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8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90화(289/482)
마지막 무대는 현승이 돌연 눈을 가리고 있던 까만 천을 벗겨 내는 것으로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천을 벗겨 내고, 머지않아 심해와 같은 암전이 찾아온 탓에 끝이 나 버렸다고 해야겠지.
객석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유재준이 멘트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지독한 정적은 계속 이어졌다.
그건….
초대석에 앉은 현승의 측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금동아…….”
“오빠….”
“저 녀석 지금….”
아까부터 오빠 품에서 곯아떨어진 도희와 흥미롭다는 양 눈을 반짝이는 사라 스튜어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은 으레 너무 놀라거나 충격을 받으면, 말을 잃는다고 하지 않나?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게.
죽어도 얼굴 공개를 하지 않겠다며 근 2년이 넘는 시간을 제법 잘 지켜 오지 않았던가?
금방 암전이 찾아왔다고는 하나, 분명 전광판 위로 현승의 얼굴이 또렷하게 잡혔었다.
물론….
지난 팬 미팅 때도 살짝 공개했다고는 하나, 지금보다 규모도 훨씬 적고 촬영 금지라는 조건까지 달았었다. 무엇보다 저렇게 얼굴을 훤히 다 보여 주지도 않았고 말이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김우현은 알 수가 없다며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윽고.
현승을 비롯해, 다른 게스트 가수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짝-!
당연한 얘기겠지만, 현승은 다시 헬멧을 착용한 채였다.
─ 모두 착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승이 수어로 말하자, 장내의 모든 인원이 일동 박수를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우선, 당일 귀한 시간 내어 팬 미팅을 찾아 주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를 전했다.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던 현승 사단 또한 그를 따라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보였다.
마치….
군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오늘은 사실 저의 팬 미팅이기 전에, 누군가에게 꼭 보여 주고 싶던 무대를 선보이는 자리이자, 여러분이 음악을 보다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실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콘서트였습니다.”
현승은 전광판에 자막이 입력됨에도 불구하고, 수어를 꼭 덧붙여 말을 이어 나갔다.
“부디 그 누군가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오늘의 기억이,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갈 추억이자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우현은 무대 위에 서 있는 현승을 향해 참지 못하고 누구보다 힘찬 박수를 보냈다.
‘기특하다, 우리 금동이!’
정말 최고의 마무리 멘트였다. 여태껏 들어온 마무리 멘트 중 단연 최고랄 수 있었다.
물론 멘트만이 아니라, 팬 미팅의 모든 과정이 다 최고였다. 비단,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신뿐이 아니었는지 제 옆에 앉아 있던 박 전무도 일어나서 박수를 보냈고.
사라 스튜어트 또한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손뼉을 부딪쳤다.
연이어 객석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오며, 장내는 단숨에 박수 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그중.
박수를 보내지 못한 건, 현승의 가족뿐이었다.
“흡, 끄윽, 오, 오빠아….”
여동생은 울음을 터트리느라고 손뼉을 칠 수가 없었고.
아버지는 그런 딸아이를 달래느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셨다.
“아이고, 우는 것도 인재네!”
박 전무가 괜히 달래 본답시고, 입을 열었지만….
“흐어엉, 오빠아….”
되레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현아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짙은 쌍꺼풀이 자리 잡은 현아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섣불리 그녀를 위로하거나 달랠 수 없었다.
아마.
자신들이 모르는, 저 가족만의 깊은 속사정이 있을 테니까.
‘안되겠어.’
김우현은 이러다 탈수라도 걸리겠다 싶어, 현승의 가족을 챙겨 대기실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열자, 방금 막 무대를 마친 다음이라 잔뜩 지친 기색으로 늘어진 현승과 그의 악기들(?)이 보였다.
“오빠아아….”
현아는 자신의 최애들이 보든, 말든, 콧물을 찔찔 흘리며 냅다 오빠의 품으로 뛰어가 안겼다.
“바보, 완전 바보야, 끄윽, 끅, 왜, 왜 그랬어….”
“내가 왜 바보냐?”
