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89화(288/482)
구민기는 떨리는 마음 반, 그리고 불안한 마음 반으로 다음 나올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직접 가르친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무대가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해야 할 텐데….’
현승이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거듭된 연습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뤄 낸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팬 미팅 무대에서 선보이는 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애초에 안무를 짤 때도….
팬 미팅에서 선보일 무대라고는 생각을 안 하고 준비했거니와, 자신 또한 이런 규모의 무대에 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중에 우르르 끌고 온 연예인 군단 중에도, 예상치 못한 구멍(*정아린과 윤제이)이 있었기에,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제자라면, 첫 제자의 무대가 곧 시작될 테니까.
‘괜찮으려나….’
마지막으로 교육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연습을 얼마나 더 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나.
현승은 한국 대중가요계는 물론이고, 빌보드까지 진입한 유명 작곡가다.(*조사해 봄) 그만큼 남들보다 여유 시간이 많지는 않을 터.
다른 이들 또한 일반인도, 댄서도 아닌 연예인이지 않나? 하물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현역들이다.
추가적인 연습을 진행했기를 바란다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떨리는 건….
아마 현승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진솔한 태도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수어 퍼포먼스라는 생소한 분야를 영향력 높은 인물이 선보인다면, 활성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서려 있었다.
그때.
시간을 끌던 MC가 마이크를 고쳐 쥐며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이제 저 말고 HS 씨, 보고 싶으시죠?”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 객석에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상처겠는 걸.
하나, 유재준은 다 계획된 것이었다는 듯 능글스럽게 멘트를 이어 나갔다.
“바로 네라고 해서 서운하니까,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혹시 HS가 준비한 Dear my Beethoven 무대도 보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객석에서는 다시 한번 비명에 가까운 대답이 터져 나왔다.
네에에에에에-!
“자, 그럼 큰 박수와 함성! 대신, 이번 무대만큼은 휴대폰을 내려 두시고, 차분히 두 눈으로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
MC의 말은 전혀 듣지 못했는지, 제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은 거의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 댔다.
꺄아아아아아아-!
민현승, 아니, HS의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무대 위로 암전이 찾아왔고.
암전이 길어질수록 객석 곳곳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암전이 길어?”
“지난 팬 미팅처럼 율동 보여 주려는 게 아닌가 봐.”
“헐, 아니면 얼굴 공개하려고 뜸들이는 거 아님?”
“에이, 그럴 거면 시작할 때부터 헬멧 벗고 있었겠지.”
그들을 잠재우듯, 머지않아 무대 위로 눈이 부실 만큼 환한 조명이 하나씩 쏟아져 내렸고.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옆에 앉은 여자들은 튀어 나갈 기세로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대체 누구냐고 수군거렸고.
“미, 미친!”
전광판 위로 한 명씩 클로즈업되어 떠오르자, 차분히 봐 달라는 MC의 말이 무색하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기야, 저 라인업이라면 놀라지 않는 게 더 어렵겠지.
다만 구민기는 그들을 가르쳐 준 사람으로서, 그들이 한 팀으로 무대를 꾸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어….”
그러나 전광판에 현승의 모습이 잡히자 구민기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헬멧을 쓰고 있지 않던 까닭이었다.
표정이 안 보이는 건 다소 아쉽지만, 팬 미팅 시작부터 줄곧 헬멧을 써왔던 터라, 당연히 헬멧을 쓰고 하겠거니 짐작했다.
애초에 HS는 얼굴을 밝히지 않기로 유명했으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지금 헬멧 안 쓰고 있는 거 맞겠지?’
혹시 다른 이와 헷갈린 건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무대를 봐도 민현승의 작은 머리통이, 그래, 정수리가 보였다.
이윽고.
곡이 시작되자, 현승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 ♬ ♬ ♬
그러자 객석은 일순간 찬물을 껴얹은 듯 고요해졌다.
톡톡.
그때 제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어깨를 두들겨 왔다.
─ 아들, 아들이 가르쳤다는 제자가 이 중에 누구야?
어머니는 현승의 맨얼굴을 보지 못했던 터라, 무대 위에 선 사람 중 구분해 내지 못하시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이돌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는 이유도 있을 테고.
아니, 잠시만.
민현승은 아이돌이 아니잖아?
‘그런데….’
구민기는 눈매를 좁힌 채, 전광판 위로 시선을 옮겼다. 거대 전광판 한 면에는 현승의 얼굴이 가득 떠오른 채였다.
비록.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천 아래로 곧게 뻗은 콧대, 그리고 알맞은 크기로 적절히 올라간 입매가 누가 봐도 현승이었다.
무엇보다.
그만이 뿜어내는 분위기까지.
‘진짜, 저렇게 의상까지 갖춰 입고 있으니까 강하준이나 더문 멤버들보다 더 눈에 띄네.’
그리고.
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텐데, 한 차례도 동선이 꼬이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었다.
정말.
현승의 엄청난 연습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사에 맞춰 입 모양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걸로 보아, 눈빛 대신 입 모양으로나마 마음을 전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가상하네.’
이내 구민기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현승이 잡힌 전광판을 가리켰다. 어머니에게 HS가 누구인지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두 손을 부딪치며 소녀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설마 어머니도 HS의 팬이셨던 건가?
하나.
