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17화(316/482)
마테오는 녹음 부스 안에서 입술 사이로 바람을 빼며, 입을 풀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부르르르-!”
녹음실 스피커를 통해 제법 귀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괜스레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어릴 적 딸아이에게 배 방귀를 뀌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꺄르르르르-!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엉성하게 자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했다.
하나, 이젠 볼 수 없는 미소가 되었다.
눈앞에 있는 딸은 이제 자신을 보며 그렇게 웃어 주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딸아이가 숙녀가 되어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집 안을 감도는 냉랭한 분위기를 떨쳐 내려, 말을 붙여 봐도 늘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웃는 얼굴보다,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딸아이의 얼굴이 더욱 깊숙이 새겨져 버렸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잔상 속에서나마 어릴 적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찾아보고자.
─ ♬ ♬ ♬
이내 잔잔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꿀-꺽.
최대한 감정을 빼고 들어야지 하면서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딸아이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수도 없이 들었다.
물론, 음원과 영상을 통해서만.
이렇게 실제로 들어 보는 건 처음이다. 아마 제 엄마를 닮아,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곧 잘하는 것 같았다.
하나.
오늘은 이 곡을 만든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라는 명분을 지닌 채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니, 최대한 감정을 빼고 들어야겠지.
“후….”
마테오는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게 숨을 내뱉었다.
HS가 그 모습을 흘끔 바라봤지만, 이내 시선을 거둬들였다.
지금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제 딸아이는 무슨 감정을 담고 노래를 부를까.
─ 솔직히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속을 아련히 파고들었다.
역시, 제 엄마를 쏙 빼닮았다.
묘하게 심장을 긁는 듯한 청량한 목소리였다.
─ 그대의 마음을, 전부 다 헤아릴 수는 없어요.
자신이 만든 가사와 HS가 만든 가사를 바꿨다지만, 이미 여러 차례 파일로 전달받아 확인한 바 있던 가사다.
그런데, 그 가사를 딸아이의 입을 통해 전해 들으니 새롭게만 들렸다.
한 음절, 한 글자, 한 호흡.
모든 점에 있어서,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 어쩌면 저도 이기적일지도 모르죠. 그대에게 바라기만 했으니.
이내 딸아이는 눈을 내리깔았다. 느린 템포의 음률을 그대로 즐기듯,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 하지만 미워요. 뼛속 깊이 시릴 만큼 그대를 미워해요.
그러기도 잠시, 질끈 감은 딸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림과 동시에 목소리도 함께 떨려 왔다.
─ 그래서 더 아파요. 그대를 미워하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워요.
후렴구에 접어들자, 솜털같이 가볍던 목소리에 강한 힘과 함께 썰물처럼 감정이 실려 왔다.
─ 조금 더 곁에 머물고 보다 깊게 들여다봐 주지 그랬어요.
분명 자신을 생각하며 부르는 건 아닐 거라는 걸, 마테오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씁쓸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사라의 노랫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 나는 그대밖에 없었는데, 정말 세상에 그대밖에 없었는데.
정말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비록 원망 섞인 투정이겠지만 미안했다.
와이프를 보내고, 딸아이에게는 내가 전부였을 텐데 그때 제대로 옆을 지켜 주지 못한 것이….
다 알아서 할 거라는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잠깐.”
마테오가 속절없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던 찰나였다.
“이제 한 소절씩 가 보는 걸로 하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서늘한 눈매를 한 HS의 옆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녹음할 때와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뭐랄까.
자신을 바라볼 때는 탐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뭐부터 먹을지 간을 보는 짐승 같았다면….
지금은 무리를 배반한 이탈자를 바라보듯 차가웠다.
‘왜 저러지?’
마테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듣기엔, 사라의 노래가 딱히 거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목소리의 떨림조차, 음악의 일부분처럼 들렸으며 피치부터 박자, 호흡 모두 지적할 만한 곳은 없었다.
조금만 다듬으면서 간다면, 약 두세 번의 테이크만에 끝날 거라 예상했기에, 되레 아쉬울 정도였다.
근데, 지금 HS는….
─ 솔직히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진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 그대의 마음을, 전부 다 헤아릴 수는 없어요.
“내 맘 좀 잘 헤아려 봐.”
─ 어쩌면 저도 이기적일 지도 모르죠. 그대에게 바라기만 했으니.
