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14화(313/482)
미국에 도착한 현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웃는 거였다.
그래.
조조모녀의 작업 같은 경우,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해결해 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었다면….
이상하게 마사라테 부녀의 작업은 자꾸만 기분이 들떴다.
뭐랄까.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달까?
현승은 우선 유니스 뮤직 그룹 근처에 도착해 곧장 카페로 향했다.
피로를 푸는 건, 역시 커피만 한 게 없으니까.
꿀꺽.
크게 한 잔 들이켜자마자, 바싹 건조하게 말라 버렸던 목구멍이 촉촉해지는 기분이다.
“이제 가 볼까.”
이윽고, 현승이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H, HS?”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초록빛 눈을 지닌 외국인 여성이 서 있었다.
‘내가 저런 사람을 알던가?’
아무리 곱씹어 봐도, 태어난 이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시죠?”
그 여자는 제 물음에 대답 대신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조작해 대기 시작했고.
“당신, 맞죠?”
이내 여성이 제 휴대폰 액정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액정 위로는 사진 하나가 가득 떠오른 채였는데….
바로, 팬 미팅에서 찍힌 프리뷰.
이 사진이 미국에서도 퍼졌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나는 당신의 팬이에요!”
“저는 HS가 아닙니다.”
현승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시침을 뗐다. 역시 이럴 땐, 아니라고 잡아떼는 게 상책이지.
그러자.
여자는 실낱같은 희망이 담긴 얼굴로 재차 물었다.
“정말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하지만 얼굴이….”
“바빠서 이만.”
현승은 단호히 선을 긋고, 실망한 여자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몇 걸음을 내딛기도 잠시.
“하….”
걸음을 멈춰 선 현승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젠장.’
이제 이국의 땅에서마저 편하게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얼굴은 밝혀졌고, 자신이 벌인 일이다. 감당해야만 하고, 전생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신중히 행동하는 수밖에.
물론.
현승은 ‘신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선글라스 끼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 * *
사라 스튜어트의 개인 작업실 안.
“왜 그런 얼굴인데?”
현승이 사라 스튜어트를 향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 스튜어트가 10분째 자신을 뾰로통하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묵 시위 하는 거야?”
하물며, 입술은 앙다문 채 열릴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마테오의 곡을 골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님)
“그래도 어쩌겠어. 네가 마테오 곡을 고른 거잖아.”
사라 스튜어트가 입술을 달싹이기도 잠시.
“네가 미숫가루와 곡을 인질로 잡고 나를 시험에 들게 한 거잖아! 애초에 그런 제안을 왜 했어!”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성량은 어찌나 좋은지, 작업실 벽면을 타고 공명이 울려 퍼질 정도였다.
“입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았냐.”
“시끄러워!”
“나 조용히 말했어.”
제 말에 사라 스튜어트는 씩씩거렸다. 또 맞는 말인 까닭이었다. 현승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호수처럼 잔물결 하나 없이 차분했다.
고저 없는 투로 대꾸할 뿐, 큰 소리는 낸 적이 없었다. 물론 속으로는 몇 번이나 웃어 댔지만.
“미숫사라.”
이내 현승이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말했다.
“그냥 곡 작업 좀 하는 것뿐이니, 너무 성내지 마. 둘이 계속 붙어 있으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말에 사라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너도 같이 작업하는 거야?”
마테오와 단둘이 남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현승은 그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물론이지.”
하나, 사라는 포기한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트리며 앓듯이 중얼거렸다.
“그럼, 며칠간은 붙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네.”
“왜 얘기가 그렇게 돼?”
“네가 함께라면 작업이 빨리 끝날 리 없잖아.”
“그거야 네가 어떻게 연주해 내느냐에 달린 거지.”
현승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사라는 콧방귀를 끼며 “거짓말.” 하고 즉시 반박했다.
“거짓말 아닌데? 실제로 녹음 한 번에 끝난 사람도 있었어.”
하나, 다음 이어진 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나 놀란 건지 말도 절었다.
“어, 엉…? 진짜? 거짓말 아니고?”
그러기도 이내, 머릿속에 인물 하나가 번뜩 떠올라 꼬치꼬치 캐물었다.
“누, 누군데? 어, 어떤 가수야? 서, 설마 빈센트는 아니지?”
제 입에서 “아니야.”라는 답변이 나오자 사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빈센트라고 했으면, 저 봉긋한 이마가 와그작 구겨졌겠지. 드높은 자존심과 함께.
물론….
빈센트가 아니라도, 자존심이 상하긴 마찬가지일 테지만.
현승이 그런 점까지 배려해서 얘기할 위인은 되지 못했다.
“윤제이가 원 테이크로 끝났을 거야. 정아린도 두세 번 만에 끝난 적 있었고.”
“혹시 네 팬 미팅에 게스트로 왔던 한국 가수들 말하는 거야?”
“응, 맞아.”
사라의 얼굴이 점차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럴 만도 하지.
사라는 미숫가루라는 목적 하나만을 고대하며, 녹음실에서 썩다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으니까.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아니, 저번에 보니까 다들 노래는 잘했지만 나보다 특출나게 잘한다고 느끼진 않았단 말이야.”
“와, 인제 보니 자뻑이 심하네.”
“자뻑이 아니라, 진짜 왜 그들은 빨리 끝난 거야? 네가 귀찮아서 대충 넘겼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말에 현승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왜 그랬더라?
사실 진지한 건 아니고, 기억이 흐릿해진 까닭이었다.
정아린은….
목소리에 ‘벚꽃 한 줌’이라는 곡으로 자신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이 그득하게 드러났었다.
하나,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다.
‘벚꽃 한 줌’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서 왔었으니까.
