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9화(29/482)
“혹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시는 분인가요?”
주인은 별안간 자신이 조율해 보겠다며 나타난 젊은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어려 보이는데….’
으레 그렇듯 음악이란 조기교육이 상당히 중요한 학문이니 전문 베이시스트일지 모를 노릇이었다.
“전공은 아니지만 조금 다룰 줄은 압니다.”
예상을 벗어난 답변에 당황했으나 흥미롭기야 했다.
“그럼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현승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콘트라베이스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손끝으로 가볍게 바디를 “슥.”하고 한번 쓸어내리니 기분 좋은 촉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져 보네.’
본래 콘트라베이스는 저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모든 음을 ‘배음’(하모닉스)으로 조율하는 경우가 보편적이었으나….
‘그럼 재미없지.’
현승 같은 음악 변태가 그리 쉬운 길을 택할 리 없었다.
“잠깐, 잠깐!”
“예?”
“조율을 왜….”
그 말에 현승이 넌지시 되물었다.
“실음으로 하냐고요?”
이내 주인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를 잠시.
“재미있잖아요.”
말을 마친 현승이 능숙한 손길로 콘트라베이스를 조율해 나가기 시작했고….
“허….”
주인은 넋을 놓은 채 그런 현승을 잠자코 바라봤다.
실음 조율.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에 매료된 이래로 조율을 실음으로 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까탈스럽기로 악명이 자자한 지휘자가 베이스 주자들을 시험에 빠트리고자 실음으로 조율을 지시한다는 풍문만 들어 봤을 뿐….
한데.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조금 다룰 줄 안다고 말했으면서 조율을 실음으로 진행한다?
비록 몇 년 차에 불과하다지만 경력자인 주인으로서는 얼떨떨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이윽고.
조율을 끝낸 현승이 씩 웃으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자, 다 됐습니다.”
그리고는 웃는 낯으로 덧붙였다.
“연주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제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양 자리를 떴고….
‘정말 다 된 건가…?’
그가 멍한 눈으로 콘트라베이스를 내려다봤다.
‘정말로…?’
만약 정말 실음으로 완벽히 조율을 마친 거라면 연주자로서는 일생일대의 기회인 셈이다.
실음으로 조율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까….
이윽고 그가 연주할 자세를 완벽히 취하자 장내의 모든 사람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음 순간.
주인장이 오른손을 부드럽게 흔들어 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왼손으로 현의 진동을 받아 내자 저음이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연주가 시작됐고….
장내의 손님들은 그 선율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렸다.
누군가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젖어 들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넋을 놓고 연주자를 바라보기도 했다.
다만.
주인은 여유롭게 연주에 심취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듣는 순간 깨달았다.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음색의 결 자체가 바뀌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활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좋아졌달까?
소름 끼칠 정도로 음정이 다채롭다. 음역대를 넘나드는 구간에서도 부드럽게 감겨 온다.
‘그래, 이거야.’
자신이 힘들어하던 음역 구간에서도 이탈 없이 감미롭게 흘러가자 온몸에 전율이 퍼진다.
이내 주인장은 영혼이 울림통 안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콘트라베이스를 끌어안은 채 연주에 몰두했고.
별안간 활을 급히 내려 놓더니 그 손으로 현을 쥐어뜯으며 피치카토(pizzicato) 주법을 선보였다.
활을 빼내자 울림이 확 줄어들었지만….
장내의 사람들은 더욱 그의 연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점차 몸이 홀의 방향으로 쏠렸고….
연주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주인장의 얼굴은 흥분에 휩싸인 듯 제법 상기된 상태였다.
‘조율해 주길 잘했네.’
처음 했던 걱정과는 달리, 꽤 훌륭한 연주에 현승 또한 박수를 보냈다.
주인장은 장내를 향해 두어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현승에게 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순식간에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뀐 채였다.
“선생님 덕분에 헤매던 구간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현승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덧붙였다.
“은혜를 입었으니 오늘 술값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잘 풀리지 않던 독주곡 하나를 두고 골머리를 싸매며 여러모로 자문을 구하던 차였는데….
현승 덕분에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냄과 동시에 처음으로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해낼 수 있었다.
