나 좋으실까?’
자신은 HS라는 사람의 재력과 인기에 놀라고 있을 때….
어머니는 제 아들이 그런 대단한 이를 가르쳤다는 것에 더욱 놀라고 뿌듯하신 모양이었다.
그때.
서서히 장내의 조명이 어두워지기도 잠시.
“음?”
퍼뜩하고 환하게 켜진 조명에 무대 위로 시선을 옮기니, 어딘가 익숙한 헬멧을 뒤집어쓴 사람이 서 있었다.
‘뭐, 뭐야?’
HS가 헬멧을 쓰고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까지 쓰고 나올 줄은 몰랐다.
하나.
주위를 둘러봐도 그가 헬멧을 쓰고 나온 것에 야유를 던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꺄아아아아아-!
오히려 환호성만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MC라 불리는 유재준이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고.
“우선 HS의 오감 팬 미팅을 찾아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유재준입니다. 반갑습니다.”
농인과 함께하는 팬 미팅인 만큼, 유재준의 얼굴이 잡힌 전광판 위로는 실시간 자막이 떠오르고 있었다.
곳곳에 돋보이는 배려 속에, 구민기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 안녕하세요, HS입니다.
전광판에 큼지막하게 박힌 헬멧남(*HS)이 손을 들어 수어로 인사를 전해 왔고.
─ 여러분들을 모시고 팬 미팅을 할 수 있음에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내 전광판 하단에 떠오르는 자막에 사람들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터트렸다.
─ 꼭 호응해 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부디 오늘만큼은 눈치 보지 마시고 온몸으로 음악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구민기는 왜 사람들이 그토록 HS라는 사람에게 열광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