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18화(317/482)
“됐나요?”
현승은 사라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옆에 앉은 마테오는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를 떨구고 있던 채였다.
끼익-!
사라 스튜어트는 개운하다는 얼굴로 부스를 나왔다.
“나도 나름 한 테이크만에 끝난 거, 맞지?”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물어왔다. 현승은 그런 사라 스튜어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대체 무슨 심경 변화지?’
아까 전만 하더라도, 로맨스 영화 속 처량한 여주처럼 불렀다.
분명….
곡이 지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듯, 정처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다시”를 외쳐 댔다.
하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마테오 또한 합세해 사라 스튜어트를 몰아세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사라 스튜어트는 항복을 선언한 채, 소파에서 전사해 버렸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얼마 안 가 앓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마테오가 깨웠으니까.
그래 봐야, 30분 정도 흘렀으려나?
잠에서 깬 사라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 주위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기도 잠시.
사라는 새하얗게 돌아온 얼굴로 부스에 들어갔다.
하물며 원 테이크로 가자며 당찬 포부도 드러냈다.
마치, 본인이 원 테이크만에 두 사람을 만족시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라 스튜어트는 포부대로 단 한 번의 테이크만에, 다시 부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정확히 그녀가 무슨 감정을 담아, 어떻게 다르게 불렀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건 현승조차 모르는 감정이었으니까.
‘각성이라도 했나?’
현승은 계속 떠오르는 잡념을 눌러 담으며 대답했다.
“원 테이크는 아니지.”
“그냥 그런 걸로 해 주면 안 돼?”
“아닐 걸 어떻게 그렇다고 해.”
“자고 일어났으면 리셋이지!”
아무래도 한국 가수 중 원 테이크만에 녹음을 끝낸 가수가 있다는 말에 꽤 자극받았던 모양인지, 사라는 계속 ‘원 테이크만에 끝났다.’라는 사실을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렸다.
하여간, 호승심이 너무 강하다니까.
“그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미숫가루도 리셋시킬까?”
제 말에 사라 스튜어트는 치사하다며 입술을 삐죽대다 말고, 마테오를 한 번 흘끔 바라봤다.
마테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현승도, 사라도 그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왠지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드르륵-!
때마침 마테오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입을 열었다.
“내가 좀 피곤해서 그러는데, 후작업은 내일 다시 만나서 하는 걸로 해도 되겠지?”
“그냥 오늘 끝내 버리죠? 저를 내일까지 보는 것보단, 그게 더 낫지 않으시겠어요?”
사실 내일 해도 되긴 한다. 현승 또한 연이은 작업으로 이미 에너지가 다 고갈된 채였다.
하나, 할 일이 많았기에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요. 오늘 다 하고 가는 게 낫지 않으세요?”
그때 사라 스튜어트도 말을 보탰다. 비록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명백히 마테오에게 가지 말라고 권유하는 말이었다.
“어, 그, 그럴까.”
마테오는 그 말에 냉큼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확실히….
사라 스튜어트에게 어떠한 심경 변화가 이뤄진 모양이다.
* * *
사라는 현재 밀려오는 잠 때문에 미숫가루 대신 커피를 입에 댈 정도로 피곤함이 쌓인 채였다.
하나.
후작업마저 참여하겠다며 부득부득 자리에 남은 이유는….
“영감님은 보컬이 약한 편이니, 이 구간은 더블링으로 보완해 보는 걸로 하죠.”
“그렇게 하지. 아, 여기 사라 브릿지 구간에서는 아예 이펙트를 빼고 가려고 하는데….”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한 두 천재의 최종 마스터링 작업을 직접 눈으로 담고 싶던 까닭이었다.
사라는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곡을 만들고 다시 재조립하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그 말인즉슨….
사라에게 있어선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이, 온 우주가 보지 말라고 말려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인 셈이다.
“여기서는 목소리가 먹히는 것처럼 들리니, 볼륨을 낮추는 게 좋겠어.”
