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29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99화(298/482)
이틀 만에 작업실을 찾은 현승.
─ ♬ ♬ ♬
현승은 곧장 코드를 찍어 내려갔다. 악상이 떠오른 건 아니다.
그냥 딱히 할 게 없어서 재미 삼아 하는 취미 같은 행위였다.
으레 이런 식으로 명곡이 탄생하고는 했다.
한참 빈 섹션들이 채워져 가던 그때.
“아, 맞다.”
아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테오.”
그래, 이틀 전 이사하던 날 그에게 전화가 왔었지.
아예 까먹을 뻔했네.
그렇게나 찾아 다녔었는데, 너무 강한 충격으로 인해(*동생의 액자 선물 공격의 효과는 대단했다.) 정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 ♬ ♬ ♬
이 번호였던가? 이틀 전 찍힌 번호를 누르니, 컬러링이 들려왔다. 이건 희대의 명곡이라 불리는 ‘of you’란 곡이자 지금의 마테오가 있게끔 만들어 준 곡이랄 수 있었다.
파격적이긴 했지.
현승이 그 곡을 따라 흥얼거리던 그때, 수화기 너머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마치 밀림의 왕 사자가 이빨을 드러내기 전, 으르렁거리는 것마냥 옅은 분노가 느껴졌다.
─ 이제야 연락이 오는군.
그는 아무래도 자신과 전생의 악연을 되풀이하고 싶은 건지, 탐탁해하지 않는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네, 제가 이래저래 용무가 좀 바빴습니다.”
─ 누가 보면 내가 당신을 찾고 다닌 줄 알겠어.
“찾고 다니셨던데요?”
수화기 너머로는 별안간 정적이 흘렀다. 민망해서겠지. 아무래도 모르는 척해 줬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계진성을 통해 마테오가 온갖 언론사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소식을 이미 다 전해 들은 마당에, 모르는 척하기가 더 어려웠다.
‘음?’
상대편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끊긴 건가 싶던 그때.
─ 아무튼, 뭐 하나만 묻지.
마테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요?”
현승은 자신이 먼저 묻고 싶었지만, 노인 공경 차원으로 순서를 양보해 주기로 했다.
아마.
자신과 음원 대결이 진심이냐는 둥, 상업적인 작곡가 주제 자신을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둥 그런 의미 없는 물음을 늘어놓을 테니까.
전생에서도 그랬다.
현승이 들어나 보자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고쳐 들던 그때.
─ 사라 스튜어트와 무슨 사이인가?
현승은 그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당황해서는 아니고, 너무 뜬금없어서.
이 아저씨, 설마….
사라 스튜어트 팬이라서 따지려고 날 찾아 헤맨 건가?
* * *
한편.
휴대폰을 귓가에 바싹 갖다 대고 있던 마테오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굉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제 질문을 받게 된 HS가 휴대폰을 떨군 모양이다.
당황스럽겠지.
근데 대놓고 당황한 기색을 드러낼 줄은 몰랐는데….
‘혹시 사라가 말했나?’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도발도 안 했을테고, 구태여 다시 연락해 오지도 않았겠지.
잠깐만.
설마 딸아이가 부탁한 건 아니겠지? 날 무척 싫어하니까, 같은 작곡가로서 콧대를 꺾어 달라던가….
아, 이건 너무 비약이다.
제 딸아이는 복수나 하며 시간을 허비할 만큼 바보가 아니니까.
이내.
다시 수화기 너머에서 HS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걸 왜 물어요?
반응으로 보아, 아직 사라 스튜어트가 제 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냥 대답해.”
그녀가 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줄 생각은 없다.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존재하는 어린놈을 어떻게 믿고 말하겠나?
그러나 어차피 뱉어 버린 물음이다. 답이라도 듣지 못하면 괜한 오해만 하나 생겨나는 것뿐이다.
이윽고.
마테오는 고압적인 어투로 재차 추궁했다.
“둘이 무슨 사이야. 빨리 대답해.”
하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계속 “음.” 하는 침음 소리만 들려왔다. 윽박이라도 질러서, 겁을 줘야 하나 싶던 그때.
─ 연주자와 악기?
HS의 익살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연주자와 악기…?
그말은즉슨,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이라는 말이지 않나?
연주자는 악기가 있어야 연주를 할 수 있고, 악기도 연주자가 있어야 비로소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되니까.
그래.
작곡가와 가수로 만난 둘에게 아주 적합한 비유였다.