“오빠, 내가 얘기한 것 때문에 얼굴 공개한 거자나아….”
그런 남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김우현은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한편의 가족 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녀석, 여동생 말 때문에 얼굴 공개를 한 거였구만….’
김우현은 아주 잠시 자신에게도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귀여운 여동생의 말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들어줄 텐데.
“너무 감동적이야….”
“그러니까요….”
“눈물 없이 못 보겠어요….”
감수성 넘치는 정아린과 윤제이 그리고 이효은 또한 그런 남매의 모습이 제법 감동스러운지, 자기들끼리 팔짱을 끼운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아니, 근데 쟤는 왜….’
이유는 도통 모르겠지만, 강하준은 이미 뒤돌아서서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 있었다.
다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측근뿐이었던 모양이다.
정작 감동 드라마의 당사자인 현승은 어이없다는 양 피식 웃음을 터트려 보였으니까.
“뭐라고-?”
그러고는 아주 단호한 어투로 덧붙였다.
“절대 그런 거 아니니까 오버 좀 하지 마.”
“그러엄…?”
“어차피 몽타주도 어느 정도 다 나온 김에 확실히 해 두려던 것 뿐이야.”
그 말에 현아가 당황한 듯 “어…?” 하고 되물었고.
“아니,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하관이 길다느니, 주걱턱이라느니, 턱에 주먹만한 점이 있다느니 뭐 그런 이상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더라고? 억울하게.”
“그게 무슨….”
“그래서 확실히 알려 주려고 잠시 오픈한 거야.”
현승은 손끝으로 제 턱을 어루만지며 부연했다.
“내 얼굴에 오점은 없다는 거 알려 주려고.”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김우현 또한 그런 현승을 얄밉다는 듯 바라봤다.
‘그렇구나, 알고 있었구나.’
하기야, 저런 얼굴을 타고났는데 본인이 잘생긴 거 모른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재수 없을 것 같았다.
아아.
물론, 지금도 재수 없긴 마찬가지지만.
“민현승, 진짜 싫어.”
“민진싫.”
“또 시작이야, 또!”
“또시또.”
현아는 눈물이 쏙 들어가다 못해, 눈가에 가뭄이 찾아온 기분이었다. 바싹 말라 쩍쩍 갈라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현아는 그런 오빠가 밉지만은 않은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잘생긴 척 그만하고, 밥 사 줘.”
“넌 나만 보면 밥 타령이냐?”
“그럼, 밥 말고 치킨이나 사 줘.”
아버지는 아웅다웅하는 두 남매의 얼굴을 눈에 가득 담은 채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아마.
오늘 현승이 웃음을 선사해 준 건, 비단 제 가족만은 아닐 터였다.
* * *
오늘도 최윤서는 아침부터 커피 한 잔을 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의 일과는 늘 컴퓨터 앞에서 시작해, 컴퓨터 앞에서 끝났다.
왜냐고?
모든 일은 컴퓨터로부터 시작되니까.
탁, 타다닥, 타다닥-!
그녀는 별스타에서는 16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인플루언서였다.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메시지창은 광고·협찬 제안으로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파워블로거로서도 활동중이다 보니 들어오는 광고나 협찬 제안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간혹.
광고 게시물만 올리는 본인을 저격하거나 메시지로 욕설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올린 글이나 사진 하나만을 보고 따라 사고, 먹고, 가고, 잔다.
심지어 이젠 자신의 팬이라는 사람도 나타났다.
하나.
최윤서는 그런 관심이나 사랑 혹은 질투 따위가 즐겁지 않았다. 살아가기 위해선 경제활동을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다.
정작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래.
그녀의 놀이터이자 필드랄 수 있는…,
스위터.
최윤서는 스위터에서 5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홈마이자 ‘유누엄마’라 불리는 유명인사였다.
어떠한 수입 창출보다, 단순 팬심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도 다를 바는 없었다.
홈마로서 벌어들인 수입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본업으로 번 수입까지 돌판 덕질하는 데 소비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홈마생존기의 역사를 써 내려간 사람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그런 그녀가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아티스트가 하나 있었는데.