결국, 돈보다 더 큰 것을 얻어 낸 셈이지.
“괜찮습니다, 고작 조율 좀 봐 준 건데요.”
“저의 작은 감사 표시이니 거절치 마시죠.”
“뭐,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연주자가 두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조율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입니까?”
그 말에 현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다른 분야의 음악을 하긴 합니다.”
작곡가였으며 지금도 작곡가인 현승이 콘트라베이스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세션.
여타 작곡가들은 대부분의 악기를 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툴로 때우기 일쑤였으나….
현승은 전생에서부터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하거나 세션맨을 고용해 녹음해서 사용하곤 했다.
완벽함에 대한 광적인 집착.
그런 집착을 꾸준히 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비주류 악기에 대한 지식 역시 쌓을 수 있던 것이다.
“다른 분야라면…?”
연이은 주인의 물음에 현승이 답했다.
“그냥 재미 삼아 이것저것.”
더 구구절절 대화하고 싶지 않아 에둘러 답했고….
“그렇군요….”
의중을 파악한 주인이 눈치껏 재차 물었다.
“그럼 존함이나마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승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당장은 ‘HS’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이내 주인이 현승으로부터 들은 활동명을 몇 번에 걸쳐 연거푸 중얼댔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 뵙고 싶군요.”
정중히 악수를 청해 왔다.
“예, 저도요.”
현승 역시 그 손을 가볍게 잡으며 답했다.
뭐랄까?
어쩐지 그런 현승의 두 눈 위로 ‘이제 제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 줘.’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 *
주인장은 현승이 나간 자리를 치우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결례를 무릅쓰고 연락처라도 여쭤봤어야 하는 건가….”
그때 빛바랜 머리칼을 정갈하게 쓸어 넘긴 남자가 바 안으로 유유히 들어와 손을 흔들었다.
“나 왔어.”
동그란 안경 사이로 보이는 눈매에는 주름이 서글서글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어디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고 왔는지, 불편한 정장을 싹 빼입은 채였다.
그의 이름은 사카모토 타이치.
본래는 여러 악기를 다루던 천재 음악가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이었다.
그러던 중….
음반 업계에 불황이 닥쳤을 때, 타이치가 맡았던 ‘맨 레코드사’의 음반이 엄청난 기록을 세웠고.
결국, 맨 레코드사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차고 앉았다.
이후 사업은 더욱 순항을 탔고….
지금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레코드사 대표가 되었다.
오늘은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 온 오래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러 오는 길이었다.
“오늘 마침 시간이 돼서 저번에 했던 부탁이나 들어주러 왔네.”
“조율 말이지? 어려운 걸음 해 줬는데 이를 어쩌면 좋지….”
주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방금 한 청년이 내게 해답을 주고 갔거든.”
타이치가 “청년?”하며 되묻자 주인이 사뭇 격양된 투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청년이 갑자기 조율을 해 봐도 되겠느냐고 묻더니, 글쎄 실음으로 조율을 하더라고.”
“실음 조율을?”
“그렇다니까?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하냐니까 재미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거 있지.”
그리고는 활 하나를 꺼내 들며 덧붙였다.
“덕분에 막히던 구간에서 마음껏 활을 휘두를 수 있었어.”
말을 마친 그가 연달아 몇 마디를 덧붙였다.
“황홀하더군, 그간의 쩔쩔맸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으로 완벽히 심취해 연주했네. 주자의 기량을 상승시켜 주는 전문적인 조율이었지….”
그 말에 타이치가 되물었다.
“오래된 전문 베이시스트였나 보네?”
“아냐, 전공자는 아니라던데? 나이도 어려 보였어.”
“그럼? 실음 조율을 했다면서?”
“다른 분야의 음악을 한다던데….”
“이름이라도 알아 두지 그랬어?”
“간략한 활동명은 들어 뒀어.”
말을 마친 주인이 기억을 더듬듯 “그러니까….”하고 중얼대다가 덧붙였다.
“아아, 그래, HS!”
“HS?”
“HS라고 하던데?”
타이조는 무명 베이시스트나 단순 대학 전공자라면 몰라도 프로라 불리는 베이시스트들은 모두 만나 본 적이 있다.