‘이놈….’
마테오의 단단한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지경에 도달한 그는….
“애매하게 얘기하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대체 언제부터 만나게 됐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지!”
끓어오르는 분노에 “씩씩”거리며 뿜어내는 콧김마저 뜨거워졌다.
“어? 말을 해 보라고!”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자신은 잔뜩 화가 난 상태인데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 꼭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던가.
괜히 아무 일도 아닌데 혼자 화내는 ‘성격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기분이 드는 경우 말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 …….
상대편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흐트러진 호흡으로 인해 어깨가 거칠게 들썩이던 마테오도, 점차 정상적인 호흡을 찾아갔다.
“…….”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HS가 자신이 사라 스튜어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HS의 눈에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망했다.’
아마 사라 스튜어트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변태 아저씨 정도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마테오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 대던 그때.
─ 만나서 얘기하시죠.
HS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툭 제안을 건네왔다.
만나자고? 바라던 바다, 이 놈아!
-라고 당장 대답하고 싶었으나,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로도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는데, 만나서는 더 안되지 않겠는가?
하나.
HS는 참을성이 그리 좋은 인물이 아닌 듯 보였다.
─ 주소랑 날짜는 문자로 보낼게요.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맥없이 끊겨 버렸으니까.
“하….”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먼저 끊네?
* * *
현승이 마테오에게 문자를 전송한 그 시점.
똑, 똑, 똑-.
이젠 하도 들어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응답 안 해도 잠금장치 알아서 풀고 들어오실 거면서, 왜 맨날 노크를 하는 건지.
“현승아-!”
문이 열리고, 파도에 휩쓸린 것마냥 들어온 김우현은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요.”
왜냐고 묻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두석을 통해 뿌린 해외 언론 자료와 제 SNS 계정.
그리고.
국내 언론사를 통해 자신을 캐묻고 다닌 마테오.
이 정도의 안건이겠지.
SNS 계정이라던가 해외 언론 자료는 이미 국내에도 많이 퍼져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고.
아마 개진상을 통해 자신도 전해 들은 소식이니, 김우현의 귀에는 백번은 더 들어갔을 터였다.
아마 걱정되는 거겠지.
마테오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말이다.
현승은 전생에서 자신을 상업 작곡가라 일컬으며, 그런 작곡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긍방 잊힌다는 악담을 퍼붓던 마테오를….
처음 도전한 빌보드 차트에서 처참히 무릎 꿇린 바 있었다.
그뿐이랴?
그 이후로 마테오가 은퇴하기 직전까지, 단 한 차례도 1위를 양보해 준 적 없었다.
그래도.
늘 2위까지 바짝 쫓아와 자신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선사해 주는 인물이었다.
‘아마, 청력을 잃어서 은퇴했었지….’
현승은 그래서 더욱 마테오와 빨리 겨뤄 보고 싶었다.
전생에서의 마테오보단 지금의 마테오가 더 젊을 테고.
전생에서의 민현승과 지금의 민현승은 다를 테니까.
“너 마테오랑 음원 대결, 진짜 하는 거야?”
하나, 그 물음에 현승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분명 자신은 음원 대결을 신청했는데.
오늘 돌아온 건 사라 스튜어트에 대한 물음뿐이었으니… 제대로 확정 난 건 없었으니까.
하물며.
마테오의 반응이 영 너무 이상한 탓에, 음원 대결보단 그쪽에 더 흥미가 생긴 상태였다.
대체, 왜 그렇게 ‘미숫사라’에게 집착하는 건지.
진짜….
사라 스튜어트를 짝사랑하는 변태 영감인가?
그때.
김우현이 제 옷자락을 붙잡으며 다급히 물어왔다.
“왜 안 해?”
걱정해서 묻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쪽에서 더 이상 반응이 안 와? 연락 없어?”
“아니, 왜 엄마답지 않게 잔소리를 안하고 부추겨요?”
“부추긴다기 보단, 이미 판이 깔렸으니까 하는 말이지.”
“어쩐지 왜 이렇게 한국 언론사들이 열심히 일하나 싶더라니, 엄마가 판 깔아 둔 거죠?”
김우현이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니, 뭐….” 하고 말을 흐리기도 잠시.
“이번에야 말로 내기에서 원금 회수해야 되는데….”
본심을 중얼거렸다.
“또, 저 두고 이상한 내기 벌이려고 하시는 거죠?”
