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19화(318/482)
현승은 마사라테 부녀의 후작업까지 끝마친 뒤, 서둘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 시간을 제외하면 미국에 머무른 건 고작 3일 남짓 정도.
몹시 살인적인 스케줄이긴 했지만, 현승은 제법 쌩쌩해 보였다.
“밥도 좀 먹고, 쉬다 가지….”
사라 스튜어트는 천천히 쉬다 가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똑, 똑-!
아직 남은 작업도 있고, 급히 볼일이 생겨 버렸으니까.
“들어오세요.”
문 너머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승이 문을 열자, 집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김우현의 모습이 보였다.
눈가 밑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걸 보면, 아마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어, 금동이 왔어?”
그는 화색을 보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달라며 소파를 가리켰다.
사락, 사락-.
결재할 서류가 많은지, 그의 한 손은 쉴 틈 없이 서류를 넘겼고 남은 한 손은 사인하기 바빴다.
‘음….’
현승은 그의 콧대에 걸쳐진 안경 너머로 안색을 살폈다.
처음에는 그가 안 어울리게 멋을 부린다 생각했는데, 본부장이라는 명패가 놓인 책상에 저리 앉아 있으니 확실히 태가 났다.
물론.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긴 하지만….
탁-!
그때 김우현이 마지막 결재판을 닫으며 숨을 돌리기도 잠시.
“빌보드의 남신, 민금동!”
높이 쌓아 올려진 결재판을 뒤로한 채 황급히 다가와 물었다.
“많이 기다렸지? 작업은 잘했어? 당연히 잘했겠지. 암, 그렇고 말고. 네가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빌보드행 고속열차겠지. 근데 마테오랑 작업해 보니까 어때? 확실히 잘하기야 하지? 근데 피곤하진 않아? 간 지 얼마 안 됐잖아? 미국에서 바로 온 거야? 좀 쉬고 나오지 그랬어.”
물음표 살인마처럼 쏟아 내는 질문에, 현승은 급속도로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얼굴 까칠한 것 좀 봐….”
전부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귀찮지만 타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거울이나 보고 얘기해요. 누가 더 까칠한지.”
김우현은 까끌거리는 제 턱을 만지다 말고 피식 웃어 보였다. 괜히 민망한 까닭이었다.
“성격 까칠한 걸로 치면, 당연히 민금동이 승리지.”
“제가요? 그럴 리가. 저 정도면 다정다감한 거 아닌가요?”
“그래,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너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하면…, 어휴.”
김우현은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어 보이고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 내가 저렇게 진절머리를 낼 정도로 굴었나?
‘처음에 어땠었지?’
현승은 기억을 더듬어, 김우현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성의가 듬뿍 담긴 계약서로 다시 준비해 주시죠.”
첫 번째 만남.
“그래도 되는 거면 진작 말씀을 해 주시지. 서로 번거롭게 이게 뭐예요?”
두 번째 만남.
“어차피 1년 뒤면 몸값이 잔뜩 올라 있을 텐데, 그때 조건은 그냥 그때 가서 협의하기로 하죠.”
그리고 마지막 만남에서야 연을 맺었었지, 참.
돌이켜보면, 그가 한숨을 내 쉬는 것도 이해됐다.
하나.
그땐 죽음의 문턱에서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라,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야생에서 사는 들짐승처럼 바짝 날을 세우고 있었다.
분명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음에도, 믿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가족밖에 없었거니와 똑같은 미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시, 그리고, 빨리 성공해야만 했고.’
허물어져 가는 집, 밀린 고지서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아버지, 대학에 붙고도 등록금 때문에 구직광고부터 찾아봐야 했던 여동생.
그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이젠 회귀한 지도 어느덧 3년이나 흘러, 그때의 기억 또한 흐려졌다.
최근 들어선,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조차 간혹 망각할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현승은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겨, 김우현을 바라봤다. 자신이야, 스스로 실력을 아니까 자신만만했다지만.
이 사람은 고작 매절곡 몇 개만 들어봤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간절하게 매달린 걸까.
LS 엔터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물론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인재는 맞지만, 그건 뚜껑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었을 텐데….
확실히 감이 좋으신가? 관상학적으로 인복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왜? 내 얼굴 너무 까칠해?”
김우현은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이 부담되는지, 멋쩍다는 양 제 뺨을 쓸어내리며 물어왔다.
도리도리.
현승은 고개를 좌우로 내젓고는, 손잡이를 짚고 일어섰다.
“그냥 인사드리러 왔던 거라, 이만 가볼게요.”
그러고는 이내 걸음을 옮기다 말고 뚝 멈춘 뒤, 물었다.
“계속 저 믿고 함께 해 주실 거죠?”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김우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다소 낯간지러운 상황에,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
장내에는 침묵이 흐르기도 잠시.
“당연히 너를 믿지만,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예상외에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돌아보진 않았다.
“왜요?”
현승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불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치 어린애가 떼를 쓰듯이.
“네가 나아갈 넓은 세상에, 내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다정하면서도 단호함이 묻어 났다.
“아들 발목을 잡아서야 쓰나.”
그길로 현승은 아무 말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이것 또한 그의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타박하지 않기로 맘먹은 까닭이었다.
탁-!
