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0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05화(304/482)
마테오는 깜깜한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최소한의 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었다.
“후….”
아내가 떠났을 때도, 상실감에 잠겨 있을 새도 없이 남겨진 딸을 위해 악착같이 버텨 냈다.
그랬는데….
딸아이는 성인이 되자마자, 제 품을 떠나 버린 것도 모자라.
용기 내어 처음 연락했을 때는 자신을 무시했고.
“그만 좀 해! 내 인생이야! 내가 누굴 만나든, 뭘 하든 당신은 이제 신경 쓰지 마!”
5년 만에 만났을 때는, 생판 모르는 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거칠게 몰아붙였고.
[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다가가기 위해 한 번 더 용기 낸 물음에는, 아예 아빠라는 존재를 포기한 듯 답했다.
마테오는….
급속도로 무너져 갔다. 일도, 수면도, 식사도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막연하게 딸아이와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조차 사라졌다. 헛된 망상이다.
그래.
첫 단추부터 어긋났지만, 언젠가는 다 풀고, 예쁘게 다시 끼워 넣을 수 있을 거라는 망상.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거늘.
“저랑 작업하시면, 사라 스튜어트를 악기로 세울 수 있잖아요.”
HS가 한 말에, 헛물만 들이켰다.
“말로 못 전할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하실 수도 있고.”
달콤해서 아주 잔뜩 들이켜 버렸다.
이제 와, HS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의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이의 꼬임에 넘어간 건 자신이니까.
“fuck….”
마테오가 욕을 중얼거리기도 잠시.
톡, 톡-.
미뤄 왔던 연락을 보내기로 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폴도, 자신을 거절한 딸도 아닌, HS에게 말이다.
어찌 되었건….
같이하기로 했던 일이니, 안 할 거라고 말은 해 줘야겠지.
“어….”
HS와 나눈 까톡방을 열어 보니, 자신이 연락하지 않는 동안 온 톡은 달랑 3개였다.
– 4일 전 –
약속대로 보냈으니 작업 계속하시는 겁니다.
[ track미숫가루.mp4 ]– 1일 전 –
영감님 곡은 언제 보내 주십니까?
녀석은 크게 자신을 보채지 않았다. 애초에 이거 말고도, 녀석이라면 다른 작업이 많을 테니, 이러다 금세 까먹을지도 모른다.
그래.
내겐 가슴 아픈 사연이지만, 그놈에겐 그저 상업적인 제안이었을 테니까.
“쓰읍….”
마테오는 HS가 보낸 톡을 들여다보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 와중에도, 그가 보내온 곡이 들어 보고 싶던 까닭이었다.
결국.
마테오는 어쩔 수 없는 작곡가였다. 곡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앞에 있으면, 그냥 못 지나치고 열어 봐야만 하는 작곡가.
그래.
한번 들어 본다고 무조건 같이 작업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들어라도 볼까.”
애초에 사라한테 자신과 작업할 것이라 전한다면, 그 아이는 필시 거절할 테니까.
꼴-깍.
분명, 요즘 유행하는 상업성이 짙은 곡일 거라 예상하면서도 이상하게 기대가 되었다.
그가 최지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딸-칵.
마테오는 미세하게 떨려 오는 손을 움직여, HS가 보내온 음원 트랙을 재생시켰다.
이윽고.
거실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곡이 들려왔다.
─ ♬ ♬ ♬
마테오는 이 업계에서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을 넘게 보냈다.
그 전부터 음악을 전공하며 공부해 왔으니, 그의 인생은 음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랬기에.
첫 몇 소절만 들어도 감이 온다.
‘좋다.’
인정하기 싫지만, 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한 곡이다.
잔잔하지만, 어딘가 투박한 기타의 선율로 시작된 노래는 살랑 바람을 타고 흘렀다.
예상은 했지만….
최지현의 이름으로 냈던 ‘more than just music’이라던가 ‘out to sea’와 같은 웅장함은 없었다.
그저.
고요한 호수를 떠도는 종이배처럼 두둥실 떠다녔다.
그 종이배가 어딘가에 닿을지, 호수의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로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 ♬ ♬ ♬
선율이 차차 잦아들더니, 이내 툭 멎어 버렸다.
뭘까.
왠지 드라마를 보고 난 이후의 기분이 들었다.
다음 스토리가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 말이다.
혹시 시리즈가 있는 곡인가?
궁금해진 마테오는 곧장 HS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이내 손을 멈췄다.
어차피 안 할 작업이자, 못하게 될 작업인데 구태여 물어보면 미련만 남겠지.
그렇지만.
‘종이배의 말로 정도는 내가 만들어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마테오는 곧장 작업 테이블로 향했다.
* * *
현승은 사라 스튜어트에게 얻어 낸(=뜯어 낸) 가사를 멜로디에 맞춰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나.
그저, 박자에 맞춰 이음새를 다듬는 정도라지만 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마저도 싶지 않았다.
“흐음….”
그래서 요즘 현승은 잠이 들기 전에도,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아아.
마테오는 새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물론.
작업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억지로 재촉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기에 미뤄 둔 것이기도 했다.
톡톡.
현승이 밥 대신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물던 그때.
─ 아들.
어깨에 닿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가 보였다.
─ 무슨 고민 있어?
─ 아니요.
─ 어쩐지, 심각해 보여서.
현승은 제 마른 뺨을 쓰다듬었다.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보였나. 괜한 걱정을 끼쳐드렸군.
─ 그런 건 아니고….
공중에서 손이 멈추기도 잠시.
─ 아버지.
현승이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수어로 물었다.
─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아버지는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듯, 아예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눈을 마주해 왔다.
머지않아.
