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11화(310/482)
결국 녹음 작업이 시작되었다. 순조로웠냐고?
그럴 리가 있겠나.
“다시.”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받아든 가사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엄마와 딸이 대화를 주고 받는 듯한 가사였으니까.
“그게 아니잖아, 다시.”
하나, 살쾡이 같은 눈을 한 채로 자신을 노려보며 연거푸 “다시”를 외쳐 대는 HS 때문에 아무런 투정도 할 수 없었다.
“저, 물 한 번만….”
간신히 용기 내어 뱉은 말이라곤, 이게 전부였다.
쉬겠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제 엄마인 조경미가 부스 너머에서 보고 있기도 하고, 이번에야말로 HS에게 실력을 제대로 선보이겠노라고 다짐한 채였으니까.
“후….”
그저 이렇게 하마처럼 물을 들이켜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잠시나마 달래는 방법뿐이었다.
아니!
연습할 시간은 좀 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부스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스-윽.
부스 너머에는 한치의 미동도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HS가 보였다.
움찔!
조예리는 그런 HS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눈을 피했다.
HS는….
나른하면서도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무서울 만큼 독기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정말이지.
까딱해서 한눈이라도 팔았다간 잡아 먹힐 듯, 짐승을 떠올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아아.
물론, 자신도 처음에는 팔팔 끓는 용암처럼 독기가 그득하게 끓었었다.
그러나 작업실에 도착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전부 합산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 버리지 않았는가?
이미 식어 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HS는 얼굴 위에 피곤하거나 귀찮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뿐이랴?
계속해서 번들거리는 안광으로 “다시!” -를 외쳐 대고 있었다.
혹시….
인간이 아닌 건 아닐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빼꼼이 작업 때부터 느꼈지만….
“야, 쫄보.”
“예?”
“물 마시다가 하루 다 보낼래?”
인정사정없는 게, 아무래도 인간은 아닌 듯 보였다.
“다시 노래한다, 실시.”
* * *
조예리는 꼬박 하루가 지난 이후에야 부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아아.
물론 그마저도 녹음이 다 끝나서 나올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감정이 엉망진창이라 도저히 안 되겠다. 이쯤에서 자르고, 조경미 씨 먼저 녹음할게요.”
하이라이트 코러스 구간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축객령이 떨어졌고.
“쫄보, 너는 벽 보고 반성하고 있어.”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만끽하기도 전에, 작업실 벽을 바라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후….”
조예리는 별안간 현타가 밀려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인 만큼, 제아무리 잘나가는 작곡가라 할지라도 자신을 하대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간혹 어린 아이돌이라면 무시부터 하고 보는 꼰대 작곡가들이 있기야 했다지만….
이렇게.
쫄보라 불리며, 벽을 보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보긴 처음인 까닭이었다.
정말이지.
드라마 속에서나 들어오던 ‘날 이렇게 대하는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라는 대사가 절실히 떠올랐다.
‘음?’
그때 조예리는 조용한 장내에, 이상함을 느꼈고.
스-윽.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헤드셋을 뒤집어쓴 HS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말은즉슨, 부스에서 나오는 소리가 전부 저 헤드셋을 통해서만 들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씨….’
스피커 음질 끝내주게 좋던데, 왜 안 쓰는 거야.
‘나도 듣고 싶은데….’
조예리는 발꿈치를 든 채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살금살금.
목적지는 HS가 있는 컨트럴 부스. 가까이 다가가면 혹시나 조금이라도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미운 감정은 별개로,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라이브는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물론 빼꼼이 가족을 녹음할 때는 한 부스를 이용했다지만, 그건 가사를 직관적으로 전해야 하는 동요였고.
지금은 가사보다 감정선이 더욱 중요한 대중가요니, 엄연히 달랐다.
특히.
자신에게 ‘엄마’였던 적이 없던 그녀가, ‘엄마’의 마음을 잘 담아낼지도 궁금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궁금하다기 보단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못난 심보였다.
슥-.
그때 HS가 손을 들어 노래를 끊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마뜩잖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소프라노라도 HS의 마음에 차진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성악과 대중가요는 엄연히 결이 다르지.’
조예리는 차라리 HS가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며 캔슬을 내 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탁-!
이내 HS가 토크백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감정이 너무 과잉되어 있어요. 잠시 진정하고 다시 갈게요.”
그 말에 조예리가 부스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어….’
조경미는 HS의 말대로 감정이 격양되었는지, 얼굴 위로 부채질을 해 가며, 심장이 크게 들썩일 정도로 호흡을 뱉어 내고 있었다.
기사라던가 TV 속에서 만나 왔던 조경미와 너무 다른 모습에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오페라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조경미는 단아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소프라노였다.
그리고.
어릴 적, 간간이 통화로 만나 왔던 ‘엄마’ 또한 딸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선이 느껴지던 사람이었다.
그래.
왠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얼음 왕국 속에 사는 여왕님 같았달까?
그랬던 그녀가 지금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 하나를 컨트럴하지 못하고, 동요하고 있다니.
꽈악-.
조예리는 어째선지 그런 모습에 어깃장이 났다.
자신이 고등학교가 되어서야 얼굴을 비춰선, 엄마인 양 굴던 그녀에게 상처가 되길 바라며 어깃장을 부렸던 날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제 와서 엄마 노릇 하려는 거면 됐어요. 저는 엄마 없다고 생각하고 살 테니까, 엄마도 그냥 딸 없는 셈 치세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닌가 걱정하던 제 마음이 우스울 정도로, 엄마는 그길로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갔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휩싸여 괴로운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하나, 그럴수록 엄마에 대한 원망은 커져만 갔다.