“너무 이기적으로 부른다.”
추상적인 말들로, 딸아이의 노래를 한 소절마다 잘라 내고 있었다.
─ 하지만 미워요. 뼛속 깊이 시릴 만큼 그대를 미워해요.
“나도 네가 뼈가 시릴 만큼 참 밉다, 다시.”
─ 그래서 더 아파요. 그대를 미워하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워요.
“나도 이런 노래 듣고 있으면 괴로워. 다시.”
─ 조금 더 곁에 머물고 보다 깊게 들여다봐 주지 그랬어요.
“조금 더 호흡 머금고, 보다 깊게 감정 담아서 다시.”
자신이 부를 땐, 깐깐한 보컬 트레이너마냥, 개선점을 콕 짚어 알려 주던 HS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디렉팅이 아니라, 시비를 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나는 그대밖에 없었는데, 정말 세상에 그대밖에 없었는데.
“물 마시고, 다시 벌스 처음부터 들어갈 거야.”
결국 1절을 거듭 부른 이 시점에도, 한 테이크 조차 살리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
“잠시, 얘기 좀 하지.”
마테오가 더는 안 되겠다는 양, 다급히 토크백을 끄며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뭘요?”
“지금 디렉팅 아니잖아.”
그러고는 딸에게 안 보이도록, HS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잔뜩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어떤 느낌으로, 호흡을 얼마나 담아서, 음정을 반음 올려서, 박자를 밀 듯이.
통상적으로 이런 말들이, 디렉터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다.
헤아려 보라거나, 괴롭다거나, 밉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 물론 사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전제하에.
그래.
보통 디렉팅을 한다는 건,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해 둔 가수의 목소리를 최대한 비슷하게 나올 수 있도록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HS가 하는 행위는 끌어내긴커녕 노래가 지닌 방향성을 더 알 수 없게 만들 뿐이다.
자신도 프로듀서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니, 잘못된 점은 꼭 짚어 얘기해 줘야지.
“내 딸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있나? 사이가 좋아 보이더니, 고새 틀어지기라도 한 건가?”
비아냥이 섞인 제 물음에 HS의 눈동자가 한층 더 짙어졌다.
짙은 흑색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별안간 한기가 들었다.
“감정이라면, 지금 영감님이 품고 계신 거 아닌가요?”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혀 들었다.
“저는 사적인 감정 없이 그저 디렉팅을 봐주는 것뿐입니다.”
그 말에 마테오는 짐짓 더 고압적인 자세로 되물었다.
“그럼, 아까랑 다르게 왜 계속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는 건데?”
HS는 그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돌려 부스 너머에 멀뚱히 서 있는 사라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영감님이 들으시기엔 방금 사라가 노래를 잘 부른 것 같아요?”
머지않아 HS는 대답 대신,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재차 물어 왔다.
“솔직히 호흡, 발성, 음정, 박자 뭐 하나 틀린 게 없었잖아? 애를 그렇게까지 사지로 몰아붙일 만큼 못 부른 건 아니라 생각하네.”
“애라고요? 여기서 쟤는 프로여야 해요. 애가 아니라.”
그러고는 자신에게 시선 한 점 두지 않은 채, 싸늘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이 곡이 지닌 감정을 제일 잘 아셔야 하는 분이, 저게 잘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면 이만 나가 보셔도 될 것 같네요.”
이내 마테오는 아무 말 없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차라리 또, 딸을 두고 한 협박이었다면 난리를 쳤을 텐데, 저건 협박이 아니다. 명백히 프로듀서로서 자질 박탈이라는 말이었다.
아주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곡이 담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이 곡을 써 내려갔는지.
그래.
사라 스튜어트가 부르는 이 곡은, 가족을 향한 미움보다는 헤어진 연인을 향해 부르는 것 같았다.
가사가 중의적인 것도 있었지만, 감정은 분명 달라야 했다.
사라 스튜어트는 그걸 해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감정을 실어 보낸 것이다. 그러니 HS도 똑같이 두루뭉술하게 대한 것이겠지.
자신은, 딸에게 미안함이라는 사적인 감정을 담고 들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애달프게 들렸을 뿐이다.
맞다….
사적인 감정으로 사라 스튜어트를 대한 건, HS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이윽고.
탁-!
마테오는 결심한 듯, 토크백을 누르며 말했다.
