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9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94화(293/482)
마테오는 말라 버린 입술 사이로 스프를 한 입 떠먹었다.
사실 입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살기 위해 먹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도 살겠다고 먹는 꼴이라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은 0점짜리 아빠였다.
딸에게 불행을 답습해 주지 않겠다고 했으나, 결국 또 다른 불행을 안겨 주고야 말았다.
그래.
지켜 주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그 아이를 옥죄는 사슬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젠가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학교 앞에 한 번을 데리러 가지 않았어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말라고 했어도, 절대 가수만큼은 안 된다고 꿈을 짓밟았을 때도….
언젠가는 본인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아주리라고.
우리 딸은 그런 제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이리라 여겼다.
어느 날.
집을 나간다고 할 적에도, 혈연이라는 게 그리 쉽게 끊기지 않는 거라며 안일하게만 생각했다.
하나.
딸아이는 천륜이라는 사슬을 끊고 제 품을 떠나 버렸다.
5년 만에 만난 딸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당신 같은 아빠는 싫다고.
“그럴 리 없어.”
마테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애써 부정하던 그때였다.
지이이이잉-!
오랜 벗인, 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비록 전화를 받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 자네 나한테 거하게 밥 한번 사야 할 것 같은데?
전화를 받자마자 위풍당당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일전에 부탁한 최지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였다.
하나.
마테오는 최지현에게 이미 흥미를 잃은 채였다.
“그래, 알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에게 온 정신이 쏠려 있는 터라, 최지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이 반응은 대체 뭐지?
폴은 뜨뜻미지근한 제 반응에 놀랐는지, 걱정이 묻은 어투로 물어왔다.
─ 자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 일 아니야.”
─ 혹시 딸아이한테 연락이 왔나?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연락이 왔다기보단 만났었어.”
폴과는 음대 시절부터 연을 이어 왔다. 알고 지낸 시간이 긴 만큼, 서로 아는 것도 참 많았다.
그래.
폴은 자신에게 딸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딸아이가 집을 나가 버린 것도, 모조리 다 알고 있었다.
하물며, 더 젊은 시절에는 제 딸아이의 선물을 사 들고 시골까지 보러 온 적도 왕왕 있었다.
─ 그거 참 잘된 일인데, 왜 목소리가 다 죽어 가?
“딸이 이젠 나를 다신 안 볼 생각인 것 같아.”
─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연 끊자고 한 거야?
“난 딸아이가 뒤늦은 사춘기가 온 거라고만 생각했어. 그래서 잠시 나를 미워하는 줄만 알았거든?”
마테오가 덤덤히 얘기를 이어 나가기도 잠시.
“근데 아니었어.”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말을 덧붙였다.
“나를 인간으로서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
─ 자네가 넘겨짚어서 생각한 거 아니야? 딸아이랑 제대로 얘기 나눠 본 거 맞아?
“그것도 내게 기회가 남아 있을 때 해야 했는데, 아마 다신 그 기회가 없을 것 같아.”
─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봐. 자네, 딸 없이 살 수 있나?
폴의 물음에 마테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딸이, 내가 없어야 행복한 거라면 혼자 살아가야지.”
─ 마테오….
“아빠로서 딸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무거운 다짐 앞에서, 감히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는 거겠지.
이윽고.
마테오가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5년 사이에 숙녀가 다 되었어. 애 엄마를 닮아,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좋더라고.”
그런 마테오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 자네, 안 그래도 딸이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고, 이를 어쩌냐며 오두방정을 떨었었잖아.
“그랬었지. 근데, 못 본 새 결국 가수가 되었더라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화들짝 놀란 듯 “정말이야?” 하고 되묻는 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랄 만도 하지.
“하기야, 나도 요즘 가수는 관심이 없어서 얼마 전에 알았어.”
─ 나도 그쪽은 영 모르니까, 조카가 데뷔한 줄도 몰랐네.
“근데 이번에 작곡가 HS라는 놈이랑 열애설이 났더라고.”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 어? 누구?
폴이 잘못 들은 건지, 재차 물어왔다.
“HS?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라, 조사 중이야.”
─ H, HS?
“왜 그렇게 놀라? 혹시 자네가 아는 작곡가야?”
─ 아, 아니.
영 수상하게 느껴졌지만, 폴이 그를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폴과 접점이 아예 없기도 하거니와, 자신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또한 최지현처럼 한국인이었다.
아.
그럼, 혹시 최지현은 HS에 대해서 알고 있으려나?
“자네!”
마테오는 별안간 눈을 총명하게 반짝이며 물었다.
딸아이가 아무리 말려도….
최소한 HS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제 딸을 행복하게 해 줄 놈인지, 불행하게 만들 놈인지.
“나한테 최지현 건으로 전화한 거 아니었나?”
─ 그렇긴 한데….
“그쪽에서 뭐라고 하던가? 연락한다고 하던가?”
─ 그냥, 좋게 봐 줘서 고맙다고….
마테오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뭐? 고작 그걸로 거하게 밥 사라고 한 건가?”
─ 뭐, 그런 김에 겸사 겸사 얼굴이나 보잔 뜻이지.