고작 손 한 번 내밀어 본 게 전부면서, 또 그렇게 떠났구나.
늘 기사로만 만날 수 있는 엄마가 미웠다.
근데, 왜, 왜, 왜 지금….
하루아침에 딸을 잃은 사람마냥, 눈시울을 붉히며 힘겨워하는 거냐고.
“어이 없어.”
조예리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HS는 그런 조예리를 곁눈질로 바라볼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토크백을 통해 “다시 갈게요.” 하고 짤막히 전했다.
─ ♬ ♬ ♬
대신 이번에는 헤드셋이 아닌 스피커를 통해 컨트럴 부스 전체에 MR이 흘러나왔다.
“…….”
동시에 조예리는 팔짱을 끼운 채, 부스 너머에 서 있는 엄마를 주시했다.
자신이 HS로부터 ‘반성의 시간’이라는 벌칙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은 후였다.
이윽고.
부스 너머에 조경미는 긴 속눈썹을 뽐내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 소절 한 소절이 소중하다는 양 호흡과 함께 뱉어 냈다.
─ 네 조그만 손을 붙잡으면 아스러질까 두려웠어.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멜로디 위를 부드럽게 굴러다니는 옥구슬 같았다.
─ 네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온 시간.
찡그린 미간이, 그녀가 음악에 심취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 결국 네가 필요할 땐 옆에 있어 주지 못했어.
머지않아 조경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높이 치솟았고.
─ 혹시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함께 손잡고 걸어 주지 않겠니.
자신과 공중에서 시선이 맞닿았다.
─ 더 늦기 전에, 네 작은 손 한 번 붙잡아도 되겠니.
그 순간, 장내에 단 둘만이 남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 모든 게 처음인 인생에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겠니.
돌연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잘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 올라오는 전율 같은 게 아니다.
그래, 그것과는 또 다른 전율이다.
─ 내 목숨과도 같은 너를 잃지 않을 기회를….
한순간 콧망울을 찡하게 울려오는 전율 말이다.
막을 새도 없이 차오르는 눈물 같은 전율 말이다.
탁-!
그때 타격음과 함께 반주가 멈췄고.
“이제 네 차례야.”
HS가 의자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젠 잘할 수 있겠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운 채 물어왔다.
* * *
현승은 브릿지부터 이어지는 하이라이트 코러스는 함께 녹음하면 좋겠다는 명목을 빌어, 둘을 동시에 부스 안으로 떠밀었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부스 안에 서 있는 모녀를 눈에 담았다.
‘이것 참.’
서로 어색함에 눈치를 살피는 둘을 보고있노라니, 자신마저 어색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억지로 화해시킬 마음은 없다. 애초에 강제로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오해도 아니고.
그저.
발판 하나를 놔주는 것뿐이다. 깊은 골이 생겨 버린 둘이,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는 ‘핑계’라는 발판 하나 말이다.
“자, 본인 파트 잘 챙기시고, 원 테이크로 가 볼게요.”
현승은 토크백을 통해 무심히 말하고는, 모녀를 바라봤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모녀를.
─ 우리는 너무 돌아와 버렸으니까.
조심스럽게 엄마를 훔쳐보는 딸을.
─ 버려진 시간들이 너무 많으니까.
딸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엄마를.
─ 우리에게 웃을 날만 남았기를.
─ 우리에게 행복할 날만 남았기를.
맞닿지 못한 서로의 시선은 공중에서 흩어졌다.
─ 앞으로는 네 곁에 함께 할 테니.
─ 두 손 꼭 잡아 줄래요.
결국 두 사람의 손이 허공을 맴돌다 떨어졌다.
─ ♬ ♬ ♬
현승은 의미 없이 흐르는 아웃트로를 듣다가, 스페이스바를 눌러 음원을 멈췄다.
그러고는 이내 한 손을 올려 주먹을 쥐어 보였다.
오케이라는 의미였다.
“꺄!”
그 뜻을 알아들은 조예리는 신났는지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구르다 말고, 자신을 보며 싱긋 웃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멋쩍은 양 헛기침을 해 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도망치듯 부스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무래도 아직 엄마 곁이 어색한 모양이다.
“이제 녹음 다 끝난거죠?”
조예리가 들뜬 목소리로 물어왔다. 현승은 그 모습에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아니?”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응, 감정 올라온 김에 첫 벌스도 다시 따야지.”
“아, 아니, 그건 아까 다 오케이….”
현승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반성의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네. 밥 먹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부스 들어가.”
“예?”
“밥은 나 말고, 조경미 씨랑 사이 좋게 다녀오도록.”
그 말에 조예리는 절망스럽다는 양 그 자리에 주르륵 쓰러졌다.
“어머!”
뒤늦게 부스에서 나오던 조경미는, 그런 조예리를 부축했다.
“괘, 괜찮니, 예리야?”
“아, 괜찮아요.”
조예리는 표정을 굳히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둘 사이가 단번에 좋아지기는 어렵겠지.
그래.
오랜 시간 방치된 만큼 잔뜩 곪아 버린 감정이, 한순간에 치유가 된다면 그건 기적일 테니까.
현승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작곡가님이 같이 바, 밥 먹고 다시 오래요.”
조예리가 선글라스를 끼우며 말했다. 역시 둘 사이에는 아직 핑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응, 그래.”
그리고 그런 핑계 하나만으로, 높이 솟아올랐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 또한 가족일 테고.
“우리 같이 밥 먹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