재미 삼아 실음으로 조율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깨너머로나마 소문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인데….
‘HS라….’
그런 활동명을 사용하는 베이시스트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네도 모르는 걸 보면 정말 전공자는 아닌가 보네?”
“어쩌면 가명을 알려 준 걸지도 모르지.”
“글쎄,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타이치가 어깨를 들썩이며 덧붙였다.
“어찌 됐든 제대로 된 음악을 하는 친구겠어.”
유명 레코드사의 대표인 타이치는 요즘 세대 음악가들에게 기대보단 실망이 먼저 앞서던 차였다.
어쩌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프로그램에만 의지하여 툴로 세션을 만들고, 샘플링을 따 와서 비슷한 곡을 복사하듯 찍어 대는 작곡가들을 보면 환멸이 났다.
예전에 자신이 직접 작곡할 때는 훨씬 더 진중하고 뜨거운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거대한 음악 공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이런 와중에 콘트라베이스 같이 다루기 힘든 악기를 실음으로 조율하는 도전 정신만 봐도 제대로 된 음악을 하는 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어쨌든, 헛걸음한 건가?”
“헛걸음은 아닐 거야.”
“조율은 전부 마쳤다면서?”
“대신 오늘 술은 공짜거든.”
이내 주인이 위스키 한 잔을 건네줬고….
“음?”
타이치는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였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는 타국의 후크송.
‘어라?’
한데.
자세히 들어 보니 가상 악기가 아니라 직접 연주하여 섹션을 따 놓은 듯 악기의 거친 선율까지 전부 녹여져 있었고.
실력을 자랑하듯, 한 테이크마다 미묘하게 다른 연주 기법을 선보이며 가수의 목소리를 집착적으로 쫓아간다.
그러나.
결코 가수의 목소리를 방해하거나 해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탄탄하게 서포트를 해 주고 있달까?
조심스레 짐작해 보건대, 이 작곡가는 아무래도 완벽주의자 성향을 지녔으며, 음악에 광적으로 미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타이치의 상념이 길어질 무렵, 주인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 취향의 곡은 아니지? 취향에 맞는 곡으로 다시 선곡해 줄 테니까 잠깐….”
그 말에 타이치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더 듣게 해 주겠나?”
주인장은 타이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아는 그는 유행하는 후크송 따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며 사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재즈나 블루스를 즐겨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타이치는 곡에 심취하여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음악에 몸을 맡긴 상태였다.
‘곡과 목소리의 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네.’
계속 흘러나오는 음악 속 여성의 고요한 목소리가 거센 태풍을 잠재우듯 다독거린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곡의 흐름에 따라 잔잔한 위로의 숨결이 자신에게 불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친구가 우리 회사에 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서지니 상? 이 곡으로 유명해진 디바라던데….”
“아니, 황금알 말고 이 알을 낳은 거위 말이야.”
주인이 씩 웃으며 되물었다.
“작곡가 말이지?”
타이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 곡 작곡한 작곡가 이름이 뭐야?”
그의 물음에 주인이 스피커와 연결된 컴퓨터 앞으로 향해 거듭 클릭하며 중얼대듯 답했다.
“그래, 자네 레코드사 정도 규모라면 어렵지 않게 데려올 수 있을지 모르지. 작곡가 이름이 여기 어디쯤 나와 있을 텐데….”
주인장은 앨범 크레딧에 적힌 작곡가 명을 찾아냈고.
“HS.”
짧게 말한 주인이 미간을 좁히고는 재차 중얼댔다.
“어라? HS?”
“HS라고?”
“그래, 분명….”
다음 순간.
“분명 HS라고 적혀 있는데….”
“그럼….”
“아까 조율해 준 친구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닥뜨렸고.
“이야….”
타이치가 씩 웃으며 중얼댔다.
“자네 말이 맞았어.”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콘트라베이스를 실음 조율해 준 것이며….
직접 만든 곡만 봐도 완벽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다.
진주 같은 작곡가다.
요즘 세대 아이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고결한 직업정신과 완벽에 대한 집착을 지닌….
영입 1순위로 삼아야 할 작곡가를 찾은 셈이었다.
“헛걸음은 아니게 됐어….”
그의 눈이 열의로 반들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