“우리도 그래야 더 열심히 원동력 삼아서 하지!”
현승이 그 말에 콧방귀를 끼고는, 다시금 되물었다.
“만약 거신다면 누구한테 거시게요?”
“그건 내기 규정상 알려줄 수 없지!”
그러고는 김우현의 몸을 문 쪽으로 돌려 세우며 첨언했다.
“아무튼, 아직 뭐 확정 난 게 없어서 나중에 전해 드릴 테니까 이만 나가 주세요.”
김우현은 현승의 우악스러운 손에 잡혀, 별 저항도 하지 못했고.
“나 아직 온 지 5분도 안 됐는데?”
“본부장님, 일하러 가 보셔야죠.”
“이럴 때만 본부장이라고 선 긋지!”
문 앞까지 도달한 그때.
“잠깐, 잠깐!”
궁지에 몰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두꺼운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이거 놓고 얘기하자!”
그 말에 현승은 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손을 스르륵 내려놓았고.
이내.
김우현이 현승과 마주 보고 서서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대체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각을 잡는 거지?
현승이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찡그리던 그때.
김우현의 딱딱한 표정이 풀리며, 입술이 열렸다.
“왜 맞팔 안 해 줘?”
엄마는 진심으로 서운해 보였다.
* * *
결국 김우현은 맞팔까지 한 다음에야 제 집무실로 돌아갔다.
“어휴.”
나이 먹을수록 서운한 것만 늘어난다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갱년기신가….’
현승은 조용한 작업실 소파에 앉아, 잠시 미뤄 두었던 궁금증을 다시 끄집어냈다.
마테오와 사라 스튜어트, 둘의 관계성에 대해 말이다.
분명 사라 스튜어트는 저번에 모른다 했었는데….
마테오는 마치 아는 사이인양 굴었단 말이지?
그래.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고, 엄청난 애착이 있어 보였다.
톡, 톡, 톡, 톡-.
『 미숫사라 』로 저장된 연락처를 찾아, 누르니 자신이 만들어 준 ‘Look at me’가 컬러링으로 흘러 나왔다.
가만 보면 사라 스튜어트도 자기애가 상당히 높아 보였다.
─ ♬ ♬ ♬
한참 이어지는 컬러링이 서서히 멎어들 쯤에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 급한 일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묻는 걸 보니 전화할 만한 상황이 아닌 모양이다.
하나.
궁금한 건 얼른 해소하고 싶은 게, 사람의 이기적인 본능 아니겠는가?
“어, 급해.”
현승의 말에 사라 스튜어트는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는 양 보였다.
그리고 이내.
시끄럽던 주변의 잡음이 싹 사라지고, 사라 스튜어트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 무슨 일이야?
“너 마테오랑 아는 사이지?”
─ 아, 아니라니까?!
“근데 마테오는, 너랑 내가 무슨 사이인지가 엄청 중요한 사람처럼 보여 지던데?”
─ 그거야, 뭐…
사라 스튜어가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 남 일에 관심 많은 영감인가 보지, 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가? 근데 왜 목청을 자랑하고 그러냐?”
─ 됐고, 그 사람한테 오늘 연락이 온 거야?
“내가 했어.”
─ 내가 엮이지 말라고 했잖아!
“너 좀 수상하다? 진짜 모르는 사이 맞아?”
─ 그, 그 사람 질이 별로래. 이 바닥에 소문 파다해.
현승은 그 말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그의 성격이 별로라는 건 전생부터 알고 있었다.
예민하고, 자존심 세고, 이상한 예술혼이 높은 사람.
뭐….
그건 예술 계통에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갖고 있는 성향이라, 현승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어차피 제 성격도 따지고 보면, 좋은 편에 속하진 않으니까.
“괜찮아. 나도 그 사람 성격 별로인 거 알고 있어.”
─ 아, 아니, 성격이 문제가 아니고!
“그럼, 뭐가 문젠데?”
─ 그, 그 사람이 그러니까….
사라 스튜어트는 선뜻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계속 뜸을 들였다. 이럴수록 영 수상한데, 진짜.
“그 사람이, 뭐?”
─ 그게 …….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사라 스튜어트가 다시 한번 목청껏 소리쳤다.
─ 게, 게이래!
사측에 알리기 싫어서, 단둘이 밖에서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아무래도 약속 장소를 사측 접견실로 변경해야겠다.
“아, 그건 좀….”
그래, 기왕이면 김 엄마 말대로 경호원도 좀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