그리고, 윤제이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그 곡은 오롯이 윤제이의 것이었다. 윤제이의 이야기로 만든 곡이었으니까.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삐죽거리며, 멜로디 라인을 날카롭게 찌르는 구간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이야기의 한 부분처럼 들렸다.
그래.
그래서 어떤 말도 없이 한 번에 오케이를 냈던 거였다.
다른 사람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연주였으니까.
아아.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때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곡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던 게.
“흠….”
무어라 설명할지 고민하던 현승이, 나지막이 답했다.
“그들의 사적인 감정이 드러났는데도, 그냥 날 것 그대로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러고는 이내, 사라 스튜어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오늘, 네 연주를 듣고,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사라는 다시금 “거짓말.” 하고 콧방귀를 껴 보였다.
하나, 얼굴 위로는 기꺼운 기색이 가득했다. 내심 자신 있다는 듯 고개도 빳빳이 치켜들었다.
“이런, 미국 온 지 반나절도 안 돼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럼야, 고마운 일이지.”
“어? 너 진짜 작업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사라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쩐지 그런 얼굴 위로는 아쉬움이 비쳤다.
“응, 아직 남은 퀘스트가 하나 더 있거든.”
덤덤히 답한 말에 사라가 “퀘스트?” 하고 되물었지만.
턱-!
현승은 대답 대신 묵직한 가방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다른 말로 화제를 전환시켰다.
“자, 선물.”
* * *
한편.
마테오는 자신이 가진 양복 중 가장 번듯해 보이는 양복을 골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별로 없다 보니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서 거지가 따로 없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이왕이면 말끔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낫겠지.
결국.
마테오는 예상 시간보다 빨리 집을 나서, 미용실로 향했다.
머리를 다듬고 나니, 거울 속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터벅, 터벅.
아직 약속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까닭에, 마테오는 걸어가기를 택했다. 내리쬐는 가을 햇살도 좋았고.
사실 그건 핑계고….
긴장감이 몰려오는 탓에, 차를 탈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내딛는 걸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턱, 턱, 턱.
늙어서 심장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쓸데없는 염려였던 모양이다.
발끝을 치고 다시 돌아오는 심장 때문에 목구멍 안에서는 신물이 올라왔다.
살면서 이렇게나 긴장한 적이 있던가?
아, 맞다. 젊었을 때는 있었지.
아내와 처음 데이트하러 가던 그 길에,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그날에, 그리고 딸 사라가 태어나길 기다리던 그 시간만큼은.
지금과 같이, 토할 듯한 긴장감을 느껴 봤던 것 같다.
“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고르던 찰나였다.
『 transmettre l’amour 』
사랑을 전한다는 뜻의 프랑스어가 적힌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교롭게도 그 가게는 꽃집이었다.
“음….”
딸아이가 꽃을 좋아했던가? 어릴 때, 제 엄마 손을 붙잡고 나가서 꽃을 따 오곤 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내가 주면 좋아하려나? 역시나 싫어하겠지?
딸랑-!
한참 꽃가게 앞에서 고민하고 있노라니, 단아하게 생긴 꽃집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말을 걸었다.
“꽃 선물하시려고요?”
“아, 뭐….”
“누구한테 선물하시려고요?”
마테오는 차마 “딸에게요.”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제 이미지나 챙기자고 그런 건 아니었다.
저 꽃집 주인이, 자신이 마테오라는 걸 알고 있다면 ‘딸’이라는 말에 궁금증을 품을 게 분명하니까.
물론.
못 알아봤을 수도 있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늘 경계하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기나긴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미, 미안한 여자한테요.”
이뿐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꽃집 주인은 의외의 대답에 눈을 깜빡이기도 잠시.
“잠시만 기다려 보시겠어요?”
싱그럽게 웃으며 꽃집 안으로 뒤돌아 들어갔다.
마테오는 닫힌 가게의 문을 바라보며,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걸어오니, 얼떨결에 대답한 것뿐인데….
‘사라가 싫어할 텐데.’
이내 마테오가 다시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짤랑! 하는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꽃집 사장이 하얀 튤립 다발을 품에 안은 채 나왔다.
“이거, 가져가세요.”
마테오는 난감한 기색을 보이기도 잠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래.
이미 포장까지 해서 들고 나왔는데 안 산다고 할 수도 없고, 가는 길에 버리면 되니까.
“얼마인가요?”
제 물음에 꽃집 사장은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다시금 싱그럽게 웃어 보였다.
“하얀 튤립의 꽃말은 용서와 사과거든요. 꼭 진심으로 사과하시고,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랄게요.”
마테오는 왠지 울컥하는 마음에 고맙다는 짤막한 말만 남긴 채, 걸음을 재촉했다.
.
.
.
미리 약속된 작업실 앞에 도착한 마테오는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이 안에 딸아이가 있을까? HS는 이미 왔을까?
수많은 궁금증이 피어올랐지만, 선뜻 문을 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스-윽.
다만, 제 손에 들린 하얀 튤립 꽃다발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는 게 크나큰 문제였다.
이대로 들고 들어가면, 웬 꽃이냐고 묻지 않겠는가?
HS를 주려 사 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마테오가 꽃다발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진 그때.
“꺄악-!”
작업실 안에서 사라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벌-컥!
마테오는 고민할 새도 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고.
“Fuck…….”
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큰 가방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빵빵하게 몸을 부풀린 채였고.
HS가 그 안에서 꺼낸 듯한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제 딸아이는 그 봉투 입구를 잡은 채 코를 킁킁거리며 잔뜩 신난 얼굴로 발을 굴렀다.
이윽고.
마테오가 참지 못한 분노를 터트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 사라한테 지금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