“됐고, 그 사람한테 꼭 좀 다시 한번 전해 주게.”
그러고는 단호한 어투로 덧붙였다.
“연락 기다리겠다고.”
─ 자, 잠시만.
“밥은 그때 사는 걸로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이내 마테오는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폴을 귀찮게 만드는 꼴이었지만….
제 딸아이의 일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 *
한편.
전화가 끊긴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폴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러기도 잠시.
재빨리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작동시켰다. 폴은 아직 휴대폰보다는 컴퓨터가 더 익숙한 세대였다.
사실.
그마저도 능숙히 다루는 편은 아니었지만.
딸칵, 딸칵-.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마테오가 했던 말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마테오의 딸인 사라가 데뷔했다는 것부터, 그녀가 작곡가 HS와 열애설이 났다는 정보까지 모두 말이다.
하물며.
뉴욕필이 세션을 해 줬던 빈센트 마흐의 곡과 그녀의 곡이 빌보드 차트에서 맞붙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빌보드 1위에 오른 그녀의 곡이, 작곡가 HS가 만들어 줬다는 것 또한.
“연이 이렇게 꼬이나….”
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HS와 최지현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와중에 자신의 오랜 벗이 최지현과 HS를 동시에 찾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HS에게는 감정이 좋지 않아 보여 더욱 난처할 따름이었다.
‘하기야, 딸의 남자친구를 흔쾌히 마음에 들어 할 아빠는 없지….’
그러나, 마테오가 딸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본 마테오는 심각할 정도로 딸바보였으니까.
애정 표현이 서툴러 그렇지, “딸은 절대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뿐이랴?
딸아이가 집을 나갔을 적에는 자신을 찾아와, 밤새도록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내기도 했었다.
심지어 만나기만 하면 딸 자랑을 해 대는 통에, 그만 좀 하라고 뜯어말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부녀 관계가 왜 그렇게까지 치닫게 된 걸까?
어릴 때 봤던 사라는, 제 아빠를 어려워하긴 해도 제법 잘 따르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휴….”
지금은 남의 가족 사정까지 헤아릴 때는 아니고.
“이걸 어쩌면 좋지.”
지금 벌어진 사태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마테오에게 무조건 모른다고 뻐기기엔 양심에 찔리고.
그렇다고 최지현, 아니, HS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니….
“안 돼.”
생각을 이어 나가던 폴이 본능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래.
문득 HS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상상을 해 봤는데,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 까닭이었다.
왜냐고?
HS는 이 사실을 전하자마자, 재밌을 것 같다며 얼른 연락하게 해 달라고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실제로 둘이 만나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HS라는 사실을 구태여 숨기지 않을 터였다. 우선 폴이 봐 온 HS라는 사람은 그랬다.
“안 돼, 안 돼.”
결국, 폴은 둘을 절-대 만나게 해선 안 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특히….
마테오는 창창한 작곡가의 앞날쯤이야 딸을 위해서라면 쉽게 망가트릴 인물이었으니까.
“그럼 안 되지.”
적어도 폴은 HS를, 아니, 최지현을 오래 보고 싶었다.
* * *
현승은 생각보다 참을성이 좋지 못했다.
‘분명 연락처 알려 주라고 했는데….’
마테오에게 제 번호를 알려 주라고 한 지, 꼬박 24시간하고도 38분 23초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먼저 연락을 취해 왔던 폴마저 어떤 연락조차 없고 말이다.
“아, 궁금한데….”
현승은 동물의 섬마저 눈에 안 들어와, 게임기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테오가 왜 최지현은 좋아하고, HS는 싫어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대체 어떤 차이인 걸까?
“음….”
전생에서는 자신을 돈에 미친 상업적인 작곡가라며, 같은 작곡가라 불리기도 싫다고 했었으니까….
HS 또한 그렇게 여긴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이번 생에서도 악연이 시작되는 거겠지.
“흠….”
현승이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찾아 나설 성격은 아니야.’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잠시 접어 두기로 하고.
‘아니, 잠깐만….’
만약 마테오가 HS와 최지현이 사실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일까?
‘재밌겠는걸?’
이 시점부터였다. 기다림에 지쳐 버린 현승이 점차 이상한 방향성으로 망상을 이어 나간 게….
‘아아, 그래.’
마테오가 폴과 인연이 있어 보이니까, 뉴욕 필을 데리고 동서양을 어우르는 퓨전 곡을 만들어 보는 것도 꽤 재밌겠어.
아니면….
그와 탕수육 게임처럼 머니 코드를 하나씩 찍어서 곡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겠다.
“큭.”
현승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아, 잠깐만.”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탁, 타다다닥, 탁-!
이내 오스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래.
마테오에게 연락이 오면 절대! 절대! 받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던, 그 오스틴에게 말이다.
[ 마테오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더군다나, 그의 속이 뒤집힐 만한 문자를 말이다.
[ 제가 그와 직접 얘기해 보죠. ]병을 줬으니, 약도 줘야지?
[ 마테오와 HS의 합작, 유니스로 유통하죠. ]현승은 그가 군침을 흘릴 만한 말 또한 덧붙여 전송을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