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0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02화(301/482)
마테오는 뒤숭숭한 마음을 떠안은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저랑 콜라보 앨범 한번 내 보시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제정신이 아닌 놈이라 생각했다.
“저랑 작업하시면, 사라 스튜어트를 악기로 세울 수 있잖아요.”
제 딸을 악기라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말로 못 전할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하실 수도 있고.”
하나, 마지막 말에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성벽이 무너졌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되레 관계가 꼬이면? -그런 걱정들로 이루어진 세월이란 성벽이 말이다.
“개, 개, 이드윽.”
마테오는 HS에게 배워 온 한국어를 중얼거리며 작업 테이블 앞에 앉았다.
‘딸에게 하고픈 말을 담은 곡이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작업은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프로그램을 켠 순간부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작업, 쉽지 않겠구나.
마테오는 제 직감대로 엄청난 난항을 겪었다.
“하….”
아마 태어나 시험이라는 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정답을 바꿔서 틀린 경험이 있을 거다.
직감대로 찍은 답 대신, 고심하여 다른 것으로 바꾸면 꼭 처음 찍은 답이 정답이었던 적 있지 않은가?
마테오도 학생 시절 그런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처음에 딱 스치는 직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곡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늘 처음 떠오른 악상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나갔다.
절대 고심하여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마테오는 코드 하나 찍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이윽고.
마테오는 하루, 이틀, 나흘… 무려 일주일이나 흘러서야 완성한 곡을 들으며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맞나?’
누군가를 떠올리며 만들다 보면 객관성이 흐려지는 게 당연하다. 이게 좋은 곡인지, 아닌지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마련이다.
하물며.
제 딸아이를 위한 헌정곡이니,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이게 아니야.”
마테오는 자신이 만든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제 곡에 대한 의심만 점차 증폭되어 갔다.
그렇다고….
HS, 그놈에게 제 곡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해 달라고 요청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것만 알 수 있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마테오가 고심에 빠져들던 찰나였다.
띠링-!
까톡이 도착했다.
물론, 딸아이로부터 온 연락은 아니었다.
HS
작업은 잘 돼 가시는지?
HS의 재촉 아닌 재촉 연락이었다. 마테오는 지금 제 상황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이번 작업은 성적을 떠나서 자신이 HS보단 빨리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그래도, 내가 아빠니까.
넌 벌써 완성했나?
아니.
그럼?
시작도 안 했는데.
뭐? 시작도 안 해? 이게 지금 장난치자는 것도 아니고, 콜라보 앨범이고 뭐고 그냥 해 본 말인 거 아니야?
“fuck….”
마테오는 욕을 중얼거리며, 분노에 찬 마지막 까톡을 전송했다.
내일 안으로 곡 안 보내면 콜라보는 없던 걸로 하지.
그건 그렇고, 나야 말로 얼른 완성해야 하는데….
탁, 타다다닥, 탁-.
마테오는 다시 휴대폰을 두들겼다.
곡을 완성 시키려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 * *
사라 스튜어트는 고심에 빠진 얼굴로 펜 끝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가사는 있는데 그에 걸맞은 멜로디가 나오고 있지 않던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HS의 곡을 너무 들은 탓인지, 듣는 귀가 너무 높아져 버렸다.
질-끈.
사라는 은빛이 도는 금발 머리를 바싹 묶은 채, 옷소매를 추켜올렸다. 그러고는 쉴 틈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곡이 안 나온다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좋은 곡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젠 안다.
그래.
그 괴짜 녀석은 매사 태연하고, 느긋해 보였지.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한다.’
완성곡이 조금 별로면, 디벨롭하면 될 일이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해 보자.
─ ♬ ♬ ♬
사라 스튜어트는 자신이 원하는 멜로디가 나올 때까지, 찍고, 연주하고, 그려나가길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대로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되어서야, 손을 멈췄다. 안 되겠다, 뭐라도 먹어야지.
그래.
좋은 곡을 만들려면 배도 채워야 하는 법이지.
이 또한 그 괴짜 녀석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그 괴짜도 작업할 때는 자신을 엄청나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끼니만큼은 꼭 챙겨 먹곤 했다.
심지어, 엄청 많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 만큼, 많이도 처먹는다.
‘근데 왜 살은 나만 찌는 거야….’
사라는 말랑한 제 뱃살을 살짝 부여잡았다. 가만 보면, 요즘 밥도 잘 안 먹는데, 왜 이렇게 살이 찌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바싹 말랐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다고 했지만.
‘그 괴짜는 맨날 나만 보면 살쪘다고 핀잔주던데….’
다음에 있을 컴백 전까지 다이어트를 좀 강행해야겠다.
아!
이렇게 된 거 아예 미숫가루로 원푸드 다이어트를 해볼까?
그래.
달달하니 맛있고, 요리할 필요도 없고(*소질 없음) 특히 곡물을 갈아서 만든 거라고 했으니 건강에도 좋은 거잖아?
정말이지.