현승의 조심스러운 손짓이 이어졌고.
─ 저, 어머니는 저를 얼마나 사랑하셨을까요?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란 기색을 보이셨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답했다.
─ 분명 나보다 훨씬 더 아들을 사랑했을 거야.
─ 아버지보다 더요?
─ 물론이지.
확신에 차 대답한 아버지가 되물었다.
─ 그거 아니? 모성애는 보통 타고나는 것이고, 부성애는 후천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현승이 작게 고개를 내젓다 말고,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고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던 까닭이다.
제 여동생인 현아는 어릴 적부터 본능처럼 가족을 챙겼고, 자신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관계 속에 최소한의 역할만 해냈다.
절절히 후회하며, 다시 기회가 주어지기 전까지.
스윽, 스윽-.
그때 아버지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지난 기억을 상기시켰다.
─ 네가 아주 애기 때, 독감을 앓아서 입원한 적이 있어. 현아가 태어나기 얼마 전 일이니, 너도 기억 못 할 거야.
─ 그때라면 그렇겠네요.
─ 일이 끝나면 아픈 네 곁에서 몇 날 며칠을 지새우다 보니, 그 와중에도 잠이 오더구나.
멋쩍게 웃어 보인 아버지는 다시금 수어를 이어 나갔다.
─ 그런데, 네 엄마는 잠은커녕, 네 인기척 한 번에 벌떡 일어나서 맨발로 간호사를 찾아 나섰어.
현승은 기억에 없는 일이니, 잠자코 듣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매일 같이 아들에게 무슨 일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어찌나 애절하던지, 남이 보면 네가 불치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을 거야.
─ 그러게요. 그래도 어머니가 걱정해 준 덕분에 제가 여태껏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거겠죠.
─ 아빠가 많이 부족하지만, 엄마 몫까지 아들, 딸 열심히 사랑할 테니 부디 건강만 해라.
아버지는 말을 끝낸 뒤, 현승을 조용히 안아 주었다.
토닥, 토닥.
현승은 등을 두들겨 오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아마.
아버지는 제법 놀라셨을 거다. 어머니에 대해 통 묻지 않던 아들이 별안간 심각한 얼굴로 물어 왔으니….
비록.
작업 때문에 물어보긴 한 거지만, 그래도 묻길 잘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아버지로부터 그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상관없다.
이윽고.
아버지는 현승을 품에서 떼어 내며 마지막 수어를 덧붙였다.
─ 그리고 네 엄마는 너를 처음 품에 안던 날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더구나. 날 사랑한 건, 사랑의 축에도 못 낀다고 해서 조금 서운할 정도였어.
서운했다던 아버지는, 말과 달리 오뉴월 들풀처럼 따사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 * *
아버지에게 일말의 힌트를 얻고,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은 작업 테이블 앞에 앉았다.
“네, 그럼 꼭 다시 올게요.”
그녀는 분명 진심이었고, 그 진심을 지켜 줄 차례다.
사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정확한 기억도, 감정도 없는 채라 미뤄 오기만 했다.
그런데.
요즘 부쩍 현아의 웃는 얼굴 위로 어머니의 얼굴이 비쳤다.
현승은 그때마다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는데, 그와 동시에 자신을 스쳐 간 모녀가 떠올랐다.
그래서.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다니던 악상을 처음으로 꺼내어, 오선지 위에 정리했다.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마테오한테서 아직도 연락이 없네. 작업물이 와야, 사라 스튜어트한테 말이라도 다시 해 보는데.
‘쓰읍.’
이렇게 된 김에 얼른 이 작업부터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현승은, 곧장 편곡에 들어갔다.
탁, 타다다닥, 탁-!
말이 편곡이지, 기존 생성된 섹션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였고.
아버지와 대화하며 떠오른 악상들로 다시금 탈바꿈해 나갔다.
─ ♬ ♬ ♬
곡에 포함된 모든 악기의 연주를 일일이 직접 찍어 내고.
─ ♬ ♬ ♬
오선지 위로 그려도 가면서.
─ ♬ ♬ ♬
제 어머니가 듣게 될 곡이라 생각하며, 차근차근히 완성해 나갔다.
‘쓰읍….’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큰하다고 느껴지던 찰나.
“브라보!”
별안간 헤드셋을 뚫고 들어온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짝짝짝-!
그곳에는 김우현이 감명받은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들리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브라보예요.”
분명 헤드셋을 끼고, 작업한 탓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곡이 들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김우현은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안 들어도 알지.”
“뭘 알아요.”
“작품이 탄생할 거란 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더니.
“이제 네가 작업하는 얼굴 표정만 봐도 알아.”
“제 표정이요?”
“응, 신난 표정이면 꼭 사고를 치고, 어딘가 심각한 얼굴이면 작품을 만들어 내더라고.”
아아, 김 엄마도, 엄마는 엄마인 건가.
“엄마.”
“오냐, 아들.”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제 말에 김우현이 지레 겁먹은 얼굴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어라, 신난 표정인 걸 보니까 사고칠 것 같은데.”
“사고는 아니고, 악기 하나 섭외 요청 좀 부탁하려고요.”
현승은 별안간 심각한 얼굴로 턱을 긁적였고.
“누구길래 그래?”
김우현은 현승의 침음이 길어질수록 불안해 졌다.
뉴욕필마저 거대 악기 취급하던 놈이, 대체 어떤 악기(*가수)길래, 저렇게 고민하는 거지?
“음.”
이내 현승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이돌인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조 씨 거든요?”
“어?”
“좀 대신 찾아 주실 수 있죠?”
그 말에 김우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디.
자신이 ‘조악기’ 씨를 신속 정확히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