“사라 스튜어트, 이번에는 곡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가 볼게요.”
* * *
사라는 여러모로 괴로웠다. 마치 HS가 두 명이 된 기분이었다.
HS와 마테오가 번갈아 토크백을 통해 “다시”를 외쳐 댔으니까.
“자, 잠시만요….”
곧 죽어도 앓는 소리는 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러다간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
차라리 어떻게 하라고 말이라도 해 주면 좋은데, 무한 “다시”라니.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하지만, 둘은 자신을 봐줄 마음이 없다는 양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HS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 아빠도 디렉팅을 할 때 저런 얼굴을 짓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럼 딱 30분만 쉬고 다시 가는 걸로 하지. 목 잠기니까, 너무 오래 눈 붙이지 말고.”
사라는 그 말을 뱉는 HS가 악마처럼 보였지만, 대꾸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그러고는 이내 소파에 몸을 뉜 채,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아빠, 아빠!”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였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자신은 양 갈래로 대충 질끈 묶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병원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오늘은 나랑 놀자, 응?”
그러고는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환자복 소매를 끌어당기며 볼멘 목소리로 떼를 써 대기 시작했다.
저건, 꿈이 아니다.
분명 자신의 머릿속 깊게 내재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이었다.
저 때는 ‘사고’라는 개념조차 모를 만큼 어렸다.
엄마도 별일 아니라며, 놀란 자신을 달래 주기도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급히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더랬다.
한쪽 팔을 제외하고는 붕대로 칭칭 감은 채, 거동은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할 만큼 크게 다쳤음에도 나는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아빠는 자신에게 슈퍼맨이었으니까.
자신은 철없이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늘 목마를 태워 달라며 한참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잠들었다.
아빠는 그런 내게 며칠 밤만 기다려 달라며, 여린 등을 다독이느라고 멀쩡한 손마저 쉴 틈이 없으셨다.
“아빠아, 나 목마 태워 주라.”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저 날도 나는 목마를 태워 달라며 떼를 썼다.
아버지는 자신을 다독이는 것 대신, 몸을 힘겹게 버둥거렸다. 나중에는 분하다는 양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아, 아빠아, 왜 그래….”
그런 아빠를 보고 있노라니, 어린 마음에 무섭기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흑, 흐윽, 흑, 젠장….”
아빠는 몸을 버둥거리다 말고, 별안간 시체마냥 몸을 축 늘어트리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 아빠아, 헝….”
그땐 그냥 나도 따라 울었다. 아빠가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빠가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 마.”
하나, 이젠 알 수 있었다.
“우리 딸, 생일인데 아빠가 목마 한 번을 못 태워 줘서 미안해….”
아빠는 그저 자신에게 목마 한 번을 못 태워 줬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마냥 엉엉 우셨다.
“흡, 정말 미안하다….”
어린 딸을 붙잡고, 서럽게도 우셨다.
꿈이어서 그런지, 기억 저편으로 멀어졌던 그날 아버지의 힘겹던 몸짓과 표정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다.
미안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꿈속의 어린 자신은 어리둥절한 마음에 아빠 품에서 엉엉 울기만 한다.
‘철없는 년.’
어린 자신에게 속으로 욕을 지껄이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났다.
.
.
“……라야! 사라야!”
스스로 깨어났다기보단, 제 몸을 흔드는 손길에 깨어났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걱정이 가득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 꿈에서 만났던 아빠와 달리, 참 많이 늙었다.
“괜찮은 거야?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매섭게 디렉팅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락없는 아빠의 얼굴을 한 채였다.
“어, 미, 미안하다….”
그는 눈이 부셔, 인상을 찡그린 자신을 보고, 자신을 건드린 손이 불쾌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제 몸을 흔들던 손을 서둘러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에는 자신을 안아 주고자, 힘겹게 뻗던 손이, 이젠 제대로 뻗지도 못한 채 눈치를 보며 거둬진다.
‘그런 게 아닌데.’
하지만, 꿈에서처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자존심인지, 오래 쌓아 온 마음의 벽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터벅, 터벅-.
다시 콘솔로 돌아가는 마테오의 등짝을 바라보기도 잠시.
“저, 바로 다시 할게요.”
사라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부스 안으로 향했다.
“원 테이크로 가 주세요.”
그런 사라의 얼굴 위로는 비장함이 깃든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