하여간, 걱정이 너무 많으시다니까.
* * *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은 어딘가 복잡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두어 번 뺨을 두들기자, 다시 본래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찾았다.
“후.”
밀려오는 피로감에, 김우현에게 사우나라도 가자고 할까 싶었지만 이제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아져서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래.
이거까지만 끝내고, 아버지랑 현아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하루 푹 쉬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현승은 곧장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락, 사락.
그리고 굳게 닫아 놓았던 노트를 펼쳤다.
조조모녀
마사라테부녀
.
.
나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나’뿐이니까.
‘얼른 끝내 버리자.’
사실 조조모녀라든가, 마세라테 부녀라든가 작업이 끝난 것이지 그들의 사연이 끝난 건 아니었다.
하나.
그들의 케케묵은 사연을 곡으로 만들어 줄 수는 있다지만 오해의 실타래를 푸는 건 그들의 몫이다.
좀 더디더라도, 아주 천천히 다시 꼬이지 않도록.
가급적 행복할 수 있도록, 바랄 뿐. 거기까지가 작곡가로서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통해, 만난 그들은 모두 제각기 사정을 담고 제각기 다른 타이밍 속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니 분명 행복해질 거다.
그리고, ‘나’ 또한.
현승은 곧장 노트에 적힌 ‘나’라는 글자 위로 동그라미를 그려 냈다.
이제 자신의 케케묵은 먼지가 가득한 원념을 풀어 줘야 할 차례임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탁, 타다닥, 탁-.
그 뒤로, 현승은 김우현이 커피를 사 오고, 강하준이 간식을 사 오고, 박 전무가 잔소리를 하러 온 와중에도 손을 쉬지 않았다.
사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전 삶과 비교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에 겨운 삶이다.
그러나, 가슴 한편 깊숙이 밀어 두었던 그날을 이젠 털어 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누군가는 본인만 행복하면 되냐며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정말 모든 것을 털어내려 한다.
탁, 타다닥, 탁-.
그래, 현승은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온힘을 다해 코드를 찍어 내려갔다. 손가락이 얼얼해지도록, 기타를 튕기고, 건반을 두들겼다.
눈을 찌르는 머리칼을 대충 쓸어 넘겨가며, 광적인 눈을 번들거리며 마지막 코드를 찍은 그때.
탁-!
휴대폰 액정 위로 아버지의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아들, 시간 괜찮으면 오랜만에 엄마 보러 갈까? ]* * *
빈센트는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손톱을 물어 뜯었다.
분명, 답장해 주겠다고 했는데….
역시, 손가락이라도 걸고 약속을 받아내고 보내 줬어야 해.
1, 1, 1….
빈센트는 HS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며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던져 본 말이었다.
“나랑 레이블 차리자.”
다소 즉흥적인 면모가 있던 빈센트는, 사실 가수가 된 것도 지금 유니스 뮤직 그룹에 온 것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결정된 사항일 만큼 즉흥적인 면이 강했다.
그래도 신이 돕고 있는 건지, 그의 선택은 늘 옳았다.
그래.
가수로서도 대박이 났고, 전미에서 최고라 불리는 유니스 뮤직 그룹도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들어왔다.
그러니.
즉흥적으로 막 뱉은 그 선택 또한 분명 옳을 것이다.
그게 바로 빈센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날부터 빈센트는 HS에게 구애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레이블 하자, 어?
나랑 이 대중가요 시장을 점령해 보는 거 어때?
남자라면 자고로 그 정도의 욕망은 품고 살아야지.
톡을 안 깔아놨나?
알겠어, 그럼 내가 양보할게.
나 말고 다른 가수들 영입도 허락할게.
대신 사라 스튜어트는 안 돼.
번호 바꾼 거 아니지?
그러나, 답변은커녕 읽지도 않았다.
한국으로 찾아가 볼까? -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으나, 아주 조금 남은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HS가 사라 스튜어트와 작업을 하기 위해 유니스 뮤직 그룹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작업실로 찾아갔다.
그때, 한 번 더 확신했다.
프로듀서 석에 마테오와 나란히 앉아있는 HS를 보면서.
그래, 저 녀석이야.
저 녀석이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던 유니스 뮤직 그룹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나의 동아줄.
‘절대 놓쳐선 안 돼.’
늘 화제의 중심에 있고, 늘 최고의 자리에 있는 저 사람.
마치 명품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나오는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처럼 탐스럽고, 손에 갖고 싶었다.
모름지기, 사람의 욕망이란 구하기 어려울수록 구매 욕구가 차오르기 마련이지.
“그럼, 이제 톡 읽어 줄 거지?”
빈센트는 아주 조금 남았던 알량한 자존심까지 버려 가며, HS를 붙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믿고 보내 줬다.
그래.
믿었는데….
“아, 물론 내부 직원들도 네가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으로 세팅해도 군말 안 할게.”
분명 그때부터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서,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넘어올 거라고 확신했는데….
결국.
빈센트는 황망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1이 지워지지 않은 톡방 위로 독백을 이어 나갔다.
네 마음대로 날뛰어도 되니까 나랑 한 번 판 한번 벌려 보자.
톡, 토도독, 톡-.
I need you…
정말 이제 그에게 남은 자존심은 없었다.