미국 전역을 넘어서 세계적인 작곡가라고 알려진 마테오.
“아니요. 그럼 오히려 목소리가 반주랑 같이 먹혀서 들릴 거예요. 한마디로 별로일 거라는 말이죠.”
이제 막 빌보드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신성 작곡가 HS.
“음?”
두 사람의 팽팽한 작업이 이어지던 그때.
“장담할 수 있나?”
마테오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그런 얼굴 위로는 묘하게 기대감이 스쳤다.
“그걸 뭐 들어 봐야 아나요?”
HS는 마테오의 옆에서도 위축되는 기세 하나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익살스럽게 즉답했고.
탁, 타다다닥, 탁-!
손을 재빠르게 움직이기도 잠시.
“자, 들어 봐요. 별로죠?”
새로 작업한 구간을 재생시켰다.
“그렇군.”
마테오는 별다른 말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테오 정도라면 한 번 정도는 우겨 보거나, 다른 방법을 제시해 기를 눌러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놀라웠다.
어찌 보면 대등한 프로듀서로서 그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마테오의 의견대로 수정된 섹션은 자신이 듣기에도, 별로였다.
그러나 HS가 적용해 들려 주기 전까지는, 사라도 마테오의 의견에 속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HS는 머릿속으로 그걸 이미 들어 보고 별로일 거라는 걸 예측했다는 말이다.
그 예측은 적중했고.
오랜 경력을 지닌 마테오도 예측 못 한 걸, HS가 할 수 있다니.
‘진짜, 저 괴짜는 뇌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사라가 눈매를 좁히며 HS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찰나였다.
쿵-!
힘찬 굉음과 함께 작업실의 문이 활짝 열리기도 잠시.
“헉, 헉, 허억….”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HS-!”
그건 바로 빈센트였다.
“어, 마테오 선배님도 있으셨네요….”
그는 HS 옆에 앉은 마테오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겸연쩍은 기색을 보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테오는 냉랭한 얼굴로 대충 대꾸해 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이가 안 좋나?’
사라 스튜어트는 마테오의 그런 반응이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불청객에 대한 짜증이 먼저 솟구쳤다.
“노크라는 걸 모르나?”
사라는 곧장 빈센트를 째려보며 비아냥거렸다.
“HS가 내 연락을 안 받던 와중에, 딱 마침 미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온 것이니, 넌 좀 빠져 줬으면 하는데?”
“작업도 다 끝난 마당에, 왜 HS한테 연락하는데?”
빈센트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답했다.
“HS한테 용건이 있으니 했겠지.”
“그러니까, 무슨 용건인데?”
“내가 그걸 너한테 말해야 하나?”
그 말에 사라는 입매를 다물었다. 자신에게 말해 줘야 할 이유나 명분이 없는 건 맞으니까.
스-윽.
대신, HS에게 시선을 옮겼다.
“후….”
HS는 다소 난감하다는 얼굴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제아무리 HS가 남 눈치 안 보는 놈이라도, 한참 물오른 작업이 자신 때문에 중단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빈센트.”
이내 HS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따로 얘기 좀 하지.”
그러고는 마테오에게 남은 후작업을 부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의 막바지였기에 마테오 혼자만으로 충분한 양이었지만, HS는 영 마음이 불편한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윽고.
HS는 빈센트를 연행하듯 끌고 나가다 말고, 자신을 넌지시 불러 세웠다.
“미숫사라.”
“어?”
“영감님 데리고 가서 식사라도 좀 대접해 드려. 늙어서 고생하시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참 나, 그걸 왜 내가 대접…!”
“저 가방, 도로 들고 가도 돼?”
제 말허리를 자른 HS는 눈짓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Fuck….”
사라는 분하다는 양, 입술을 잘게 깨물며 욕을 중얼거렸다.
마테오와 단둘이 식사라니, 어색해서 미칠 것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HS가 빈센트와 비밀 얘기를 하러 가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저 가방에는….’