어머니의 손이 움직이자, 구민기는 창피함에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 어쩐지! 우리 아들이 가르친 제자라서 그런가? 우리 아들처럼 곱고, 잘생겼네!
엄마, 그건 아니에요.
그래도….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니, 굳이 부정하진 말아야겠다.
* * *
민준석은 아들을 따라 미국에 갔을 적에 우연히 행위 예술이라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록.
아들은 그곳에 가서도, 일 때문에 함께 하진 못했지만, 딸아이와 추억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호텔 근처로 산책하러 나갔었을 때였다.
그래.
한적한 분수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사람들 고개 사이로 슬쩍 들여다본 안쪽으로 한 남자가 까만색 천 같은 옷을 펄럭이고 있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남자가 무슨 음악에 맞춰 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아름다웠다.
어찌 보면 딱히 안무랄 게 없는, 단순 몸짓에 불과한 움직임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자신이 그런 쪽으로 감이 없어서 잘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걸쳐 만들어 낸 군무가 아님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도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그 남자의 표정과 손가락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감정’ 때문이었다. 귀가 안 들리니, 정확히 어떤 곡을 묘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한’을 담고 있던 몸짓과 손짓 그리고 얼굴이, 어떤 곡인지 어림잡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민준석은 땅에서 솟아난 쇠사슬에 발목이 붙들린 것마냥, 꿈쩍 않고 그 남자를 눈으로 담았다.
─ 아빠, 뭘 그렇게 봐? 우리 점심 먹어야지.
제 옷자락을 잡아끌던 딸아이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아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곳에 서서 남자를 끝까지 지켜봤을 터였다.
그렇게.
그날의 광경은 민준석에게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오랜 시간 기억에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충격이 다시금 민준석을 덮치고 있었다.
─ 한바탕 시끄러운 세상이에요.
비록 아무런 음악도, 박수도, 환호성도 들리지 않았지만.
─ 그대는 늘 고요 속에 살겠죠.
무대 위에 선 화려한 사람들 사이로, 새까만 천으로 눈을 가린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 어쩔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 바로 내 아들.
─ 서럽게 울고 싶은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원 없이 울었었죠.
내 자랑스러운 아들, 현승이었다.
─ 아마 당신은 몰랐을 거예요. 그래, 미워했었어요.
전광판에 잡힌 아들은, 천으로 눈과 귀를 둘러 묶은 채였다. 옆으로 슥 고개를 돌리니, 다른 이들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는데….
민준석은 그렇지 못했다.
─ 그냥 이건 전부 세상 탓인데.
걱정이 앞섰다. 그래, 저러다 넘어져서 크게 다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 마음 편히 볼 수가 없었다.
─ 우리 살자고 되뇌던 밤에, 꼭 당신처럼 고요했던 밤에.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멋지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여태껏.
심사위원에 앉은 아들, 음악 방송에 스폐셜 MC로 짧게 나온 아들, 기사에 실린 아들 모두 다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여기긴 했지만.
─ 난 들었어요.
무대에 선 아들은 또 처음인지라 가슴이 벅차올랐다.
─ 서럽게도 흐느끼던 당신 목소리, 당신처럼 고요한 양 모른 체했어. 등 돌리고 눈 감고서 잠든 척했어.
단순히 팬 미팅을 위한 무대가 아니니까.
─ 고요할 걸 알면서도 말할 걸 그랬어. 내가 와서 미안하다고. 지금에서야 못다 한 말을 읊조려 봐요.
그래, 이건 분명 자신을 위해 준비한 무대였다.
─ 우리 살자, 살자고. 되도록 덜 울고 기왕이면 자주 웃으며.
아들의 손에 마이크 대신 검정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그 손이, 전광판에 떠오른 가사에 맞춰 격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 아름답게 살려면 싸워야 한다던데, 내가 대신 싸울 테니.
무엇보다 아들의 입술이 가사를 담아내다 말고, 비틀리는 걸로 봐서 격해진 감정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 부디 우리 살자, 살자고.
그래, 지금 현승은 또 소리를 죽인 채 울고 있었다.
알 수 있다. 나는 아빠니까.
단칸방이라 홀로 숨을 곳도 없어, 입술을 비틀어 깨물고 소리를 죽인 채 울어야만 했던….
안쓰러운 내 새끼.
그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아들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뜨거운 자갈을 입 안에 움켜 넣은 듯 심장이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톡, 톡.
주책스럽게도 울었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아들도 참고 있을 테니까.
어느덧 곡이 끝나려는지, 아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바닥을 향해 쓰러져 버렸고.
털석-.
아들 또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자.
곡에 맞춰 등 뒤로 느껴지던 진동이 멈추더니, 아들의 머리 위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
자신에게만 안 들리는 건지, 혹은 정말 장내가 고요함에 휩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꿀-꺽.
숨조차 내쉬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 민준석이 마른침을 삼켜 내던 찰나였다.
─ 우리, 살자고….
강렬한 진동과 함께, 아들이 마지막 손짓과 함께 검정 천을 휙 낚아채듯 풀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민준석은 아들과 공중에서 시선을 맞닥트렸다.
마치.
자신이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윽고.
아들이 손을 움직이자, 천이 펄럭이며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 존경하는 나의 베토벤에게 이 무대를 바칩니다.
민준석은 그런 아들을 향해 뜨거운 눈물 대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절대.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