본인에게 딱 안성맞춤인 다이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신의 타이틀곡인 ‘Look at me’가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한 지, 이제 11주 차였다.
그말은즉슨….
한 주만 더 버티면 내기에서 이기고, 미숫가루 100박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아싸, 신이 나를 돕는 구나.’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하며, 가방에 챙겨온 미숫가루 한 팩을 꺼내 들던 찰나였다,
지이잉-!
가방 안에 넣어 둔지도 까먹었던 휴대폰 액정이 반짝이며 환하게 불이 들어왔고.
“아.”
미리보기로 내용을 확인한 사라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
[ 너에게 난 어떤 아빠였을까. ]태어나, 살면서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자, 가장 무거운 질문을 받게 된 까닭이었다.
* * *
한편.
내일 안으로 곡 안 보내면 콜라보는 없던 걸로 하지.
현승이 마테오에게 도착해 있던 까톡을 보고는 귀찮다는 양 휴대폰을 소파 위로 던져 놓았다.
“거참, 어련히 할까 봐.”
내일까지 갈 것도 없이, 오늘 밤이면 완성될 일을.
촤락-.
작업 테이블 앞에 앉은 현승이 오선지를 펼쳤다. 어느 순간부터 이게 조금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현승은 제법 오래전부터 머리에 담아 둔 악상이 있었다.
다만, 자신이 없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현승이었지만, 이 악상만큼은 제 실력으로 다 표현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
곡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에 걸맞는 가사를 적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머릿속에만 방치해 두었던 악상인데….
이제는 그만 썩혀 둬야 할 것 같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사락, 사락-.
이미 있던 악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처럼, 현승의 손은 오선지 위로 다양한 형태의 음표를 거침없이 그려 나갔다.
흡사.
지렁이가 기어 가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락, 사락-.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띠링-!
박 전무로부터 운동에 왜 안 나오느냐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동틀 무렵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운동 가야 하는데.”
현승은 말과 달리, 선뜻 엉덩이를 일으키지 못했다.
몇 장의 오선지가 꽤 그럴싸한 악보로 탄생했다지만, 그에 맞는 가사는 단 한 줄도 적지 못한 까닭이었다.
역시….
가사를 못 적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던 제 예상이 맞았다.
그렇다고 대충 적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정말.
아예 모르는 감정이기도 하고, 겪어 보지 못한 일이기도 하니까.
‘아, 내겐 없는 것이기도 하고.’
이윽고.
현승은 작업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악보 위로 엎어졌다.
그래.
자신이 못하는 일이라는 걸, 인정하면 편할 일인데….
‘잠깐만.’
가사는 직접 부를 악기에게 맡기면 될 일 아닌가?
그래, 맞아.
어차피 내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니까.
─ 톡, 토도도독, 톡-!
현승은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미뤄왔던 한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
경쾌하게 들려오던 컬러링이 뚝 멈추고, 별안간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야….
깊은 지하수 동굴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목소리.
이 목소리를 듣고, 누가 조금 전 컬러링에서 들리던 목소리와 동일한 인물이라 생각이나 하겠나?
“너 어디 지하 세계에 끌려갔냐?”
─ 아니야, 그냥 목이 좀 잠겨서 그래.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말하기 싫어 보이는 걸 억지로 말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안 그래도….
복잡한 가정사마저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테지.
“근데, 혹시 아직도 네가 만든 곡에만 노래 부를 거라던 이상한 신념 굳건히 유지 중이냐?”
─ 왜? 나 곡 주려고?
조금 전까지 분명 착 가라앉았던 사라 스튜어트의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껏 치솟았다.
여자들의 마음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 안 그래도 나 가사만 나오고, 영 멜로디가 안 떠오르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아니, 너 그 굳건하던 신념 어디에 팔아먹었어?”
─ 어차피 한 번 깨진 신념인데, 모아 붙여서 어디에 쓴다고. 아무튼, 들어보고 괜찮으면 친히 내가 쓴 가사도 붙여서 불러 줄게.
“난 멜로디만 나오고, 가사가 안 나온 곡이 있긴 한데….”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사라 스튜어트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된 거 아니야? 가사랑 멜로디 분위기만 잘 맞으면 서로 좋은 일이지.
그 말에 현승이 난처하다는 양 “쓰읍.”하고 입술을 차고는, 이내 단호히 딱 잘라 말했다.
“근데 그건 너한테 줄 곡이 아니야.”
현승이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꺼내든 악상으로 만들어 낸 곡은 사라 스튜어트를 위해 만든 곡이 아니었다.
비록,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약속된 주인, 아니, 악기에게 가야 할 곡이다.
─ 뭐야, 그럼, 왜 물어본 거야?
“남이 만든 곡도 이젠 부르나 싶어서.”
─ 남? 네가 만든 곡이 아니라?
그 물음에 현승이 짤막하게 “응.” 하고 대답하기도 잠시.
“마테오.”
-라고 덧붙인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고.
이내.
전화는 상대편에서 툭 끊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