몇 개월은 먹어도 넉넉할 만큼의 미숫가루가 들어 있는 가방이었기에, 차라리 가방은 가져가도 되니 셋이 밥을 먹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다음에 또 보자.”
HS는 인상을 찡그린 채, 씩씩거리는 제 볼을 콕 찌르며 처음 들어 보는 다정한 어투로 덧붙였다.
“그리고 미숫가루 좀 나눠 마셔. 저거 혼자 다 먹는 날에는 정말 굴러다니겠다.”
그냥, 정말 말투만 다정할 따름이었다.
* * *
현승은 제 앞에서 싱글거리는 빈센트가 상당히 거슬렸다.
“왜 계속 웃지?”
빈센트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사실이 마뜩잖을 뿐이다.
“아니, 타이밍이 너무 좋잖아.”
지한테나 좋았겠지.
“나에겐 최악의 타이밍이었는데.”
현승은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제 물음에 빈센트는 실망스럽다는 양, 어깨를 늘어트리며 답했다.
“여태 내가 연락한 거, 하나도 안 읽은 거야?”
“응.”
“정말 너무하네.”
“원래 휴대폰을 잘 안 보는 편이라.”
“그래도, 저번에 내가 통화로도 말했었잖아.”
현승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양 “아.” 하고 탄식을 뱉었다.
“그거라면 명백히 거절 의사를 밝혔을 텐데, 혼자 다 하라고.”
사라 스튜어트와 열애설이 터진 직후, 빈센트가 별안간 레이블 동업을 하자며 제안을 해 온 적이 있었다.
그래.
자본도 다 대 주고, 대표로 세워 줄 테니, 본인을 위한 1인 레이블을 차리자고 했던가?
듣기만 해도 재미없는 얘기라, 단칼에 거절했던 게 생각났다.
“그렇지만, 이후 연락한 건 아직 확인 안 해 본 거잖아?”
“봐도, 안 할 거니까 이만 돌아가도 되지? 영감님 혼자 놔두고 왔더니 좀 불안해서 말이야.”
빈센트는 황급히 제 손목을 잡아채며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잠깐, 잠깐만-!”
“안 한다니까?”
“한 번 좀 들어 보기라도 해.”
그는 남자를 붙잡고 애원하는 모양새가 그려지자, 몹시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아마 내 얘기 들으면, 너도 거절하지 못할 거야.”
하나, 빈센트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본이라던가 투자, 유통 라인 전부 다 내가 해결해 놓을게. 사옥도 당연히 내가 마련해 둘 거고.”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거라니까?”
“대표이사도 네가 해. 난 사내 이사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것도 나 혼자 법인 하나 설립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아, 좀 토 달지 말고 들어 봐. 이다음이 중요한 거니까.”
현승이 알겠다는 듯, 상체를 뒤로 젖히고 앉자 빈센트는 다음 말을 어렵사리 꺼내 들었다.
“정말 나로서는 배 아픈 일이라, 사실 내키진 않거든?”
“뭔데, 뜸을 들여?”
“우리가 만들 레이블에 소속될 인원을 네 맘대로 세팅하도록 해.”
“무슨 말이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악기들로 세팅해 놔도 좋다고.”
그 말에 현승은 대답 대신 빈센트를 바라봤다.
빈센트는 제 진득한 시선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황급히 다음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내부 직원들도 네가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으로 세팅해도 군말 안 할게.”
그런데도, 현승의 입술은 지퍼를 달아 놓은 듯, 꾹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 인생이 바뀔 기회야. 잘 생각해.”
빈센트는 애끓는 마음에, 괜스레 큰 소리로 첨언했다.
“…….”
기나긴 침묵 속에서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만 들려 오기도 잠시.
“고민해 보고 연락하지.”
현승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톡 읽어 줄 거지?”
어딘가 애처로운 그의 물음에, 짤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센트의 작업실을 나섰다.
“하, 하….”
현승의 얼굴에는 복잡하게 얽힌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