[ 작곡가 HS, 팬 미팅서 베일 벗고 얼굴 드러내 화제! ]다름 아닌, 엣치스였다. 비록 가수도, 아이돌도, 배우도 아니었지만….
항간에 떠도는 몽타주로 보아 비주얼도 괜찮기도 하고, 작곡 실력이라던가, 여타 들려오는 미담들을 취합했을 때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방송 활동이나 SNS마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떡밥이 없으니 덕질을 할래야 할 수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가진 않던 차였는데….
그러던 중.
팬 미팅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덕질을 하라는 신의 계시인지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추첨에 당첨되었다.
LS 엔터테인먼트 전속 작곡가이자, 대한민국 탑 작곡가인 HS가 어제 치러진 팬 미팅서 드디어 얼굴을 공개.. (중략)
그의 이번 ‘오감 팬 미팅’은 작곡가 데뷔 이래 두 번째로 진행된 팬 미팅으로서 ‘농인 가족 및 지인 동반’이라는 신청 조건을 달아,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중략)
그래, 분명 그건 신의 계시였을 터였다. HS에게 아주 푹 스며들어 깊게 감겨 버리라는 신의 계시 말이다.
그의 팬 미팅은 ‘농인 동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전 좌석 청각장애인 전용 시트를 깔아, 음악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놓는가 하면, 굿즈로 수어 모양의 팬던트가 걸린 목걸이라던가, 농인들을 위한 보청기 겸용 블루투스 이어폰 등을 아주 값싼 금액으로 판매했고, 수익금 전액을 농인 단체에 기부..(중략)
아마 자신뿐만이 아니라, HS의 팬 미팅을 다녀온 어떤 누구든 그에게 빠져들었을 거다.
설령, 팬으로서 찾아갔던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게스트 가수로는 서지니, 정아린, 강하준, 더문(안지호·최정혁), 윤제이, 이효은이 참여..(중략)
특히 팬 미팅 마지막 무대인 ‘Dear my beethoven’에서는 게스트 가수 전원과 HS가 함께 호흡을 맞춰 무대를 꾸렸다. 특히, 수어를 곁들인 퍼포먼스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는 평..(중략)
왜냐고?
굿즈부터 시작해서 게스트 가수 라인업, 선보이는 무대.
진행되는 모든 것들이, 팬 미팅을 찾아 준 이들을 생각해 하나하나 신경 썼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정말.
오랜 홈마 생활 중 먹먹하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진 팬 미팅은 처음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테고.
이 무대의 마지막에 HS가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겨 내며 약 10초간 얼굴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수어로 “존경하는 나의 베토벤에게 이 무대를 바칩니다.”라는 말을 덧붙여, 궁금증과 함께 감동을 선사..(중략)
간증에 가까운 후기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얼굴이 제대로 담긴 직캠이 없어, 팬 미팅에 가지 못한 팬들은 아쉽다며 목소리를.. (중략)
최윤서는 기사를 전부 정독한 이후에야 마우스 휠을 굴려, 댓글 창을 확인했다,
⤷ 또 나만 못 가고 나만 못 봤지 나만 ㅠ ㅠ
⤷ 아니 얼굴 나온 영상들이 죄다 흔들리고 난리 나서 뭐 보이지를 않아;
⤷ 무슨 한정판 명품 같네; 눈앞에 보이는 데 안 보여 애간장 녹는다
아마 제대로 된 영상이 없는 건, HS가 팬층은 많다 하더라도 ‘작곡가’라는 특성상 따라다니는 홈마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 아무도 HS가 얼굴을 공개할 것이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드르륵, 드르륵-.
하지만, 프로는 늘 어디서나 준비를 갖춰 놓는 법.
⤷ 아 진짜 고화질 직캠 없냐? HS 파는 홈마는 진짜 없는 거야?
모니터 옆으로 놓인 거울 속 비친 최윤서의 얼굴은….
“내가 또 나서 줘야겠네.”
아주 흡족스럽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